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09화 (109/293)

109화

-99%의 기억 (1)

“어느 순간부터 마력이 흔들렸소. 그리고 왕의 출입이 끊겼소.”

퀘스트의 완료.

그리고 보상의 유예.

이지스는 당시를 언급하고 있었다.

“왕과 우리의 마력은 어느 정도 패턴을 같이 하고 있소.”

마녀의 마법을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그것 때문이었다.

“…아라크네.”

“맞소. 우리나 왕이나, 놈의 마력의 흐름을 상당히 닮아 버렸소.”

무수한 세월 동안 아라크네에게 이용당한 마녀.

아라크네의 마력 자체를 집어삼켜 버린 정우.

둘의 마력의 흐름이 비슷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것 아시오? 아라크네의 마력은 이상하리만큼 뛰어나오. 그래서 난 놈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소.”

“그렇다면… 누가 만들었다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소? 왕께서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을 듯하고….”

“……음. 그렇기야… 했지.”

“짐작이 아니오. 확신이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이야기를 계속해 봐.”

“왕의 출입은 끊겼으나, 모든 게 가만히 정지한 건 아니었소.”

정우가 예상한 대로 마녀의 마을 역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변화는 급격하지 않았다.

육신을 되찾았던 이전과는 달리 은근한 변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더 확실하면서도 큰 변화.

“…그렇군. 아라크네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군.”

“으음……. 맞소. 처음에는 우리 고유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소. 하지만 이전에 리암을 구하고, 그놈의 마력이 우리 모두를 휩쓸고 난 뒤로부터는….”

이지스는 자신의 손을 들어 가만히 주시했다.

“안 되더구려.”

“저도 모르게 체득해 버린 거군.”

“허허. 그렇소. 뭐, 그렇다 한들 이전보다 약해졌을 것 같지는 않소. 워낙 뛰어난 체계 아니었소? 마력의 성질과 다루는 능력만 놓고 보면… 우리의 기존보다 뛰어난 건 사실이오.”

그렇기에 마녀를 집어삼킬 수 있었다.

리암이라는 인질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아라크네가 본래부터 뛰어나지 않았다면, 마녀란 일족을 집어삼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영악하기는 하나 그리 뛰어나지 못한 지능으로 독보적인 결과물을 내버린 아라크네의 가치가 또다시 상승했다.

‘누가 만들었을까?’

그렇기에 그것을 만든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번에 왕께서 통로를 전개할 때.”

당시를 떠올린 이지스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딘지 모르게 묘한 표정의 그를 본 정우가 눈가를 좁혔다.

S급.

아니, 최소한 S급에서도 최상위권을 달리는 수준을 지닌 이지스가.

‘격정이라…….’

통로의 연결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소리였다.

“거미의 그때와 비슷했소.”

“그때?”

“왕께서 거미의 잔여 마력을 모조리 흡수했던 때 말이오.”

그때도 던전 자체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당시에는 사방팔방 뻗어 있던 거미의 마력 때문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구려.”

거미가 사라진 후.

왕마저도 출입이 사라진 이후.

약간의 걱정과 초조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그때에.

던전이 또다시 울어댔다.

거미를 없앨 때보다 더한 격정으로.

마력의 흐름은 거대했고, 그것을 이루는 물결은 촘촘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경악을 하던 이는, 오로지 이지스뿐.

일족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형태로 그저 일상생활을 즐길 따름이었다.

“일족을 배제하니 남는 건 하나뿐이더구려. 통로. 오직 나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일족의 비기.”

불현듯 떠오른 단어에 흐름을 파악해본 결과, 통로를 생성시킬 때의 흐름이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것보다 더욱 강했고, 거대했으며.

“……익숙했소. 일족의 마력은 아니지만, 더욱 거대한 마력.”

이지스의 눈이 슬쩍 감겼다.

“언제고 본 적이 있소. 왕께도 언급한 적이 있었을 것이오.”

“…그?”

“그.”

이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은 지금도 선명하게 보였다.

모든 걸 압도할 만큼의 거대한 마력.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조차 발아래 두던, 마력의 사랑과.

“존경까지 받던 자였소.”

“마력의 존경?”

“그런 표현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를 거론할 수 있겠소.”

“…하!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거지?”

“그는 모든 마법에 통달했었고, 기본을 배우면 원론을 흡수했소. 나는 그것이 두려워 그를 뒤로하였소.”

“그래서?”

“틀어박혔소. 이곳에…. 원래부터 우리 일족은 이곳에 숨어 지내긴 했지만, 그를 본 뒤로는 우리의 비기마저 빼앗길 것 같아 활동을 거의 멈췄었소.”

“그 정도라면 강제로 빼앗는 것도 가능했을 건데?”

“그는 절대 그러지 않소. 모든 것 위에 군림할 정도의 능력을 지녔으나 군림하지 않았고, 소소한 대화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였소.”

“…….”

“결국 내 질시 아니겠소.”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 뒤는 모르오. 왕도 아시다시피 우린 거미의 습격을 받았소.”

“회랑의 열쇠는 그에게 보낸 거였지.”

“그렇소. 왜 그게 왕의 손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이지스가 다시 눈을 슬쩍 떴다.

알 수 없었다.

이전까지는.

하지만 이젠.

“아닌 것 같소….”

“아니라니?”

“통로가 생성되기 전에 이곳을 진동시키던 마력은 분명히 ‘그’의 것과 닮아 있었소. 그를 연상시키는 마력이었단 말이오.”

“……!”

“열쇠가 있던 아공간. 그 소유권을 지닌 그대.”

왕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지스의 눈엔 일말의 부정적인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찬탄의 의미가 담겨있을 뿐.

“나 역시 신을 본 적이 있소.”

화제가 전환되었다.

정우는 담담히 그의 말을 들었다.

기실 그의 머릿속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상을 통해서 전생의 기억을 온전히 되찾은 거라면 모를까.

그도 아닌 일부분의.

그것도 처참하게 죽어 가던 최후의 순간만이 떠오른…….

‘최후의 순간. 왜지?’

정우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양발이 잘렸다.

두 손이 결박당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이는 대단했고.

자신에게 정확하게 비수를 꽂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

죽는 그 순간만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정우는 그것을 최후라고 여겼다.

‘왜일까.’

온전하지 않은 기억 속에서 흔치 않은 단정.

“내게 있어서 그는 신이었소. 살아있는 신이었지. 많은 이들이 그를 신처럼 여겼고, 그의 능력은 진실로 초월자의 면모 그대로였소. 온갖 이적이 난무했으니 말이오.”

“……그래서 그를 택했다?”

“왕께서 공명을 습득할 때, 나는 오래 걸릴 줄 알았소.”

그와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이지스의 예상을 뛰어넘고.

깨어진 그릇에 남은 잔여물과 같은 처참할 정도의 마력만으로도.

“공명을 손쉽게 이루었고, 회랑의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했으며. …일족의 비기, 통로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했소.”

가능한 일일까?

이지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한, 그게 가능한 건 한 명뿐이었소. 그렇기에 왕의 성장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었소. 그와 비슷한 이가 또 있을 줄은 몰랐었기에….”

“음…….”

“신. 그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었소. 그저 던전의 ‘공명’의 익숙함이, 왕의 것이기 때문이라 치부했소.”

“던전의 공명?”

“던전 전체가 울어댔으니 공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던전의 공명.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직감을 가져다주는 단어였다.

저 단어는.

‘나와 관련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회전한다.

여러 정보가 몰려들어 정리된다.

뒤엉킨 자료.

그 방점을 찍는 건 이지스의 말이었다.

“혹 왕은… 그가 아니오?”

* * *

어느 정도의 가정.

이젠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결론.

‘그가 나인가?’

확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정우는 손에 들린 책의 표지를 보았다.

< 신이 된 사내 >

“……대체 이 네이밍 센스는… 종족 특성인 건가?”

삼류 소설의 제목 같은 느낌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한숨이 절로 나오는 제목과는 달리.

사락.

책장 안에 적힌 내용은 그야말로 알차기 그지없었다.

청탑의 그는 천재라는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필자는 그의 업적을 기록하며, 직접 겪은 그에 대해 서술하기를 주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신이기 때문에.

혹여나 이 내용이 후대에 그저 신화처럼 남을까 염려하기 때문에.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이렇게 기술한 거지?”

호기심이 생겼다.

빠르게 책을 읽었다.

정우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그였군…. 슬라임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

슬라임에 대해서 알아볼 때 적혀 있었던 인물이었다.

모체와 슬라임의 여러 능력에 대해 연구한 인물.

청탑의 마스터.

“다니엘.”

그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 권능, 회상(回想)이 사용……. ]

[ 권능, 회상(回想)을 사용……. ]

[ 권능, 회상(回想)의 사용……. ]

“……!”

정우는 눈을 부릅떴다.

비슷한 말.

하지만 다른 말.

세 종류의 메시지가 연이어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하고 점멸했다.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왜지?’

권능은 발현되었다.

시야가 흐릿하게 변했고.

무언가를 떠올릴 만한 광경이 생겨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컴퓨터에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회랑 때문이군.’

고민하던 정우는 답을 내렸다.

회랑.

“이 장소 때문이야.”

시스템의 영향이 극도로 줄어든 것 같았다.

정우는 곧장 접속을 해제했다.

수많은 책이 가득 담긴 순백의 도서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전히 애매한 표정의 레베카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나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책을 열람한 뒤에야 <신이 된 사내>를 펼쳤다.

‘그래도 시간이 좀 흘렀을 줄 알았는데…….’

-어라? 접속이 안 됐어요?

메아리가 물었다.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흐른 정도가 아니에요. 한 2초? 어라? 시간이 이 정도나 차이가 난다고요?

메아리는 정우의 질문에서 이미 그가 회랑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2초?”

정우는 화들짝 놀랐다.

몇 시간이나 회랑에서 머물렀다.

“……맞아요. 아주 짧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흐른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정우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것을 내뱉었다.

아주, 조용히.

“시간의 축.”

“네?”

-에? 그거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데요.

사위는 조용했다.

그러나 레베카는 듣지 못했고, 속마음까지 들을 수 있는 메아리는 들었다.

그 정도로 작은 중얼거림.

그러나 또다시 세계가 변한다.

홀로그램처럼, 현재의 시야에 무언가가 덧씌워진다.

파지직거리며 나타났다가, 장면이 전환되듯 흩어져 뭉치기를 반복.

정우의 눈빛이 일순간 몽롱해졌다.

[ 권능, 회상(回想)이 사용됩니다. ]

“…왜 그걸…….”

누군가의 음성.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시나요?”

누군가의 물음.

“너밖에 없어? 왜 모든 걸 너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는 거냐!”

누군가의 외침.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 하나같이 우려는 표하는.

한 궁전에서.

1인칭 시야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게 나라는 게 오히려 다행인 셈이지. 고생? 고난? 괜찮아. 그걸로 이 세계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수더분한 말.

진정으로 괜찮다고 여기는 말투.

“다니엘!”

누군가의 외침에 짓는 희미한 웃음까지.

정신이 훅하고 빨려 들어가듯, 희미했던 세계가 선명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