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27화 (127/293)

127화

-꼬리잡기 (3)

“지켜 주십시오.”

“…음.”

면담을 마친 유지석은 눈가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미국으로 가짜 자신을 보내어 적어도 수르트와 관련된 이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는 것과.

유서린이 세이렌의 영토에 집중하여 이목을 끈다는 것까지.

그리고 유서린과 정우에게만 밝힌 ‘앤드류’라는 존재와 ‘사사키’와의 협력까지 합쳐져.

‘나쁠 건 없군. 아니, 상당히 괜찮다.’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 많은 빌런들이 일본으로 넘어간 정황과 여러 경로가 파악이 되었고, 그들의 존재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판국이라 조금 골치가 아픈 게 사실이었다.

중국과 일본, 빌런과 던전까지.

파악하고 손댈 일이 한가득이었다.

“자네가 위험을 감수할 테니 가족을 지켜 달라는 건가?”

“맞습니다.”

“이미 자네의 모친과 여동생에 대해서는 관리를 하고 있네.”

“자신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면, 미국에 가 있는 지금을 놓치지 않겠죠.”

“그렇지.”

“저는 이번 기회에 ‘개편’을 해보려고 합니다.”

“…개편? 무슨 개편 말인가?”

유지석의 물음에 정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 * *

“어디로 가는 거야?”

한 번의 실수 이후 이진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정우에게 한 방 얻어맞고 나서야 태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중요하니까 잘 들어.”

정우는 손을 휘저었다.

“이건 뭐야?”

“결계. 사일런스 마법을 응용한 거다.”

“…신기하네. 사일런스면 침묵이잖아. 우리 이야기가 밖으로 안 나가는 거야?”

“그래. 대신에 입 모양만 조심하면 돼.”

“이 근처에 뭐가 있다고.”

“나중을 위해서 설명하는 거다.”

“알았어.”

“짧게 설명할게. 일단 우리가 할 건, 꼬리잡기야.”

“꼬리잡기?”

“한 놈을 잡고 단서를 잡아서 다른 놈을 잡고, 꼬리에 꼬리를 잡듯 움직여야 해.”

“음. 그거야 기본적인 일이니까 알아들었다.”

“너도 알다시피 몇 시간 후면 사사키와 미국의 플레이어들이 합류할 거다.”

“미국에서 벌써 오냐?”

“합참의 군 소속 플레이어들이 움직일 거야.”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진행이 됐어? 빠르네.”

“시급한 일이니까.”

사사키와 앤드류는 각자 움직일 터였다.

아무래도 소수의 인원으로 방대한 영역을 맡아야 하니 같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정우는 비타를 조작해서 일본의 지도를 띄웠다.

“미국으로 많은 시선이 쏠릴 거다. 그 틈을 타서 사사키는 후쿠오카시 방향을. 앤드류는 센다이시 방향을 맡을 거야.”

“어? 앤드류는 총리와 접선하기로 하지 않았어?”

“총리는 움직일 거야. 대신에 미국에서도 빌런 사냥을 돕기로 했어.”

“그래? 괜찮네.”

이진수가 히죽 웃었다.

“나름대로 파악한 빌런의 위치가 있을 테니까, 그걸 다 푸는 거구나.”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처리할 예정이야.”

“사사키의 제안이었고?”

“그래.”

원래 사사키는 정우와 함께 움직이면서 빌런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도중, 계획이 변경되었다.

“위험을 자처한 거니까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어.”

사사키는 빌런의 이목을 끌기로 작심했고, 그를 돕는 여러 길드와 협력해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렇군.”

“작전 시간은 세이렌 공략이 시작되기 전까지야.”

“…짧네?”

“짧아. 그래서 시간이 중요해.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틈틈이 차를 배정하고 있어. 지금쯤이면 일정한 간격으로 차가 배정이 되었을 거야.”

“정우야. 이 간격이면 차가 너무 멀리 있는 거 아니야?”

“그게 포인트야. 빌런을 잡고 정보를 얻으면 방향을 정해서 이동할 거야.”

정우가 자신을 가리켰다.

“공간이동으로.”

“…괜찮겠냐?”

“내게는 마력 회복 물약이 이상하리만큼 부작용이 없어.”

“……한 번에 몰아서 오는 거 아니냐?”

“그랬으면 좋겠어?”

“조심 좀 하란 소리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마시지 말고.”

“알았다.”

정우가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우리가 이동할 곳은 가가미노조야.”

“알았다.”

“내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놈들의 흐름을 잡을 거야.”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슬쩍 물어보는 이진수의 말에 정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판을 다시 짤 거거든.”

“판을?”

“지금의 빌런은 너무 중구난방으로 퍼져 있어. 차라리 경각심을 줘도 모이게 만드는 편이 나아. 그만큼 위험은 커지겠지만.”

“…몰이한다고?”

“그래. 몇 번 더 성장하면 모를까 지금은 이게 한계야. 미국에서 떠들어대는 내용은 과장된 거고.”

“…그건 알지만 그래서?”

“수르트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이겠지.”

“……수르트가?”

“날 제 먹이로 생각할 테니까. 가장 먼저 움직일 거다. 놈을 잡을 방법은 계획 중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쩝. 이거 너무 휙휙 지나가는 거 같아. 빨라. 난 따라가지도 못하겠어.”

“그만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야.”

“그러니까 그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야? 지금처럼 천천히 잡으면 안 돼?”

“어. 안 돼.”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미끼로 내던지면서까지 이렇게 할 이유가 있었다.

빌런의 행보가 수상했다.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유지석에게 말한 것처럼 ‘개편’이라는 단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정우는.

지금까지의 기억과 회랑의 정보를 바탕으로.

“우위에 설 거다.”

패를 손에 쥘 생각이었다.

휘둘리는 입장이 아닌, 거머쥐는 입장으로.

“우위에… 선다고?”

“그래야 이 사태를 끝낼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 사태라면….”

“뭐겠어? 빌런과 몬스터지.”

“……!”

“아버지, 구해야 할 거 아니야. 불가능하더라고. 지금으로서는.”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마력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몬스터를 사냥할 수밖에 없었다.

빌런이라는, 몬스터를.

* * *

전투는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게 효율적이라고? 말해! 네가 세뇌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거지?”

반파된 건물 사이에서 이진수가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메아리의 능력 중 환각은 마법과는 조금 성향이 달랐다.

저주보다도 더 근원적인 능력.

바로 권능이었다.

환각을 통해서 일반인을 분리하고, 전투의 여파를 조작했다.

“…제 역할은 연쇄 폭탄마인가요?”

그리고 김미연을 통해 폭탄을 터트렸다.

폭발의 흔적에 메아리가 한시적인 환각을 덧씌우면.

“빠르게 이동한다.”

가스 폭발로 위장할 수가 있었다.

꿀꺽.

정우는 마력 회복 물약을 마셨다.

‘확실히… 더뎌.’

세 병 이상 마시지 말라는 주의 사항은 여전했다.

물론, 정우는 열 병을 넘게 마셨음에도 후유증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마력의 회복이 점점 느려질 뿐이었다.

마력 회복 물약의 제조는 제임스의 스킬이었다.

이론도 모르는, 그저 게임에서 등장하는 것 같은 스킬.

백의 연금술사로 이름 높은 그조차 이론적인 부분은 차차 알아 가는 중이었다.

‘그런 것치고 만들어지는 물건은 묘하게 수준은 높지.’

정우는 언제고 이 법칙과 체계를 알아내겠다고 다짐했다.

공간이동을 하고.

“…얼른 휴식하자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에서야 휴식을 취했다.

‘조금 버겁긴 해.’

상당히 많이 움직였다.

물약의 힘으로 버티는 수준이었다.

나라 간 공간이동과 전투.

연이은 아티팩트의 사용과 잦은 공간이동까지.

현재 본인의 수준을 월등히 넘어선 움직임이었다.

짧은 휴식 끝에 도착한 난탄시의 한 지역에서.

“……!”

정우는 한 사건에 얽혔다.

승합차 옆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조심히 움직이는 사람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플레이어?’

악의는 발동하지 않았다.

‘메아리.’

-맡겨 주세요!

정우는 일단 사내를 밖으로 빼내기로 결정했다.

우연인지 의도적인 건지.

‘내가 목표로 하는 곳과 같아.’

곧 전투가 벌어질 장소였다.

어차피 메아리를 통해 전투 지역의 일반인은 내쫓을 것이었다.

플레이어 한 명이 더해진다고 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지시를 내리려던 정우가 멈칫했다.

-주인님!

메아리의 단호한 외침 때문이었다.

목표물과 가까워서 미리 이동시키려던 메아리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정신에 관여했다.

그리고.

-이 인간과 대화를 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정신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다 세밀한 대화가 필요할, 그런 내용이었다.

* * *

“빠르군.”

목을 붙잡고 비틀거리는 놈의 등을 걷어찬 사사키가 고개를 돌렸다.

매 순간마다 들어오는 보고에 나지막한 감탄을 내뱉었다.

사사키는 정우를 은인처럼 여겼다.

일본에서의 전투는 난항이었다.

그만큼 상대는 강했고, 상황은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불의 왕, 수르트까지.

대응이 늦었다면 자신은 물론 길드원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회의를 위해 방문한 여러 학자들도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정우의 연락은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만들어 낸 태풍처럼 많은 것을 바꾸었다.

연락하지 않았어도 같은 결과를 맞이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었다.

심지어 고작해야 F급에 불과했던 한정우의 결단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빌런이라…….”

불과 몇 달.

그사이에 한정우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킨타로.”

“네!”

“보통의 플레이어가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떻게 되지?”

“…공간이동 스킬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저는 50km 정도 가능합니다.”

“B급의 플레이어가 50km라…. 대마법사는?”

“미세스 질을 말씀하시는 거면 저도 잘 모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능력은 공격용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서브에는 맞지 않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면 공간이동 마법이 있을 텐데….”

“거리가 중요하신 거면, 대외적으로 가장 뛰어난 공간이동술사가 1,000km를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1,000km?”

사사키가 거리를 곱씹었다.

한정우의 이동 거리가 더 짧긴 했지만, 난도는 더 높았다.

“그리고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

하지만 과정과 결과는 모두 달랐다.

공간이동술사가 비슷한 거리를 이동하고 탈진해서 쓰러진 것과는 달리, 한정우는 세 명의 인원을 더 데리고 이동한 채로 활동을 시작했다.

연이은 전투와 공간이동.

적어도 공간이동술사보다 훨씬 낫다고 여겨야 했다.

“공간이동은 전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근거리 이동 스킬인 블링크는 그래도 많은 마법사들이 보유하고 있지만….”

킨타로가 설명을 이었지만, 사사키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적어도 최상위권.

한정우는 그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능력을 얻었다.

재능과 능력에 이어 활용법까지.

‘한국이라는 나라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플레이어 시대가 시작되면서 뒤처진 조국, 일본.

사사키는 이번 작전을 계기로 한정우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감적으로.

삐-삑.

그런 사사키의 비타가 짧게 울렸다.

“……음.”

발신자와 비타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나지막한 침음을 흘린 사사키가 고개를 돌렸다.

난탄시의 작은 마을을 향해서.

정우가 있는 그곳에서 발견한 한 경찰의 존재가 자신이 모르는 다른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려왔다.

경찰의 이름은 사사키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시모토 경시정.

베테랑 경찰로 훈장도 받은 적이 있는 유명 인사였다.

플레이어였지만 경찰을 택한 인물이기도 했다.

“해당 사건이라면 실종자가 발생했던 사건으로 협회의 플레이어 사건 전담부서로 넘어갔습니다.”

“알아봐. 자세히.”

“알겠습니다.”

사사키의 말에 킨타로가 고개를 숙인 후 사라졌다.

“이관된 사건이라….”

사사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사건의 담당자였던 경찰을 왜 물어볼까?”

만난 건지.

아니면 찾아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사건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건지.

“원인을 적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군.”

정우의 물음엔 해당 내용이 없었다.

사사키는 하시모토에 대해 답장하며 짧게 이유를 물었지만.

“…….”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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