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서큐버스 (1)
보통 몽마(夢魔)라고 알려진 서큐버스는 단 한 번도 지구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몽마의 출현을 기다리는 자들도 존재할 정도.
그만큼 서큐버스에 대한 환상이 존재했다.
하지만 서큐버스는 실제로는 형태가 없는 존재였다.
그저 상대가 원하는.
가장 적합한 형태를 띠는, 변화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즉, 서큐버스의 모습은 상대가 가장 원하는 모습일 뿐 실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
개조는 대상자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 끝난다.
정신을 차린다는 것 자체가 사역한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메아리가 깃든 사다코의 육체는, 개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개조.
그럼에도 뱀파이어의 시술을 받아 인간의 능력을 탈피한 육체.
빙의와는 달리 그 능력과 정신 자체가 옮겨지는 것으로, 육체의 형상 역시 진조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서큐버스인 메아리는 그런 작업이 불가능했다.
가능한 건.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일 뿐.
정우는 고치를 벗어나는 상대를 보고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메아리가 움직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보고 있기가 거북할 정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체의 여성.
그것도 아직 젊은 여성의 모습이 메아리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성적으로 무언가가 발달하기 전의 어린 나이였어서 그런지, 가장 강렬한 인물로 변화한 메아리는 젊은 여성이 되어 있었다.
-엄마…인 것 같은데요?
정우는 하시모토의 말을 떠올렸다.
조모와 함께 살다가 살해 및 납치를 당했던 아이.
아버지는 일본으로 오고 있다고 했으니 남은 건 어머니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
정우는 담요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사망했군.”
-그런 것 같아요. 이거…… 느낌이 이상한데요?
뱀파이어가 사역하고자 했던 육체를 메아리가 사역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사다코의 정신은 안개가 낀 것처럼 먹먹하기만 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아나?”
정우의 물음에 메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안 걸린 거 아니에요?
피식.
정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삼 일.”
-……?
“삼 일이나 걸렸다고.”
-그렇게나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는데요?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오래 걸리더군.”
-끄응.
“그래서? 육성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해?”
“음. 으음. 이거 오랜만이라 어색하긴 한데 가능해요.”
“좋아. 차라리 낫군.”
인자한 음성이었다.
정우는 메아리와 눈을 마주쳤다.
“옷부터 사야겠네. 당연히 아이 형태일 줄 알고 이것만 준비해 뒀거든.”
아동복을 가리킨 정우가 혀를 찼다.
“능력은?”
“…확실히 마력 회복이 되고 있어요.”
“몽중이라고 여길 테니까.”
“일석이조네요?”
“삼조지.”
“왜요? 뱀파이어를 죽일 때까지 이 아이를 살려두는 것하고, 제가 마력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는 것. 두 가지 아니에요?”
“하나 더 있잖아. 이 아이의 정신을 되돌리는 것.”
“…자각몽?”
“그래.”
개조에 의해서 아이의 정신은 메아리조차 탐색하지 못할 정도로 심연에 가라앉았다.
심연으로 가라앉은 기억을 하나씩 꺼내는 것 또한 그녀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되돌릴 수 있다고 한 거군요?”
“어. 부수적인 효과로는 진조는 아직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다. 일석사조네.”
“왜요?”
정우가 손을 흔들었다.
붉은빛으로 흔들리는 마력 한 줄이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고치를 유지하는 것처럼, 흐름을 바꿔 놓았거든.”
뫼비우스의 띠.
고치의 마력은 끝도 없이 순환 중이다.
진조로서는 제대로 개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
그가 이 상황의 이상을 눈치챌 때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이 됐겠지.”
철원을 찾든가.
아니면 놈이 이상을 깨닫고 뛰쳐나오든가.
뭐든 간에 나쁠 건 없었다.
“이미 철원 근처에 길드를 파견해 두었어. 결단이 빨라. 대장은.”
공략권의 인정을 조건으로 A급 플레이어 다수를 철원 근처에 묶어 두었다.
몇몇의 길드는 아예 통째로 파견이 되었다.
만약 뱀파이어가 움직인다고 해도.
“피해는 커지지 않을 거야. 성직 계열도 적잖게 움직였으니까.”
“…언제 이런 지시를 내린 건가요?”
“너 잘 때.”
메아리는 삼 일이라는 시간이 새삼스럽게 체감이 되었다.
“…아! 그러면 공략은요?”
메아리는 세이렌 토벌 작전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진행됐다.”
“아…….”
메아리가 앓는 소리와 함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어차피 얼굴을 드러내고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어.”
한정우라는 사람은 미국으로 움직였다.
그런 상황에서 얼굴을 알리며 활동하는 건 무리였다.
시청 지하에서의 전투는 정우 역시 미약한 ‘인식 저하’ 마법을 걸어 놨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나카무라 안처럼 인식 저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이 더 많겠지. 아무래도 강한 이들이 몰렸을 테니까.”
그러면 위험했다.
차라리 얼굴을 가리거나 따로 활동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말했어요? 그 광전사에게?”
“유서린? 그래. 심각하게 받아들이더군.”
“방법을 세워야 할 거 아니에요?”
“이미 그 정도 대안은 세워 놓았다고 하더군.”
“……에? 그 정도 대안이라니요? 주인님께서 보신 건….”
“믿을 수밖에 없겠지.”
“끄응…… 어렵군요.”
“괜찮을 거다.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정우는 유서린의 확답에 그쪽에 대한 관심은 끊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이렌의 토벌 작전에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가 그곳에 있으니까.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한 가지 마법을 습득하긴 했는데…….”
“했는데?”
“효과가 부족해.”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시모토를 불러야겠군. 플레이어니까 상점을 이용할 수 있겠지.”
* * *
“…못 찾았습니다.”
하시모토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낙담하는 것 같은 말투와는 달리 그의 얼굴엔 결의가 가득했다.
꼭 발견하고야 말겠다, 그런 의지가.
“일단 씻죠.”
정우의 말에 하시모토는 그제야 자신의 몸으로 고개를 돌려 코를 킁킁거렸다.
“음. 코가 무뎌진 모양이네요. 그런데 이 분은?”
“동료예요.”
“아, 반갑습니다. 저는……. 이런, 일단 샤워부터 하고 인사를 하겠습니다.”
그가 씻을 때까지 정우는 기사와 영상을 보았다.
세이렌 영토 토벌 작전.
“한국과 일본이 결국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네요.”
협력할 것 같았던 두 세력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게. 그리고 확실히 일본 방송인 걸 알겠군.”
대부분의 송출은 일본 방송국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활약은 일본 플레이어에 맞춰져 있었다.
특히나.
“…확실히, 대단해.”
강세기.
그의 활약은 가히 군계일학이었다.
정우는 그의 능력, 동결을 떠올렸다.
시간을 멈추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을 급속히 ‘얼려’ 버리는 자.
사사키의 상위 버전인 그의 활약은 그가 왜 한국의 미래라고 불렸던 것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나군.”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총리의 곁에 붙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선에 뛰어들었네?”
“그러게요. 원래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네요.”
강세기는 총리의 가장 확실한 패였다.
능력은 일본 내에서도 탑 클래스였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세뇌까지 당해서 기본적으로 변절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까지 따진다면, 총리는 여러 사태를 우려해서라도 그를 곁에 두었어야 옳았다.
하지만 결론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강세기는 전투에 뛰어들었고, 무지막지한 위용을 선보이며 활약 중이었다.
“우리로서는 호재지. 오히려 좋은 일이야.”
“그러긴 해요. 원래라면 광전사가 밀리는 모습을 보여서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도 조심해야 해. 무슨 수를 써놨을지 몰라.”
“음…. 주인님.”
“어.”
“강세기라는 인간이 전선에 뛰어든 것이 이 일과 관련이 있을까요?”
메아리는 자신을 가리켰다.
“가능성이 있어.”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사다코의 육체를 입은 메아리는 상당히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삶을 정신체와 같은 형태로 보냈던 그녀였기에, 그녀가 육체를 제대로 다루는 건 엄청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일례로 벽을 가로지르려다가 머리를 찧은 일이 있었을 정도.
그나마 하시모토가 올 동안 육체를 움직이며 적응기를 겪어 지금은 나름대로 자연스러워진 상황이었다.
“크면 미인이 되었겠네요?”
사다코의 어머니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얼굴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꽤 예쁜 얼굴이었다.
“…크게 해줘야지.”
“진짜로, 그랬으면 좋겠어요.”
메아리도 정우의 말에 동의했다.
미래를 잃어버린 사다코에게 제 미래를 선사해 주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과제처럼 여겨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뱀파이어를 잡아야 했다.
“철원이요.”
“그래. …철원을 가야 해.”
때때로 잊어버리는 뱀파이어에 대한 내용 때문에 정우는 점점 불쾌해졌다.
이 인식 방해 저주를 건 놈.
‘…가만히 안 두겠어.’
“아이템 상점에 가야 한다고요?”
“네. 마정석을 구매해야 해요.”
“마정석?”
정우는 부족한 마법을 마정석을 통해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플레이어인 정우가 일본에서 아이템 상점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
“그런 거라면… 블랙 마켓이 낫겠는데요?”
“블랙 마켓이요?”
“암시장이죠. 일본은 한국과는 다르게 마정석은 국가가 관리하거든요.”
“아이템 상점에서 얻을 수 없다는 건가요?”
“얻어도 거의 E급까지에요.”
“……블랙 마켓 위치는 아시나요?”
하시모토가 신발을 신었다.
“다행히 그쪽에 관련된 범죄자들을 잡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셋은 안가를 나섰다.
“저는 하시모토라고 합니다. 일본 분이신 거 같은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쿄코. 코마츠 쿄코라고 불러주세요.”
‘코마츠 쿄코?’
-그냥 떠오른 이름이에요.
“알겠습니다. 일단 외각지로 이동해야 합니다.”
하시모토는 유능한 안내자였다.
그를 따라서 이동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본의 관심은 온통 세이렌 공략에 쏠려 있었다.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해.’
세뇌 아티팩트.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총리 근처로 파고들어야 했다.
강세기가 없는 건 호재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의 근처로 파고드는 건 확실히 위험했으니까.
‘확실히… 빌런과 연결이 되어 있어.’
중국이나 인도를 예로 들 게 아니었다.
왜 빌런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한 건지,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총리…….’
정우는 이를 빠득 갈았다.
“…빠, 빨리 갈게요. 급하시다고 말씀해 주시지…….”
하시모토가 정우의 눈치를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도착한 택시 탑승장에서 택시를 탄 하시모토의 안내에 따라 택시가 출발했다.
“빨리, 빨리 좀 가주세요!”
“아, 과속은 위험합니다.”
“경찰입니다. 작전 수행 중이니 나머지는 다 처리해 드릴게요.”
“에? 경찰? 진작 말씀하시지.”
택시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우는 하시모토를 보며 피식 웃었다.
“덕분에 여러모로 도움을 받네요.”
“도움은요….”
하시모토가 차창 밖을 보다가 이를 갈았다.
“그 새끼들이나… 다 잡아주십시오.”
시청 지하에서 벌어진 참사.
그것을 떠올린 하시모토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