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29화 (129/293)

129화

-실종자 (2)

각자 여러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을 때.

정우는 본인의 상태를 점검했다.

-주인님의 정신을요?

메아리의 거듭된 물음에도 정우는 단호했다.

‘지금, 당장!’

메아리만큼이나 정신에 민감한 종족은 드물었다.

서큐버스.

정신의 상념을 먹고 자라는 존재였고.

‘……무엇이었더라. 그녀가 온전히 바랐던 종족이?’

전생의 말미에 얻었던 능력은 그녀를 서큐버스의 제약을 벗어 버린 존재로 탈바꿈해 주었다.

???의 종족.

퀘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우는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황 역시 눈을 떼지 못했다.

메아리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녀의 마력이 자신의 뇌를 헤집는다고 느낄 무렵.

-……어?

메아리의 단말마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무엇인가 발견한 투.

움찔하는 정우의 모습에 하시모토는 눈치를 살폈다.

그러는 사이 결계 안에선 전투가 벌어졌다.

일반인은 도망쳤고, 빌런은 결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우는 그 모습 또한 새롭게 느껴졌다.

이계에서도 마력을 악하게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는 지구에서보다는 많았다.

그런 이들을 상대할 때, 다니엘이었을 때의 정우는 상당한 검증을 거쳐야 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재판에 회부했고, 대질신문은 물론 여러 능력까지 사용해서 범죄의 유무를 판단했다.

그런 것치고.

악의를 각인했다는 말 한마디에 상대를 특정하게 만드는 이 스킬은.

‘단순히 스킬의 범주를 넘어선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정우는 뭔가 자신의 머리를 가로막고 있던 둑에 균열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탄성 이후 존재감이 없던 메아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정우가 차근차근 자신의 행적을 되짚었을 때였으며.

콰아앙!

이진수와 레베카의 합공이 무르익었을 때였다.

더불어 주섬주섬 김미연이 다소 익숙한 손길로 폭탄을 꺼낼 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갈 무렵.

메아리의 점검 역시 끝이 났다.

-있어요….

좋지 않은 결론으로.

-인식 방해. 아주 간단하지만…… 굉장히 고약한 방법으로.

메아리가 툭 하니 정우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 인장과 연결시켜 놨네요. 함부로 해제하지 못하도록.

‘……!’

* * *

“……곤란한데.”

다시금 눈을 뜬 사내가 입술을 비틀었다.

변화를 주도하는 건 자신들이었다.

과거와 현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판을 짜는 것.

그리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한정우는.

“…외통수군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말’이었다.

“계획을… 바꾸어야 할까요?”

“…무슨 계획을 바꾼다는 말이지?”

사내는 자신의 곁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이미 상대가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투였다.

“힘을 얼마나 되찾았나요?”

“……반절.”

“70%는 되겠군요.”

“……!”

상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붉은 눈동자가 슬그머니 불쾌함을 머금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백작.”

오스카는 사내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부족하지.”

“맞아요. 부족하죠.”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

“모순이군요. 하지만 백작. 제가 부족하다는 소리는 비단 백작만을 말한 게 아니었어요.”

오스카는 사내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인간이었다.

“저는 백작의 로드를 위해서 움직여요. 그렇게 적의를 드러내 봤자 좋을 게 없단 소리예요.”

“그건 모를 일이지. 왕께서 오시면 어떠한 대우를 하실지… 궁금하지 않나?”

“후훗. 궁금하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중요한 건 미래가 아니에요. 지금이지….”

사내가 백작의 뒤편을 가리켰다.

“시간.”

사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당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죠?”

오스카는 저 미소가 굉장히 불쾌했다.

마치 상극인 신성력의 한 자락을 보듯, 저 미소가 속을 헤집어 놓았다.

기이할 만큼의 불쾌함 속에서 오스카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네가 아는 것.”

“흐음. 하필이면 위치가 좋지 않네요. 먹잇감을 구하기엔….”

사내가 턱을 만지며 고심했다.

“일본으로 보낸 ‘사역’은 어떻게 됐나요?”

사내의 질문에 오스카가 흠칫했다.

정말로 상당히 많은 것을 아는 듯했기 때문이다.

“……적합률이 굉장히 높은 인간을 발견했다.”

“호오. 그럼 판도를 바꿀 수 있겠군요.”

“…….”

오스카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그것도 왕께서 말씀해 주신 건가?”

“그럼요. 모든 건 그대의 로드로부터 들은 내용인걸요.”

“……하.”

오스카가 코웃음을 쳤다.

믿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는 사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적합률이 높은 인간을 찾는 건, 뱀파이어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적합률이 높을수록 사역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께서도 거기까진 말씀하지 않으셨을 거다.’

빙긋.

사내의 미소를 노려본 오스카가 탐탁지 않은 투로 말했다.

“…너무 어리고 나약해. 개조를 준비하고 있다.”

“호오……. 개조까지?”

사내가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백작의 패가 완성만 된다면, 나름대로 쓸 만할 테니 말이다.

한정우라는 패가 이상함을 확인한 순간.

그를 견제할 다른 패가 필요해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때마침 한정우도 일본에 있겠다, 나쁠 건 없었다.

“백작은 백작대로 시간을 당겨요. 저도 준비를 할 테니까요.”

‘판은 내가 짜요. 그대는 그저 내 판 위의 말처럼 굴어요. 하아, 누구를 움직일까요?’

한정우를 떠올린 사내가 묘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백작도 꼭 성공하길 바랄게요.”

오스카의 기묘한 시선이 자신에게 인사를 한 후, 일족처럼 천장으로 향하는 사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 * *

‘제물의 인장과?’

정우의 시선이 가슴으로 향했다.

옷 속의 불쾌한 인장을 떠올린 정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제물의 인장은 수르트의 작품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부리는 수족, 붐이라는 자의 능력이었다.

제물의 인장은 이를테면 저주였다.

보통의 저주 해제로 해제하기 어려운, 까다롭기 그지없는 난해한.

스킬이라는 단어 안에 묶어둔, 수준 이상의 저주.

그렇기에 제물의 인장의 해제가 모조리 실패로 끝난 것이었다.

이건 엄연히 ‘마법’의 영역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경지의.

제물의 인장의 능력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끔 능력을 강제로 개화시키는 것.

하지만 정우에게 가해진 더 큰 제약에 의해 무산되어 버린 능력이었다.

물론, 붐도 빌런을 통한 성장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선 알지 못했겠지만.

‘보통의 방법으로는 마력을 성장시킬 수 없어. 전혀 다른 체계. 이것 또한 저주 혹은, 더 강력한 제약이야.’

다른 하나는 ‘명령’이었다.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해야 했고, 생존조차 강제성을 띠게 만들었다.

더불어 최후의 명령까지.

스스로 수르트의 앞으로 움직여 제 목숨을 바치게끔 만드는 명령이 제물의 인장의 골자였다.

‘분명히 그랬을 텐데?’

정우는 제물의 인장을 살펴보았다.

모든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아서인지 인장을 전부 해석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원리와 개념만큼은 대략 파악을 끝마쳤다.

정우의 능력 중 하나인 인챈트가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이 바로 ‘마법진’이었으니까.

인장 역시 마법진의 한 부류였다.

때문에 정우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기억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혹은 A급의 붐과 동일한 수준만 되어도 언제든지 파훼할 수 있는 문제.

그 정도로만 여겼으니까.

과거와 지금은 생각이 전혀 달라졌다.

그만큼 아는 게 많아졌으며, 성장할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물의 인장에 닿은 ‘인식 방해’는 예상 밖의 문제였다.

기억을 되찾고, 나름대로 힘을 얻은 후에 진행한 검사였음에도 발견하지 못했던 건.

‘그 이후… 아니면 내 힘보다 더 강한 존재가 건 거야. 그것도… 은밀히.’

A급인 붐은 아니다.

그의 능력은 희귀하고 뛰어났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복합적인 능력을 지닐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수준으로.

기존의 것에 스며들어 변개시키는 것을.

‘설마…….’

정우는 알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존재들.

없애기 위해 스스로의 시간을 바쳐야 했던 존재들.

넘실거리는 게이트 안에서 세계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려다가 끝끝내 자신과 싸워 패배한 존재들.

‘마(魔)?’

악귀와 같으며 귀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마족.

저릿.

정우는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메아리.’

정우의 복잡한 생각을 읽었다는 듯 메아리가 조심히 말했다.

-주인님. 아무래도 전부 소멸된 게 아니었나 봐요.

메아리의 정신은 과거에도 정우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게이트를 넘어 전투를 벌일 때엔 자연스럽게 끊어졌던 연결이 다시금 이어졌을 때의 충격을, 그녀는 잊지 못했다.

온통 검고 검은 정신.

빛이라고는 한 줌도 보이지 않았던 깜깜한 정신세계에 그녀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봉인했고, 봉인이 풀렸을 때는 다니엘이 나름대로 본연의 삶을 되찾았을 때였다.

때문에 메아리는 그 변화를 알지 못했다.

무수한 목격 중에 유일하게 단절된 부분이 바로 그때였다.

마치 지금, 많은 기억이 끊긴 것처럼.

스스로를 내던지면서.

스스로를 잊어가면서까지 싸워야 했던 존재들이 바로 ‘마’였다.

게이트를 닫으며 정우는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소멸시켰다고 여겼다.

소멸. 아니, 봉인인가?

‘온전치 않아.’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봉인을 한 건지 소멸을 시킨 건지.

얼마 전에 되찾았던 기억에선 무슨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상하다.’

떠오르지가 않았다.

마가 전부 소멸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문제는, 이 인장을 없애기 전까지는 인식 방해도 없애기 어렵다는 거다.’

당장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정우의 눈빛이 다부지게 변했다.

‘주변을 확인하고, 경계해.’

-……주인님은요?

‘회랑에 접속할 거다.’

그렇게 말한 정우는 망설임 없이 회랑에 접속했다.

모든 세상의 얼룩이 사라지는 것 같은 순백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 무슨 일이오?”

정우의 접속을 감지하고 입장한 이지스가 얼굴을 굳혔다.

정우의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 들어본 적이 있소.”

모든 정보를 모을 듯 기록하던 마녀조차 ‘들어본 적이 있다’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정우는 그 사실에 주목했다.

게이트를 관리하는 건 자신이었다.

자신의 도시는 지상낙원으로 불렸고, 스스로도 그런 낙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강자들이 상당히 모여 있었다.

지상낙원을 만들려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기억의 앞부분이 궁금해졌다.

이지스는 잠시 고민하며 책을 하나 가져왔다.

< 어둠 안의 괴담 >

“…이건?”

“왕께서 게이트라 부른 그것에 대한 내용이오.”

정우는 책을 받아 펼쳤다.

온갖 괴담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단순히 어둠이라 불린 그것에 대한 여러 사건과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우가 볼 때 그것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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