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코드명, 헌터 (5)
“……일본이요?”
폐광에서 얻은 정보를 건네 주자 유서린이 의아해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빌런이 일본으로 넘어갔어요.”
“…믿을 만한 정보예요?”
“네.”
그녀에겐 네크로맨서의 활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건 이진수와 레베카.
-절 빼놓으면 섭섭하죠.
메아리뿐이었다.
‘뭘 하길래 요즘엔 뜸하지?’
-힘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주인님이 하시는 것과 동일한 거죠.
메아리에게 힘은 기억과 관련이 있었다.
기억의 정리.
정우로서는 반가운 작업이었다.
“음…… 일본이라. 이상하리만큼 자주 얽히네요.”
“강세기 건부터죠.”
“아뇨. 정확하게 말하면 한정우 씨가 일본에서 수르트를 만난 이후부터 예의 주시 하고 있긴 했어요.”
“일본으로 온 루트 때문이군요.”
“…맞았어요. 어떻게 알았죠?”
“역추적을 하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죠.”
“역추적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은근한 놀람의 표정에 정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계속 빌런의 꼬리를 찾았어요.”
“못 찾았군요.”
“맞아요. 못 찾았죠. 그런데 찾은 것도 있어요.”
유서린이 내심 눈을 빛내며 정우를 주시했다.
은근히 도발적인 눈빛에 정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꽤 높은 인물이 관여했다. 아닌가요?”
“…맞아요.”
유서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놀람은 일렀다.
“높은 인물이 루트를 만들었고, 은폐시켰어요. 한 나라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사건임에도 생각보단 조용했죠.”
정치인. 그것도 고위직.
그렇게 정우가 말하는 순간 유서린의 상체가 살짝 기울었다.
흥미가 생긴 것이다.
“그러던 찰나에 그게 터진 거죠.”
“터져요?”
“강세기 사건.”
“…….”
“여러 이유로 총리를 조사하고 있겠네요.”
“…이거 놀라운데요? 한정우 씨의 판단력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간단한 논리죠. 성의 뒷문을 여는 건 문지기도 가능하지만, 그 모든 걸 은폐하는 건 고작해야 문지기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이계의 경험을 떠올린 정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물며 빌런 협회의 중추 중 하나인 수르트였다.
그의 움직임을 숨기려면 어지간한 고위직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적어도 한 사단의 사단장급.
혹은.
“총리가 관여된 것 같나요?”
한 나라의 수장.
유서린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아무래도… 이용당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용? 아…….”
의아해하던 정우가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해했어요?”
“지금요. 생각이 딴 곳에 가 있다 보니….”
“대단한데요? 혹시 지능을 높여 주는 스킬이라도 얻은 건가요?”
유서린의 감탄에 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능이 높아지기는 했다.
스킬이 아니라 기억 때문이었지만.
유서린은 마력 분해 장치라는 초유의 물건 때문에 납득을 했지만 말이다.
“보통 세뇌라는 건 시전자보다 대상자의 능력이 강해지면 풀리는 법이죠.”
예외는 있다.
아티팩트의 수준이 월등히 높을 경우.
‘총리의 아티팩트를 확인하지 못해서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총리 본인도 세뇌를 당했다면 가능해.’
대외적인 활동을 할 정도였으니 세뇌의 수준은 약할 것이다.
하지만 총리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일반인.
세뇌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대통령이나 고위직쯤 되면 기본적으로 때때로 저주 해제를 한다고 들었어. 그 정도를 무마시킬 정도면….’
“총리 본인이 든 세뇌 아티팩트가 빌런의 것일 확률이 높군요.”
“……정확해요.”
얼마 전에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유서린은 정우의 판단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거.”
“네?”
“마정석 분해 장치와 마정석 수거가 일본의 주된 수입원이잖아요.”
“맞아요. 그 외에도 여럿이 있지만 수거팀을 전 세계적으로 운용…….”
유서린의 말이 끊겼다.
“어?”
“전 세계에 이동 루트를 지니고 있는 수거팀이라면.”
“이동이… 쉽겠네요! 잠깐, 잠깐만요!”
유서린이 대화를 끊으며 전화했다.
빠르게 지시를 내린 유서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이 방법이 맞겠군요.”
“무슨 방법이요?”
“…일본의 일정이 잡혔어요.”
“……!”
“내일 중으로 대대적으로 공표할 예정이에요.”
“세이렌….”
“맞아요. 저와 같이 넘어갈 예정이었죠. 원래대로라면.”
“그렇다는 말은… 다른 계획이 있다는 소리군요.”
“한정우 씨의 최근 행보를 본 결론이었죠.”
“…빌런.”
“맞아요. 던전 공략엔 제가 참석할 테니, 한정우 씨는 빌런을 찾아요.”
“찾아서?”
“기록해놔야죠. 일망타진하려면.”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비단 빌런의 위치를 찾으란 소리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분포도나 밀집도 따위를 분류해서 여러 루트까지 계산한다는 원대한 계획.
정우로서도 손해일 리 없는 계획이었으나.
“찬성이긴 하지만 한 가지… 결격사유가 있군요.”
“컨트롤 타워요?”
“…맞아요. 지금은 제 힘이 부족해서 컨트롤 타워를 빌리지 않으면 빌런을 찾을 수가 없거든요. 근거리라면 모를까.”
‘지금은?’
유서린이 한 단어를 곱씹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나 놀란 것에 대한 응징처럼 짓궂은 미소였다.
“이미 도움을 받기로 되어 있어요.”
“컨트롤 타워를 빌릴 수 있다는 건가요?”
일본의 플레이어 협회는 한국과 다르다.
협회장의 권한이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일본의 플레이어 협회장은 그야말로 관리직.
총리의 임명으로 정해지는 자리였기에.
“장관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수족에 불과해요. 그로는 불가능해요. 오히려 접근하지 말아야 하는 존재고요.”
“그러면 누가 도와 준다는 소리죠?”
“후유 길드.”
“……사사키?”
“맞아요. 그에겐 컨트롤 타워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있거든요. 초창기에 만들어진 계약이지만, 총리도 그걸 파기할 수가 없었죠.”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플레이어.
사사키 후유.
A급임에도 그 입지는 S급에 뒤처지지 않는 존재이자.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인물이었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던 사사키를 떠올린 정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시선이 세이렌의 영토로 향할 때.”
“전 컨트롤 타워로 가면 되겠군요.”
“맞아요. 이번에 흘러 들어간 놈들까지 합치면 꽤 많은 빌런들이 파악될 것 같아요.”
“놈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때까진 덮치면 안 되고.”
“척하면 척이네요.”
유서린이 피식 웃었다.
“좋아요. 저로서는 나쁠 게 없죠.”
“…다행이네요. 먹잇감을 몰아준다고 해놓고서 생각보다 빨리 한국의 먹잇감이 씨가 말라서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알아서 사냥하죠.”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유서린은 한정우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직시한 사람이었다.
오래된 친구로서 정우를 믿었던 이진수와는 또 다른 믿음.
한정우란 사람이 겪은 변화가 정확히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란 사실임을 직시했다.
“그럼 일본에선 갈라져야겠네요.”
“네. 아, 저번에 말한 내용대로 사람을 섭외했어요.”
“저주?”
“네. 실험을 했어요. 그리고 성과를 보았죠.”
유서린이 밝게 웃었다.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일본이 우리의 조건을 수락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걸요?”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소리군요.”
“저도 한국인이니까요.”
웃음이 짙어졌다.
“좋아요. 제대로 벌여 주죠.”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 쪽에서 일을 벌이는 것 같네요.”
“훗. 그런가요?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저주만 가능하면 힘들 거예요. 머맨은 반대로 저주에 약하지 않으니까요.”
“걱정 마요. 생각보다 뛰어난 사람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정우가 팔걸이를 툭툭 치곤 물었다.
“공표는 그렇고, 일정은요?”
“나흘 뒤요.”
“빠르군요.”
“일단 넘어가서 적응 기간을 잡을 거예요.”
“적응 기간까지요?”
“총리를 공략하려면 저희도 준비는 필요하죠.”
“대상에게 대우를 받으면서 그 대상을 잡을 궁리를 하는군요.”
“재미있죠?”
유서린이 짓궂게 웃었다.
자신을 노리는 줄도 모르고 지원군이라 여기며 편의를 봐줄 총리의 모습에 정우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확실한 건 총리는 몰라요. 그리고 한정우 씨의 가정대로라면 총리가 가진 아티팩트는, 총리가 플레이어가 아니기 때문에 효과가 줄어든 것일 수도 있겠어요.”
그래서 S급이 된 강세기가 가끔씩 정신을 차린 거라면.
“그런 것 같군요.”
정우도 동의했다.
“전 일본으로 갈 준비를 끝마칠 거예요. 한정우 씨는 저보다 하루 늦게 들어오시면 돼요.”
“루트는 김미연 플레이어가 알겠고요?”
“빙고.”
가벼운 대화였다.
징벌의 처녀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강인한 모습만을 보여 줘야 했던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가벼운 대화야. 상당히… 재미있네?’
오랜만의 대화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비즈니스 대화였지만 나름대로 나이가 비슷한 사람과의 대화였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계획을 제대로 설명하죠.”
즐거움을 지운 유서린이 차가워진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 * *
[ 빌런을 잡는 플레이어의 코드명, 헌터(Hunter). 사냥꾼의 면모를 파헤쳐 보자. ]
“이건 뭐야?”
“글쎄. 오늘 아침에 헤드라인으로 뜬 기사야.”
이진수가 신문을 들고 흔들었다.
정우는 신문을 낚아채듯 읽었다.
“…대장이군.”
“유서린 씨?”
“어. 일부로 내보낸 거야.”
갑작스러운 기사의 출처는 유서린이었다.
그녀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정우는 기사의 내용을 보고 직감했다.
“왜 갑자기 너에 대한 기사를 내는데?”
이진수가 물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우는 신문을 접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레베카가 신문을 유심히 주시했으나, 글을 읽지 못해 고개를 저었다.
‘언어는 통해도 글은 읽지 못하는구나.’
이제야 안 사실이었다.
“내 가치를 높일 생각이야.”
“가치를?”
“어.”
가치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빌런 역시 이 사실을 주시할 테니까.
“내 이름은 안 나와 있잖아. 제목과는 달리 두루뭉술한 성향이 크지.”
“그러게. 딱히 널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은 쏙 빠졌어.”
“그게 포인트야.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표시는 내면서 그 존재는 완전히 감추는 것.”
“음….”
“모르겠어?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뭔데?”
“나에 대한 관심.”
“너에 대한?”
“몇 번이나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나름대로 세부적인 내용은 처음이지. 뜬소문의 윤곽을 조금 그린 셈이야. 그러면 생길 수밖에 없지.”
“생긴다고?”
정우는 표정을 굳혔다.
“날 찾고 싶어 하는 놈들.”
“…빌런.”
“한국의 사태는 놈들에게도 큰 이슈일 거야. 존재한다는 건 확신했을 거고, 조금이라도 특징을 잡을 만한 건수가 생겼으니.”
“달려들겠지!”
“꽤 머리를 썼어.”
이전의 뉴스 역시 그녀의 솜씨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우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진수는 정우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유지석 협회장님?”
“도움을 줬겠지. 세부적인 건 대장이 짰겠지만.”
“그래?”
“어. 여기 이 내용은 아직 보고가 안 올라간 거거든.”
겉을 훑어도 어느 정도 세세한 묘사가 필요한 법이다.
기사의 내용은 정우에 대해서는 단 한 가지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존한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게끔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 행보도.
“이게 가장 중요해.”
“…헌터는 다음 일정으로 협회와 협약을 맺은 미국으로 향했다.”
“눈들이 그쪽으로 가겠지. 그러는 사이 우리는.”
“일본으로 들어간다.”
“곧 발표다. 준비를 끝마쳐.”
우드득!
이진수가 손가락을 꺾으며 씨익 웃었다.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