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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37화 (137/293)

137화

-실종자 (9)

지하수로를 벗어난 정우는 곧장 포인트로 이동했다.

사사키가 마련해 준 안가.

그곳에 도착한 정우는 주변을 경계하며 휴식에 들어갔다.

‘아직도 하루가 안 지난 거야?’

24시간.

열쇠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매우 아쉽게만 느껴져, 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마가 밀려들었다.

‘…리플렉트가 아니었으면 위험했겠어.’

하지만 머릿속은 전투에 대한 복기로 복잡하기만 했다.

마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창에서 지팡이로 바꿔 들지 않았다면.

‘패배하는 건 나였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했다.

애당초 시청에 잠입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든가.

‘아니면 시청에서 나와서 재도입을 해야 했어.’

마음이 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당연한 말을요. 잘못한 건 없잖아요.

‘잘한 것도 없다는 소리지?’

-잘 아시네요.

운이 좋았다.

지팡이에 내장된 마법이 리플렉트라는 점에서 더더욱.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지팡이의 형태가 뭔가를 닮았어.’

정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의 일부분.

가까웠던 누군가가 들고 다녔던 그것의 형태가 잠시 스쳐 지나갔다.

화려함은 사라졌고, 막대한 마력을 머금었던 물건은 사라졌지만.

-…안나.

‘안나.’

둘은 동시에 같은 인물을 떠올렸다.

이계의 대마법사 ‘안나 프리나’.

그녀가 지니고 있던 아티팩트가 얼핏 이런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맞는 모양이네.’

그게 왜 저주까지 걸려서 고작해야 D급의 보스 손에 들려 있었던 건지 이해를 하지는 못했지만.

정우로서는 지팡이가 새삼스럽게만 느껴졌다.

-닮기만 한 걸 수도 있어요. 지팡이가 거기서 거기죠,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

정우는 왠지 이계의 친구들과 한 자락 무언가가 닿은 느낌이 들었다.

저릿한 그리움이 가슴속을 헤집고 사라졌다.

‘…어떻게 됐을까?’

자신의 마지막은 처참했다.

죽는 순간을 본 적은 없으니 끝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렵지만, 적어도 기억 속의 최후의 자신은 죽기 직전의 폐인이었다.

온갖 마력으로 보정을 해야지만 평범한 신체 활동을 겨우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몸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마력이란,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된 존재였으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어. 하지만…….’

마지막엔 느껴지지가 않았다.

공기처럼 당연해서 더 이상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여겼던 존재가.

잘린 다리처럼, 뚝하니 떨어져 나가 더 이상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력이 없는 자신은.

-영 형편이 없었죠.

‘…….’

메아리의 말대로였다.

평범 이하의 체력과 근력.

허약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신체.

“후우…….”

정우는 안가에 마련된 식량을 먹었다.

약간의 보충을 끝낸 후, 여러 방어 마법을 펼쳐 놓고는 휴식을 취한 정우가 눈을 떴을 때는.

-세 시간 지났어요.

다시금 세상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정우는 비타를 보았다.

“의외로 소란이 적네.”

나카무라 안의 통제 덕분인지, 교토시청의 사건은 잠잠하기만 했다.

정우로서는 반가운 상황.

-어떻게 할 거예요?

“뭘?”

-그 아이요. 부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메아리는 냉정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뱀파이어의 개조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사역의 경우엔 회복시킬 여지가 있었지만.

-개조까지 진행되었잖아요.

“그렇지….”

정우는 힘이 빠졌다.

개조는 손을 댈 구석이 없었다.

차라리 조기에 발견해서 죽이는 것이 최선일 정도였다.

“메아리.”

-네?

“뱀파이어가 일본으로 아예 넘어온 건 아닐 거야.”

-음… 그럴 가능성이 아무래도 좀 더 높죠.

“정리를 해보자. 내가… 음.”

말을 하던 정우가 침음을 삼켰다.

-철원이요! 철원!

“아…….”

정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철원에 가야겠다, 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그곳과 뱀파이어를 연결 짓는 순간 인식 방해가 발생했다.

“이거… 매우 귀찮군.”

-제가 있잖아요! 회랑에 기록 따윈 할 필요가 없었을걸요?

“그래도 교차 작업을 할 필요는 있어. 때때로 적을 거다.”

-나쁠 건 없죠. 나중에 주인님의 일대기로 쓸 수도 있고. 꺄아!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메아리가 헛물을 켜는 사이 정우는 생각을 정리했다.

“인식 방해의 이유를 아무리 고민해 봐도 결론은 하나뿐이야. 놈들은 아직 거기에 있어.”

컨트롤 타워로 검색까지 해봤던 참이었다.

당시에는 뱀파이어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있어.’

“박쥐 무리가 너무도 쉽게 잡힌 것도 의아했는데… 놈들의 관심은 애당초 한국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어.”

-일본에서 사역할 만한 개체를 찾아다닌 건가요?

“개조까지 가능할 정도의 적합률이라면, 하루 이틀 찾아서는 어림도 없었을 거야.”

-시선을 끌고 꼬리는 일본으로 넘긴 거군요.

“아무래도 그게 가장 가능성이 크지. 내 시선도 분산시킬 겸.”

만약 사역과 개조가 끝난 뒤, 진조가 일본으로 넘어와서 활동했다면.

-주인님은 당연히 뱀파이어가 일본에 있는 줄 아셨겠죠.

철원은 아예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아예 방치되었을 거다. 인식 방해까지 겹쳐서….”

턱밑에 적을 키우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더 이걸 부술 수는 없어.”

개조 중에 고치를 부수면 당연하게도 진조에게 이 사실이 알려진다.

-아공간은 괜찮은 거예요?

“확실한 건 아닌데… 시간적으로는 괜찮을 거 같아. 가장 좋은 건, 마녀의 마을에 넣어 두는 건데….”

-그건 불안해서 안 되죠.

“그러게. 아직도 게이트와 던전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건 아니니까.”

뱀파이어는 당연하게도 이계의 존재다.

놈들 역시 게이트를 통해서 지구로 침입했을 것이고.

“던전에 대해서 나보다는 잘 알겠지.”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키면서.

“그리고 브레이크가 클리어된 것과는 별개로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있을 거고….”

그리고 존재하면서.

그들은 정우보다도 이 체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뱀파이어를 쳐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면 이러고 있을까.”

정우는 입맛을 다셨다.

뱀파이어를 치는 게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빌런들이 협조 중인 상태로 예상이 되었다.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이번 작전 후에 준비를 해야겠어.’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빌런의 기억 속의 인물을 떠올리는 순간 뒷목이 쭈뼛거렸다.

‘어떻게 전달을 한다….’

이미 작전에 참여 중인 유서린에게 알려야 했다.

“……결국, 참여해야겠군.”

세이렌 토벌 작전.

정우도 참가를 결정했다.

“그 전에…….”

정우는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고서는.

스윽!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스스- 슷!

불쾌한 분위기의 붉은 고치를 꺼냈다.

‘메아리.’

정우가 말하기도 전에 메아리가 안개를 만들어 냈다.

-저 힘이 딸린다니까요?

인상을 구기긴 했지만 말이다.

탁.

정우는 내려놓은 고치를 주시했다.

흐름을 읽은 후, 손을 얹었다.

두근, 두근.

미약한 박동이 느껴졌다.

개조.

인간의 신체를 뱀파이어의 신체로 바꾸는 작업.

흡혈을 통한 강제가 아닌, ‘피’ 자체를 통한 자연적인 방법이라는 것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만 보다 확실한 방법.

그렇기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런 방법.

5분가량 가만히 고치의 마력 흐름을 느끼던 정우의 고개가 기우뚱했다.

“……이거, 되돌릴 수 있겠는데?”

-……에?

* * *

마력은 곧잘 ‘물’에 비유되곤 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거나.

유속에 따라서 강도가 달라지는가 하면.

막힘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는 점이 그랬다.

개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붉은 고치.

피로 만들어진 고치는 분명히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 안에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무리야. 하지만… 사역하지 못하도록 막는 건 가능해.’

-그럼… 반만 돌리는 거잖아요. 뱀파이어의 특성은 상관이 없어요?

‘잊었어? 개조가 끝난 뒤에 뱀파이어가 하는 첫 행위를?’

-아아……. 각인 말이죠?

자신의 정신과 자아를 새로운 육체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하는 작업으로.

‘흡혈. 그걸 해야지만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거야.’

반대로 말하면 흡혈만 막아도 사역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막게요? 흡혈은 본능이잖아요? 개조와 사역까지 진행된 인간은 인간이 아니에요. 뱀파이어지.

정우는 메아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정우는 다른 면을 생각했다.

이 상황에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으며.

그저 유예시킬 뿐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되돌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극적인 결과를 맞이할 방법.

“흐름은 내가 비틀 수 있을 것 같아.”

다행히도 일반인이었던 사다코는 마력의 흐름에 둔감했다.

개조를 통해서 마력에 노출되긴 했지만.

“아직은 부족해. 직접적으로 마력을 운용한 적이 없으니까.”

때문에 주입된 마력.

그 흐름만을 물처럼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

그건 정우의 특기였다.

뭉쳐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형태였지만, 시간문제였다.

“시작한다.”

숨을 고른 정우는 곧장 고치의 마력을 파악했다.

이리저리 흐르고 꼬인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마력을 흘려 그곳의 형태를 파악해 나갔다.

주륵.

곧장 땀이 흐를 정도로 작업은 어려웠다.

하지만 전혀 막힘이 없었다.

뚜둑.

끊기는 실을 잇는다.

고치의 마력은 거칠었다.

수많은 피에 담긴 생명력으로 만들어 낸 마력이기에, 혼탁하고 거칠며 불안전했다.

그럼에도.

‘…상당하군.’

진조를 담을 그릇을 만드는 작업.

결과물보다도 과한 힘이 깃들어 있는 고치를 파악하는 건 어려웠지만.

‘가능해….’

정우는 천천히 그것들을 파악해 나갔다.

그리 크지 않은 고치.

그 안에 담긴 형태는 어린아이의 그것보다도 작아, 마치 신생아처럼 변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작업만 끝나면 원하는 대로 형태를 조정할 수 있을 거다.’

본래 개조가 그러하듯 모습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육체는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정우는 진득하니 마력을 움직였다.

저항에 움찔하고, 거친 흐름에 땀을 흘렸지만.

천천히 흐르는 정우의 마력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붉은 고치가 눈에 띄게 한 차례 맥동했다.

츠츠-.

고치를 올려놓은 탁자의 일부가 녹았다.

단순히 마력의 힘 때문.

땀을 비 오듯 흘리던 정우의 눈이 반짝였다.

‘메아리.’

-…네?

‘빙의해.’

정우의 말에 메아리가 흠칫했다.

자신은 유령이 아니었다.

서큐버스.

아직은 그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그것을 초월했던 한 종족의 여왕…….

“지금은 서큐버스의 특성이 필요한 때야. 정신에 머물고 활동해. 너, 가능하잖아. ‘잠자고’ 있는 이의 육체를 움직이는 게….”

-……!

정우의 말에 메아리의 눈이 커졌다.

개조 중인 사다코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기억을 잃었을지, 정신이 온전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뱀파이어는 안 되게 만들 수 있어. 내가 진조를 죽일 테니까.”

진조만 죽이면 이 육체는 뱀파이어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 사역이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네 힘도 회복시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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