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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14화 (114/293)

114화

-헌터 (2)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지듯, 수많은 매직 미사일이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낙하했다.

“……대마법사.”

유서린은 마법의 향연에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외국으로 파견을 나가서 활동하던 당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 때 본 그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질 고메즈.

최고의 대마법사.

마법의 위력은 천지 차이였다.

그녀의 마법은 전방의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정도로 대단했지만, 정우의 마법은 고작해야 반경 10여 미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S급 플레이어인 그녀였기에 아는 사실이 있었다.

빌런의 비명을 자아내게 만드는 저 마법이.

단순한 기초 마법 스킬의 연속 사용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난도를 지닌 것이란 걸.

이전에도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스킬 운용 능력이 극에 달했다.

C급 네 명을 상대할 때와는.

‘…사람이 달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한정우라는 사람 자체가 바뀐 것만 같았다.

‘……모든 검사를 진행했어. 심지어 신체 검사까지 진행했잖아. 저 사람은 분명히 한정우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정우가 도살자와 수배 중이던 빌런들을 잡았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전달해 준 오버레이가,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로.

그렇기에 유서린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감별.

자신의 능력.

정우에게 제대로 먹히진 않았지만, 빌런을 처리하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감지할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유서린은 빌런을 먹이로 던졌다.

한정우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같아.’

그리고 빌런들을 처리했을 때, 정우의 마력이 상승했다.

예상대로 마력이 성장하는 순간을 파악한 것이다.

그녀는 한정우란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의 성장을 목격한 순간부터 수르트의 강탈과 비슷한 능력들을 확인했다.

협회의 전산을 이용하여 각종 스킬의 특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수르트의 강탈은 마력 상승과는 달랐다.

꽤 어려운 조건이 필요했고, 그 조건을 위해서 놈은 제물의 인장이라는 번거로운 작업을 진행했다.

성장도 단순히 마력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킬을 얻든, 마력을 빼앗든.

어떤 방법으로든 상대의 능력을 빼앗는다는 건 비슷했지만,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선 대상이.

‘살아 있어야 해. 하지만 한정우는 달라. 죽이고, 얻는다.’

선후의 차이가 분명했다.

비단 강탈만 아니라 마력 흡수나 네크로맨서의 스킬도, 모두 상대가 살아 있을 때 진행해야 하는 능력이었다.

‘한정우가 맞다 이거지…….’

검증은 끝났다.

하지만 불신이 남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성장한 거지?’

단순히 마력만 급증했다면 빌런을 대거 죽였을 거라고 유추했겠지만.

‘아니야. 마력 수치는 별로 상승한 게 없어.’

마력이 상승할 때 느껴 본 감각으로는, 한정우의 마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여전히 마법 계열이라 보기에는 부족한 마력.

특히나 이 정도로 대규모 마법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십 수 마리의 빌런을 쓸어버린 한정우는 태연하게 다음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고.

또다시 진행되는 폭격은 난폭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했다.

한정우가 맞으나, 한정우가 아니다.

그런 모순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협회의 모든 마법 계열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야.’

정우의 스킬 운용은 뛰어났다.

“……커, 커억!”

배가 꿰뚫린 빌런이 손을 뻗으며 허물어진다.

저벅.

정우는 천천히 다가갔다.

전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철저한 마법사적인 움직임으로, 모두를 유린했던 정우의 접근에 빌런은 사색이 되었다.

나지막한 으르렁거림.

그리고 손끝에서 펼쳐지는 은은한 저주.

유서린은 멍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빌런을 보며 몸을 돌렸다.

“정리, 하세요.”

그녀의 지시에 조금 떨어져 있던 지원팀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 * *

“…소설에선 이런 걸 기연이라고 하던데,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요?”

그녀는 정우의 급격한 성장을 떠올렸다.

찻잔을 내려놓는 유서린의 말에 정우가 묘한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기연이라… 비슷한 건가?’

성장이라는 주제만 놓고 보면 기연에 가까운 건 사실이었다.

“검증은 끝났어요.”

“그럼 제가 바라는 걸 말씀드려도 되겠군요.”

“뭘 바라죠?”

정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상체를 기울였다.

“빌런.”

“……음?”

“별것 없어요. 대책반으로서 제대로 활약하겠다는 뜻이니까.”

“그런 거라면 어차피 제가 오케이 하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저거, 다시 필요하거든요.”

정우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컨트롤 타워요?”

“네.”

“흐음. 이번엔 빌런이라도 찾을 수 있나요?”

그렇게 물었지만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박쥐를 찾은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박쥐는 그 스스로가 언급했다시피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른 마력을 지니고 있었고.

빌런은 그저 인간이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뿐이었다.

살인마처럼.

구분이 불가능했다.

“불가능할 텐데요….”

“아뇨. 가능해요.”

정우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건 매우 중요했다.

컨트롤 타워를 통해서 빌런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 컨트롤 타워를 봐야 했다.

‘지금의 나라면 컨트롤 타워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체계를 파악할 수 있어.’

지팡이의 정화 능력을 진화시키든, 다른 이유든.

성물로 분류해야 하는 컨트롤 타워를 경험하는 건 매우 큰 이득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백문불여일견 아닌가요?”

“직접 확인해 봐라?”

정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보냈다.

‘확실히 달라졌네. 여유로워졌어.’

갑작스러운 실력의 향상부터 뭔가 아는 듯이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유서린은 정우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허락을 받죠.”

아버지에 대한 믿음일까.

아니면 이중 던전이라는 특별한 조건 때문일까.

‘이 정도로 부녀가 호의적이니 오히려 이상하군.’

유지석에게 원인은 들었다.

마왕의 대적자.

유지석은 모든 플레이어의 정점이자, 빌런의 우두머리인 그를 없애고 싶어 했다.

여러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오크와의 일이 있고 나서부터 굉장히 바쁘겠지.’

기억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던 오크의 던전.

유지석은 이계의 몬스터들과 어느 정도 소통이 되었다는 말에 반색했다.

‘준비가 되면 부른다고 했는데… 새삼스럽게 그게 뭔지 궁금하군.’

가뜩이나 바쁜 사람이 더 바빠졌지만, 정우로서는 아쉬울 게 없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나는군.’

“허가가 났다는군요.”

예외적으로 빠른 허가.

유서린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문을 열었다.

정우 역시 그녀를 뒤따랐다.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긴 하지만, 뭔가 자신이 모르는 큰 판이 있는 것만 같았다.

‘해가 될 것 같진 않은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묘하게 기분이 나쁘군.’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이 관련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거슬렸다.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나 스스로도 변해 가는지 모르지. 아니, 변했을 거다.’

무려 이계의 기억이다.

더불어 한 도시를 다스리던 절대자의 기억.

그런 기억을 받아들이고도 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지구의 기억이 우선이라고 하더라도.

‘이계와 관련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쏴아아-.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독특한 마력이 느껴졌다.

정우는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로도 느껴지는 이 정도의 감각이라…. 원래 이랬었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성물급이라는 표현을 썼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확실히 보였다.

이건 성물이다.

성스러운 보물.

‘……신의 손길이 닿은 물건.’

정우는 눈을 빛냈다.

‘어쩌면… 예상 밖의 소득을 얻을지도 모르겠군.’

* * *

“그럼 비밀로 하죠.”

유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턴 바빠질 겁니다.”

“바라는 바예요.”

그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살의와 희열.’

오싹할 정도의 단어였지만, 대상이 대상인지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감정이었다.

정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천천히 협회의 복도를 걸으며 여러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상념은.

수많은 등산로의 종점이 정상인 것처럼, 하나로 귀결된다.

‘성물….’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어떤 신의 개입인지 알아내는 건 실패했다.

하지만 신이라 불리는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것.

인간에게 유리한 판단으로 능력을 사용했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다.

‘그리고 마력의 패턴까지도.’

패턴은 지문과 같다.

마력의 흐름을 다른 말로 패턴이라 부르고 있지만,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둘은 조금씩 달랐다.

마력의 흐름은 말 그대로 마력이 흐르는 모양새를 뜻하는 것으로.

‘능력의 본질이나 위력 등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패턴은 보다 본질적인 것이다.

‘마력의 존재감. 표현하자면 그것이 더 적합하겠군.’

그렇기에 패턴을 파악했다는 건, 생각보다 더한 성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찾을 수 있으니까.’

돌고 돌아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난 신을 발견할 거고, 그 초월자의 정체를 확인하겠지.’

아쉽긴 하지만 막막하진 않았다.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었다.

‘어떻게 넘어온 거지?’

지구엔 신이 없다.

마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쓰인 것은, 격변의 시대 이후.

불과 10년 전의 일이었다.

자신은 물론 또 다른 초월자까지.

‘이지스가 회랑과 통로를 구원의 보상으로 내걸었다는 소리는, 내가 그전엔 통로를 열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신은 지구로 넘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빙의인지 환생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가지고 온 것 같아.”

‘이계가 아닌 지구에선… 진짜로 신이나 다름이 없었을 텐데, 왜 자신의 능력을 이렇게 은밀히 사용하고 있던 거지?’

그런 의문은 한번 자리를 잡자 사라지지 않았다.

우뚝.

엘리베이터를 앞에 두고 걸음을 멈춘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뒤로 미루자.”

격이 다른 성장을 한 지금도 손을 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력만 상승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

선택지를 앞에 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모든 선택지의 답은 동일했다.

강해진다.

성장은 극에 달했다.

‘컨트롤 타워의 체계를 변형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하지만 내겐 매우 필요한 작업이야. 매번 컨트롤 타워를 이용할 수는 없으니까.’

이를테면 모 애니메이션의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 찾는 레이더 기계를 소지해야 했다.

빌런을 잡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려면 빌런을 잡아야지.”

선후를 바꿔도 목표가 동일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 편했다.

빌런을 잡아먹고 성장하여, 지팡이의 스킬을 뜯어 헤집을 계획이었다.

‘성장하고, 지팡이부터 다시 재구성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닥터 브라운. 그대에게 주려던 마정석 분해 장치의 이론을 내가 먼저 완성하게 생겼군.’

마정석 분해 장치였다.

띵.

1층에 도착하자 정우는 손짓하는 유 과장과 플레이어 한 명을 발견했다.

“이쪽은 김미연 플레이어. E급이에요. 한정우 씨의 뒤처리를 맡을 거예요.”

김미연이 고개를 숙였다.

“유 과장님은요?”

“제가 플레이어 뛰는 곳에 따라다닐 수나 있겠어요? 지원은 맡겨 둬요.”

“알겠어요. 그러면 곧장 이동하죠.”

“어디로 가면 되나요?”

“가까운 데부터 가죠. 신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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