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일본 (1)
“할무니. 진짜로 밤이 되면 요괴가 나와요?”
“그럼. 안 자는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요괴가 있단다.”
“안 자는 아이만 데리러 와요?”
“그럼. 코 잘 자는 아이는 데리러 올 수가 없지. 어때?”
“무서워요.”
“우리 손녀 사다코야. 그럼 얼른 자야 하지 않겠니?”
“…얼른 자야 해요. 할무니. 같이 자요.”
“호호. 그럼. 할미가 얼른 재워 주마.”
토닥거리는 손길이 매우 따뜻했다.
하지만.
왜일까.
“할무니.”
“응?”
“잠에… 들기 전에 요괴가 오면 어떻게 해요?”
“얼른 눈을 감아야지. 자는 척을 하거라.”
“…할무니.”
“그래.”
“눈을 감아도 보이면 어떻게 해요?”
“더 꼭 감아야…. 응? 우리 손녀가 왜 이렇게 떠누?”
“할무니.”
“그래. 뭐가 무서운 게야?”
“……요괴가 온 거 같아요.”
괜히 요괴 이야기를 꺼내서일까.
아니면 이야기를 듣겠다고 너무 늦게 잠이 들어설까.
분명히 두 눈을 꼬옥 감았는데.
“우리 손녀가 겁을 먹었구나. 이렇게 착하게 잘 자려고 하는데 요괴가 올 리가 없단다.”
“……아니. 아니에요.”
사다코는 몸을 웅크렸다.
할머니의 품으로 파고들었지만, 여전히 보였다.
슬그머니 두 눈을 떠도.
두 눈을 감아도.
‘그것’이 보였다.
“…다코야?”
어딘지 모르게 할머니의 음성이 멀어졌다.
사다코는 울음을 터트렸다.
토닥이는 손길이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할머니를 찾았다.
여전히 자신의 곁에 누워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 안도하던 것도 잠시.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은 희뿌연 무언가가 점차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사다코는 두려워 벌벌 떨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던 손길도, 음성도, 존재도.
모든 것이 가려졌다.
희뿌연 무언가 속에 사다코 혼자만 덩그러니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찰나.
그것의 입이 벌어졌다.
벌어진 게 입이라는 건 눈으로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그것이 열리고 무슨 소리가 들렸기에 입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적합, 찾았…….
“……!”
할무니, 도와줘!
[ 나고야의 한 마을에서 참혹한 살인이 벌어졌습니다. ]
[ 피해자는 스즈끼(83)으로…. ]
[ 손녀 사다코(8)의 실종과 관련하여 수사를……. ]
“언론에서 벌써 터트렸습니다.”
“후우. 젠장. 안 그래도 뒤숭숭한데 납치에 살인이라니.”
담배 연기를 뿜은 경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협회로 이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보셨잖습니까. …피해자의 모습을.”
“음. 안 그래도 왔다 갔다.”
“에? 언제요?”
“조용히 다녀갔어. 그쪽에서 공문 내려올 거야.”
“끄응.”
“아이 부모와는 연락이 됐어?”
“부친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중이라고 했고, 모친은 없더라고요.”
“그래? 에이, 씨. 아무튼 실종이 껴서 우리도 움직이긴 할 거야.”
“…지시 받겠죠?”
“받겠지.”
“쩝. 또 이리저리 불려 다니게 생겼네요.”
“수고해.”
“…저만요?”
“그럼. 나까지 하리?”
부하는 볼을 긁적였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단순 살인과 실종 처리로 시작할 거니까, 입단속 시켜.”
“쩝. 알겠습니다.”
경찰은 대충 경례하는 부하의 어깨를 툭 치고는 움직였다.
여러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침입자의 움직임.
그리고 피해자의 움직임.
“없어….”
뭔가가 벌어진 건 확실하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참변.
하지만 침입자의 동선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어디로 간 거냐.”
실종자인 사다코의 움직임은 눈에 보였다.
‘본인이 일어나서 움직였어.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고….’
사라졌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골치가 아프네.”
언론에는 실종이라고 밝혀두었다.
마을을 벗어나는 길목엔 CCTV가 있지만, 솔직히 CCTV를 피하는 길은 많았다.
그래서 수사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여, 하시모토 경시정.”
“…….”
“어이, 얼굴 좀 펴.”
“그쪽 같으면 펴지던가?”
“못 펼 건 또 뭐야.”
한 사내가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잘 부탁하지.”
“또 뒤처리만 맡기려고?”
“원래 그런 거 아니야? 딱 봐도 플레이어 사건이잖아. 벌써 공문도 내려갔을걸?”
“…귀찮은 건 우리에게 맡기는 버릇은 여전하구만.”
“아무렴. 역할 분담을 해야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지.”
“…경찰은 너희 도구가 아니야.”
“아이고. 도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협조 대상. 좋은 말을 놔두고 뭔 그런 날 선 단어를 쓰지?”
“너희가 하는 게 그러니까.”
“에이, 그럼 경시정도 이쪽으로 넘어오면 되잖아.”
“…협회로?”
“그래. 아니, 막말로 각성해 놓고 왜 경찰에 머물고 있는 거야? 그것도 고작해야 경시정 따위에.”
“경찰도 역할이 있어.”
“아무렴. 그래서 협조 요청을 하잖아. 협조 요청.”
사내의 미소가 짙어졌다.
하시모토 경시정은 그런 사내를 가만히 주시하다가 눈을 돌렸다.
“뭐, 확인한 거 있어? 사안이 요란하던데.”
“…플레이어가 관여된 것 같다는 의심.”
“의심? 왜 그래? 이번엔 그 ‘눈’이 작동을 안 해?”
“…….”
“휘유. 지원이 더 필요하겠군.”
사내의 꿈틀거리는 눈동자를, 하시모토는 가만히 주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 * *
일본이 잃어버린 영토는 많았다.
조선 시대부터 스스로를 강자라고 생각했고,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패권자였으며.
그 이후로도 호시탐탐 패권을 노리는 입장이었던 일본은.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인정하지 않으며 꾸준히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런 그들에게 새 시대.
과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아시아의 패권을 노릴 수 있었던 것처럼.
던전과 플레이어가 등장한 새 시대는 그야말로 도약과 욕망의 시기였다.
그런 그들의 욕심이 무너진 건, 던전의 생성 때문인지 가뜩이나 많은 자연재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지진, 해일, 산사태.
용암과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까지.
과거의 악몽을 재현시키는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은 몬스터를 변이까지 일으켜 버렸고.
특별한 종류가 되어 버린 놈들을, 일본은 공략할 힘이 없었다.
때문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크게 쇄락했고, 한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심지어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던 북한까지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새 시대의 주역이 되어 버리자.
딸깍.
“……음.”
총리는 방법을 모색했고,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한 짓을 저질렀다.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나와.”
하지만 처음이 어려울 뿐.
그리고 자신들을 질시하고 견제하는 이들이나 지탄할 뿐.
총리는 자신이 일본을 위한,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모든 건 나라를 위하여.
자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총리는 기어이 미국과 척을 지었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빠르게 적응한 게 대단할 정도입니다. 요타 상은 천재입니다.”
일본 이름을 얻은 닥터 브라운을 떠올린 총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죄송합니다.”
“그래도 급해. 안 그래도 미국의 횡포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야.”
“요타 상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그래. 빌어먹을. 다른 학자들을 모아 놓고 발표를 할 때는 확신에 차 있더니, 생각보다 연구가 덜 되었어.”
원래 총리는 닥터 브라운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F급이라는 낮은 등급.
플레이어 연구의 권위자라는 타이틀은 관심이 가지만, 그뿐이었다.
일본에 필요한 건 무력.
지식은 지금도 충분하다는 게 총리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마정석 분해 장치라는 위대한 물건을 가장 잘 만들고 팔아먹고 있지 않은가.
기회만 주어지면 충분히 재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네는 알지. 내가 왜 요타를 탐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의 발표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트롤의 심장에 마력을 주입해서 다시 활동하게 만든다니.”
“인위적으로 마력을 주입하는 게 가능하다면 플레이어에게 적용할 수 있을 거란 총리님의 판단은 진심으로 경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랬어. 은근한 물음에도 동의했던 이가 바로 요타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냔 말이야!”
“……조금 더 지원을 하겠습니다.”
“지원이 문제가 아니야. 혹시 세뇌가 약했던 것일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총리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게 어떠한 물건인지.”
“후우. 그렇지. 그 조센징의 피를 가진 강세기도 조종할 수 있는 물건인데.”
“염려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요타 상은 분명히 대일본 제국을 다시 영광의 자리로 도약시켜 줄 겁니다.”
“요타가 아니야.”
“…아, 아. 죄송합니다. 총리님의 판단과 결단이야말로 일본의 행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끄응. 몇 명이 죽었지?”
“세 명입니다….”
“F급도 실패하면 언제 A급. S급까지 손을 댄단 말이야?”
“그래도 네 명은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중단한 거잖아!”
“…나름의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나름? 나름? 고작해야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지 않나!”
마력을 분해하고 다시 부여하여 결합하는 형태.
아티팩트에 실험을 하고 있던 닥터 브라운의 실험은 방향을 바꾸었다.
인체 실험.
곧장 F급 플레이어를 상대로 분해와 주입, 안정화 작업에 착수했고.
그 실험 도중 세 명의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다.
형태가 고정적인 아티팩트와는 달리 인간의 마력은 풍선처럼 팽창이 가능했다.
보다 많은 마력을 주입하는 게 관건이었으며, 그 주입된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게 목표였다.
약간의 성과는 나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해 버린 실험.
총리는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너무 믿은 건 아니었을까?”
총리는 턱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당장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처럼 자신감에 차 있던 닥터 브라운을 떠올리면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대일본 제국의 모든 플레이어를, 전 세계에 우뚝 서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벌인 일이었으니까.
“그건 어떻게 됐지?”
그렇기에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총리는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못 구했습니다.”
“답답하군.”
“저, 총리님.”
“왜?”
“투명 슬라임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겁니까?”
“난들 알아? 머리 벗겨진 박사가 확신하지 않나!”
총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빌어먹을 소국에서 감히 우리를 넘보고 있단 말이야.”
한국을 떠올린 총리는 절로 이가 갈렸다.
“어떻게 마정석 분해 장치를 만든 거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제작자는 따로 있어.”
“그렇지 않아도 확인되는 순간 접촉하라고 말해 놨습니다.”
“그렇지. 그 정도의 재능이라면, 우리 일본을 위한 역군이 되지 않겠나?”
“맞는 말씀입니다.”
닥터 브라운에 이어 마력 분해 장치를 만든 한국인을 세뇌시킬 생각을 하는 총리였다.
이번에 발표된 장치 때문에 얼마나 놀랐던가.
“마력 분해 장치…. 골치가 아파.”
그 수준은 분명히 자신들의 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겨우 끌어 올렸던 입지가.
“…빨리 찾아. 안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건 추락뿐이다.”
“알겠습니다.”
비서를 내보낸 총리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
“빌어먹을!”
욕설이 절로 나왔다.
갑자기 한국에서 시작된 변화는 세계를 뒤흔들 만한 것들이었다.
“마력 분해 장치. 세이렌 토벌 제의. 빌런을 찾을 수 있는 플레이어까지. …대체 한국에서 뭐가 벌어지는 거냐?”
갑자기 느껴지는 불안감에, 총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손해가 될 건 없었다.
분명히 그렇게 판단했는데, 이상하리만큼 한국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고민이 되었다.
“아니야. 차라리 이 기회에 유서린도 세뇌를 해볼까?”
잠시 고민하던 총리의 눈에 음흉한 빛이 맴돌았다.
그렇게 총리가 혼자만의 세상에 있었을 때.
온 세상은 ‘세이렌 토벌’로 떠들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