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실종자 (1)
앤드류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흰색 연기가 흩어지는 것을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쿠웅!
바닥이 울릴 정도의 진동을 끝으로.
“완료했습니다.”
전투는 끝났다.
앤드류는 마무리된 전투를 보다가 문득 정우를 떠올렸다.
“미스터 한은 계속 가스를 폭발시킬 예정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인원도 훨씬 적었고 지원도 없었다.
그럼에도 순항 중인 작전이 놀랍기만 했다.
“협회장님. 사사키 길드장에게서 받은 정보가 다 떨어져 갑니다.”
“으음.”
사사키는 자국의 안정화를 꿈꿨다.
협회나 플레이어, 던전과 브레이크를 제외하더라도 빌런 역시 그의 해결 대상이었다.
사사키의 후유 길드는 대부분의 인원이 암살 계열로 이루어진 암살 집단이다.
특유의 기동성과 은밀함을 살린 그들은 정보의 수집 능력도 뛰어나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시기를 봐서 처리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정보를 풀었지만, 생각보다도 정보의 양이 부족했다.
그만큼 빌런이 은밀하게 움직였고, 일본에 구멍 뚫린 치즈처럼 관리하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신기하지 않나?”
“…무엇을 말입니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정화를 목표로 활동하는 사사키보다도 한국의 한정우가 더 빌런을 잘 찾는다는 게….”
“헌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본국을 방문한 그가?”
“미리 정보를 주었다고 하면….”
“으음. 보게. 우리도 미리 파악한 정보대로 움직였지만, 놈들 역시 소식을 들은 건지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어. 그런데 미스터 한은 그런 변수조차 의미가 없다는 듯, 여전한 기동성을 자랑하고 있지.”
“…….”
“정보가 떨어질 걸 예상한 모양이더군.”
“누가 말입니까?”
“미스터 한. 한정우 플레이어가.”
“……?”
앤드류는 정우의 말을 떠올렸다.
“놈들을 정리하다 보면 변화가 생길 겁니다. 미리 파악해둔 정보가 부족해지는 순간, 제게 연락하십시오.”
“…이 판은 그의 것이군.”
“한정우 말입니까?”
“그래. 자네도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테지.”
“…그 정보를 그가 틀어쥐고 있군요. 어떻게….”
“어떻게가 중요한 게 아닐세.”
앤드류가 말을 끊었다.
담배 연기를 보며 눈을 감았던 그가 말했다.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네.”
“…접선해 둘까요?”
“아니. 조금 이른 것 같아. 다만 백의 연금술사와 닥터 브라운과의 관계에 조금 발을 걸치는 게 낫겠군.”
“알겠습니다.”
“한정우는 이번에 총리의 일을 마무리 지으면서 브라운도 구할 생각이야. 우리로서는 반길 만한 내용이지.”
“맞습니다.”
이 계획은 빌런을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든 건 총리를 잡기 위한 것.
미해결 지역인 세이렌의 영토를 공략하는 것조차, 궁극적으로는 세뇌라는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작전 중 하나였다.
결국.
‘총리를 잡기 위한 움직임이지.’
모든 건 총리로 귀결된다.
자신과 사사키는 미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빌런을 노리는 역할.
“…우리의 역할이나 제대로 하지. 수풀을 쳐서, 뱀을 꺼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네. 가만 보니 결정적인 건 미스터 한이 도맡아 하는군.”
앤드류는 이번 작전을 떠올렸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작전을 제대로 완료했을 때.
과연 한정우라는 인물이 지금처럼 수면 아래에 가려질 수 있을지.
‘의미가 없는 생각이군.’
앤드류는 한껏 들이켠 담배 연기를 뿜었다.
“접선하지 말고, 닥터 브라운의 주변을 연결하게. 본국의, 정상적인 주변 말이야. 그리고 밀러와는 접선을 해두게. 한정우를 본국으로 귀화시킬 방법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고.”
앤드류는 시가의 불을 끄며 차에 올라탔다.
“한정우가 그리는 판이라…. 한번 올라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공간이동과 전투 능력이 모든 걸 좌우하는 건 아니었지만.
수많은 인재를 봐 왔던 그는 한정우의 가치가 수직 상승 할 것임을 확신했다.
모든 주식은 저평가되어 있을 때 구매하는 게 좋은 법이다.
“곧 외유도 끝이군. 총리 옆에 앉아서 아양을 떨어야 할 걸 생각하니, 시가가 당기는군.”
앤드류가 불붙지 않은 시가를 입에 물어 잘근 씹었다.
* * *
하나의 단서를 발견한 하시모토는 곧장 휴가를 냈다.
의아해하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한 뒤, 그는 곧장 단서를 찾아 움직였다.
협회로 이관된 사건이었다.
‘사다코….’
하지만 실종자의 나이가 공교롭게도 늦둥이로 낳은 막내딸과 같다는 점이.
막내딸을 낳으며 죽어 버린 아내 대신에 어머니가 딸을 봐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휴가를 통으로 사용하게 만들었다.
‘조심해야 한다. 플레이어를 상대하려면….’
이번 사건처럼 경찰이 접근했다가 플레이어 전담 기관으로 이관되는 사건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었다.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하는 건 일반 경찰이었으니까.
그러다가 범인을 마주해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그리 드문 건 아니었다.
플레이어 범죄는 그래서 위험했다.
각국은 경찰이나 소방관, 구급대원같이 초동 출동을 해야 하는 직업군에게 아이템을 배정했다.
그리 훌륭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작동만 잘 시키면 구명줄 정도는 될 물건이었다.
“미안하군.”
하시모토는 유능했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작은 단서 하나를 시작으로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추적을 이어 나갔고.
난탄시에 도착했다.
그는 추적에 능했다.
작은 단서를 잡아 파고드는 집념도 상당했다.
그야말로 직업에 적합한 성향이었다.
그렇게 발견한 목적지에서 갑자기 납치를 당했다.
눈을 깜빡인 것 같은데, 환경이 바뀌어 있었다.
잠입을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골목이 아닌, 한 가정집에서 눈을 떴다.
하시모토는 일이 틀어졌음을 느꼈고, 발뒤꿈치를 바닥에 찍었다.
구명줄이 되어 줄 아이템의 사용을 떠올리며.
하지만 돌아온 건 차분한 음성이었다.
“왜 잠입을 하려고 한 거지?”
‘…한국어?’
바로 옆 나라의 것이어서 익숙하기는 한 언어가 귀에 꽂혔다.
‘실종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인가?’
“우린 범인이 아니다.”
하시모토는 흠칫 놀랐다.
자신의 생각을 읽는 듯 시기적절하게 대답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읽었나?”
“그저 정황상 대답했을 뿐이야.”
하시모토가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범죄자를 쫓다가 칼에 맞은 적도 있었고, 야쿠자와 대치를 하다가 총에 맞은 적도 있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는 끝끝내 살아남았고, 범죄자들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심장을 노리는 칼을 피할 때도.
머리를 노리는 총알을 피할 때도.
비록 다른 부위에 맞기는 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각성을 할 때도 자신의 목숨을 두어 번 구해 준, 일반인일 때도 지니고 있던 능력이 하나 있었다.
촉이라고도 불리는 그것.
바로 ‘직감’이었다.
하시모토는 직감했다.
눈앞의 한국인은, 자신을 적대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름은?”
“…하시모토.”
“직업은?”
“경찰이오.”
“대답이 빠르군.”
“날 해치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 확신하지?”
그의 말에 하시모토는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보면 아오.”
“그거참 흥미로운 능력이군.”
정우는 피식 웃었다.
“좋아. 대화를 나눌 준비는 된 것 같고, 일단 미안하다고 먼저 말해야겠군.”
“미안하다?”
“그 아이템, 단순히 잠시 활용만 멈춰 두려고 했더니 아예 부서졌거든.”
“…탈출용 아이템 말하는 거군.”
하시모토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배급을 받으려면 경위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자신이 지금 휴가 중이었으니까.
결국, 본인 돈으로 구매를 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래.”
“…….”
“결박은 풀었다. 편하게 앉아. 일단 대화를 나눠야 할 테니까.”
정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시모토는 편한 자세를 취했다.
“적은 아닌 것 같고… 범죄자도 아닌 것 같은데. 한국인이 여기에 무슨 일이오?”
“빌런을 쫓고 있다.”
“……빌런?”
하시모토가 소리를 죽였다.
살인과 실종사건.
플레이어 범죄로 확정이 된 상황에서, 빌런을 쫓는 한국인을 만났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내가 묻지. 무엇을 하고 있었지?”
“……실종 사건 하나를 추적하고 있었소.”
“실종 사건?”
하시모토가 간단히 설명했다.
“단서라….”
-이거예요. 제가 대화를 나누라고 했던 이유.
‘그냥 설명해 줘도 됐을 텐데.’
-저는 단편적인 것밖에 못 보니까요. 힘이 더 강해지면 모를까…. 아무튼 주인님은 이 인간과 꼭 대화를 나누셔야 해요!
하시모토가 발견한 단서는 메아리의 시선을 끌었다.
온전한 기억을 엿본 건 아니지만, 그 단서가 자신들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는 듯했다.
잠시 고민한 하시모토는 단서를 말했다.
다치지 않을 거란 직감이 있지만, 만약 상대가 자신을 속인 빌런이라고 한다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신발이오.”
“신발?”
할머니 스즈끼는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손녀 사다코는 실종되었다.
납치로 예상하고 있는 사건에서 특이한 점은, 사다코가 신발을 신고 나갔다는 점이었다.
“…그게 왜 이상하지?”
“할머니가 죽임을 당한 상황에서 신발까지 챙겨 신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평소처럼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오.”
일본은 한국처럼 CCTV가 발달한 나라가 아니었다.
작은 마을일수록 CCTV는 적었다.
그럼에도 작은 어린아이가 모든 CCTV를 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제 발로 이동할 정도의 면식범이라는 게 조사 기관의 판단이었지만, 그러기엔 할머니의 살해에도 저항이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렸다.
“납치라면 신발을 신길 이유가 없소. 더군다나 집을 나서자마자 흔적이 사라졌으니까.”
더군다나 납치라면, 그저 데리고 가는 것이 중요할 터.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길 이유가 없었다.
부친은 이제야 이동하는 중이니 용의선상에서 제외가 되었다.
그 사실을 추적하던 하시모토는 한 가지 수상한 점을 추가로 발견했다.
“수상한 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소.”
은폐.
딱 그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수사의 진행은 더디고 멍청했다.
기이할 정도로.
플레이어 사건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파고들었다? 위험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게 두려웠으면 경찰을 때려치워야 맞소.”
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살인 도구는?”
“…그게 이상하오.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흔적이 없소. 그저….”
하시모토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심각할 정도로 핏기가 없었을 뿐이오.”
띠링.
비타의 답변을 본 정우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내 하시모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우의 손을 맞잡은 하시모토가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함께 움직이지. 아무래도 겹치는 게 있을 테니까.”
“으음……. 좋소.”
고민 끝에 하시모토가 답했다.
정우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핏기가 없이 죽어 버린 사람.
‘…뱀파이어.’
그 특징과 유사했다.
하시모토는 그걸 발견했고, 본능적으로 신발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일본으로 넘어온 빌런 중에 뱀파이어가 끼어 있었던 걸까요?
‘확실하진 않아…. 하지만…….’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강원도 철원.
나름대로 여유가 있었음에도 가지 않았던 그곳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박쥐 무리를 쫓고 뱀파이어의 흔적을 발견하고, 도살자와 싸우고 난 뒤.
평소의 정우라면 곧장 철원으로 향했어야 옳았다.
그럼에도 정우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어?
‘……이상하다.’
정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물 흐르듯 떠올렸던 많은 생각들이.
순서대로 진행한다고 여겼던 그것들이.
‘메아리.’
결계를 완성시키자마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진수와 레베카에게 지시한 정우는.
‘내 정신을 살펴봐. …누군가가 개입한 것 같으니까.’
-……!
이제야 느낀 이상함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