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26화 (126/293)

126화

-꼬리잡기 (2)

한국에서 도망친 빌런의 수는 많았다.

C급 이상의 나름대로 한가락씩 한다는 빌런들은 정우의 손길을 피해 한국을 벗어났다.

일부는 중국으로.

일부는 조금 더 먼 국가로 이동했지만.

이상하리만큼 많은 수의 빌런들이 일본으로 향했다.

빌런 전담팀에서 파악한 수만 해도 백여 명에 달할 정도였으니.

“실제는 더 많을 거다.”

“…뭔 벌레 새끼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빌런에 대한 적개심은 이진수도 상당했다.

나이트 길드에서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잡은 빌런의 수가 열 명이 넘어가니, 실제로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빌런과 지금의 빌런은 그 수부터가 차이가 났다.

열 명?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래도 나름대로 좀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진수가 이곳에 합류해서 가장 놀란 건, 빌런의 수가 상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과연 ‘협회’라는 단어를 쓸 정도의 수였다.

“실제로도 수가 많아. 더군다나 G급 던전까지 이용해서 수를 늘리는 것 같더군.”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정부의 힘이 약한 나라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플레이어의 힘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니까요.”

가까운 북한은 전 세계 국가 중에서도 가장 중앙 정부의 권력이 강한 편이었지만, 플레이어 시대에 돌입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빌런이라면 나라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김미연 플레이어 말대로야.”

“그래서? 그놈들이 왜 일본으로 온 거지?”

“지금부터 그걸 알아봐야지.”

정우는 레베카에 의해 부상을 입고 자신의 손에 죽은 빌런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진수야. 잠시 자리를 비켜 줘.”

“…알았다.”

힐끗 김미연을 보는 정우의 눈동자에 진수가 그녀를 데리고 움직였다.

그녀가 사라지자 정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자부활.”

정우가 천천히 눈을 뜬 시체를 향해 물었다.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해.”

“……명령이, 내려왔다.”

“무슨 명령이지?”

“……기다리면… 된다고….”

“자세히 아는 건 없다?”

“……명령은, 일방적…… 기다리는 것 외엔…….”

시체의 말에 정우는 미간을 구겼다.

“접선 방법은?”

“……대기.”

“그 외에 네가 알고 있는 사실 중에,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건?”

“……내일까지, 합류…….”

“……!”

그 말에 정우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도 다음으로 연결되는 끈은 잡은 것 같군.”

“그렇네요!”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름은?”

“……내 이름은…….”

이름을 밝히는 것을 끝으로 시체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제야 정우는 시선을 뗐다.

“무덤이라도 찾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스킬을 향상시키려고요?”

“그래. 안 쓰니까 시간이 너무 짧아. 레베카. 이진수를 불러와.”

빌런 전담 지원팀이라는 긴 이름의 부서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빌런의 인원을 파악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혼재되어 있는 빌런들.

그중에서도 몇 명은 협회 차원에서 계속 쫓고 있던 인물이었다.

정우는 이진수에게 시체로부터 얻은 정보를 설명했다.

“그게 이놈이라더군. 이름은 오영민.”

“어? 이게 그 새끼라고? 얼굴이 다른데?”

“성형을 했겠지. 이번에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흔적이 남았나 봐.”

“…이 새끼 악질인데. 사람을 난도질하는 게… 이놈 수법이야.”

이진수가 시체를 걷어찼다.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특히나 간살이 잦았기 때문에 공분을 샀던 놈이었다.

“…잠깐. 이 새끼 계속 숨어 있었다며? 협회에선 못 찾았고. 근데 왜 굳이 일본까지 넘어온 거지?”

“속속들이 잡히다 보니 불안한 것도 있겠지만….”

컨트롤 타워의 빌런 탐지는 빌런이 무의식중에 뿜어내는 마력의 패턴을 읽는 것이었다.

마력을 조금도 사용하지 않는 빌런은 구별이 불가능했다.

컨트롤 타워의 용도 자체가 던전의 파악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람의 근원 자체를 구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영민은 플레이어였지만 일반 살인마처럼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놈으로 유명했다.

놈이 마력을 사용할 때는, 플레이어를 죽일 때와 도주할 때.

그래서 더 잡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

“명령이 있었다고 하더군.”

“…명, 령? 협회!”

그래서 협회는 오영민뿐만 아니라 그동안 찾지 못하던 여러 빌런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정우가 빌런들을 사냥하고 다닐 때부터 유서린은 만약을 대비해서 사방의 경계를 강화했고, 전담팀과 기존의 빌런들을 쫓던 정보부서를 강화해서 운영했다.

그런 준비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이미 도피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출국의 흔적을 찾는 건 더 쉬웠다.

“……대단한데, 유서린 대장?”

유서린은 전투의 장소를 일본으로 옮기며, 일망타진의 기회를 잡았다.

빌런들의 도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엄연히 컨트롤 타워를 이용한 정우의 능력이었지만.

그 이후의 계획은 모조리 유서린에게서 나왔으니까.

이진수는 여러 내용을 들으며 충격을 삼켰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급하게 돌아간다?”

“그러니까.”

“곧장 이동할 거야.”

“알았다.”

정우의 뒤를 따라 이동하려던 이진수가 멈칫했다.

“그런데… 조금 더 은밀하게 작전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특수부대처럼?”

“맞아요. …폭탄 터트린 거 괜찮나요?”

“괜찮아. 아마 이곳의 모두는….”

-가스 폭발 사고지요!

“가스 폭발로 알 테니까.”

“……뭐?”

* * *

쪼르르륵.

물을 따라 마신 유아영의 눈이 퀭했다.

“괜찮아요?”

오죽하면 지나가는 다른 직원이 그렇게 물을 정도였다.

대답할 힘도 없어서 손을 휘저은 그녀는 털레털레 자리로 가서 털썩 앉았다.

띠링.

메일 알람이 울리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에 하나를 처리했는데.

“……또?”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았다.

통장에 쌓이고 있는 돈도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죽고 나면… 의미가 없는 게 아니야?”

세상의 진리를 깨달아가는 그녀가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사방에서 돈이 들어오고 있었다.

협회의 월급은 가장 박봉이었고, 제임스 밀러에게서 나오는 금액이 가장 컸었으나.

계약 건마다 떨어지는 수수료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마력 분해 장치.

그것의 판매는 전적으로 유아영이 담당하고 있었다.

정우는 굉장히 좋은 상사였다.

“…그래도 일이… 너무 많아.”

자신의 특별 수당을 본인이 나서서 챙겨 줄 정도로 괜찮은 상사였다.

하지만 돈에 관심이 지대했던 그녀조차 최근에 들어선 건강이 먼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많았다.

마력 분해 장치의 판매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항했다.

직원으로서 갑의 위치를 절감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딱 하루뿐이었다.

본연의 업무가 끼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의 양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비서.

그것도 빌런 전담이라는 초유의 기관의 업무와 한정우라는 특별 인물의 업무가 맞물리면서.

털썩.

유아영의 고개를 책상에 처박게 만들었다.

지원팀에서 대부분의 사안을 담당하긴 했지만, 빌런 건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본인이 직접 점검하고 담당해야 했다.

더군다나 협회장에게 올리는 주기적인 보고까지.

“……협회를 나올까?”

오죽했으면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혜택이 사라지고 오히려 위약금만 남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유아영은 길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제임스 밀러의 조항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유아영은 팬을 철회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제임스 밀러가 문제가 아니지….”

협회의 일부터가 그만둘 수 없는 조항으로 가득 얽혀 있었다.

“졸리다…….”

벌써 삼 일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띠링.

이번엔 핸드폰이 울었다.

책상에 고개를 처박은 상태로 힘겹게 핸드폰을 확인한 그녀의 상체가 벌떡 일으켜졌다.

잠?

싹 달아나 버린 지 오래였다.

등줄기를 짜르르하게 울리는 불길함에 그녀는 의자를 박차며 일어났다.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준비한 것을 진행해 주세요.’

문제는 발신자였다.

한정우.

자신의 유일한 담당자인 그의 문자를 보는 순간 유아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닫아 버린 노트북을 다시 열고, 메일함을 열었다.

“…왜 이 정도까지 하려는 거지?”

잠시 망설인 그녀가 앓는 소리와 함께 메일을 보냈다.

미리 작성해 두었던 메일을.

“난 이제 몰라…. 그냥… 일이나 하자.”

노트북을 켠 김에 다시 업무를 시작한 그녀의 메일은.

“…proceed with the project.”

미국의 유명 기자의 손에 도달했다.

그는 유아영의 메일을 본 후, 흥분을 억누르며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특종을 낚기 위한, 특종의 작성.

“Good luck.”

기자는 한 동양인을 떠올리고는 히죽 웃었다.

네 번째 퓰리처상을 떠올리며.

* * *

“어?”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김미연이 기사를 확인했다.

[ 두 거인을 품은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새로운 거인 ]

“…이거.”

“올라오는군.”

정우는 담담히 자신의 비타를 확인했다.

이제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한 기사의 원문을 본 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장 후속 기사도 떠올랐다.

[ 베일에 싸여 있던 ‘헌터’가 미국을 방문한 이유, 드디어 빌런 몰아내나! ]

“야, 너 이거 왜 이렇게까지 한 거야?”

김미연과 함께 기사를 확인한 이진수가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가왔다.

이 기사의 심각성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수르트는 정우를 탐낸다.

제물의 각인까지 새길 정도로 정우에게 관심이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관여는 적었지만, 어쨌든 그의 눈은 정우를 향할 터였다.

일부러 만든 한정우란 인물이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것도 파악했을 것이고, 곧장 기사가 나왔다는 것에서 빌런 협회도 한정우를 의심하게 될 것이었다.

가뜩이나 정우의 움직임은 빌런의 동향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헌터란 이명으로 활동하는 정우의 정체를 아는 이는 의외로 적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정우와 마주한 빌런은 모조리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관찰을 하려면 접근해야 하고,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컨트롤 타워가 여지없이 빌런을 적발했기 때문에 의외로 헌터에 대해서는 퍼진 게 없었다.

대외적으로 1팀의 소속으로 활동하기도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귀찮고 의미 없는 짓이라 할 수 있었지만, 무의식중에 나오는 1팀이라는 단어조차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유서린의 배려였다.

양지 1팀의 활동과 정우가 속한 음지 1팀의 움직임은 명확하게 달랐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면… 이모와 정희가 위험해지잖아!”

이진수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빌런을 잡는 능력자.

그렇게까지만 알려진 헌터가 정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위험해지는 건 가족이었다.

인질이든 보복이든.

아무리 B 섹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는 하지만, 정우 본인이 습격을 당했던 일도 있었다.

알람 장치가 무력화되었던 사건.

“알아.”

이진수는 무덤덤한 정우에게서 갑자기 거리감을 느꼈다.

‘설마…….’

변한 게 없는 줄 알았다.

능력만 강해졌을 뿐,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면?

아니, 원래는 아니었지만 이계의 기억을 되찾아가며 점차 변해 가는 거라면?

이진수의 표정 변화를 읽은 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장님께서 지켜주기로 했어.”

“……어?”

“유지석 협회장님이 믿을 만한 사람을 붙여 준다고 그랬다고. 걱정하지 말고 진행하라고.”

“…….”

“그러니까 그따위 눈빛을 보내지 마라.”

정우의 말에 이진수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정우의 표정 역시 굳어 있었다.

이진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친구로서의 걱정이었고, 의심이었으니까.

그저 삼킨 뒷말이.

‘기억나지 않는… 그 녀석처럼.’

목에 탁 걸려 정우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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