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서큐버스 (4)
한 가정집.
후유 길드의 안가 중 하나인 그곳은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일반 가정집이었다.
가끔 관리인이 드나들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빈집처럼 방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육안으로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그 집의 주변에는 새조차 가까이 가지 않고 있었다.
들고양이 역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신 불안한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미약한 마력의 흐름.
그것을 잡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메아리였지만, 끝내 실패해서 약간의 마력을 흘린 것만으로도.
“이리 온.”
동물들은 전혀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쪼그려 앉은 메아리는 건너편 도로에서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는 들고양이를 향해 손짓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더니 오래 걸리네.”
메아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산 주전부리를 씹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우의 말에 또 다른 안가를 찾은 둘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정우는 마정석의 활용에.
메아리는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에 치중했다.
짧을 거라고 예상한 시간.
하지만 의외로 정우는 하루를 꼬박 소모해서 마정석에 매달렸다.
‘이게 그렇게 오래 걸리던 작업이었나?’
메아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을 더듬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녀에게 기억은 힘이었고 존재였으니까.
서큐버스는 타인의 꿈에 기생하는 존재다.
꿈을 통해 마력을 회복하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한다.
서큐버스는 꿈을 통해 상대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정우의 스킬, 망자의 기억과도 비슷한 종류였다.
다만.
정우와 연결되어 있는 메아리의 경우에는 서큐버스 본질의 능력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기억의 소실.
그로 인해 생긴 능력의 부재.
몇 개의 2단계 능력을 사용하지만, 몇 개의 1단계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상태.
그녀는 지금 ‘꿈’을 읽는 기본적인 본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래서는 서큐버스라고 하기에도 어색하네….’
이미 오래전에 탈피한 종족이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꿈의 영역에서 벗어나 실체의 영역에 접어들었다는 것.
자신이 쓰는 안개는 그 힘의 결정체 중 일부라는 것이었다.
읽은 기억은 고스란히 축적되었고, 축적된 기억은 힘으로 탈바꿈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억이라는 단서를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그녀는 무력하기만 했다.
후욱.
“……!”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갑자기 마력이 한 차례 빠져나가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끝났다.”
메아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후끈한 열기.
그리고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감각까지.
메아리는 발광을 끝마친 마정석을 힐끗 보았다.
“끝났어요?”
“…그래.”
정우가 지친 음성으로 답했다.
의자에 깊게 허리를 묻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식탁 위에 올려진 두 개의 마정석을 보는 그의 눈빛엔 질린 느낌이 가득했다.
“힘들었다.”
“인챈트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거 아니었어요?”
“익숙해졌지. …하지만 이건 좀 특별해서 말이야.”
정우는 긴 숨을 내쉬며 등을 곧추세우며 마정석을 가리켰다.
“이건 ‘폴리모프’에 사용할 마정석. 유서린 쪽은 어때?”
“곧 예정지에 도착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여러 말이 있더라고요.”
“뭔 말?”
“세이렌의 움직임이 달라졌다고 해요.”
전술과 전략.
두 개는 세이렌 급의 몬스터에게선 볼 수 없는 종류였다.
“……몬스터가 변화하고 있다고?”
“여러 추정만 하고 있는 상황인가 봐요.”
던전 브레이크 지역 역시 전자 기기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마력의 파장은 해당 지역을 반구 형태로 둘러싸며 지상과 공중까지 전자 기기의 사용을 억제했지만.
과학의 발전은 때때로는 마력보다도 뛰어난 면모가 있었다.
고배율의 카메라는 어렵지 않게 내부를 살필 수 있었고, 일본의 누적된 정보 덕에 계획을 세우는 건 빨랐다.
2년 반 전의 패배 원인을 되짚으면서.
하지만 막상 전투를 벌이니 여러 새로운 면모가 드러났다.
정우는 비타를 조작해서 영상을 보았다.
뉴스의 보도 자료가 아닌, 공략팀의 영상이었다.
한차례 머맨을 쓸어내고 전진하는 공략팀은 유서린과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이윽고 드러나는 건.
“……워터 로드?”
물의 길이라 불리는, 해양 몬스터의 전유물.
워터 로드(Water Road).
“아티팩트다.”
정우는 세이렌의 던전을 떠올렸다.
그 속에 존재했던 보스, 머맨.
놈을 처치하고 얻었던 물의 정령이 봉인된 반지는 현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와 비슷한 종류의.
“…아니. 대충 알 것 같군.”
“뭘요?”
“아티팩트의 정체.”
물 감응력을 높여 주는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증폭 계열.”
마녀의 공명과 비슷한, 증폭 계열의 아티팩트.
그것도 ‘정신’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종류.
“……어?”
기억을 더듬은 메아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한 가지 ‘버프’ 아티팩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지능까지 상승시키는 수준이면, 적어도 주교급은 되겠네.”
“엘른의 반지가 꼭 이런 효과이지 않았어요?”
메아리가 한 명을 떠올렸다.
이계의 성직자이자 정우의 친우이자 신하였던 이.
엘른.
몬스터와 이종족의 경계에서 점점 멸종하고 있던 한 종족을 가엾게 여겨 준 반지의 효과가 머릿속에 각인되듯 떠올랐다.
무려 범위형 버프 아티팩트.
“그랬지. …그랬어.”
그리운 이름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친우들의 생사가 궁금해졌다.
자신의 말로는 처참했지만, 보이지 않던 친우들의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하기만 했다.
정우는 생각을 전환했다.
세이렌과 머맨은 분명히 강력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세이렌은 저주에 특화되었고, 머맨은 전투에 특화되어 있지만.
전략과 전술.
그리고 워터 로드까지 다룰 정도는 아니었다.
마녀의 마법을 따라 할 정도의 마법적 재능은 지녔으면서도, 그 외 지능은 별 볼 일 없는 몬스터.
그게 바로 세이렌이었으니까.
“그런 세이렌이 워터 로드를 다루고 있지. 지하수를 이용한 것 같은데… 예전보다 범위도 넓어진 것 같군.”
영토의 범위도 약간 넓어진 게 사실이었다.
“아티팩트가 맞다면 손에 넣어야 해.”
“벌써 확신하고 계시잖아요.”
“…확신, 하고 있지.”
그게 엘른의 것인지 아닌지는 의문스럽지만 말이다.
정우는 두 개의 마정석 중 하나를 챙겼다.
“이거는요?”
검은색의 마정석 사이로 보이는 붉은 마법진이 인상적이었다.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그것을 주시하며, 메아리가 물었다.
“네 거야.”
“……?”
“계획을 설명해 줄게.”
정우는 의아해하는 메아리를 돌아보았다.
우드득!
뻐근한 목과 어깨를 풀면서.
“총리가 ‘유서린’을 노리는 게 확실해진 이상, 나는 유서린부터 구해야 해.”
“그런데… 주인님.”
“어.”
“뭘 보신 건가요? 그때 기억에서….”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세기.”
“……?”
언뜻 메아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였다.
“강세기를 보았어.”
“…자, 잠깐만요. 그럼 빌런에게 지시를 내린 게 강세기라고요?”
“지시보다는 협조에 가까웠지만… 총리의 명령으로 왔다는 표현을 썼으니까 연관이 되어 있다면 총리부터 연관이 되어 있겠지.”
총리와 빌런과의 관계는 진작부터 의심이 든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조금 묘했다.
“그리고 웃긴 일이지만… 총리는 놈들이 빌런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더군.”
“그럴 수 있어요?”
메아리가 경악했다.
빌런의 가장 선명한 기억은 그때였다.
강세기라는 거물을 눈앞에 둔 채로 대화를 나누던 순간 말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백여 명의 수감자들로 만들던, ‘마법진’의 모습까지.
총리는 확실히 이 일에 관여되어 있었다.
문제는 강세기.
“세뇌 중이었을까요? 아니면 제정신이었을까요?”
“…확인해 봐야지. 대장에게 가면 알게 될 거다.”
유서린을 세뇌시킬 준비를 마치는 건 강세기의 일이었으니까.
“뭔가 복잡하네요.”
“복잡할 건 없어. 하나씩 처리하자.”
그러기 위해 준비한 두 개의 마정석이었다.
“이 하나는 뭐예요?”
“네가 써서 움직일 거야.”
“어떤 방향으로요? 가만히 보니까 ‘증폭’만 가능한 것 같은데요.”
“파장을 바꾸느라 고생을 좀 했지. 준비 시간의 대부분은 그것 때문이었어.”
정우는 식탁 위에 남은 마정석을 툭 건드렸다.
땅.
맑은 소리가 메아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정석에 시선을 고정한 메아리는 가만히 소리를 음미했다.
그러고는 결론을 내렸다.
“…서큐버스?”
“맞아. 네가 사용하지 못하는 네 본능. 너는 지금부터 그걸 다시 습득해야 해.”
“…에?”
“꿈에 파고들어. 환상을 벌여. 욕망을 보고, 기억을 읽어.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때처럼.”
“…기록관.”
“그래. 넌 나의 기록관이고 내 모든 걸 봐온 목격자니까.”
정우가 메아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까짓것… 해보죠. 원래 제 거였는데 할 수 있겠죠.”
그녀는 정우가 저렇게 말한 순간 자신의 역할을 깨달았다.
유서린을 세뇌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강세기와 총리에게 ‘환상’을 입히는 게 목적이죠? 유서린을 얻는 순간을 보게 만드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진위를 알아야겠지. 강세기가 시작한 판이 진정성을 지녔는지, 아니면 거짓된 것이었는지….”
“총리는 처리하고요?”
정우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당연히. 하지만 그를 처리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럼요?”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한국이 있는 서쪽.
“이 일을 제대로 풀어 나갈 사람이 저기에 있거든.”
유지석을 떠올린 정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약을 꿈꾼 일본은 이 일로 이전보다 더 무너져 내릴 것이다.
총리의 비리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고.
한국의 위상은 급부상할 것이다.
그로 인해 얻을 건 하나.
“일본에 몰려든 빌런을 모조리 죽일 거야.”
이번 사건을 성장과 연결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뱀파이어를 잡을 수 있어.”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정우의 수준은 뱀파이어를 잡을 정도가 되지 못했다.
더욱이 그 대상이 진조라면 말이다.
“철원 말이죠?”
“일단은 거기부터 시작이지.”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마법도 확인해 봐야 해. 뱀파이어에 대해서 계속 언급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인식 방해는 조금 약해졌어. 문제는 이 너머야. 뱀파이어 외에도 내게 뭔가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있는 것 같아.”
“그게 뭘까요?”
“알아봐야지.”
“후우. 뭔가 복잡해졌어요. 예전보다 더.”
“메아리.”
“…네?”
“이번엔 네 역할이 중요하다. 서큐버스. 네가 그토록 싫어했던 걸 시켜서 미안해.”
정우의 말에 메아리는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사다코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 미소는 꽤나 인자해 보였다.
“괜찮아요, 주인님. 그때나 지금이나. 전 주인님과 함께이니까요.”
“…그래.”
피식 웃은 정우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휴식은 가면서 하지. 준비하자.”
그렇게 말한 정우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정석을 가동시켰다.
정제되어 활용 가능하게 변한, 정우만의 마정석이 공명하며 정우의 마력과 동일한 패턴을 만들어 냈다.
그것을 확인한 정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폴리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