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실종자 (7)
“거스트 오브 윈드 (Gust of Wind).”
강렬한 바람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 힘은 돌진하던 빌런을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종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한 차례, 메아리의 영향에 도약력이 약해져 버린 빌런에게는.
이를 앙다물며 뒤로 물러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어깨로부터 오는 막대한 통증에 이를 앙다물고.
능글맞은 표정과 태도도 싹 버린 빌런이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틀어쥐었다.
우웅!
나카무라 안은 빌런의 검에 맺힌 검기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상대의 수준이 보이는 일격.
더군다나 좌수로 펼치기는 하지만, 저 일격은 자신도 아는 종류였으니까.
“설마… 발검의 마츠다 켄이치였어?”
생각보다 뛰어난 자였다.
“마츠다 켄이치?”
카세 료가 나카무라 안의 말을 듣고는 경악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빌런이었으니까.
“보라는 의미가 이거였어?”
시청 지하에 빌런이 존재했다.
더군다나 카세 료는 이곳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시장은 알고 있을까.
그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한껏 응축된 바람이 뿜어져 나간다.
정우조차 그 반발력으로 양손이 뒤로 튕겨 나갈 정도의 위력이었다.
마츠다 켄이치는 그 일격을 보며.
다급히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지만.
“……아, 안 돼!”
결국, 바람에 집어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청량하던 바람이 붉게 물든다.
마츠다 켄이치의 피와 살점이 믹서기에 들어간 고기처럼 으깨져 비산했다.
“……웨, 웨엑!”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 모습에 토악질을 해댔다.
깡, 짜르르.
바람이 사라지며 뒤늦게 마츠다 켄이치의 검이 바닥에 꽂히며 울어댔다.
정우는 천천히 다가가 검을 집어 아공간에 넣었다.
“안색이 좋지 않네요.”
“…….”
“아,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나카무라 안이에요.”
“나카무라 안?”
정우는 사사키의 말을 떠올렸다.
그와 공조하고 있는 플레이어 중의 한 명.
카제 길드의 나카무라 안.
그녀가 자신을 보며 히죽 웃었다.
“언제 다 나아요? 이번 일정 중에 한번 붙을 수 있으려나?”
방긋 웃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 * *
부서지는 잔해 속에서 카세 료는 입을 다물었다.
“……따지러 갈 생각이다.”
수하들을 밀어 넣고 뒤로 빠지는 기회주의적인 면이 강했고.
잔소리가 많은 꼰대에 수전노이기까지 한 그였지만.
플레이어들의 앞에 선 그의 표정은 이전과는 달랐다.
마지막 순간을 목도한 순간, 그는 더 이상 침입자를 침입자로 여기지 못했다.
어디서 납치한 건지 일반인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었으며.
도살장의 돼지마냥 갈고리에 걸려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은 가히 지옥을 연상시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평소의 기회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언어는 가벼웠지만.
화르르 불타고 있는 눈빛만큼은.
“…당신이 이 정도로 결의에 찬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래?”
“네. 불과 방금까지만 해도 수하들 사이로 숨어들며, 뒤로 빠지는 게 쓰레기였죠.”
“그냥 쓰레긴가? 핵폐기물 정도였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면상 한번 때려 버리고 싶었다고.”
“……?”
갑자기 성토의 장이 열렸다.
카세 료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다문 입을 쩍 벌렸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제일 처음 반응한 플레이어의 말에 그는 멈칫하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다 같이 가는 거야?”
“다 같이 가야지.”
“……위안과 안도가 되네.”
“마음을 다잡으라고!”
분위기가 바뀌었다.
따지러 간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F급과 E급.
따지고 보면 전력 외의 별 볼 일 없는 잉여 인원들.
하지만 교토 시청이라는 거대 기관에 소속되었던 이들의 발언권은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공론화하라고!”
누군가의 외침에 카세 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에게 따지고, 기자에게 불자!”
“구호가 X신 같아!”
“와하하하!”
나카무라 안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의외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카세 료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묘했다.
“저 사람이 먼저 나설 줄은 몰랐네요.”
“그만큼 충격적이었나 보죠.”
“하긴. 그건… 충격적이었죠.”
나카무라 안은 지하를 떠올렸다.
정우가 마츠다 켄이치를 죽이고 난 뒤, 가리킨 장소는 처참했다.
수많은 시체.
지옥도가 펼쳐져 있는 그곳의 중간에 놓인 붉은 구체.
인신 공양 그 자체인 모습엔 그녀도 충격을 받았다.
“그 구체는 어떻게 할 거예요?”
“확인해 봐야죠.”
정우는 구체를 챙겼다.
바닥에 고인 피와 연결이 되어 있는 촉수를 자른 후, 아공간에 구체를 넣었다.
나카무라 안은 그 모습을 보며 전황 처리를 지휘했고.
카세 료는 그중에서도 열성적으로 지상의 인력까지 불러와 처리의 대부분을 도맡았다.
그리고 나온 결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일을 과연 시장이 알았는가.
누구의 지시로, 시청의 지하에서 이런 추악하고 불쾌한 일이 자행되었는가.
카세 료는 사람들을 우르르 이끌고 4층의 시장 집무실로 쳐들어갔다.
나카무라 안은 깍지 낀 양손을 뒷목에 가져다 대었다.
“말, 안 해줄 거예요?”
“뭘요?”
“무슨 확인인지. 아무래도 알아야 대안을 세우지 않겠어요?”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 일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듯했다.
정우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 여자가 불편했다.
단발의 귀여운 이미지.
그런 것치고는 투쟁심이 넘치는 표정.
‘안나…….’
자신의 친우이자 연인이었던 그녀와 닮아 있었다.
“이건 말할 수 없는 종류예요.”
“……흐응. 좋아요.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 당신이 더 궁금하거든요.”
1년.
그 짧은 사이에 A급의 빌런을 잡을 정도로 뛰어나게 성장한 한정우라는 사람이 너무도 궁금했다.
붙어 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생긴 것도 내 취향이고, 빌런 잡고 다니는 거 보면 인격도 좋은 것 같고….’
오싹.
정우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그거… 참 부담되는 말이군요.”
“부담? 부담이 돼요? 이상하다. 저… 이래 봬도 인기는 많거든요.”
정우는 자신감이 넘치는 나카무라 안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저벅.
몸을 돌렸다.
“부탁대로 이곳 처리만 요청하죠.”
“…어? 어디 가요?”
“이곳 소란은 커질 거예요. 그 안에…….”
정우는 마츠다 켄이치의 기억을 떠올렸다.
‘웃기는 일이군. 말로 했으면 좋았겠다고 방금까지 생각한 주제에, 이번엔 기억이 읽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다니.’
자신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이에서 시체가 눈을 뜨고 말을 건넸으면 자칫 오해를 받을 뻔했다.
더불어 이번의 기억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종류였다.
“움직여야죠. 늦기 전에….”
* * *
“한정우 씨!”
하시모토가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시청에서 난리가 났던데… 무슨 일이에요?”
그조차 제대로 된 상황을 모를 정도였다.
나카무라 안의 통제는 나름대로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도 목격자가 많은 탓에 통제가 완전하거나 길진 않겠지만.
“빌런을 발견했어요. 일단 이동하죠.”
정우는 경악하는 하시모토를 데리고 다시 시청으로 이동했다.
나카무라 안의 진득한 눈빛을 무시한 채 그녀의 카제 길드가 통제하고 있는 자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읍.”
전투의 흔적과 수많은 시체들의 모습.
역한 피비린내에 헛구역질을 한 하시모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쪽으로 와요.”
하시모토는 시체들의 모습을 힐끗 보며 주춤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경찰이라는 직업과 플레이어로서 여러 사건을 겪었던 그조차 이 정도의 참상은 처음이었다.
“피를 공급한 거예요.”
“…피요?”
하시모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보다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해요.”
정우는 수로로 향했다.
그곳에서 대기하던 놈 역시 정우의 침입에 죽어 버렸기 때문에 근처에 빌런은 없었다.
“이쪽으로. 추적이 필요해요.”
“…….”
충격과 경악으로 얼이 빠졌던 그의 눈동자에 힘이 돌아왔다.
자연적으로 이 사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만요….”
결연한 말투로 스킬을 시전.
다소 깊어진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로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지면에 박듯 주변을 탐색하던 하시모토가 말했다.
“이쪽으로 움직이죠.”
수로의 크기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굳이 사람이 이동할 정도의 수로를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시모토가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빌런.
그들의 출입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애당초.
“…계획된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교토 시청의 재건 때부터 준비된 계획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시모토는 정치인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관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빌런과의 비리라니.
하시모토는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진짜 열혈이라니까요.
메아리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하시모토를 보며 누군가를 투영하고 있었다.
정우가 나카무라 안의 모습에서 익숙한 안나의 외형을 떠올렸던 것처럼 말이다.
-객사하지 않게 도와 줄까요?
‘네가?’
-주인님이 하셔야죠.
‘……성격이 조금 바뀐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뻔뻔해졌어?’
순종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메아리였지만, 최근엔 언어부터 행동까지 다소 악동적인 면모가 나타났다.
지금처럼 어린 모습이 아닌, 온전했던 그녀는 가히 서큐버스의 퀸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혹적이고 매력적이었고.
성격마저도 수많은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자랑했지만.
유독 정우에게만큼은 현모양처처럼 순종적인 면모를 보였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런 그녀보다.
-이상해요?
‘아니. 더 보기 좋네.’
-히힛. (๑˃̶͈̀∇˂̶͈́)و⁾⁾˚*
지금이 마음에 들었다.
찰박.
추적에 집중하는 하시모토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정우의 눈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시선과 육체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두 개의 수로를 지나쳤을 때.
“……으음.”
공간이 급속도로 협소해졌다.
하시모토의 눈동자가 떨린 것도 그때쯤이었다.
“못 찾겠어요?”
정우가 물었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답은 정우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뇨. 너무, 많아요.”
“……!”
흔적이 많았다.
적어도 수십 명의 흔적이 이리저리 난잡하게 사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흔적을 지울 생각도 하지 않아서 더욱 혼란스러울 정도.
교토 시청의 지하를 중심으로, 빌런들이 사방으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움직인 횟수와 사람의 수가 많아요.”
“으음….”
차라리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으면 모를까.
너무도 많은 흔적이 오히려 추적에 혼선을 불러왔다.
당황하는 하시모토를 본 정우는 아쉬움을 지웠다.
“어쩔 수 없군요. 놈들의 루트를 발견하기 위해서 추적을 했는데…. 쩝. 이번에도 건너뛰어야겠네요.”
“…건너뛰어요?”
정우의 말에 하시모토가 의아함을 표했다.
정우는 그런 그를 둔 채로, 기억을 더듬었다.
마츠다 켄이치의 기억.
그는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고작해야 만남의 기억이, 사망한 그의 뇌리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만난 이는 정우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