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36화 (136/293)

136화

-실종자 (8)

“혹시… 아이는 찾았나요?”

정우가 새로이 방향을 정하자 당황을 멈춘 하시모토가 뒤늦게 물었다.

정우는 아공간의 구체를 떠올렸다.

과연.

‘이걸 찾았다고 해야 할까?’

정우는 구체를 아공간에 수납했다.

그건 수납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생명체가 아닌, 사물 따위를 넣는 개념이었으니까.

물론, 구체에서 개조가 끝나 뱀파이어의 육체가 된다면.

-생명체로 분류할 수 있게 되지만….

‘오히려 그땐 매우 늦은 거지. 껍데기만 남은 상태일 테니까.’

-그럼 어쩔 수 없어요. 이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실종자의 발견엔 성공했지만, 사망 처리 된 것처럼.

사다코 역시 개조를 거치며 인간이라는 틀에선 벗어나 버릴 터였다.

본래라면 충분히 구할 시간이 있었다.

적합률이 높다고 개조가 빨리 진행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게임의 부스터처럼, 뱀파이어들은 개조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가 있었다.

다름 아닌.

‘피’에 담긴 생명력을 통해서.

“……그럼 그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이미… 늦었어요.”

하시모토가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했다.

정확히 판단을 해봐야 했지만, 개조를 앞당기기 위해 필요한 시체의 양은 족히 수십 구가 넘었다.

하지만.

“…수십이 아니에요. 족히… 일백엔 달하겠죠.”

이 정도까지 빨리 개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생명의 수는 그 두 배에 달했다.

최소 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시모토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갈라지죠.”

“음?”

정우가 의아하게 그를 보았다.

“전 이곳에서 흔적들을 분류할게요.”

“필요한 작업인가요?”

“적어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정우는 결연한 그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무리는 하지 마세요. 적어도 이 너머엔 빌런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된 게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하시모토는 유능했다.

추적이 막힌 순간, 정우의 말을 떠올렸다.

건너뛴다는 말.

그렇다는 건 이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목적지에 도달할 방법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정우는 자신과 함께 추적을 우선시했다.

‘그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

만남의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한정우란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 것보다 여전히 모르는 게 훨씬 많았으니까.

하지만.

‘믿어 보자.’

그의 움직임은 결코 자신의 목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리며 움직이는 듯했다.

하시모토는 처음으로.

‘아쉽다…. 던전 공략에 매진하지 않은 게….’

자신의 등급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뭔가 거대한 걸음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느낌이었다.

누가 알았을까.

교토의 시청 지하에 떡하니 빌런을 위한 공간이 있음을.

하시모토는 자신의 직위가 경시정이라는 것에.

그리고 자신의 등급이 E급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실종자는 찾았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스킬은 주된 사용과 더불어 성장에 따라 변화하는 법.

어쩌면.

자신이 더욱 성장했다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몰랐다.

여러 가정과 자책 사이에서.

하시모토는 방향을 잡았다.

천천히, 한 걸음부터.

딛고 또 디뎌서 도움이 되는 자리까지 손가락이라도 하나 걸쳐 보기로.

작은 변화가 의외의 만남에서 탄생했다.

* * *

“반갑습니다.”

앤드류는 자신에게 악수를 건네는 손을 힐끗 보았다.

“큰 행사를 앞두고 관심이 많겠습니다. 무어입니다.”

태연하게 맞잡은 손으로부터 불쾌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되니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웃는 인상의 상대는 앤드류를 환대했다.

미국의 대통령도 아닌, 한 주의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을 대하는 것치고는 과할 정도로 예를 차렸다.

물론, 플레이어 몇몇은 국가보다 우위에 선 초범국가적인 위치를 자랑했지만, 아쉽게도 앤드류는 그런 범위에 속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하하.”

상대는 앤드류를 존중하는 어법으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앤드류는 그의 생각이 짐작되어 조소를 머금었다.

‘이 늙은이가 날 공증인으로 삼으려는 거구나.’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합작품인 세이렌의 영토 공략 작전은, 한국에서 제안한 것치고는.

‘생각보다 얻는 게 적지. 이 사람은 아는지 모르겠군. 그 때문에 내가 미스터 유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얻는 게 적었다.

일본으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입장이었고, 실제로 대화는 물 흐르듯 진행되어.

결국, 공략을 앞두게 되었으니까.

전 세계의 주목이 쏠리며, 수많은 기사와 영상이 퍼져 가는 상황.

모두들 하나같이 한국의 결정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지만.

앤드류는 아니었다.

‘선후를 알고, 중요한 걸 안다.’

그리고 그의 목적이.

자신에게 말한 것처럼 진정으로 강세기와 일본의 총리에 대해서만 치중되어 있음을 증명했다.

그게 엄청난 신뢰를 가져왔다.

이득을 양보하며 눈을 돌리고.

“이번 작전만 잘 진행이 되어서 잃은 영토를 수복하면… 드디어 일본도 천혜의 자원을 얻게 되는 겁니다.”

탐욕과 영광에 취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그렇군요. 아벤 총리.”

총리와 대조되었다.

앤드류의 말에 총리는 반색했다.

“우리 일본은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앤드류는 심드렁한 표정과 경멸의 감정을 감추며 추임새를 넣어 대화를 끌고 나갔다.

“그나저나….”

기회를 엿보던 앤드류가 말을 끊었다.

총리는 입맛을 다시며 앤드류의 말을 경청했다.

헤드헌터로 유명했던 앤드류에 대한 관심이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과는 따로 교류가 없습니까?”

한 자리에 있지만 기이할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플레이어들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둔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물과 기름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로.

“으음? 그럴 리는 없습니다만…….”

총리는 앤드류의 눈치를 슬쩍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주변엔 일본인들이 우세를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 대표인 유서린조차 총리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인사는 진즉에 나눴습니다. 그저 각자의 진행에 앞서서 긴장도 풀 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겠죠.”

“그런가요? 소개를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소개? 아… 유서린 말이군요.”

앤드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적인 자리였다.

그럼에도 이름을 언급하는 총리의 언사에는 막힘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사람을 대하는 것 같지 않나.’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언급하는 것만 같았다.

세이렌 영토 토벌 작전의 전투 지휘권은 그녀가 쥐고 있었다.

총리와 대등한 관계.

그게 대외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위에 선 이는 유서린이었다.

플레이어의 힘, 경험, 능력, 위상까지.

모든 게 압도적이었고, 이 작전의 주요 인물이었음에도 총리의 언사는 가벼웠다.

한국의 플레이어 협회장 유지석의 딸, 유서린.

징벌의 처녀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으며 최초의 듀얼 클래스를 보유한 초인.

전 세계를 통틀어서 15위 안에 드는 엄청난 실력자인 그녀는 자신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미스 유.

혹은 유서린 플레이어.

극도의 조심성으로 대해야 하는 초인 중의 초인이 바로 그녀였다.

때문에 앤드류는 확신했다.

‘이 원숭이 새끼가… ‘세뇌’를 계획했어!’

그토록 경멸하는 인종차별적인 욕설까지 떠오를 정도로, 앤드류는 심한 구토감을 느꼈다.

앤드류의 눈초리가 순간적으로 매서워졌다.

하지만 그 순간.

유서린이 슬쩍 고개를 저었다.

앤드류를 향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잠시 고개를 흔든 정도로 보이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

앤드류는 왠지 그녀가 자신에게 표현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부딪치는 시선.

총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유서린을 보고 있던 앤드류는, 그녀의 시선에서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님을 확신했다.

‘…확실히, 걸물이군.’

나지막한 감탄.

앤드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유서린에게로 다가갔다.

“무어 협회장?”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총리를 무시한 채.

* * *

태연한 척 서 있는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은 예리할 대로 예리해져만 있었다.

던전의 한복판.

그녀는 환영회나 다름이 없는 이 자리를 그렇게 여겼다.

‘총리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 역시나…… 아버지 말대로일까?’

어머니를 납치해서 강세기에게 세뇌를 걸었던 총리라면.

이번 토벌 작전 또한 그에게 있어선 기회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유지석의 조언을 떠올린 유서린은 태연을 가장한 채 경계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총리와의 불쾌한 인사 후, 일본의 플레이어들은 토벌의 협력자인 한국의 플레이어들과 교류를 나누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고.

‘회의도 불편하게 진행되겠군.’

토벌에 대한 회의 역시 귀찮을 게 예상이 되었다.

그러고 있을 때.

앤드류가 등장했다.

사사키 후유와 더불어 이번 작전의 협력자가 된 인물.

그는 예정대로 작전에 합류했고, 총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노련한 인상으로 웃음기 섞인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역시 불쾌해하고 있네.’

은연중에 느껴지는 불쾌감이 여실히 보였다.

총리는 플레이어를 무어라 생각하는 걸까?

이 정도 거리에서.

일반인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할 플레이어는 없었다.

유서린?

이름 따위야 얼마든지 불릴 수 있다지만, 그 어투가 굉장히 불손했다.

가볍고.

‘오만하지.’

예의를 차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인, 표리부동한 사람.

‘일본이… 망해갈 만하네.’

한국 플레이어들은 총리의 말에 일제히 시선을 주시했다.

그럼에도 총리는 한국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편안하게 굴었다.

‘음?’

하지만 앤드류는 달랐다.

상당한 불쾌감과 함께 짙게 팼다가 사라지는 미간의 주름까지.

자신에게 시선을 둔 총리를 힐끗 보는 눈동자엔 숨길 수 없는 경멸이 감돌다가 사라졌다.

‘앤드류 협회장이라… 확실히 협회장님께서 택한 이유가 있는 사람인 것 같네.’

일단 신의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

눈치까지.

유서린은 자신의 신호를 알아차리며 표정을 달리하는 앤드류를 새삼스럽게 보았다.

드물게 협회장의 칭찬까지 받은 인물.

살짝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지고, 여러 의미가 담겼다가 사라지는 눈동자의 빛이 희미해졌을 무렵.

앤드류가 총리의 부름을 무시한 채로 다가왔다.

‘일본의 플레이어를 영입할 생각을 하고 있지만, 강세기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않은 사람이지….’

강세기 또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한정우라는 낮은 등급의 플레이어에게 쪽지를 건네 줄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총리의 명령대로 이곳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었지만….

‘일단은… 구해 줄게요. 그러고 꼭! 사죄해요.’

“유서린 플레이어? 안녕하십니까. 몬타나 주의 협회장, 앤드류 무어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서린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앤드류의 사심 없는 인사에 유서린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둘의 분위기는 괜찮았다.

이번 작전의 협력자이자 경쟁자인 상대였지만.

‘괜찮네.’

생각보다도 더 괜찮은 상대였다.

둘의 대화에 웃음기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큼.”

총리가 헛기침을 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비서가 가져다주는 마이크를 입에 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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