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99%의 기억 (4)
강원도 철원에서 얻은 스킬.
네크로맨서.
고작해야 스킬 하나가 직업과 같은 명칭을 가졌다고, 네크로맨서와 관련된 여러 파생 스킬이 생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우는 해당 스킬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로운 적의 등장에 잠시 미뤄뒀을 뿐, 또 다른 기억과 마력을 되찾은 정우에겐 더없이 적합한 능력이었다.
포획한 이상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한 고문은 필수였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라는 스킬이.
으드득!
기이한 소음과 함께 덜컥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도살자에게서.
“불어.”
너무도 가볍게 정보를 얻어 내게 만들었다.
정우의 명령에 언데드가 된 도살자는 거부조차 하지 못했다.
모진 고문조차 감내할 각오를 다졌던 그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결의를 잃어버렸다.
“…기존의, 계획……. 스파이…….”
느릿하지만 정확한 내용이 언급된다.
언데드의 마력으로 생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내뱉게 만드는 정우의 기예는.
[ 망자의 기억을 각인하였습니다. ]
끝도 없는 알람으로 치환되었다.
정보는 정보대로.
스킬은 스킬대로.
10분에 불과한 스킬의 활용법에서 정우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뽑아냈다.
그럼에도.
“…제약이 심해.”
아쉬운 건 분명히 존재했다.
현재 자신의 마력은 지식을 따르지 못했다.
그 차이가 만들어 내는 건.
온전한 정보.
그것을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스킬을 해제하자마자 허물어지는, 도살자였던 시체에서 정우는 몸을 돌렸다.
“아쉽네. 메아리. 네 힘이 더 강했었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었을 텐데.”
-히잉.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어 줄 테니, 마을로 돌아가 있어.”
정우의 말에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린 통로로 주춤거리며 입장했다.
곧장 반대편으로 넘어간 그녀를 본 정우는 통로를 닫았다.
여전히 어두운 새벽.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우는 도살자의 말을 떠올렸다.
심층 지식은 얻지 못해 아쉽지만, 나름의 정보는 유익했다.
역시나 우선 순위를 정해야 했다.
여러 정보 중에서 정우는.
“안쪽부터.”
하나씩 파헤치기로 했다.
정우는 공간을 넘었다.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협회는 환했다.
봉배산 인근.
그곳에서 수십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거대한 폭발 때문에 파견되었던 구조대원과 경찰들은 전투의 흔적을 발견하고 곧장 협회와 인근의 길드에 연락을 했고.
그 시체가 빌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협회와 인근 길드에선 곧장 인력을 파견.
또 다른 빌런들을 파악하기 위해 수색에 나섰다.
그러는 한편.
“한정우 플레이어가?”
유서린은 한정우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바로 봉배산 사건과 관련해서.
정우와 김훈을 안내했던 협회 소속의 기사가 바로 정보의 출처였다.
신고자이기도 했고.
“…진짜로 빌런들의 은신처였다는 건가?”
유서린은 정우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예상외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누군가 더 있는 거야?’
정우 혼자서 빌런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김훈의 수준은 D급.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나마 시체가 빌런이라는 점에 안도했다.
“안일했네….”
밑져야 본전이라는 느낌이었다.
납치를 당했던 인물이 위치까지 기억한다?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저 확인일 뿐이라고.
유서린은 비서를 호출했다.
“한정우 플레이어에게서 연락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그의 비타를 추적해요.”
곧장 지시를 내린 유서린이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걱정의 마음을 담아 정우를 떠올린 유서린의 표정이 무거웠다.
마왕을 이길 패.
영웅 유지석이 눈여겨보는 인재이자, 자신 역시 관심을 두고 있는 플레이어.
예상보다 그의 가치는 높았다.
테러가 벌어진 이후 한국 플레이어 협회는 강도 높은 경계 태세에 나섰다.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빌런들의 수색에 나섰고, 나름의 여러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안심했었지만.
“안일해….”
자신의 안일한 판단을 곱씹었다.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다면, 지원해 준다는 자신의 말대로 성장부터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무사히 돌아와야지.”
전해질 리 없는 말을 내뱉은 그녀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가 여러 상황을 정리하며 나름대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정우는 더욱 외진 장소로 와 있었다.
도살자의 정보는 시간이 중요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들을 축출해 내는 작업은 여유를 둘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정우가 자리를 이탈하여 조용한 장소를 찾은 건 다른 게 아니었다.
“기억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다니엘.
이름을 정확하게 알게 된 이후 생겨난 기억을 정립할 시간이 필요했다.
균열을 없애기 위해 들어갔던 순간.
-아아. 저도 약간은 기억나요. 그때 주인님은…… 정말 강했죠.
메아리의 말을 들으며 정우는 미간을 구겼다.
그 이후를 알지 못한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하나가 이상하군.’
메아리를 본 정우는 의문을 품었다.
메아리 성장 퀘스트.
마력이라는 조건에 얽매여 있을 뿐, 본질은 메아리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었다.
처음 정우는 메아리를 지칭한 단어, 무수한 목격자에서 그녀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여겼다.
경험 혹은 지식.
목격한 그것들을 자신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일 거라 추측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퇴색된 면이 없지 않지.’
자신에겐 회상이라는 권능이 생겼으며.
단어 혹은 어떠한 내용 중에서 번뜩이는 무언가가 이계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메아리의 능력과 비슷한.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하게 더 직관적이며.
‘더욱 강렬하지.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니까.’
그 점이 정우는 미심쩍었다.
튜토리얼의 보상.
이중 던전이라는 특이한 장소에서, 무려 선택까지 하여 얻은 존재가 메아리였다.
단번의 성장.
단계의 성장.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런 선택에서 택하여 얻은.
‘예전의 나와 상당한 관계가 있었던 인물이지. 마지막 일족이기도 하고….’
-얼른 성장해요! 그러면 주인님의 몸에 새겨진 인장도 없앨 수 있을 거예요.
“음……. 그래. 일단 하나하나 정리하지.”
정우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추운 날씨의 싸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스윽 움직인 손길에 냉기는 사라졌다.
체온 조절.
자유자재로 사용되는 마법은, 기억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기억 속의 자신을 되찾는 건 매우 중요했다.
“당시를 온전히 계승하는 건, 아직 무리야.”
균열을 닫고 나왔던 당시도 아니었다.
그건 너무도 까마득해서 도무지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그러한 수준.
가히 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고.
정우가 생각하는 건, 균열의 이전이었다.
왕이라 불리며 도시의 모든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당시.
-아쉽네요. 결국 마력이 문제잖아요.
“그렇긴 하지. 마법사에게 마력은 근원이자 전부이니까.”
-떠오르는 건 없어요? 왜 적을 죽여야 마력이 상승하는 건지?
“대충은. 더 고민해 보고 상의하지.”
-쩝.
“보자. 과연 내 조언자는 예전 그대로일까?”
정우의 말에 메아리가 빙글 회전하며 씨익 웃었다.
그녀를 보자 정우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누가 그녀를 튜토리얼에 두었을까.
이 튜토리얼이라는 G급 던전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녀는 살아 있었을까.
모든 게 뒤엉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미 결정했잖아요.
“안쪽부터 처리한다는 것?”
-끄덕 (。•̀ᴗ-)✧
“일단 유서린에게 전달은 해야지.”
덧씌우기.
오버레이라고 부른 그것이 적용된 사람은 마력의 성질만 바뀌는 게 아니었다.
“그건 분명히 이전과 달라. 불과 몇 달 사이에 많이 달라졌어.”
-이전이라면 미국 연금술사 때 말하는 거죠?
“어. 그땐 위장 신분이었으니까. 외형까지 바꿀 수 있었으면 진작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을까?”
-반대로 말하면 위장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죠.
“음. 이런 기술은 미리 완성이 되어 있었다?”
-네. 뭐, 주인님도 잘 아는 개념이잖아요. 1세대니 2세대니 하면서 발전하는 거.
“확실히… 일리가 있군.”
-그리고 아마 주인님이라면, 2세대의 오버레이의 재료도 아셨을걸요?
“그렇지. 재료는 지극히 한정적이니까.”
던전이라는 장소는 이계의 지역과 동일했다.
복사를 했든 평행 차원의 장소를 가져다 놓았든.
이미 셀레잉 늪지에서 정우는 확인을 했었다.
던전은 이계라는 걸.
하지만 약간의 기억을 되찾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플레이어와 던전을 관통하는 이 체계만큼은 여전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균열 이후의 기억이 해답일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는 게 없었다.
어쨌든 이계에서 타인의 외형과 마력 성질까지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는 건 두 종류뿐이었다.
하나는 마법.
간단한 미러 이미지로 시작하여 발전하고, 결국엔 독창적으로 완성된 마법.
다른 하나는.
타인의 육체와 마력도 모자라 기억까지 고스란히 빼앗아 가는 몬스터.
아이러니하게도 마법과 몬스터의 이름은 동일했다.
“도플갱어.”
-도플갱어 던전을 찾으면 되겠네요. 흔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오버레이의 재료는 도플갱어였다.
이계에서도 거의 천연기념물처럼 여겨지는 놈들이었으니, 아무리 던전이라고 하더라도 양산은 무리였을 것이다.
“원래의 가정대로 멀티버스라면 그래도 도플갱어의 수가 꽤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리지.”
-차원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게 아쉽네요. (๑╹o╹)φ
“천천히 알아보지. 일단은 도플갱어와 관련된 건 유서린에게 부탁해야 해.”
-그것부터 빠르게 처리해야 해요. 자칫하면 뒤통수를 제대로 맞을 수가 있어요! 이유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화가 나네요! ᕙ( ︡’︡益’︠)ง
“이유를 몰라?”
‘그것까진 기억을 되찾지 못한 건가? 나와는 기억을 되찾는 순서가 다를 수도 있겠네.’
“악의(惡意)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해.”
-탐색기처럼 말이죠?
“덧씌우기는 분명히 위험해. 하지만 흔할 수는 없어.”
흔했다면 사방에서 발견되었어야 옳았다.
하지만 제임스 밀러의 영향력으로도 두엇 더 발견한 게 전부였다.
심지어 그의 회사가 아닌.
전부 다른 장소였다.
퍼진 건 확실하나 수가 적든가.
“어쩌면 중요도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네 말마따나 미리 완성되어 있었다면… 용도에 맞춰서 사용하고 있었을 거야.”
-발견할 수 있겠어요?
“도살자와 같은 수준이라면? 아니. 현재로선 불가능해.”
짧은 시간 많은 게 변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억을 얻은 후의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그래서 필요한 게 시간이지.”
-회랑을 이용할 생각이죠?
“99% 정도 기억을 내 것으로 만들긴 해야 하니까.”
-왜 99%에요?
“글쎄. 이계의 모든 기억을 되찾아도 1%는 부족할 것 같거든.”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겠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니까.”
정우는 입맛을 다셨다.
“열쇠는 사용했고, 실험해 볼 건 하나지.”
정우는 통로를 생성했다.
자신의 영역인 마녀의 마을과 연결되는 통로.
익숙한 풍경이 통로 안쪽에 드러나자.
정우는 망설임 없이 통로로 발을 들였다.
“이틀. 그 안에 수준을 확 끌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