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24화 (124/293)

124화

-일본 (4)

공간이동.

원거리의 공간이동은 대마법사 질도 어려워하는 것이었다.

상당한 준비와 시간.

마력을 보조해 줄 마정석과 정확한 좌표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실패할 확률이 존재했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마법에 조예가 뛰어난 그녀조차 마법진을 이용했다.

하지만 마법진은 한계가 있다.

안정성을 높인 대신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고, 그 비용은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했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그리 먼 건 아니지만, 그건 엄연히 물리적인 거리를 뜻했다.

공간이동?

최소한 이천억 정도의 비용을 태울 엄두를 내지 않으면 실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마법적인 거리는 멀었다.

문제는 그뿐인가.

“…한정우 플레이어?”

상대를 알아본 사사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섬이 좌표가 있던가?’

일본에서 컨트롤 타워를 이용했다면 모를까.

무인도로 변해 버린 섬까지 좌표를 기록해 놓을 정도로, 일본은 공간이동에 투자를 한 국가가 아니었다.

애당초 마법사조차 부족한 나라가 아니던가.

협회의 업무에 상당히 많은 관여를 하고 있는 그였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한정우가 넘어온 공간이동은.

‘……계산. 좌표 계산이다!’

믿을 수 없지만 좌표를 계산해서 진행한,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툭툭.

정우는 공간이동의 여파로 생긴 먼지를 털었다.

그 모습이 매우 태연했다.

하지만 놀람을 금치 못하는 건, 사사키와 앤드류뿐만이 아니었다.

“……에?”

통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레베카를 제외한 두 명의 남녀는 얼이 빠졌다.

특히나 이진수는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공간이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나이트 길드조차 공간이동은 협회의 마법진을 이용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너, 너…….”

갑자기 변화한 세상.

아시아인과 외국인이 서 있는 바닷가라는 사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진수의 눈에 보이는 건 오롯이 한정우라는 사람뿐.

이계의 기억?

그에 따른 지식?

갑자기 마정석 분해 장치를 뛰어넘을 물건을 만들어서, 그에 따른 계약금만 받아도 평생 먹고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는 건 그저 축하할 일이었다.

평생 알아 왔던 친구의 범주에서 벗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었다.

평생의 숙원이었던 아버지의 구출에 한발 다가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기억과 지식, 능력의 상승엔 모든 걸 차치하고 축하해 줄 수 있었다.

이계의 존재였다는 것 또한, 환생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여태껏 보인 능력의 향상을, 그저 전생의 기억이 추가되어 증가한 것으로 치부했었다.

한정우는 한정우.

그런 공식에서 처음으로 벗어나는 사건에.

‘……이건….’

말문이 막혔다.

이건 전혀 다른 체계였으니까.

그들은 협회의 공간이동마법진을 찾지도 않았고.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여 마정석을 끌어다가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체계.

아니.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어.’

이진수가 시선을 피했다.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정우는 소중한 친구였고, 그를 의심하거나 불편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만큼은 정우가 전혀 다른 존재로 보였다.

이를테면 돌연변이를 맞이하는 일반인의 심정이랄까.

‘…젠장.’

이진수는 스스로의 생각에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정우는 말문이 막힌 이진수를 보는 대신 선객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둘 중에 정확히 일본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정우.

이진수는 그제야 상대가 정우를 알아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충격으로 멍한 정신을 다잡자.

‘…어딘가 익숙한데?’

상대가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 물어볼 걸 그랬네…….’

등급만 놓고 보면 아직 D급인 친구를 위해서 일부러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괜히 훈수를 두기 싫어서.

그랬더니 진짜로 아는 게 없었다.

“사사키 후유 플레이어.”

“……아.”

정우의 말에 사사키를 알아본 이진수가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질렀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시선이 쏠렸기 때문이다.

“…설마 공간이동입니까?”

사사키의 말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디서… 온 겁니까?”

사사키의 질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진수는 이해했다.

개인이나 길드나 나라나.

기초 능력이 아닌 플레이어의 능력은 드러난 것 이상으로 숨기는 게 많았다.

하나하나가 다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협 소설에서 주로 등장하는 내용처럼.

‘능력의 삼 할은 숨겨야 하는 법이니까.’

“한국입니다.”

“……에?”

이진수가 눈을 치떴다.

이번엔 고개를 저을 필요가 없었다.

그럴 겨를이 없기도 했거니와 모두의 표정 역시 자신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삼 할은 무슨.

친구는 곧이곧대로 능력을 설명했다.

믿을까?

믿을 수나 있을까?

이진수는 초조한 눈빛으로 상대를 살펴보았다.

“……허.”

외국인의 나지막한 탄성이 전부였다.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눈빛을, 외국인은 능수능란하게 감췄다.

이진수가 정신을 차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되찾았든 어쨌든.

상승한 능력에 비해 플레이어 세계에 대해 아직도 아는 게 적은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이진수는 몰랐다.

친구는.

더 이상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진수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이.

“제 능력입니다. 공간이동.”

“……!”

정우는 기어이 폭탄을 터트렸다.

직선거리만 근 600km.

해상을 지나는 건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해 난이도는 배가 되며.

아직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이유 때문에 나라 간 공간이동의 난이도는 거기서 또 배로 늘어나.

단순히 육지 600km를 이동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난도로 탈바꿈되는 그런 능력이.

“…Really?”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인 대마법사 질 고메즈조차 어려운 영역이라는 걸, 여기에 모인 모두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경악, 부정, 의심.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남은 건.

-저 인간은 마음에 드네요. 두뇌 회전도 빠르고, 여기서 그 누구보다도 가치의 판단력이 뛰어나요.

가치에 대한 탐욕뿐.

메아리가 앤드류의 근처를 날아다니며 드물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경악으로 조용해졌던 섬은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연이은 질문.

그리고 대답.

때아닌 좌담회가 열렸다.

‘괜찮군.’

폭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정우는 자신의 능력을 궁금해하는 둘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위치를 격상시켰다.

일본의 영웅.

미국의 한 주의 플레이어 협회장.

둘과 비교하기엔 격이 떨어질 정도의 위치였던 정우는, 몇 번의 답변을 통해 대등한 관계를 획득했다.

‘진수도 좀 차분해진 것 같고.’

친구의 놀란 모습을 떠올린 정우가 피식 웃어 버렸다.

“…백의 연금술사와도 친분이 있으니 꼭 미국으로 넘어오시면 제게도 와 주십시오.”

앤드류가 거듭 간청했다.

“알겠습니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눈을 빛내며 적잖게 안도하던 앤드류가 다시 눈을 빛냈다.

“혹시 말이오.”

“말씀하십시오.”

“…이 ‘통역’ 마법의 지속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놀랍게도 앤드류는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통역도 필요가 없었으며, 마치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것처럼 상대에게는 가장 편한 언어로 들렸다.

정우가 건 마법, 통역 덕분이었다.

덕분에 앤드류의 탐욕은 더 높아졌다.

공간이동이야 나중에 증명하면 되는 일이지만, 통역 마법은 직접 경험했으니까.

“이번 대화가 끝날 때까진 유효할 겁니다. 아, 그리고 통역 마법을 새긴 아이템도 판매할 겁니다.”

“……오!”

앤드류는 물론, 사사키도 반색했다.

플레이어는 언어에 제약이 없지만, 세상엔 플레이어보다 일반인이 더 많았으니까.

업무적으로 일반인을 상대해야 할 일이 많은 둘이었기에, 통역 아이템은 반가운 물건이었다.

“…이거, 백의 연금술사의 뒤를 잇는 연금술의 대가가 탄생한 것 같군요.”

앤드류가 감탄을 지우지 못했다.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만드는 건, 제련과 연금이 전부였다.

때문에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보다 뛰어난 ‘인챈트’라는 분야에 대해서 아는 이는 전무했다.

정우만의 전유물.

앞으로 만들어 낼 물건은 세상의 판도를 바꿀 물건이었다.

그것을 무기로 판을 깐 정우는 화제를 전환했다.

“협회장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앤드류 협회장님이… 강세기 씨에게 관심이 많다고.”

“하. 내가 유지석 협회장의 손 위에서 움직이게 될 줄은 몰랐소.”

“전해 들은 내용, 그대로인가요?”

“어디까지 전해 들은 건지는 모르지만, 강세기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얻어 비밀리에 일본으로 왔고, 그의 주변이 수상하다는 것을 판단했소. 그리고 유지석 협회장과 연락하여 나름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

“결론은요?”

“…세뇌의 정황을 포착했소. 사실 ‘본인’의 생각이 바뀌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한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없단 말이지.”

앤드류가 미간을 찌푸렸다.

유지석에게 전화를 건 그는 강세기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들었다.

충격적인 사건.

“닥터 브라운도 마찬가지입니다.”

“…본국에 연락을 하려다가 유지석 협회장의 만류로 잠시 미뤄 두고 있소.”

앤드류의 표정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에 반해 사사키는 참담한 표정이었다.

자국의 총리가 빌런이나 할 법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이 불편하기만 했으니까.

유지석 협회장에게 직접 연락을 받고 자료를 건네받은 사사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총리를… 실각시킬 겁니다.”

“음. 모든 건 제자리를 되찾아야지. 하지만 말이오….”

앤드류의 은근한 말에 사사키는 고개를 슬쩍 숙였다.

“보상은… 하겠습니다.”

“으음. 일단 이 일부터 마무리 짓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요.”

헤드헌터로 성장해서 협회장까지 꿰찬 사람답게 업무적인 분야에선 물러섬이 없었다.

총리의 실각을 통한 일본의 재정비를 꾀하는 사사키와.

세뇌를 풀어 닥터 브라운을 되찾고 보상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분노할 강세기까지 차지하려 하는 앤드류.

그리고.

“좋습니다. 일단은 제가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정을 주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앤드류의 속셈뿐만 아니라 이 둘까지 얻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정우까지.

협상이라는 단어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주도권은 정우가 가져왔다.

“한국에서 ‘마력 분해 장치’를 판매하는 건 일본의 총리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입니다.”

“…아!”

국책 사업 하나가 휘청거리게 되자 초조해진 총리는 세이렌의 영토 공략에 사활을 걸 터였다.

한국에 빼앗길 게 많겠지만,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게 뻔했고.

“덕분에 총리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리겠죠.”

정우는 자신을 주시하는 두 거물을 돌아보았다.

“앤드류 협회장님은 이 인원 중에서 총리와 대담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세이렌 공략 참관을 요청하며 곁에 붙어 계십시오.”

“감시라… 재밌겠소.”

“사사키 길드장님은….”

“사사키라 부르십시오.”

“…사사키 씨는 저와 함께 전투를 담당할 겁니다.”

“전투? 세이렌 공략에 뛰어드는 겁니까?”

“아니요. 저희가 잡을 건 몬스터가 아닙니다.”

서늘해진 눈빛으로, 정우가 말했다.

“몬스터보다 더 괴물 같은 놈들. 빌런을 잡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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