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34화 (134/293)

134화

-실종자 (6)

철문을 부순 건 다름 아닌 ‘통로’.

허공을 가르며 다른 장소로의 입구와 출구가 되는 그것을.

철문의 열쇠로 사용했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조금 더 귀찮긴 하겠지만요.

‘예전에 결계사와 마주쳤을 때가 딱 이런 느낌이었지.’

정우는 벽을 주시했다.

그 안으로 무엇을 해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이 느껴졌다.

물론, F급이기도 했고, 마력조차 4에서 아무런 성장을 하지 못해 답답하던 시기이긴 했지만.

당시의 정우에게 결계사의 방어막은 결계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뛰어났었다.

마력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면 대응조차 못 했을 정도로.

지금도 방어막의 견고함은 동일했다.

그것과 자신의 수준에 대한 격차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마력에 한해서는 말이지.’

-곧 디스펠도 사용할 건데요, 뭐.

메아리는 수더분하게 대꾸했다.

디스펠의 범위는 참 다양했다.

적게는 ‘역산(逆算)’에서부터 많게는 ‘봉인 해제’까지.

역산은 시전 중인 마법의 흐름을 거꾸로 읽어서 시전을 무산시키는 능력이었고.

봉인 해제는 말 그대로 봉인이라는, 디스펠에 정반대되는 개념의 최고봉의 능력을 해제하는 능력이었다.

결국, 모든 능력에 카운터 성향을 띄게 되는 셈이었다.

이계의 정우는 이지스의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신이 된 사나이.

-네이밍 센스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더 멋졌을 거 같은데요. 조금 더…….

제목을 제외한 내용은 사실을 충실하게 담아 내고 있었다.

마력의 사랑을 받고, 마력을 지배하는 위치까지 올라간 한 천재의 일대기.

그런 천재의 눈에 방어막은 견고했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력이 부족해서 능력을 사용하지만 못할 뿐, 떠오른 기억만큼의 이론과 경험은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파스, 스스스-!

벽의 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열에 녹는 철처럼,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던 벽이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벽 자체가 방어막인 셈이었다.

위에서 펼친 조악한 것과는 다른, 제대로 된 방어막.

“…….”

방어막을 제거하자마자 정우의 낯빛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방어막이 사라지자마자 진동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으, 으윽. 이게 무슨 냄새야!”

“…피. 피 아니야?”

그것을 맡은 건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방어막 안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정우는 다급히 공격을.

“……칫.”

창을 비틀어 막아 냈다.

울컥.

막강한 일격.

정우는 핏물을 삼켰다.

‘플레이어들을 돌려보냈어야 했나?’

계단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고개만 힐끗 내밀고 있는 수십의 플레이어들을 본 정우가 혀를 찼다.

상대의 일격의 경로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구경꾼으로 전락해 버린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때문에 피할 수가 없었다.

주륵 미끄러진 정우가 창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창술로 상대할 적이 아니었다.

스으-.

아공간에서 꺼낸 지팡이를 들자.

마력이 안정감을 되찾았다.

저벅.

“…어떤 새끼가 내 명령을 어기고…. 어라?”

안쪽에서 대검을 어깨에 걸친 채로 걸어 나오던 사내가 멈칫했다.

밖의 상황을 이제야 눈치챈 것이다.

수하들은 모조리 죽어 버렸고.

웬 구경꾼을 가득 끌고 온 놈 하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입가의 피를 닦는 정우를 본 사내가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안 그래도 ‘피’가 부족했는데… 알아서 재료가 찾아왔구나!”

사내의 환한 웃음을 본 정우가 퉤,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역시… ‘개조’를 진행하고 있었군.”

정우의 말에 사내의 웃음이 뚝 하니 멈췄다.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너무나 급격한 변화였다.

“…넌, 뭐지? 개조까지 알다니….”

사내가 정우의 전신을 한 번 훑고는 입가를 비틀었다.

“이야기는 네 피를 공급하면서 듣기로 하지.”

서걱!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정우에게 쇄도했다.

“……!”

* * *

쿠웅-.

묵직한 진동에 지상의 사람들은 발길을 멈췄다.

“지진. 지진이다.”

빠르게 판단을 끝마친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행동했다.

몸을 숨기고.

차분히 대응을 하는 사람들은.

“…이상한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기존의 지진과는 진동이 달랐다.

강렬한 지진 뒤에 여진까지 찾아오는 일반적인 지진과는 달리, 이 진동의 세기는 그야말로 대중이 없었다.

“……어?”

광장 근처에서 몸을 사렸던 남녀는 갑자기 다가오는 헬기에 의아함을 표했다.

곧장 광장에 착륙한 헬기는 진동에도 개의치 않고 움직였다.

목적지는 시청.

“카제 길드?”

길드의 문장을 알아본 사람의 외침은 많은 파장을 만들어 냈다.

나카무라 안.

실제로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 파장은 커졌다.

일본이 자랑하는 플레이어 중의 한 명.

단발머리의 나카무라 안의 등장에 사람들은 이 진동이 결코 지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던전 혹은 전투.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이런 상황은 익숙했다.

“바로 이동해.”

나카무라 안은 네 명의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목적지는 지하 1층의 자료실.

“잊지 마라. 우리의 목적은 전투가 아니야. 수습이지. 혹시나 전투가 벌어졌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플레이어들의 보호에 전념해라. 절대 끼어들지 마라.”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나카무라 안은 입맛을 다셨다.

“끼어들지만 않으면 구경은 가능하다는 소리겠지.”

운이 좋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자신이 있었다는 게 그녀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사사키 군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아서 말이야.”

시청으로 입장한 그녀는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카제 길드의 나카무라 안이다. 꺼져.”

우르르 몰려 있는 플레이어들과 구경꾼들에게 말한 나카무라 안이 단검을 들었다.

그 모습에 주춤, 사람들이 자리에서 도망쳤다.

정보부 소속이었던 그녀였기에 누구보다도 진실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냉철하게 판단했고, 사사키의 편에 섰다.

사사키의 정보의 대부분은 그녀에게서 나왔을 정도였다.

암살 계열로써 정보에 민감한 사사키조차 뛰어넘는 존재.

그게 바로 나카무라 안이었다.

그녀는 곧장 제1 자료실로 입장했다.

빼곡한 플레이어들에게 엄포를 내려 지시한 그녀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카세 료.”

“아… 앗! 나카무라 안 씨.”

상관이었다.

“이제부터는 카제 길드가 협력할 거다.”

“…저희 시청의 업무입니다만.”

“그럼 너희가 가서 제압하든가.”

“…….”

“꺼져. 그나마 네 얼굴을 기억해 둔 건, 네가 이 시청의 경호 책임자이기 때문이야.”

“……알겠습니다.”

나카무라 안은 상관의 어깨를 밀어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곧장 지하로 향한 그녀의 귀에 들리는 건 묵직한 폭음.

그리고 온몸을 떨게 만드는 강렬한 기파와 진동.

“……호오.”

이곳에 있는 자에 대해서 익히 들었던 그녀로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파였다.

그렇게 그녀가 숨겨진 지하 4층에 도착했을 때.

전투는 무르익어 가열되고 있었다.

“…제법.”

손가락을 까딱거린 그녀가 입술을 핥았다.

수하들에게 한 명령은, 사실 자신에게 한 말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전투.

당장에 끼어들어서 적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고 싶다는 생각이 팽배해진 그녀는.

“하아…….”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정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전투광, 나카무라 안.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정우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했다.

* * *

번쩍이는 공격.

정우는 놈의 공격을 흘렸다.

염동과 매직 미사일.

방어막의 각도까지 조절한 세심한 방어였으나.

“정령아.”

공격은 즉각적이었다.

공격을 흘리자마자 곧장 물의 정령이 튀어 나갔다.

반지가 번쩍이면서 쏟아지는 회오리치는 물에 상대는 눈을 부릅떴다.

“정령이야? 신기하네!”

그런 것치고는 가볍게 움직여 정령의 모습을 검으로 베어 나갔다.

이전의 던전 안에서 보았던 A급의 검사보다는 다소 떨어지나 충분히 뛰어난 실력자였다.

적어도 자신보다 반수 위.

정우는 그 사실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웃겨?”

상대가 물을 베어 내며 물었다.

물은 검에 깃든 마력에 베어진 채로 바닥으로 쏟아졌다.

“별게 다 이젠 내 위에 있다 싶어서.”

“……그 별게란 범위에 내가 들어가니?”

“어.”

정우는 마력 회복 물약을 마셨다.

‘……더 준비를 해서 올 걸 그랬군.’

적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계속하여 꼬리를 물고 공격한다는 계획대로 진행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바로 마력 부족이었다.

반수 위.

그건 현재의 자신과 비교한 수준이었다.

마력을 회복하고 만전을 기했다면.

‘벌써 전투가 끝났을 텐데…….’

정우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정우의 말이 자극이 되었을까.

상대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싸늘해졌다.

이윽고 자세를 낮추는 빌런이 납검했다.

그리고 한순간.

“죽어….”

‘이건 위험하다!’

작은 점이 되어 뿜어지는 예기에 정우는 다급히 외쳤다.

‘리플렉트.’

발검(拔劍).

응축된 마력을 한 번에 뿜어내는 기예로, 파괴력과 속도만큼은 가히 일절이었다.

“……크윽.”

유들유들하던 낯빛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분노하기도 했지만 잠시 눈을 뗀 ‘개조’가 신경이 쓰였던 그는 자신의 최대의 일격으로 공격했고.

반사당했다.

쩌억!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격이었다.

그 와중에도 반사되는 자신의 공격을 흘려 내며 치명상을 피했지만.

울컥!

육안으로 보기에도 틈이 보일 정도로 갈라진 어깨로부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싸늘하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뽕!

왼손으로 품에서 병의 뚜껑을 딴 사내가 자신의 오른쪽 어깨 상처에 병에 담긴 물을 부었다.

치이- 이익!

막대한 통증을 유발하는 급속 치유 물약이 매캐한 냄새와 함께 소음을 만들어 냈다.

“…X발!”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는 상대를 향해.

쿵!

정우가 지팡이를 바닥에 찍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증폭된 매직 미사일이 폭격기처럼 쏟아졌다.

재빨리 왼손으로 검을 옮긴 빌런이 공격을 쳐 내고 피했지만.

퍼억!

몇 개의 매직 미사일을 얻어맞고는 겨우 비명을 참아 냈다.

그 틈을 탄 정우가 염동을 사용했다.

여러 물건들이 허공을 비산하며 빌런을 공격했다.

더불어.

중얼.

정우의 입이 달싹거린다.

빌런은 그런 정우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다.

“…어, 어라?”

뒤통수로 날아온 의자를 부순 빌런이 땅을 박찼다.

빠른 속도.

캐스팅보다도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메아리.’

-아무튼 간에 힘든 건 다 나만 시키는 거 같아요. |Д`|┛

요즘 들어 투덜거리기 시작한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며 보랏빛 안개를 만들어 냈다.

흐읍!

안개를 보자 숨을 참으며 자세를 낮추는 빌런이었지만.

“……!”

휘청.

집중해서 뿌린 안개 때문에 기감이 흐트러진 빌런의 상체가 크게 덜컥거렸다.

그 틈을 타.

뒷걸음질 친 정우의 손에서 푸른 무언가가 생겨났다.

“……오.”

나카무라 안은 그 모습에 입술을 모았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모습.

“바람 계열이었나?”

한정우란 사람의 인적 사항을 떠올린 나카무라 안이 정우의 손에 맺히는 바람을 맞았다.

눈가를 가리며 뒤로 물러나는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그녀는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정우가 만든 바람을 만끽했다.

탁한 공기의 공동에 불어 닥치는 상쾌한 바람은.

그만큼이나 이질적이면서도,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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