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40화 (140/293)

140화

-서큐버스 (3)

“한국에서 지원군이 입국했습니다.”

“그래? 우리 측은?”

“…몇몇 길드는 반응도 없습니다.”

“반응도 없다고?”

“……그렇습니다.”

쨍그랑!

총리는 양주가 담긴 잔을 벽에 집어 던졌다.

“후유?”

“후유, 에이엔, 카제, 타이요우 길드가 대표적입니다.”

“……일본의 10대 길드 중에 네 곳이나? 친 사사키 길드였군.”

총리가 사사키의 멀건 얼굴을 떠올리고는 표독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이건 결국 반기로군.”

“…그렇진 않습니다. 이미 협회 측에서 수락한 작전을 수행 중인…….”

“협회?”

총리의 시선이 보고자에게로 향했다.

날이 선 눈동자에 보고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협회는?”

“……네?”

“협회는!”

총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곧 나다. 나라고!”

“마, 맞는 말씀입니다.”

보고자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씩씩 숨을 고른 총리가 으르렁댔다.

“어떤 새끼가 도장을 찍어 준 거지?”

“협회장…입니다.”

“그 머저리 새끼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쾅!

총리는 책상을 내리쳤다.

평소라면 승인을 취소하고 세이렌 영토 공략에 투입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양키 놈은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붙어 있는 거지?”

처음의 반가웠던 마음과는 달리 총리는 앤드류 협회장이 껄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서린과의 인사는 평범했고.

그 어떠한 특이점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수상해.’

총리는 본능적으로 앤드류를 경계했다.

일본과 한국의 공동 작전.

실패할 확률이 적은, 그런 작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인 그런 계획이었다.

실패해도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이기도 했고.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기묘했다.

후유 길드를 위시한 4대 길드는 개인 작전을 진행하느라 세이렌 토벌이라는 영광의 자리를 마다했고.

진두지휘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해야 했을 자신은 앤드류 때문에 발이 묶였다.

‘내가 왜 양키 놈에게 작전 동행을 허락한 거지?’

기사까지 내보낸 마당이었다.

이제 와서 앤드류 협회장을 배척하며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에는 명예가 실추되었다.

앤드류가 붙으며 지휘는 초기의 계획대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총리인 자신의 역할은 그저 관람자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강세기가 일본 측 전투를 지휘하고, 유서린이 한국 측 전투를 지휘하는 상황.

“협회장을 불러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명령 바꾸라고 전해. 네 길드 모두 이 앞에 나타나서 대일본 제국의 새로운 광명에 동참하라고 전해!”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나가!”

총리는 보고자를 내쫓았다.

씩씩거리며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친 총리가 스산한 눈빛으로 전면을 노려보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다.”

총리는 이 작전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세이렌 영토의 공략.

그런 거대한 미끼와 더불어.

“마력 분해 장치. 이상할 정도로 낮은 비율의 공략 성공 수익에 유서린을 파견하기까지 했다…라.”

총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다시금 시작된 전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한국의 배팅을 믿었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유지석이라는 거인의 선택을 믿었다.

그리고 마력 분해 장치로 인한 장기적인 압박까지 눈여겨본다면.

‘그것’이 꼭 필요했다.

세이렌의 영토.

그 안에 있는.

‘S급의 아티팩트는 내 거다……!’

다른 것을 모조리 내줘도 그건 손에 넣어야만 했다.

덕분에 한국의 제안은… 천운이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천운.

외교를 제외한 일본의 국력은 중간급이다.

B급 이상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기형적인 피라미드의 형태.

강자는 부족하고 약자만 가득한 형태였지만, 일본이라고 모든 던전 브레이크를 방치한 건 아니었다.

가까스로 저지한 것도 있고.

가까스로 공략에 성공하여 쏟아져 나온 모든 몬스터를 죽인 전적도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는 던전 내의 모든 것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만큼,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그것 또한 마찬가지로 등장했다.

‘아티팩트.’

더불어 던전 안에서 쏟아져 나온 마력 때문에 세상 자체가 태초의 형태로 되돌아가 버리니, 이따금씩은 각자의 이득을 위해 던전 브레이크를 강제로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세이렌의 영토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연이은 공략 실패.

때문에 벌어진 던전 브레이크.

마력이 주변을 장악하기 전에 찍힌 ‘아티팩트’의 존재까지.

모든 건 비밀에 부쳐졌다.

총리는 세이렌 공략을 몇 회나 추진했지만 끝내 성공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번의 기회는 간절했다.

기회도 좋았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S급 플레이어인 유서린과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나이트 길드의 협력.

수가 두 배는 많지만 비슷한 진도를 보이고 있는 자국의 플레이어보다….

‘뛰어난 놈들이 붙었을 때 클리어해야 한다.’

그래서 아티팩트를 손에 넣어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쥔 가장 강력한 패인 강세기를 공략대장으로 삼아 전투에 투입했다.

플레이어도 아닌 총리가 해당 아티팩트에 목을 매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더 강력한 세뇌를 만들 수 있어.’

나만의 제국.

그 위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이 역사에 위대한 군주로서 이름을 남기겠다!

대일본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여 한국은 물론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북한까지 집어삼켜서.

“……새 판도에서도 아시아를 노려봐야 하지 않겠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아시아의 패자가 되었었던 것처럼.

중국까지 점령했던 일본은 이제 후발 주자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총동원했지만, 평가는 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도 못했다.

치욕스러운 상황.

총리는 세뇌를 사용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이걸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에 한탄을 금치 못했다.

그 누가 되었더라도.

“내 밑으로 두기 위해서는… 꼭 그걸 손에 넣고야 말겠다.”

볼륨을 줄여 놓은 TV에서 때마침 쿵, 하는 묵직한 굉음이 들렸다.

총리는 시선을 돌려 그것을 보았다.

일본이 아닌 한국.

한눈에 보기에도 빼어난 이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는 한 인물.

“유서린…….”

외모까지 뛰어난 그녀를 맛보고, 대일본 제국을 위한 사무라이 정신을 주입시켜….

“일본을 영광의 시대로 이끌겠다! 이 아벤이!”

꽈드득!

총리의 손이 책상을 긁듯이 쥐어져 떨렸다.

* * *

후욱.

불어오는 바람에 미간을 찌푸린 유서린은 땀을 닦았다.

“여기 물이요.”

협회 소속 플레이어가 다가와 물병을 건넸다.

“부상자는?”

“경상 세 명, 중상 한 명입니다.”

“……많이 다쳤군.”

“사망자가 없는 게 어딥니까. 중상자라고 해봤자 바로 후방으로 이송될 거고, 힐러들의 치유 광선 맞고 싹 낫겠죠.”

“여기 치유 광선은?”

“에이. 피부 미용 정도로만 쏴 줬습니다. 아직 전투가 많이 남아 있는데 마력을 아껴야죠.”

씨익 웃는 남자의 말에 유서린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툭 쳤다.

“잘하고 있네.”

“배운 게 어디로 가나요? 대장 따라서 다닌 전투만 해도 벌써 수십인데요.”

“벌써 그렇게 됐나?”

“진짜 왜 그래요? 저도 A급인데요?”

“그래 봤자 얼마 전에 달았잖아.”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저도 좀 날리거든요?”

피식.

“어? 비웃어? 막 비웃고 그러는 거예요? 등급 높으면. 막?”

“뭔 일이야?”

유서린의 물음에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피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장님께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더 이상의 지원은 어렵대요.”

“…벌써?”

계획된 인원은 100명이었다.

이미 넘어오고 있는 인원을 합쳐 봤자 70명 정도.

세이렌의 저주 때문에 인원이 많은 건 오히려 위험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수는 필요했다.

“왜지?”

유서린의 물음에 남자가 입술에 침을 발랐다.

“중국에서 지원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어디라고?”

중국은 플레이어 시대에 돌입했음에도 중화사상을 버리지 못한 국가였다.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최고 강대국이 되기 위한 행보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지만.

플레이어의 수도 많았고 강자의 수도 충분한 국가였다.

세계 2위.

여전한 숫자에 불만을 품은 중국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

비밀리에 들어온 정보를 통해 그들이 ‘빌런’과 어느 정도 손을 잡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때문에 한국 플레이어 협회는 중국의 행보에 관심을 두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지석은 중국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중국과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으며, 중화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그들은 한국을 굉장히 폄하하면서도 불편하게 여겼다.

그런 중국이.

“지원을 요청했다고?”

“놀랍죠? 저도 놀랐다니까요. 이거 아는 게 저밖에 없어요. 직통 루트로 들어온 내용이라 곧장 대장에게만 알려 주려고 왔죠.”

남자는 유서린의 측근이었다.

특히나 지원부서 소속으로, 그녀에게 들어오는 정보 대부분을 다루는 인물이었다.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 있어?”

“없어요. 근데 한두 번인가요? 대부분의 사건을 자신들이 전부 처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놈들이잖아요.”

“정확한 내용은?”

“아직 없어요. 때문에 더 이상 지원이 어렵대요. 7개 조로 운영해야 한다고…….”

남자는 자신이 결정이라도 한 것처럼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초입이 끝나간다.

앞으로 싸워야 할 장소는 넓었고, 상대는 많았다.

특히나 이전의 공략과는 달리 세이렌은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략이라고도 부르고 전술이라고도 부르는, 그런 형태를.

유서린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습과도 같은 교전이 벌어졌지만, 놈들을 물리치는 건 성공했다.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던전 브레이크란 사실 때문에 탐색 계열을 데려오지 않은 게 아쉽죠. 일본 측에 협조를 요청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그래.”

유서린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갔다.

협회장 유지석에게 이번 작전은 매우 중요했다.

친구 강세기가 걸려 있었으며, 옆 나라 일본의 총리가 얽혀 있었고.

‘정황상 빌런이 파고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세이렌의 영토 공략은 수단이었다.

본래의 목표는 총리였으며, 그의 손아귀에 있을 세뇌 관련 아티팩트를 탈취 혹은 파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이 일을 알려 ‘국제 사회’에서 일본을 매장시키는 것이 두 번째였다.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일본을 한국의 영역에 포함시키기를 원하셔.’

속국은 아니지만 일본의 발언권은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빌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고, 마력적인 변화도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가 변하고 있으며.

‘적응해야 해.’

격변의 시대.

그것과는 또 다른 격변이 도래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한정우에게서 연락 온 건 있어?”

“한정우 플레이어요?”

남자는 비타를 만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없는 것 같은데요?”

“이상하네.”

“뭐가요?”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

“대장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잖아요.”

“네가 나가잖아.”

“…하긴. 협회장님 연락 때문에 정신이 없긴 했는데…… 아뇨. 없었어요.”

기억을 더듬은 남자의 말에 유서린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웠다.

몇 번의 보고만으로도 사태의 심각성이 유추될 정도였다.

빌런.

뱀파이어.

일련의 사태는 이곳보다도 더 심각했다.

“한정우에게 철원을 검사했다고 전했어?”

“아, 아뇨. 못했어요. 그런데 그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잖아요. 추적과 탐색 전문 인력이 붙었는데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말에 유서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더 문제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녀가 생각하는 한정우는.

허언을 할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분명히 뭔가가 있는 거야. 후우……. 이곳부터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그녀는 생수를 벌컥 들이켰다.

“골치가 아프네.”

파티를 이루고 있는 세이렌과 머맨의 진형을 본 유서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