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코드명, 헌터 (1)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재.
“이번 달 9건의 빌런 사건을 해결했고, 3건의 던전 공략을 마쳤습니다.”
협회는 빌런 전담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려 한 달 만에 3건의 던전 공략.
정우가 특이한 것이었지, 보통이라면 한 달 내에 1건의 던전 공략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정우는 물론, 대외적인 1팀인 편수팀의 공략 횟수 역시 3회에 달했다.
압도적인 지원인 셈이었다.
김미연 플레이어의 보고를 들은 유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정우로 인해 환경이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을 고르라면 단연코 유아영 과장이었다.
이제 갓 5년 차가 되었음에도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거머쥔 건 소소한 문제였다.
최근 들어 제임스 밀러의 업무를 처리하지 않아 수입이 뚝 끊겼지만, 여태껏 받은 수입만 하더라도 10년 치 월급을 한 번에 받은 셈이었다.
협회 내에서도 인정받고 금전적인 보상 역시 두드러진 유아영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시니컬하게 말한 유아영이 태블릿을 덮었다.
“그래서 오늘도 훈련?”
“뭐, 항상 같죠. 저도 곧 가야 해요.”
김미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F급 플레이어인 그녀는 성장에 목말라 있었다.
비단 등급의 성장만을 언급한 게 아니다.
전투 능력, 스킬의 활용도, 판단력에 이르기까지.
빌런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놈들을 잡고 싶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빌런 전담팀은 빌런을 대상으로 하는 경찰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먼저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한정우의 곁에 서고 싶었다.
파트너.
서로 의지하며 빌런을 처리하는. 어느 정도의 직업적 로망을 품고 있는 새내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한정우와 함께하는 훈련만큼은 기겁을 했다.
“……저 오늘 외근 없어요?”
“없어요…….”
김미연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한정우의 훈련 강도는 심각할 정도로 높았다.
심지어 마력도 사용하지 않는 한정우의 훈련을, 마력을 사용하면서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덕분에 훈련은 김미연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었다.
“역시 성실하네요. 한정우 씨는.”
“…….”
“근데 훈련, 강요는 아니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그런 훈련을 보고 있으면 저도 해야 할 것만 같아서요.”
“해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혹시 알아요? 김미연 플레이어도 금방 성장할지? 지원도 빵빵하니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에휴. 그렇겠죠?”
“그렇게 안 견디면 어떻게 하고요. 이 자리 노리는 사람 엄청 많은 거 알죠?”
“…알아요.”
김미연이 마른침을 삼켰다.
거짓말이 아니다.
최근 한국 플레이어계에서 가장 이슈인 내용이 바로 빌런 전담팀이었다.
빌런을 상대하거나 지원하는 인원에 대한 지원이 엄청났기 때문에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특히나 추가적인 전담팀을 만들겠다는 대대적인 발표까지 끝마친 마당이니.
“…놓칠 순 없죠!”
김미연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김미연 플레이어는 개인 정비 시간이라도 있잖아요.”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기색으로 유 과장이 말했다.
“대체 이 서류는 언제 끝이 나는 건지….”
“그렇게… 많아요?”
김미연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제 입장에선 차라리 훈련만 했으면 좋겠네요.”
“그러고 보면 그 연구, 성과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누가 보면 연구가인 줄 알겠어. 후우. 그래도 성과가 있으니까 뭐라 하기도 그렇고….”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 하실 수는 있고요?”
“……없죠.”
유 과장과 김미연이 서로 마주 보며 쓰게 웃었다.
정우가 편했던 유아영이였다.
김미연과는 달리 유아영은 정우가 갓 각성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여러 일들을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에.
‘…꼭 사람이 변한 것 같단 말이야.’
최근의 행보는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유별나다기보다는…… 특이? 특별?’
현재 전 세계의 이목은 한국에 쏠려 있었다.
빌런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그 이유였지만.
“그런데 유 과장님은 아시나요?”
“…뭘요?”
“빌런을 찾을 방법이 있다는 소리요. 뭔가 따로 정보라도 있는 거예요?”
뉴스에서 연신 빌런 전담팀의 확충과 함께 빌런 감별사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런의 감별.
그 어떠한 위대한 존재조차 해낸 적이 없었던 그것을, 한국에서 돌연 터트린 셈이었으니까.
“정보라기보다는 능력자라고 밝혔잖아요.”
“…빌런만 골라서 잡는 능력자라면, 딱 한 명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요?”
김미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생각, 고이 접어두는 게 좋을 거예요. 괜히 떠들다간….”
끽, 유아영이 엄지손가락으로 제 목을 그었다.
“히익?”
김미연이 입술을 양옆으로 쭉 늘리며 기겁했다.
“…풉.”
유아영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첫인상과 볼 때마다 달라지는 거 알아요?”
“…제가요?”
“F급치고 되게 냉철해 보인다 싶었는데, 허당기가 다분해.”
“그런…가요?”
유아영이 김미연의 볼을 쓸었다.
“그래서 귀여워요. 동생 같아서.”
김미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럼 저는 얼른 훈련하러 갈게요.”
고개를 숙인 채로 후다닥 뛰어나가는 김미연이 사라지자 유아영의 눈이 가라앉았다.
“…한정우 씨.”
유아영은 다시 정우를 떠올렸다.
갑자기 사람이 변한 듯, 전혀 다른 체계의 여러 물건을 만들어 내는 건 예사였다.
쉼 없이 빌런을 사냥하고, 쉼 없이 연구를 이어 가는 한정우란 사람이 나날이 낯설어져만 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지원팀의 교육을 받는 도중 벌어진 사건.
그리고 정우의 변화.
그녀는 자신이 처리하고 있던 자료를 힐끗 보았다.
노트북 화면에 띄워져 있는 내용.
제임스 밀러와의 공조로 탄생할, 물건.
“마정석 분해 장치. 돈 벌었다고 좋아하기만은 어려울 정도인데… 이 정도면.”
일본의 국책 사업 중 하나인 마정석 분해 장치보다 진일보한 2세대의 등장에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간의 경험상.
‘이건 분명히 문제가 돼….’
가뜩이나 좋지 않은 국제 정세가 요동칠 게 뻔히 보였으니까.
* * *
중국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21세기엔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그들이었고, 격변의 시대에 이르러선 새 시대의 주인이 되고자 수많은 발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난항을 겪었다.
특유의 선민사상과 맞물려 다시 한번 세계에 중심이 되고자 발악하는 그들의 행태에 수많은 이들이 눈을 돌렸다.
그럼에도 중국은 강대했다.
“그건 전부 우리의 노력이었을 텐데….”
노인의 주름진 눈가가 일그러졌다.
노인의 음성 외엔 사위는 고요했다.
그 어떠한 발언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적막이 감돌았다.
우득!
노인의 손에 들린 새하얀 무언가가 바스러져 땅에 떨어졌다.
뼈.
사람의 두개골이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장웨이…….”
서슬 퍼런 안광을 흘린 노인이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이름은 중국의 주석.
자신들의 힘으로 자리를 잡은 주제에 딴마음을 품는 괘씸한 사냥개였다.
격변의 시대에서 중국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영토가 방대하니만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던전은 끝도 없이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공산주의의 강압적인 체제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무너져야 옳았다.
억압받던 세대들이 각성 후 반기를 들었으니까.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어 현 상태를 유지했을 뿐, 언제고 중국은 무너질 터였다.
그것을 붙잡고 봉합하고 다시 온전한 체계로 만든 것은.
이 세계의 유일하고도 완전한 왕.
모든 마의 우두머리인 그분이었다.
“진즉 삶아 버렸을 사냥개가… 이따위로 군다고?”
장웨이는 마왕의 손을 잡았다.
잘릴 뻔한 목을 붙이고 있는 것도 모두 왕의 은총이었다.
그런 주제에.
“감히!”
쿠구구구-!
건물이 덜덜 떨리며 천장에서 흙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후우…….”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든 노인의 눈이 형형히 빛났다.
“오버레이를 가져와라.”
노인의 말에 부복하고 있던 수하 중 하나가 사라지듯 움직여 작은 목함 하나를 들고 왔다.
딸깍.
목함에서 꺼낸 손바닥 크기의 살점.
그 위에 빼곡하게 그려진 마법진을 본 노인이 인상을 구겼다.
이 마법의 주인이 자신과 함께한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을 텐데.
‘…이번 일을 처리하고 다시 청해야겠군.’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여우를 닮은 사내를 떠올린 노인이 입맛을 다셨다.
아쉬움은 잠시.
다시금 두 눈을 번뜩인 노인이 주저 없이 자신의 심장 부근에 살점을 붙였다.
우득!
“……크흑.”
수많은 전투를 벌이며 성장하여.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노인조차.
뼈가 탈구되고 뒤틀리며,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력까지 변화하는 이 순간엔 신음을 참지 못했다.
그로테스크하게 울컥대던 몸이 천천히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백발에서 적발로 변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앙상하던 육체엔 살점이 붙었고, 주름진 피부는 탄력적으로 변했다.
거울을 본 노인이 인상을 구겼다.
그는 천성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채로 고혈을 빼먹었으며,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이후로는 권력을 탐했다.
권세라고 부르기엔 어려워도 나름의 권력을 거머쥐는 것까지 성공한 그였지만.
그 모든 것을 손에 쥐기 위해 포기하게 된 것이 있었다.
바로 수명과 건강이었다.
60대에 접어든 나이.
그리고 얻은 병.
건강과 수명만큼은 그 어떠한 권력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천운처럼 모든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허공이 쭉쭉 찢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증발했고.
그 안엔 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투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각성했다.
네크로맨서로.
모든 플레이어가 그러하듯 첫 스킬은 전부 다 달랐다.
같은 네크로맨서라도 누구는 시체폭발부터.
누구는 저주부터.
누구는 영 쓸모가 없는 시체 강화 따위부터.
하지만 그는 달랐다.
시체 부활을 얻은 것도 모자라, 그보다 상위 단계의 스킬.
‘시체들의 무덤’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S급의 아주 특별한 스킬.
그는 각성과 동시에 힘을 얻었고, 빠르게 마력을 얻어 가며 강해졌다.
덕분에 병도 이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
수명.
그는 수명을 늘리기 위해 같은 플레이어를 잡아 연구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돈과 권력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부릴 수하는 많았고, 사채를 한 경험을 적용하여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 또한 능수능란했다.
수많은 연구 도중 플레이어들이 죽어 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죽은 플레이어 역시 그의 힘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길 때도 있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머리를 조아린 건.
나름의 왕국을 완성시키고 있던 자신의 힘과 권력을 모조리 쓰레기로 만든 이를 만났을 때였다.
증오해도 모자랄 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건.
아마 그 누구도 중요하다고 말해 주지 않은 자신의 필요성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그렇게 마왕이라 불리는 이를 섬기게 되었다.
노후에 얻게 된 충성심.
평생이 비틀렸고 이기적이었으며 욕심이 많았던 그는.
기어이 나머지 하나에 욕심을 내었다.
수명.
네크로맨서이기에 할 수 있는 발상.
리치화.
하지만 그건 S급에 도달한 후로도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오버레이.
연구와 결과물은 전혀 다른 이가 완성시켰지만, 발상은 자신이 시작한 물건.
비록 아직까진.
“…여전히 어색하군.”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가장 완성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거울을 보는 노인.
아니.
유일한 S급 네크로맨서인 하멜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훑었다.
젊었던 시절의 자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역시 온전한 날 찾고 싶다.”
조금씩 다른 부분을 볼 때마다 욕망은 커져만 갔다.
“그래야… 왕의 곁에서 더 오랫동안 보좌할 테니.”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 택한 타인의 형태와 마력을 덧씌우는 방법.
과거의 자신이 되고 싶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다.
변화한 모습으로 사방을 훑은 그가 조용히 말했다.
“한국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