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헌터 (3)
“한정우 플레이어는?”
“빌런들을 사냥하겠다고 나갔어요.”
“하…… 이게 가능한 거였나?”
“…그러게요. 이런 게 진작 가능할 줄 알았다면…….”
으득.
유지석은 딸의 이 가는 소리에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서린아. 그가 특별한 거겠지. 이제라도 이런 게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냐.”
“…기뻐요. 놈들을 제대로 찾아 박멸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너무 기뻐요.”
하지만 슬펐다.
인간 같지 않은 쓰레기들.
놈들의 손에 죽어 간 사람의 가치가 얼마인지 따지기도 전에.
유서린은 빌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놈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시됐던.
“엄마의 복수를 할 수 있겠네요.”
소름 끼칠 정도로 억눌린 열기가 느껴지는 음성.
유지석의 눈가에 짙은 주름이 잡혔다.
남들은 다 옷을 빼입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나이였다.
플레이어에겐 나이란 상관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지만, 아무래도 딸이다 보니 마음이 아플 때가 있었다.
심지어 그저 그런 플레이어도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플레이어이다 보니 더더욱.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당시의 딸은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바싹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채 1시간도 제대로 자지 않고, 쪽잠으로 부족한 수면을 채우며 던전만 돌던 때.
자신의 성장을 가늠해 본다고 대뜸 빌런을 향해 돌진했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피가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가 된 시점부터 던전을 다니는 건, 가슴이 아픈 것과는 별개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빌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틀렸다.
아니, 지금의 딸에게는 틀린 말이었다.
시간은.
‘…서린아. 분노를 더 키웠구나.’
켜켜이 쌓여 가는 분노를 터트리지 못하고 응축시켜 놓았다.
그런 시점에서 나온 한정우는 한 줄기의 빛이었다.
“…그래. 일단 해보거라.”
“걱정 마세요.”
유서린이 살기를 지우고 희미하게 웃었다.
“컨트롤 타워에 접속하는 사이, 도살자의 시체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으음.”
“기쁘지 않으세요?”
“…기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우습지만, 전 유례없는 천재라고 불렸어요.”
“같은 공략을 해도 성장이 더 뛰어났지. 벽을 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감사했죠.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신에게.”
“서린아….”
“그랬던 저였기에 알 수 있어요. 한정우 플레이어의 성장은… 말이 안 돼요.”
“음…….”
“이중 던전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성장과는 별개라는 건 이미 증명이 됐어요. 아버지는 강하시지만, 제가 도무지 뒤따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에요.”
“…허허. 너는 이미 내 수준이다.”
“한정우 플레이어는요?”
“……음.”
“불과 몇 달 전까지 일반인이었던 사람이에요.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각성자. 그런데… 도살자라는 거물을 잡았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등급 이상의 몬스터를 상대했고 승리했다.
게임조차 한 번의 폭렙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험치 획득 한계선을 정하고 있었다.
현실은.
더 낮은 폭의 한계선이 성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정우란 인물이 특이한 것이다.
“그의 성장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군.”
“…마왕 때문에 그러죠?”
“그렇지….”
“아버지께서 아시아권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잖아요.”
“아무리 한국이 강대국이 되었다지만 중국을 압박하기엔 어려우니 말이다.”
“알아요. 중국과 인도, 러시아와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까지.”
“으음. 거기까지 파악했더냐.”
“나름 권한이 많잖아요. 제가.”
씨익 웃는 유서린의 모습에선 아까의 분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지석은 그런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한 곳은 전부 빌런들의 근거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었다.
버려진 땅이 많은 장소.
미국은 워낙 타국의 간섭을 꺼리는 나라라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미국조차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아가고 있어요. 저는 저대로 나아갈게요.”
“…한정우 플레이어가 네 패니?”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패이기도 하죠.”
마왕을 잡을 칼.
“나는 그가 마왕을 잡아 줬으면 한다. 던전조차 조금씩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등급 외 던전이요?”
“그래. 그런 상황에서 빌런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야.”
“마찬가지예요. 그렇기에 전 더 한정우란 칼을 날카롭게 갈 예정이에요. 아, 걱정 말아요. 패라는 표현을 하긴 했지만, 전 진짜로 그에게 흥미가 있어요. G-00도… 어쩌면 그런 특이한 성장과 맞물려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소리구나.”
“이미 하고 계시잖아요. 지원. 제임스 밀러와 대마법사 질 고메즈도 가담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말한 유서린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녀도 다녀갔더군요.”
은근한 말투.
그 내용을 알아차린 유지석이 이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정보력이 나날이 좋아지는구나.”
“저도 한번 보게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녀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더 확신했어요. 아버지가 한정우 플레이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칼과 패로 표현했지만, 유지석은 진심으로 한정우를 키우고 싶었다.
아버지를 잃은 뒤 5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보고를 받았고, 어떤 가치관과 관념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가 걱정이 되는 건, 마왕 역시 시작은 같았다는 점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 두문불출했고, 몬스터에게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에 달라졌다.
그는 정우가 도살자와 빌런들을 상대로 이겼다는 것을 들은 순간부터, 정우의 감시를 진행했다.
갑작스러운 성장.
‘…녀석도 그랬어.’
동료였던 이.
하지만 이제는 가장 원망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린 이.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흘러나온 진심을, 유서린은 알아들었다.
“그럴 거예요. 제가… 잘 지켜볼게요.”
* * *
콰앙!
희미한 인형이 무너진 잔해 사이로 뛰어들었다.
“빌어먹을!”
욕설과 함께 불덩이가 요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뒤늦게 도착한 김미연이 본 것은.
스으- 스스!
기이한 소음과 함께 흩어져 버리는 불덩이의 모습.
그리고.
웅웅, 벌떼와 같은 모습으로 쇄도하는.
“……매직, 미사일?”
기초 스킬의 향연.
그건 진심으로 향연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꺄아악!”
뒤늦은 비명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물러나요! 빌런입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김미연이 소리쳤다.
“비, 빌런!”
“도망쳐…!”
“꺄악. 미, 민수 씨! 나 두고 가면…. 야, 이 X새끼야!”
폭음 때만 하더라도 움찔거리는 게 전부였던 사람들이 빌런이라는 단어 하나에 사색이 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불구경이 갑자기 살해의 현장이 될 수 있는 게 빌런이라는 존재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금방 한산해진 거리.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쿵, 콰앙!
요란한 소음이 이어졌다.
“……저거, 저렇게 부숴도 되나?”
순간적으로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4층짜리 건물이 시원하게 파괴되기 시작했다.
“……어?”
그렇게 주변을 통제하고 수습하기 위해 대기하던 그녀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4층 건물의 양옆에는 각기 다른 층의 건물이 벽을 맞대고 세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피해가… 없네?”
좌우 건물엔 일말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잔해도… 안 쏟아져!”
잔해조차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툭,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경험이 적은 그녀는 이 상황에 당황했다.
“아, 아악!”
“……!”
그러던 그녀의 눈에 건물 안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사, 살려 줘요!”
그녀는 다급히 다가갔다.
“이리로, 피해요!”
소리치며 다가가는 도중.
또다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쿵!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나오고.
누구는 유리창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주춤거리며 밀려났다.
“이, 이거 왜 이래!”
눈물을 흘리며 경악하는 표정.
그녀는 저도 모르게 도망친 사람들 사이에서 걸음을 멈췄다.
거의 본능적으로.
혼란으로 점철된 표정을 보면서도 기이한 무언가가 발길을 잡아끌었다.
그러는 사이.
쿵!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내려왔다.
“……한정우 플레이어?”
불도저처럼 뛰어 들어갔던 사람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 사람들이 못 나오고 있어요!”
김미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하지만 정우는 오히려 김미연이 가리킨 이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어, 어어?”
김미연이 경악하는 사이.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이가 욕설과 함께 스킬을 사용했다.
“X발. 너 뭐야!”
언제 꺼내 든 것인지 손에 칼을 들고 휘두르는 기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비, 빌런?”
설마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던 사람이 빌런이었다니.
김미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알 수 없는 벽이 빌런과 일반인을 구별하는 거야?’
자신이 생각하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능력이 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빌런이 모여 있는 장소를 치기 위해 움직였고.
한정우 플레이어는 그런 빌런들을 골라서 처리하고 있었다.
쓰러지는 빌런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또 발견한 한정우가 갑자기 사라졌다.
“어, 어디 갔어?”
관람객 모드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보인 건, 한 일반인을 인질로 잡으려던 빌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느새 꺼내 든 건지 날카로운 단검으로 목을 찌르는 모습에 그녀는 말문이 턱 막혔다.
기절했는지 쓰러지는 인질의 몸을 잡은 한정우가 인질을 둘러메며 밖으로 나왔다.
“다 잡았다.”
“……벌써요?”
불과 7분여가량.
김미연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는 도중 들은 바로는.
“열다섯을… 벌써 잡았다고요?”
그녀는 입을 쩍 벌리며 정우를 보았다.
“여기 뒤처리 진행하라고 해요.”
그렇게 말한 정우는 폰을 꺼냈다.
“유 과장님. 주차 필요 없어요. 다 잡았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죠.”
주차하려고 주차장을 찾아 빙빙 돌고 있던 유 과장의 한숨이 전화기 너머 들리는 것 같았다.
김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빌런 전담팀의 지원팀.
번외팀이라기에 뭔가 했더니, 엄청난 인물을 맡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처리.”
“아, 아… 네.”
김미연은 지원팀에 보고를 했다.
무려 징벌의 처녀, 유서린이 만든 전담팀.
그들을 지원하는 지원팀 역시 상당한 경쟁력을 자랑했다.
빌런에 대해 적의를 불태우는 플레이어와 일반인은 많았다.
초창기의 혼란을 겪고 살아난 사람일수록 빌런에 대한 적개심은 컸다.
김미연 역시 그런 케이스였다.
빌런에 의해 큰오빠는 사망했고, 둘째 오빠는 절름발이가 되었으니까.
‘강해지자. 지원팀이 아니라, 전담팀이 되도록. 아니.’
갑자기 한정우의 말이 떠올랐다.
이동하는 도중, 그녀는 정우에게서 여러 말을 들었다.
앞으로의 진행.
그리고 해줘야 할 역할과 알아야 할 여러 사안까지.
가까운 장소여서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한 가지 들은 게 있었다.
“일단 한국에서부터 모든 빌런을 없앨 예정이에요. 헌터가 될 거니 바쁠 거예요.”
“……헌터.”
사냥꾼.
왠지 모르게 그 단어가 마음에 든 그녀가 헌터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뭐 해요?”
“아, 지, 지금 갑니다!”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