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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39화 (139/293)

139화

-서큐버스 (2)

비늘을 달고 있는 푸른빛의 거체가 거대한 주먹을 휘두른다.

쩌엉-.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이 전황을 울렸다.

“……X발. X나 세네.”

이진수는 욕설을 내뱉었다.

“뒤로 일보.”

나지막한 지시.

그럼에도 모두의 귓가에 고스란히 들리는 음성에 따라 이진수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1진 앞으로.”

이진수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검사의 움직임을 보았다.

“벼락치기.”

날카로운 일격이 일직선으로 쭉 그어진다.

“크아-!”

포효하는 머맨의 팔꿈치를 베고 지나갔다.

“얕아!”

“나한테 맡겨! 뒈져라!”

뒤이어 달려든 검사의 장검이 머맨의 복부를 긋고 지나갔다.

움츠러드는 사이.

“2진, 공격!”

웅웅, 뒤편에서 상당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해!”

고함과 함께 일제히 선두가 물러서자.

뜨거운 열기가 그들의 머리를 지나쳐 작렬했다.

콰아아앙!

“…휘유! 진짜 세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열기였다.

이진수는 방패를 뒤로 돌리며 얼굴을 가렸다.

“너는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냐?”

익숙한 음성과 함께 머리를 툭 건드리는 손길에 이진수는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이사님도 오셨어요?”

“그래. 이 새끼야. 친구 따라간 자식 새끼 꼭 살려 오라고 누가 그래서 말이야.”

“……젠장.”

이진수가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협회에서 잘해 주냐?”

“협회 보고 간 건가요? 친구 도와 주려고 간 거지.”

“빌런이나 때려잡지. 미해결 지역 공략엔 왜 끼어들어?”

“…젠장. 안 그래도 일이 커져서… 숙여요!”

쿵!

이진수는 이사의 어깨를 짓누르며 방패를 휘둘렀다.

휘청거리며 물러선 이진수의 등을 이사가 지탱했다.

“…X라 세네!”

“저거 A급이잖아. 오거랑 동급이다.”

“이사님도 A급이잖아요!”

“이 새끼가… 사람 면박 주네?”

이사의 양손에서 전기가 번쩍였다.

“라이트닝 볼트!”

쩌적!

눈이 멀 정도의 발광과 함께 머맨이 뒤로 나뒹굴었다.

“몇 마리나 되는 거야?”

짧은 전투.

그럼에도 질린 표정의 이진수를 향해 이사가 답했다.

“백 마리는 넘는다.”

“……머맨만 백 마린 거죠?”

“아니? 최전선에 존재하는 머맨의 수만 백 마리.”

“…….”

“이진수. 이거 친정을 아주 빙다리 핫바지로 보네?”

“친정이요?”

“그럼 새끼야. 너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잖아.”

“……그렇긴 하죠.”

“친정도 아니네. 파견이지, 파견.”

이사의 말에 이진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전황은 잡은 것 같고… 이제 제대로 진행할 거다.”

“어디까지 밀어붙일 건데요?”

“그거야 저쪽에 물어봐. 너 지금은 저쪽 소속이잖아.”

이사의 턱짓에 이진수가 고개를 돌렸다.

지시를 내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유서린 플레이어요?”

“그래. 일본 쪽은 변절자 새끼가 나서서 공략이 빠르다더라. 초입이긴 하지만….”

“한국 X라 까이겠네.”

“그래. 그 꼴을 봐야겠냐?”

“뒈져도 못 보죠.”

“유서린도 마찬가지야. 이제 곧 움직일 거다.”

강세기와는 다르게 전술에만 치중하던 유서린이 자신의 무기, ‘소드 브레이커’를 들었다.

“간다.”

이사의 말마따나 유서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징벌의 처녀.

한국에서 자랑하는 S급 플레이어 중 하나.

전면에서 달려들던 머맨 세 마리가 유서린의 접근에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양 볼에 달린 지느러미가 파르르 떨렸다.

캬아-!

서로를 보며 포효한 놈들이 일제히 유서린에게 달려들었다.

족히 3미터의 크기.

유서린보다 두 배나 커 보이는 덩치들이 지면을 쓸며 다가왔다.

뱀장어 같은 꼬리가 지면에 길게 흔적을 만들어 냈다.

그런가 하면 그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A급 몬스터 네 마리의 공격은 압도적인 위용이 있었다.

하지만.

“…광기(狂氣).”

핏빛으로 물드는 눈동자.

더불어 핏빛으로 물드는 거대한 대검.

붉은 오러는 노을처럼 검의 주변에 맺혀 공명했다.

저벅.

우악스럽게 다가오는 머맨과는 달리 유서린의 걸음은 조용했다.

후욱!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 숨을 들이켠 그녀의 대검이 일직선으로 회전한다.

반구를 그리며 전면을 벤 그녀의 검은, 그저 허공만을 가른 것처럼 보였지만.

푸왁!

“……!”

달려오던 모습 그대로, 머맨은 상하체가 분리되어 쓰러졌다.

허우적대는 몬스터.

그 앞에 선 유서린의 모습은 확실히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X라 멋있네.”

이사가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격 떨어지게.”

이사의 옆구리를 툭 친 이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단 일격.

한 번의 움직임으로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전진한다.”

앞서 나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

모든 플레이어들이 전진했다.

* * *

콰르릉.

반파되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잔해 사이를 가로지른 인형 하나가.

파앗!

잔해를 박차며 방향을 꺾었다.

기예와 같은 몸놀림은 과거에나 두 눈을 비빌 정도의 상황일 뿐.

지금엔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며.

보그르르.

허공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이내 덩치를 키워 나가기 시작한 것 역시.

“…홀리 소드.”

마력을 머금은 ‘워터 볼’이 칼질 몇 번에 증발하듯 사라지는 것 역시.

지금은 그리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더더욱.

“따라붙어!”

고함을 내지른 플레이어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왼쪽에서도 온다!”

머맨의 일부는 오히려 플레이어들과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사용하는 마법들.

유서린이 베어 버린 워터 볼은 예사로 허공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막아!”

마력을 머금은 라운드 실드가 요동을 치다가 우그러들 정도로 공격은 거셌다.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나이트가 지원하며, 협회의 지원 요청을 받은 여러 길드 중에서도 정예만을 선발한 터라.

“화력 쩌네.”

공격력만큼은 가히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그 중심엔, 유서린이 있었다.

광전사와 성기사의 조합.

유서린은 그저 각기 다른 능력을 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기네.”

“…진짜 엄청나군.”

각기 나름대로 어깨를 펴고 다닐 정도의 실력자임에도, 절로 눈길이 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마법이 폭사하고.

화살이 하늘을 수놓고.

그 틈을 타서 달려든 근접 딜러들이 각자의 무기로 머맨을 공격했다.

쓰러지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호송되고.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곳곳에서 벌어지던 그때.

“……!”

끝도 없이 전진할 것만 같던 유서린의 걸음이 처음으로 멈추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진군을 멈추었다.

일제히 멈춰서는 플레이어들.

의아해하는 이들 중 몇몇이 약간의 시간차로 고개를 돌렸다.

부릅뜬 눈과 함께 긴장감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전염병처럼 전파되기 시작하여.

“……!”

모두에게 긴장감을 강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0초.

“……온다.”

유서린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모두는 무장을 갖췄다.

지금까지의 진군은 순조로웠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누구와도 경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상자 외엔 중상을 입은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 정도로는 미해결 지역이라 칭할 수가 없었다.

놈들의 영토는 넓었고.

“……아래!”

드드드드!

미약한 진동이 급격히 거세지며.

“피해!”

플레이어들이 있던 자리를 부수었다.

퐈악!

시추라도 한 것처럼 솟구치는 물기둥.

하늘까지 치솟을 기세로 솟구치는 물기둥 사이에서.

“…머리를 쓴다 이거지?”

섬뜩하게 번들거리는 푸른빛을 본 유서린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이제.

시작이었다.

“광기의 일격!”

* * *

[ 20km 진격한 일본, 14km 진격한 한국. 이게 바로 국격의 차이? ]

[ 일본의 영웅은 한국의 영웅을 뛰어넘었다. ]

[ 타소가레 길드, 자신들은 길드장의 힘을 믿는다.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 ]

기사를 본 정우를 향해.

“……부자예요?”

하시모토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블랙 마켓의 가격은 아이템 상점의 최소 두 배에 달했다.

그런데 정우가 구매한 마정석은 B급만 두 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죠.”

어리둥절해하는 하시모토를 보며 메아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그러려니 해요.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마정석을 구매한다고 해서 저는 높아야 D급 정도 생각했었습니다. A급 찾을 때 표정 보셨나요?”

블랙 마켓 담당자의 당황하던 표정을 떠올린 하시모토가 픽 웃음을 흘렸다.

“그 새끼들, 그런 거 처음 봤거든요.”

“풉. 웃기긴 했죠.”

일본은 마정석 산업이 발달한 국가였다.

그런 것치고는 대부분의 마정석을 국가에서 관리했다.

기업체 역시 국가에서 관리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때문에 블랙 마켓에도 고등급 마정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고가 B급이었으며 그게 두 개나 된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다만, 그런 희소성 때문에 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우는 그런 금액을 지불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협회를 통해서.

“시간이 필요해.”

정우는 작전을 떠올렸다.

양동 작전으로 외곽에서 시작한 각 국가의 플레이어들은, 결국 한 지점에서 합류하기로 결정이 되어 있었다.

아키타현 전역이 세이렌의 영토로 분류되었고, 남쪽에서 진행하는 한국과 동쪽에서 진행하는 일본이 만나는 지역은.

“다이센시까지 이동하려면 시간이 부족한 거 아니에요?”

“괜찮아…. 아직은 괜찮은 거 같아. 생각보다 진행이 느려.”

정우는 본래의 작전을 떠올렸다.

작전은 몇 번이나 변했다.

처음에는 둘이서 총리의 아티팩트를 찾으려고 했었고, 정우가 급성장한 이후로는 계획이 바뀌어 정우의 단독작전으로 바뀌었다.

그사이 앤드류가 끼어들고.

사사키가 합류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똑같다.’

유서린은 공략에 시간을 끌어, 활동할 시간을 벌어 주고 있었고.

사사키를 비롯한 네 길드는 여전히 빌런의 움직임을 뒤쫓고 있었다.

정우가 해야 할 건 한 가지.

총리의 근처로 파고드는 것.

그러나.

‘…다이센시까지 움직이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그러기 위해선 전투에 합류해야 했다.

“하시모토 씨는 그대로 추격을 이어가 주세요.”

“…음. 알겠습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에 그딴 짓을 하는 놈들이 있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뿐이니.”

하시모토는 볼을 긁적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엄연한 축객령이었음에도 하시모토는 씨익 웃으며 나이 어린 정우에게 눈인사를 한 뒤에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본 정우 또한.

달그락.

마정석을 꺼내 쥐었다.

두 개의 B급 마정석.

웅웅!

두 개의 마정석이 웅웅대며 정우의 손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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