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꼬리 잡기 (1)
“정우야.”
“어.”
“…너 좀 멋진 것 같다?”
“소름 돋은 거 보이냐?”
“야! 사람이 감동했는데….”
“왜 그래? 조금 전엔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면서….”
“그럼 안 놀라게 생겼냐? 한국에서 일본이야. 그 거리를 공간이동했는데 안 놀래면 사람이 아니지.”
“……그건 그래요. 이제야 말문이 트인 거 있죠?”
김미연의 표정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사실 그녀는 F급인 만큼 아는 게 적었다.
공간이동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조차 대화를 들으며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후우. 아무튼 깜짝 놀란 건 놀란 거고. 우리는 어떻게 하냐? 여긴 어디야?”
“오키노시마조라는 섬이야.”
“여긴 어떻게 알고?”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버려진 장소거든.”
“…에? 근데 몬스터가 없잖아?”
“지금 시간대면 없지. 놈들은 야행성이니까.”
“아. 그래서 이 시간대를 잡은 거구나.”
앤드류와 사사키는 섬을 벗어났다.
남은 건 정우와 일행뿐.
내일을 위해 각자 여러 준비를 진행할 셈이었다.
앤드류는 총리와 접촉할 거고.
사사키는 지금처럼 은밀히 이동해서 빌런을 처단할 것이다.
정우와 함께.
“일단 근처의 빌런부터 잡아볼까?”
“…근데 말이야. 여긴 컨트롤 타워도 이용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해?”
이진수의 질문에 정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공간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어? 그건?”
“완성작이야. 인챈트한 물건.”
며칠을 두문불출하며 만들던 물건의 등장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후후훗! 경탄할 게 훤히 보이네요!
‘왜 네가 으쓱해하냐?’
물건 앞에 서서 의기양양해하는 메아리를 향해 헛웃음을 흘린 정우가 입을 열었다.
“빌런을 찾아야지.”
“맞다! 빌런들 어떻게 찾으려고? 일본은 피해 지역이 넓어서 방치된 지 꽤 오래됐어.”
“알고 있어. 그래서 이걸 만들었다니까?”
“…좀 조용히 해주면 안 될까요? 궁금한데 들어보게.”
“어, 어? 알겠어.”
김미연의 말에 이진수가 입을 다물었다.
“이건 빌런을 찾을 수 있는 물건이야. 드래곤볼의 레이더처럼, 빌런의 위치가 나타나지.”
“……그거 컨트롤 타워….”
“맞아. 그거의 열화판이야. 물론 그렇기 때문에 범위도 좁고 위치도 조금 틀릴 수가 있어.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까지는 무리거든.”
지금은, 이라는 단어를 삼킨 정우가 말을 끝마쳤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레베카를 제외한 두 플레이어는 이미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으니까.
컨트롤 타워의 열화판이라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놀라는 건지.
한국에서 일본의.
그것도 좌표조차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한 섬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도 모자라서.
“…휴대용으로?”
휴대용으로 컨트롤 타워의 능력을 물건에 담아 냈다는 게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어. 우리가 여기에 거점을 만들 상황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 정도의 돈이 들어간 거야?”
“그것도 있지만 이건 원래 이렇게 비싸. 아무래도 적절한 재료가 없으니까.”
“아…….”
멍하니 입을 벌렸던 이진수가 고개를 저었다.
“후우. 벌써 몇 번이나 놀라는 건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놀랄 건 없지.”
“……또 있다는 거네?”
정우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바쁠 거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김미연 플레이어가 해야 할 건 하나에요. 전투가 아닌….”
“후방 지원. …알아요. 그래도….”
인질이나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하는 김미연을 보며 정우는 태연하게 안심시켰다.
“전투는 없어요. 걱정하지 말고 움직입시다.”
* * *
‘메아리.’
-맡겨 둬요!
섬을 벗어난 정우는 곧장 전투에 돌입했다.
모두의 컨디션은 괜찮았다.
정우 외엔 휴식을 취하다가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정우는 땅을 박찼다.
아주 세밀했던 컨트롤 타워와는 달리 ‘빌런 레이더’의 정확도는 아쉬웠다.
‘부족한 건 몸으로 때운다.’
위치와 방향을 특정하면 나머지는 몸소 움직이며 놈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쿵.
바닥을 찍자 마력이 파장처럼 퍼진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악의’가 각인되지 않는 빌런들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본인들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마력을 사용하게 만들면 되는 거다.’
여태껏 정우가 빌런을 상대한 방법이 그것이었다.
악의란, 악한 마음이 마력에 묻어나오는 것을 뜻했다.
영향을 받는 건 마력의 흐름.
즉, 패턴.
정우는 마력 패턴으로 악의를 지닌 자들을 구별하고 있었다.
‘마력 패턴은 지문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퍼지는 마력의 흐름은 굉장히 불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데드의 마력 패턴.
즉, 사기(死氣)라 불리는 부정적인 기운이었으니까.
거기에 정우는 한 가지 조미료를 첨가했다.
‘약화.’
세이렌을 상대하기 위해 배운 저주.
아주 간단한 저주였지만, 불길함과 불안감을 강화시키자 이어진 상황은 확실했다.
“붉은 벽돌. 저 집이다.”
스스로에 대한 방어 태세에 돌입한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하여 상대의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정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이진수가 들이닥쳤다.
고함과 함께 짧은 대치가 이루어졌지만.
“젠장!”
요란한 움직임으로 불덩이를 만들어 내는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누군가가 창문으로 툭 튀어나왔다.
‘레베카. 뒤쫓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레베카가 은밀히 도망자의 뒤를 쫓았다.
불덩이를 던지며 시간을 끄는 마법사의 곁으로 공간이동한 정우의 손이 휘어진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 올랐던 불덩이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툭, 데구르르.
불덩이 대신 바닥에 떨어진 건, 불덩이를 닮은 머리통.
붉은 피가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본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필요한 건 이놈이 아니었다.
시간을 끄는 미끼 대신에 도망친 놈.
“간다.”
이진수의 곁에 다가가 어깨를 짚은 정우가 조용히 시동어를 내뱉었다.
“텔레포트.”
* * *
“X발. 이게 뭔 개 같은 일이야?”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땅을 박찬 빌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한국어.
얼마 전에 한국에서 도망친 빌런 중 하나였다.
후욱, 숨을 들이켠 빌런의 신형이 속도를 높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추격하고 있었다.
속도를 높이고, 미리 알아 둔 도주로로 급격히 방향을 틀고.
“어떻게 찾는 거야! 저 X은 헌터도 아니잖아!”
미리 마련해 둔 여러 은폐물을 사용했음에도.
콰앙!
“…야, 이 X발 X아!”
자신의 다리를 노리는 여자의 커다란 검에 빌런은 욕설을 내뱉으며 피했다.
허공으로 튀어 오른 빌런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을 살피는 모습.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멀리 도망친 빌런의 눈이 스산하게 번들거렸다.
아지트를 공격한 사내의 발이 묶인 것 같았다.
혼자.
그렇게 판단하자마자 빌런의 몸에서 음산한 기운이 솟구쳤다.
“죽어!”
어느새 꺼내 든 단검을 손에 쥐고 휘두른다.
공기를 찢어 버리는 날카로운 예기가 레베카를 향해 쏘아졌다.
상대의 공격에 레베카는 살짝 놀랐다.
지면을 굳게 딛고 상체를 숙여 공격을 피한 그녀가 땅을 박차 위로 뛰어올랐다.
“내가 X신같이 보인 모양인데, 딴 새끼 오기 전에 넌 죽인다.”
그 틈을 노린 예리한 일격.
레베카는 대검을 몸에 붙이며 ‘검기’를 막아 냈다.
까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충격에 팔이 떨릴 정도였다.
‘…강해.’
예상보다 상대의 수준이 강했다.
‘왕의 혜안이 정말로 대단하구나.’
뒤로 밀려나 주르륵 미끄러진 그녀는 정우를 떠올렸다.
‘내가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계셔.’
곧장 땅을 박차 쇄도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상대의 손에 들린 단검이 연신 허공을 갈랐다.
‘플레이어는 나와 달라. 정해진 능력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와 달리 나는….’
그녀는 정우의 말을 떠올렸다.
그녀가 빌런을 뒤쫓은 건 이때를 위해서였다.
‘배운다.’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빌런의 등급은 B급.
최근 한국에서는 씨가 마른 등급의 빌런이었다.
레베카의 등급 또한 B급 정도.
하지만.
우웅!
짧게 공명한 그녀의 검이 묘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X발!”
빌런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상대의 수준이 생각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고 있었고.
“뭔 짓이야!”
묘하게 그 궤적은 자신의 것을 닮아 가고 있었다.
단검의 빠른 궤적을.
무겁고 커다란 대검으로.
불행히도 B급인 빌런은 마력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다.
아니, 마력의 응용력도 아직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스킬을 그저 스킬대로만.
조금 더 자신에게 맞게 바꾼 게 전부인 상황.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정직하다는 거야.’
스킬을 사용하는 타이밍이나 방향, 스킬의 세기는 차이를 보이지만.
스킬 자체가 보이는 경로는 그저 입력한 걸 고스란히 표현해 내는 재현에 불과했다.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단순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에 레베카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웃어? 웃냐고!”
그럴수록 빌런의 움직임은 더욱 격해졌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쳐야 하나 짧게 고민했지만, 레베카의 움직임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여전히 저 뒤편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를 본 빌런이.
파팍!
검기를 날리며 땅을 박찼다.
쏜살같이 쏘아지는 빌런의 모습에 레베카는 대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일격 필살의 힘.’
거대한 아라크네를 베기 위해 노력했었던, 노력의 흔적.
치솟았던 대검이 공명하고.
은은한 마력이 대검을 감쌌다.
그리고.
‘내리긋는다.’
단번에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오싹!
달려들던 빌런은 직감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뒷목을 쭈뼛거리게 만드는 소름 끼치는 저 일격은.
“X발!”
자신의 공격을 짓이겨 버릴 것이라는 걸.
피하기엔 늦었다, 그렇게 판단하자마자 빌런은 자신의 최후 수단을 꺼냈다.
새로운 단검이 하나 들리고.
두 개의 단검이 허공을 그어 버린다.
너무도 빠르게 전개한 탓에 위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이런 무식한! 피한다… 피해! 경로만 바꾸면….’
경로를 바꾸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날린 검기가 대검에 닿고.
와장창.
그런 효과음이 들린 것처럼 가볍게 부서져 버리는 순간.
후속타로 자신의 팔이 날아가는 광경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빠득!
이를 가는 빌런을 향해 검기를 가른 레베카의 대검이 떨어져 내린다.
묵직하게, 꾸밈없이.
단순한 일격.
하지만 그것은 교차하는 두 개의 단검에 부딪혔음에도 힘을 잃지 않았다.
빌런의 무릎이 꺾이고, 양손이 떨렸다.
당황하면서도 절박한 표정.
그 표정을 싸늘하게 내려다본 레베카가.
“후읍!”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 근육질이지 않은 몸에서 튀어나오는 폭발적인 힘.
짓누른 단검이 대번에 빌런의 가슴으로 떨어졌고, 대검은 빌런의 왼쪽 어깨를 짓이기며 아래로.
“아아아악!”
그어졌다.
털썩.
잘린 팔.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다가 쓰러지는 빌런.
“어때? 배울 만하지?”
그런 빌런의 머리 쪽에 나타난 정우의 물음에 레베카는 고개를 들었다.
푸욱!
정우의 단검이 비명을 지르는 빌런의 목에 꽂혔다.
꿈틀.
간헐적인 움직임을 끝으로 죽어 버린 빌런에겐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하면 쓸 수 있겠어요. 검기(劍氣).”
* * *
폭탄을 터트리는 김미연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라진 정우와 이진수를 떠올리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거짓 전투를 벌이는 김미연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