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18화 (118/293)

118화

-코드명, 헌터 (3)

[ 빌런의 소탕에 가속도가 붙어…. ]

[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사건에 귀추가 주목되고……. ]

[ 빌런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자, 코드명 ‘헌터(Hunter)’로 불려…. ]

[ 빌런 전담팀 2팀의 인원은 7명. 과연 그들은 누구? ]

“인기인이네요?”

유아영이 피식 웃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요?”

“…누구 덕분에요? 바빠서 오늘 점심도 라면으로 때운 거 알아요?”

“대신 0.1% 수익금 가져가잖아요. 계속 바쁠 것도 아니고.”

“와. 생색내도 돼요. 0.1%라고 해서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괜찮나 보군요.”

“괜찮다마다요! 난리 났어요. 전 세계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니까요?”

상기된 표정의 유아영을 본 정우가 다시 현미경으로 눈을 돌렸다.

“또 뭐 만들어요?”

“네.”

“또 일거리 많아요?”

“네.”

“……반갑지만 반갑지 않네요.”

“훗.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에요? 바쁜 사람이.”

“제임스 밀러에게 연락이 와서요.”

“……!”

정우의 고개가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A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고, B는 여전히 감이 안 잡힌다고 하던데요? 그냥 이렇게만 전달해 주면 된다고 했어요.”

“……음.”

정우가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미국으로 좀 넘어오라고 채근하네요. 저번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벌써 한 달가량 지났다면서, 가능하면 얼른 넘어오래요.”

“…그건 어렵다고 전해 줘요.”

“일정이 꽉 차 있는 건 제가 아니까 먼저 운을 띄우긴 했는데, 직접 통화하는 게 나을 거예요.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한정우 씨의 전화를.”

“후우. 이거만 끝내고 연락부터 해야겠네요.”

“A랑 B가 뭐예요? 알면 안 되는 건가요?”

궁금증이 생긴 유아영이 물었다.

정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은 없어요.”

“그럼 말해 줘요.”

“들으면 일이 늘어날걸요?”

“…으. 그건 싫은데…….”

잠깐 고민하던 유아영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궁금한 게 먼저네요.”

“음.”

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협회에서 만들어준 연구실의 휴식 공간으로 이동했다.

“커피는 제가 탈게요.”

유아영이 익숙한 손길로 커피를 내렸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새삼스럽단 말이야.’

불과 며칠 사이.

숨겨져 있던 발명가의 재능이 만개라도 한 듯, 정우는 놀라운 물건을 만들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의 대표 효자 상품이자, 지금껏 가장 뛰어난 물건이었던.

‘마정석 분해 장치.’

이름은 달라졌다.

마정석 분해 장치에서 마력 분해 장치로.

바뀐 건 이름뿐이 아니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수의 천재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었던 마정석 분해 장치의 업그레이드판은.

‘한정우 씨의 솜씨란 말이지. 쩝.’

처음부터 끝까지 한정우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었고, 그 어떤 지원도 없었다.

한 가지 꼽자면.

‘연구실이 전부지. 뭐, 이젠 전용 연구실이 되어 버렸지만.’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준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협회에선 난리가 나버렸다.

전 세계를 아우를 정도의 엄청난 물건을 일개 개인이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장소 제공 이외의 어떤 지원도 없는 상태로 물건을 완성했기 때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마정석 채광과 마정석 분해 장치의 활용을 통해 국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있긴 했지만, 타국에 비하면 급이 낮았기에 모든 장치는 일말의 유출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일본의 장치를 이용해본 여러 학자들이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냈지만, 효율 면에선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어떻게 이런 물건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게 변해 버렸다.

그저 세계에서도 통하는 물건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

딸그락.

커피를 내려놓으며 유아영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일본이 난리가 났어요.”

“마력 분해 장치 때문인 거죠? 바라던 바예요. 음. 커피 맛있네요.”

“원두가 일을 다 한 걸요, 뭐.”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유아영이 상체를 기울였다.

“그래, 일본도 경악시킨 천재 발명가님께 들어야 하는 건 뭔가요?”

“유 과장님은 참 직설적이네요.”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요. 일 늘어도 되니까 얼른 말부터 해봐요.”

“뭐, 비밀은 아니니까요. 유 과장님은 어차피 알게 될 사안이기도 하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정우는 표정을 살짝 굳혔다.

“A는 오버레이예요. 덧씌우기라고 불렀던 거.”

“아! 그거 골치 아픈 일이었는데, 윤곽이 잡혔다면! 어, 그 체계를 알아냈다는 거잖아요.”

“맞아요. 확실히 제임스는 천재군요.”

벌써 몇 번이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대마법사 질 고메즈와 던전까지 돌며 성장을 목표로 했던 그는, 끝내 연금술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지 못했다.

성장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세 번의 클리어 이후 곧장 덧씌우기의 연구에 나섰다.

“덧씌우기. 제임스가 제게 설명할 땐, Filling이라는 단어를 썼었어요.”

“어? 그거 덧씌운다는 뜻보다는….”

“무언가를 채우는 의미가 강하죠.”

“플레이어는 언어에 제약이 없잖아요. 영어로 들어도 자동적으로 해석이 되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물어봤죠. 도살자는 분명히 그것을 ‘오버레이’라고 표현했었거든요.”

“그게 더 맞죠.”

“그래서 물었어요. 왜 그런 단어를 썼냐고.”

“그래서 뭐래요?”

“몰랐대요. 그냥 느낀 대로 내뱉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 근데 이상하잖아요? 어차피 자동 번역으로 들어도 덧씌우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건 아닌데요?”

“그렇죠? 그런데 저한테는 덧씌운다는 표현으로 들렸단 말이죠.”

“……뭔가 간극이 있네요.”

“제임스도 그걸 주목했어요. 왜? 그리고 그 사실을 파고든다고 했었죠.”

“그게 성과가 있는 건가요?”

“그것 또한이죠. 플레이어의 자동 번역 체계에 대해서 알게 된 거니까요.”

“…자동 번역 체계?”

“유 과장님도 알다시피 언어 자체가 변화해서 들리는 게 아니에요. 저쪽에선 영어로 말하고 저 역시 영어로 들어도,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번역이 되어서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실시간 통역 장치에 가까워요.”

“음…….”

“마법 중에 ‘언어’ 계열 마법이 있어요. 그게 플레이어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하죠.”

이계 역시 여러 인종이 뒤섞여 있었다.

심지어 이종족까지 존재했으니, 언어의 방대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동이 지구처럼 자유롭지 않으니, 어느 한 지역에서만 평생 사는 소수 민족도 많았다.

언어 마법은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플레이어의 언어 체계와 매우 흡사하지.’

플레이어의 자동 번역 체계는 마법이란 결론이 나왔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적용할 만큼 방대하고 뛰어나며, 효율적인.

‘효율적이라는 건, 자동 번역 자체가 보다 근원에 가까운 단어를 골라준다는 거다.’

근원이라는 건 다름 아닌 발표자의 생각과 의도였다.

‘그게 가능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어.’

지식과 열람의 신.

정우에게 익숙한, 한 종족의 오래된 선조였다.

“스킬이 방대하게 적용됐다는 소리인가요?”

“…그렇게 보는 게 편하겠네요.”

“음. 이거 놀라운 일이긴 한데, 어차피 통역되면 좋은 거잖아요. 전 부럽기만 한데요? 외국어를 얼마나 힘들게 익혔는데….”

“편하긴 하죠.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제임스는 그 물건을 보고 뭔가를 채워놓는다는 단어인 Filling을 사용했어요. 그냥 그렇게 느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정우 씨에게는 채운다는 의미보단 덧씌운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는 소리군요?”

“맞아요.”

“…그거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유아영이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플레이어의 통역 체계는 여러 사람의 관심사였다.

언어의 통일화.

외국어를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수많은 일반인들이 부러워했던 대표적인 능력이었다.

때문에 연구도 많이 있었는데.

“이런 결과를 내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정우로서는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언어 자체가 누군가 사용한 마법이 아닌, 플레이어가 되는 순간 자동적으로 습득이 되는 체계이기 때문에.

‘모든 스킬엔 언어와 관련된 게 없지.’

오로지 이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정우만이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었다.

마법이라는 체계를 알기 때문에.

“그 단어 때문에 단서를 잡은 거군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걸 가지고 방법을 찾은 게 신기하지만….”

“이래서 천재들이란….”

유아영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단서 같지 않은 단서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게 너무 신기해 보였다.

“B는 뭔데요?”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금 일러요.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뭘까. 이 긁다 만 느낌은?”

눈을 흘기는 유아영을 보며 피식 웃은 정우가 물었다.

“서류는 준비가 됐나요?”

“아, 참. 이것부터 해결했어야 했는데….”

정우는 유아영이 내미는 서류를 보았다.

“종이라. 협회장님이 직접 움직인 모양이군요.”

“못 들은 모양이네요? 테스트도 직접 하셨어요.”

“…테스트까지요?”

신분증이 없고 G급 던전에 입장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더 복잡할 줄 알았다.

“협회장님이 나선 덕분에 빨리 끝났어요.”

정우는 서류를 넘겼다.

신분 생성 작업부터 여러 복잡한 행정 업무까지.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 서류 마지막에 떡하니 찍혀 있는 건.

“인장…. 완료되긴 했군요.”

협회장의 인장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통과.

“이제 레베카 씨도 엄연한 플레이어예요.”

바로 레베카의 플레이어 등록이 통과된 것이었다.

“A급?”

그리고 플레이어증에 적힌 등급은 무려 A급.

“레베카 씨를 몇 번 보긴 했는데… 대체 어디서 그런 사람이 뚝 떨어진 거예요?”

모든 플레이어는 각성과 동시에 F급부터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마왕이나, 그 뒤를 이은 초인이라 칭해지는 뇌신조차.

각성 후 등급은 F급이었다.

모든 성장은 던전에서.

이건 불변의 법칙이었다.

“각성부터 던전 출입 기록까지. 모든 게 없어요. 뭐, 신분증도 없으니까 할 말이 없는데…….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야 정상이죠.”

때문에 정우의 요청을 받은 유서린은 내심 당황해했었다.

갑자기 데려온 여자의 신분증과 플레이어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요청자가 정우만 아니었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었을 내용.

편법이나 연줄을 싫어하는 유서린이었지만, 정우의 요청을 거부하진 않았다.

대신 단서를 달았을 뿐.

‘…나쁠 건 없다. 레베카를 던전에 입장시키는 게 먼저이니까.’

갑작스러운 A급의 등장은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겐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해주는 거 보니 묻지 말라는 거 같아서 안 물을게요. 아, 궁금하다.”

유아영이 입술을 살짝 삐죽거렸다.

“보고나 할게요.”

유아영의 눈빛이 돌변했다.

익숙한 태블릿을 꺼낸 그녀가 전문적인 포스로 설명을 이어 갔다.

내용은 꽤나 많았다.

마력 분해 장치의 판매 요청서.

두 개의 1팀 중 음지에서 움직이는 1팀의 모든 사항.

입장이 허락된 던전에 대한 자료.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내용들이 이어졌는데.

“…이거! 이거부터 처리하죠.”

한 가지가 정우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음…. 가능해요.”

“내일, 당장 들어갈게요.”

“그렇게 처리하죠. 나머지도 마저 설명 드릴게요.”

유아영의 설명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아, 힘드네요.”

마른침을 삼키고 큼큼,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야 유아영의 설명이 끝났다.

“많긴 하네요….”

“많아요. 진짜로! 돈만 아니었으면….”

“때려치우려고요?”

“그러기엔 너무 많은 돈이고요. 저번에도 말한 적 있는데, 그때보다 더 많아져서… 제 통장에 돈이! 0이 9개에요.”

“부자네요.”

“지금도 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죠. 한정우 씨 덕분에 저희 부모님도 A 섹터로 모셔 왔다는 거 아니에요?”

“축하해요.”

“제가 한턱 제대로 쏠게요.”

“맛있는 거 얻어먹어야겠네요.”

“기대해도 좋아요!”

유아영의 말에 대한 대답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저도 기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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