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42화 (142/293)

142화

-서큐버스 (5)

“진짜… 한정우 플레이어라고요?”

슬쩍 뒤로 몸을 뺀 김미연이 눈알을 데굴 굴려 살폈다.

한정우를 연상시키는 그 어떠한 것도 없어 보였다.

호리호리하지만 근육으로 꽉 차 있던 몸매 대신.

근육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왜소한 몸은 툭 건드리면 쓰러질 듯 불안하게만 보였다.

언뜻 보기엔 전투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본래의 모습보다도 더 강렬해 보였다.

“맞아요. 아무래도 제 이름을 대고 들어가기는 어려우니까요.”

“……진짜 안 믿기네요. 그런 아이템이 있다는 소리도 처음 들어봐요.”

사람의 외형을 바꾸는 기술은 현재로서는 ‘오버레이’라 불린 덧씌우기가 전부였다.

김미연은 그걸 알 정도의 권한도 없었지만 말이다.

“근데 왜 외국인이에요?”

정우의 외형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외국인도 아닌, 혼혈처럼 보였다.

“익숙해서요.”

“…익숙?”

“그런 게 있어요.”

정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후우.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여기 서류요.”

당황을 억누른 그녀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서류 봉투를 건넸다.

“비타에도 보내놨어요.”

“수고하셨어요.”

“…진짜로 들어가게요?”

“들어가야죠. 자칫하면 대장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건 무슨 소리예요?”

정우는 김미연을 보며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알면 다쳐요.”

“…….”

정우가 거리를 두자 김미연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저는 그럼 이대로 있으면 될까요? 계획이 달라졌으니까….”

“지금만으로도 충분해요. 차라리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것도 좋겠군요.”

“……!”

김미연은 정우의 말에 흠칫 놀랐다.

자리를 벗어나라는 것.

그건 어떠한 위험을 예고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정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김미연에게 다시 말했다.

“귀국하세요. 그게 낫겠네요.”

한국에서 파견된 플레이어의 수는 70명.

얼핏 적은 수처럼 보이지만 최소 등급이 B급이라는 것만 놓고 보면, 막대한 전력이라고 봐야 옳았다.

어지간한 던전 따위는 순식간에 공략해 버릴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전투가 더 힘들어질 거예요.”

“…지금보다 더요?”

세이렌이 출몰하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왜 이곳이 미해결 지역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그나마 한국은 ‘저주술사’들 덕분에 피해가 적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세이렌의 저주를 막지 못해 피해가 속출했다.

던전 브레이크를 막지 못해 저지선을 뒤로 물리고 시간을 끌었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지면 밑으로 흐르는 수맥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

지하수.

놈들은 그것을 관통하여 자신들의 영토를 늘렸고, 마력이라는 이능을 활용하여 기습의 묘미를 살렸으니까.

마치 베트남 게릴라전이 연상될 정도로, 놈들은 몬스터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기습과 후퇴를 반복했다.

이전 여러 번의 공략 때엔 없던 사건이었다.

지능이 높아졌고,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지금 공략팀엔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아…. 이거 설명해 줘야겠네요.”

“뭘요?”

“안쪽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거 같아요.”

“자세히 설명해 봐요.”

“1차 지원까지는 일본에 입국했는데 2차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2차 지원을요?”

70명의 플레이어는 분명히 강자였다.

하지만 미해결 지역을 공략할 정도로 뛰어난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저주술사들은요?”

“…아마 반쯤은 못 들어올 거예요.”

“……!”

세이렌을 잡기 위한 패가 자연스럽게 무력화가 되었다.

“왜죠?”

“중국과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제 권한으로는 어림도 없고… 그냥 좀 복잡하고 큰 일이라고만 알고 있어요.”

정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 안에 저주 관련 스킬을 지닌 사람이 몇 명이나 되죠?”

“잠시만요.”

김미연이 비타를 조작했다.

“……네 명이요.”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네 명이라니.

아무리 머맨과의 전투가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저 지역은 엄연히 세이렌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장소였다.

세이렌의 능력이 주를 이룬다는 뜻.

‘일본에 알리기엔…… 안 돼.’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일본이 저주술사를 동원한다면 일은 잘 풀리겠지만, 자칫 한국의 입지가 흔들릴 수가 있었다.

‘유지석 협회장이 이 일을 계기로 뭔가를 손에 쥐고 싶어 해. 적어도 내게 해는 안 될 거다. 후우. 일이 꼬였군.’

“그런데 아마 한 명은 확실히 지원을 올 거예요.”

“한 명이요?”

예상치 못한 김미연의 말에 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로건이라고….”

“영국의 무덤지기요?”

상당한 거물이었다.

S급 빌런 하데스의 뒤를 이어 오히려 그의 자리를 찬탈할 거라 기대를 모으고 있는 A급 플레이어.

네크로맨서이지만 시체 부활보다는 시체 폭발과 함께 저주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충분해요.”

아쉽지만 나름대로 충분한 전력이었다.

미해결 지역의 몬스터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던전의 법칙을 넘어선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다.

던전이 현실에 덧씌워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음?’

생각을 잇던 정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덧씌운다?’

익숙한 개념의 단어가 하나 툭 하니 떠올랐기 때문이다.

덧씌우기.

이젠 오버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옳을, 그것 말이다.

저도 모르게 돌아간 시선이 꽤나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뭔가가 상당히 얽혀 있어.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후우. 일단은… 이쪽부터 처리해야지.’

마법사로만 활동하려던 계획이 오히려 빛을 발한 상황이 펼쳐졌다.

‘부족한 저주는 내가 진행하면서 상황을 봐야겠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서 생긴 지역은 마력 수치가 계속 상승한다.

F급의 던전 브레이크를 수년 동안 가만히 방치하면, C급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이트는 사라졌지만 어디에선가 지속적으로 마력이라도 공급되는 건지.

아니면 지구라는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이라도 하며 변이를 하는 건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를 초기에 진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패한 것들은 미해결 지역으로 남아, 공략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으나.

그 정도 되면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공략이 더욱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세이렌의 영토 역시 그렇게 방치된 장소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몬스터의 성장은 마력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즉, 등급의 향상.

거기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세이렌은 경우가 달랐다.

‘전술과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상, 골치가 아파질 거야.’

마법적인 재능은 뛰어난 몬스터였다.

마법이라는 고차원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지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던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이제야 제 지능을 찾아가는 걸지도.”

“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아닌 게 참 많네요. 아아, 나도 좀 알고 싶어라.”

김미연이 입맛을 다셨다.

정우는 이 사태가 일종의 트리거처럼 여겨졌다.

몬스터의 변화.

그것도 지능적인 변화.

그건 결코 반길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중국의 일도 미해결 지역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가정한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로건과 함께 움직이나요?”

“그건 확인해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왜죠?”

“왜긴요. 총리 때문이죠.”

“총리?”

“아마 이 서류의 등급대로라면 한정우 씨에게도 접근하려고 할 거예요. 물론 긴급에 준하는 상황이라 나중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지만요. 그런데 로건은 아니에요. 그는 한국인도 아니고, 그가 지원 온 곳은 일본의 미해결 지역이기도 하니까요. 그 정도 거물이라면 총리가 분명히 시간을 할애할 거예요. 알잖아요. 총리의 인재 욕심이 과하다 못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라는 거….”

“그렇군요.”

“같이 움직이게 말이라도 전해 달라고 할까요?”

“아뇨. 반대예요.”

“반대라면….”

“합류는 저희만 합니다. 로건은 한발 늦게 합류할 수 있도록 오히려 총리에게 안내해 주는 것도 좋겠군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로건의 합류 때 저도 만나야 하니까 한 팔 거들어 볼게요.”

“고마워요.”

씨익 웃은 정우가 김미연과 인사를 나눴다.

“다치지 말고 조심하세요.”

“이진수도 챙길 테니 걱정 마요.”

“……엑?”

김미연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회피했다.

다 들켜 놓고 저러는 게 웃겨 정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 이미 어느 정도 밝힌 거 아니었었나?’

약간의 의아함을 품으면서.

* * *

“정지!”

자위대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지금 작전 중입니다.”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서 지원 나왔습니다.”

“……?”

다가온 자위대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원은 이미 다 온 것이 아니었습니까?”

“서류는 여기에 있습니다.”

서류 봉투를 열어 서류를 확인하고, 정우의 비타를 확인해서 신분 검사를 마친 자위대가 경례했다.

“지원을 환영합니다.”

정우는 살짝 눈인사를 한 뒤에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외국분인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한국인은 맞죠. 하지만 모친이 미국 국적이어서….”

“아아.”

자위대원이 흥미롭게 정우와 메아리를 살펴보았다.

“이분은 일본인처럼 보이시는데….”

“호구 조사가 필요한 겁니까?”

“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약간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정우는 펜스의 입구로 다가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자위대원이 인솔자에게 경례했다.

“지원군이다.”

“부디 공략을 기원합니다!”

자위대원들의 인사를 뒤로한 채 정우는 열린 문으로 입장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마력의 농도가 다르군.”

마치 던전에 들어온 것처럼 마력의 농도가 짙어졌다.

예상보다 더 짙은 농도였다.

정우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운용하지 않았음에도 은근히 맺히는 마력의 흐름이.

“이상해.”

“…이상해요.”

정우는 이 상황이 기이하게만 여겨졌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지 모호하게만 느껴지지만.

“꼭….”

둘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경험한 것 같아.”

“본 것 같아요.”

두 눈을 부릅뜬 시선이 교차했다.

[ ‘세이렌의 영역(??)’에 진입하였습니다. ]

때마침 떠오르는 아주 오랜만의 메시지에 정우의 눈이 더욱 커졌다.

또다시 물음표가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던전화….”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 꽤 오래 지난 지역을 처음 밟은 정우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덧씌우기.

또다시 그 단어가 떠올랐다.

부서진 건물과 방치된 차량들.

여러 풀과 넝쿨 따위로 뒤덮여 있어 꼭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키는 장면.

눈을 감고 가만히 모든 감각을 일깨우면 드는 생각은.

“…이계.”

이곳은 확실히 이계라는 것이었다.

전생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유수의 학자들이나 플레이어들은 이곳을 이계의 영역이 확장된 곳이라고 주장했다.

정우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직접 체감한 건, 그런 간단한 내용으로는 알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무언가…….

치지직!

‘…기억?’

노이즈와 함께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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