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99%의 기억 (2)
쾅!
책상이 요동을 쳤다.
“그걸 왜 네가 결정하는 거냐!”
날이 선 음성이 뜨겁게 다가왔다.
“치워. 냄새나.”
귀찮은 듯 얼굴을 밀어냈다.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니야. 너 진짜로 입에서 냄새가 나. 땀 냄새도 그렇고. 훈련하다가 이렇게 뛰어오지 말란 말이야.”
“미쳐 버리겠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녀석은 뒤로 물러났다.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날이 선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검사는 안 필요하냐?”
“안 필요해.”
“야, 그렇게 단정 짓지 말고!”
구릿빛의 커다란 덩치가 또다시 훅하고 다가왔다.
그럴 때였다.
벌컥!
“……머리가 지끈거리네.”
“다니엘!”
“…안나. 너는 또 왜…….”
쾅!
책상이 두 번째 요동쳤다.
“그 말이 정말이야? 아니, 이 바보가 와 있는 거 보니까 진짜인 거 같은데!”
“바보라니!”
“그게 중요해? 이 바보야?”
“……끄응.”
안나는 앓는 소리를 내는 헨리를 밀어냈다.
고깔모자가 인상적인 미녀.
안나가 책상을 짚으며 상체를 기울였다.
“지금 일이 손에 잡혀?”
“잡혀야지. 이게 내 일인데?”
“…다니엘!”
“소리 지르지 마. 내 귀를 터트리고 싶은 거야?”
“터트려서라도 붙잡고 싶은 건 알아?”
“…아! 그러면 청각 장애를 위한 마법도 개발해 볼까?”
“다니엘!”
뾰족한 음성이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안나. 진짜로 소리 지르지 마. 내 생각은 변하지 않으니까.”
“……하아!”
안나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씩씩거리다 분을 참지 못하고 발을 쿵 내질렀다.
모든 걸 무너트릴 위력이 담긴 발길질이.
쩌엉!
발길질 주변으로 생겨난 마법진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아! 짜증 나! 이 방어 마법 안 치울래?”
“그거 치우면 무너져.”
“무너지라지!”
코웃음을 친 안나가 격하게 숨을 몰아쉬다가 차분해졌다.
“…저 사이코패스.”
“뒤질래? 덩어리?”
으르렁거린 안나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게 해? 계획대로 진행할 거라니까.”
“…기어이 혼자 틀어막겠다?”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어?”
“……없어. 그건 알아!”
후욱, 뜨거운 숨을 내뱉은 안나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같이 할 수는 있잖아.”
‘나’는 안나의 눈을 차분히 들여다보았다.
녹빛의 맑은 눈동자.
바람에 한정해서는 나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의 실력자.
그럼에도 내 고개는 천천히 가로저어진다.
“불가능해.”
“…왜 그렇게 단정을….”
“적어도 반년은 마법을 유지할 정도의 마력.”
“……뭐?”
“부하를 감당할 만한 적응력.”
“……!”
“그리고 모든 걸 감당할 만한 인내력.”
“……네가?”
“야, 너 저번에 내 칼에 손 베였다고 울상이었잖아!”
“…그건 잊어.”
흑역사가 떠올라 얼굴을 붉힌 찰나였다.
벌컥.
“……또 왔네.”
“다니엘!”
“오늘 내 이름을 돌림 노래로 부르는 날이야?”
“안나도 있고, 헨리도 있고. 하아. 다 같은 내용이지?”
“제발 한 번에 오면 안 될까?”
서류를 밀었다.
처리해야 하는 서류가 한가득인데 우르르 몰려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균열. 진짜로 네가 막을 거냐?”
“어. 그렇게 한다니까?”
“후우. 너 이리 나와.”
“왜?”
“네 고집을 누가 꺾어? 그럼 하나만 내 마음대로 해.”
“뭐?”
“너 체력 좀 기르자.”
“…….”
“균열을 닫는다는 네 계획은 진짜 무계획인 거 알고 있지?”
“직접 겪지 못했으니까 무계획일 수밖에 없지.”
“안쪽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세세하게 조정한다? 이해했어. 이해한다니까? 근데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지.”
“그게 체력이다?”
“어.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면 들어가. 아니면 안 돼.”
유모처럼 고집을 부리는 단호한 태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친구 중에 가장 고집쟁이가 이렇게 나섰으니.
척.
“…엄지 보내지 마!”
“왜? 셀렌이 너무 좋은 말을 했는데?”
“맞아! 체력 길러. 나도 도울게!”
“저 뇌에 근육만 든 멍청이도 이럴 땐 도움이 되는구나!”
“…너까지 그럴래?”
벌컥.
“…제발 한 번에 와.”
“다니엘!”
벌컥.
“…하아. 다 몰려오겠지?”
“다니엘!”
벌컥.
“…….”
“다니엘!”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곧장 시장바닥처럼 변한 집무실은 왜 이렇게 큰지.
다음에는 한 명도 겨우 들어오는 집무실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다.
“좋아! 그럼 다니엘의 체력 증진 프로젝트 진행!”
“워어!”
자신들끼리 결정을 내린 열 쌍의 눈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아, 씨! 해. 한다!”
“당장 나와!”
“……우린 글렀어.”
“망했어.”
“알고 있긴 했는데…….”
“이것도 실패한다고?”
훈련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친구들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우, 우웩!”
속에 든 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팔다리가 덜덜 떨리다 못해 갓 태어난 새끼사슴처럼 쉼 없이 꺾였다.
버티는 건 오로지 의지뿐.
육체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오래? 오래? 겨우 이틀 지났거든?”
안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작 이틀 만에 모두는 한계에 달했다.
“신체강화마법을 해제한 것만으로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쓰레기로 변할 수 있어?”
“…쓰레기 같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이건 쓰레기보다 못해.”
“세상에.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어! 어린아이보다도 못한 체력이라니…. 용케 살아남았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소리칠 힘도 나지 않았다.
이십 년 같은 이틀 만에 항복을 받아 냈다.
전혀 기쁘지 않은 건 이상한 것일까.
성토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봉인한 마력을 풀었다.
쏴아아!
더없이 익숙하고 청량한 감촉이.
“후우… 이제야 살겠네.”
전신을 누비고 지나간다.
자연스럽게 걸리는 수많은 마법.
귀족이나 사용할 법한 뛰어난 마법들이 한 몸에 자리 잡았다.
“……젠장. 저 모습을 보니까, 너는 그게 낫다. 진짜로.”
벨이 분통을 터트리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내게서 마력을 빼면 무엇이 남아?”
“…부정할 수 없네.”
체력 증진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불과 이틀 만에.
날 잘 알고 있는 친우들이기에 오히려 포기가 빨랐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초인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대마법사만 몇 명이고.
소드 마스터만 몇 명인지.
주술과 대장, 연금의 극에 달한 이도 나의 친우였다.
모두는 나와 격란을 겪은 이들이었다.
이 도시가 완성되기까지 무수한 노력을 다한 이들.
그렇기에 날 너무도 잘 알았다.
“자, 쓸모없는 일을 고민하지 말고, 내가 없을 땔 대비할 준비나 하자고.”
“젠장!”
일제히 분통을 터트렸다.
대마법사는 마법의 극에 달한 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난 언제 마도사가 될까?”
하지만 마도사는 아니다.
극을 뛰어넘은 사람.
마법의 길을 온전히 걷고, 새로운 길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마법사 안나의 말에 피식 웃어 버렸다.
“그 정도면 됐지.”
“…너만 보면 허무해지는데?”
“왜 그러실까.”
“……얼마 안 남았잖아.”
“내 계산대로라면 길어야 반년이야.”
“진짜로 그동안 모든 걸 끝낼 수 있어?”
“가능해. 계산대로라면.”
“…틀릴 수도 있잖아. 이미… 몇 번이나 실패했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알잖아. 마법에 한해선 내 계산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걸. 이번엔 실패 안 해!”
“…웃기네. 너도 온갖 실패 다 겪고 성장한 거거든?”
“내가?”
“아카데미에 불 지른 거 기억 안 나?”
“또 그 이야기야? 처음으로 마법을 배울 때잖아. 나도 그 정도로 마력이 밀려들 줄은 몰랐단 말이지.”
“이래서 천재들이란.”
“너도 천재거든?”
“아무튼! 불 지른 건 사실이잖아. 아니, 폭발했지. 아예. 이 흉터가 그때 생긴 걸 잘 알 텐데?”
“……너 이러려고 내가 매번 치유해 준다는데 말린 거야?”
“그래! 최대한 우려먹어야지.”
안나가 팔을 툭 쳤다.
“…준비는 끝났어?”
“어.”
즉각적인 대꾸에 안나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어쩌면.
“만약에라도 내가 잘못된다면….”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니, 일단 그냥 들어.”
내 말에 안나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나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계획은 세웠고, 최대한의 노력은 끝마쳤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
성패는 내 손을 벗어난 셈이었다.
“퀸 마야와 상의해.”
“…다니엘.”
“알잖아. 그녀는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내 모든 걸 듣고 보고 경험한 건, 그녀밖에 없어.”
“네 후인이라도 만들겠다는 거야?”
“가능하다면….”
“불가능해.”
“그래서 내 마음이 무거워.”
“……끝까지 재수 없기는.”
안나가 눈을 흘겼다.
“많은 게 변하고 있어.”
“…빌어먹을 균열.”
“그래. 균열. 그래서 내가 막아야 해.”
“난… 왜 이렇게 약한 거야?”
“네가? 아니야. 그냥 이 사태가 강한 것뿐이야.”
균열은 어느 순간 나타났고.
이 세계의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던 우리에게까지 결단을 촉구했다.
드넓은 들판이.
깔깔대는 웃음이.
소중한 모든 것들이 흩어져 버릴 지경에 놓였다.
막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야.’
확신에 찬 직감이었다.
균열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 안에서 나오는 마력은 모두를 변질시켰다.
가만히 두면 언제고 이 세계 전부가 먹혀 버릴 터.
계획을 세우기 위해 틀어박혔던 내 결론은 하나였다.
직접.
“안이 어떤지 보고 이야기해 줄게.”
들어가서 정리하는 것.
“……다니엘.”
안나가 울컥 울음을 터트렸다.
대마법사 주제에 눈물이 많아서 큰일이었다.
“꼭… 꼭 살아 돌아와!”
“걱정하지 마. 넌 이곳이나 잘 지키고 있어.”
“걱정 마.”
“후우. 그럼 인사나 해볼까?”
여행을 가듯 가볍게 나선다.
친구들의 슬픔을 뒤로한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펼치기 위해 떠난다.
“반년 안에 꼭 나와.”
“더 늦으면 죽여 버린다.”
“죽어도 죽어!”
“히, 힘내세요! 여기… 쿠키라도….”
“크흠. 무기를 손봤네. 더 이상 손 볼 구석이 없어.”
모두의 배웅을 받은 채 걷는다.
한순간에 공간을 넘을 수 있지만, 그저 걷고 걸을 뿐이었다.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풀과 꽃이 가득하던 시절은 불과 몇 년 만에 끝을 맞이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균열.
주변을 오염시키는 기이한 파장.
그 모든 것을 없애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몇 번이고 공략을 감행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공략법은 확실해. …남은 건 시간뿐.”
반년.
친구들에게 말한 시간은 얼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겪을 시간은 고작해야 반년으로는.
“…부족하지.”
공략은 가능했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공략은 분명히 가능했다.
하지만 부족한 게 있었다.
바로 시간.
내 능력이라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공략은 가능했다.
저 균열은 ‘차원의 축’을 넘나드는 것이고, 그 안에서 나오는 ‘마기’라 정의한 것은 차원을 넘어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차원.
평생 생각해 본 적 없는 개념.
신이라 불리며 추앙받는 나였지만, 지금에 와선 진짜로 신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힘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전지전능.
“불가능하다는 게 너무 슬프네.”
그것은 불가능했다.
자신 외의 초월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자신보다 나은 이는 없었다.
그들로서도 작금의 상황은 큰 문제였다.
그 누구도 닫지 못했고.
그 누구도 막지 못한.
일종의.
“…침공. 그럼 안에서 적들과 싸우기라도 하는 건가? 하하.”
어이가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용사라도 된 것 같았다.
이리저리 뻗어 나가는 균열의 앞에 선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발길을 옮겼다.
모든 게 변한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5년이 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