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07화 (107/293)

107화

-변화, 진화 (3)

익숙해진다.

안정화를 겪었을 때와 비슷했다.

마력은 차분해졌고.

보다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떠오른 기억과.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읊어.’

-제 기억으로는…….

메아리의 조언이 어울려 전혀 새로운 경지로 안내했다.

이전의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경지가 순식간에 손아귀에 잡혔다.

한번 잡은 경지는 금방 체득이 되었고.

[ 권능, ‘마력체(魔力體)’를 각인하였습니다. ]

기어이 새로운 경지를 손에 넣어 버렸다.

새로운 권능의 획득.

처음만 어렵다는 뭇 격언처럼.

‘변한다.’

정우는 자신의 변화를 체감했다.

‘아니, 진화한다.’

그것은 진화에 가까웠다.

십 수의 적을 앞에 두고 승기를 잡았으며.

순간적으로 떠올린 결계사의 결계를 변형시켜 주변을 장악했다.

그 결과.

쿠웅!

묵직한 충격과 함께 도주하려던 우두머리가 뒤로 나뒹군다.

이곳은.

‘나의 영역.’

이지스가 언제고 언급한 적이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영토였다.

그와 동시에.

정우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영역과 영역.

두 개의 영역을 잇는, 하나의 완성된 다리를.

‘통로….’

알고 있음을.

“하아. 이제야 좀 알겠군.”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과 함께 공기가 진동한다.

성인의 상체보다 더 커진 통로의 흐름을 읽었다.

어디선가 뚝 끊겨 버린 그것의 너머로.

‘익숙한 흐름이다.’

익숙해진 그것이 잡혔다.

이어질 수 없었던 그것이 이어지고.

하나의 정경이 드러난다.

통로의 너머.

“……이지스.”

환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며 웃고 있는 이지스의 모습이.

“허허. 이게 가능한 것이구려.”

정확하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

정우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던전과 게이트.

‘드, 드디어……!’

G급 던전과 연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깨달았다.

그 사실에 고무된 정우의 생각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

전투 중이라는 것도.

적이 코앞에 있다는 것도.

한순간에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남는 단 하나의 사실.

‘아버지…!’

구할 수 있다.

순간적인 환희를 감추지 못한 정우가 정신을 차린 것은.

쐐애액!

날카로운 예기를 담은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가 코앞으로 접근한 적의 머리를 꿰뚫으면서였다.

두껍고 긴 대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구를 착용한 채, 웃는 낯빛으로 돌아보는 인상이 익숙했다.

여기엔 있을 수 없는 존재.

“……레베카?”

마녀.

일족의 구출에 참여했던, 마지막 생존자.

그녀가 지구에 등장한 것이다.

싱긋 웃어 보인 레베카는 일언반구 없이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더욱 경계를 품고 있는.

쏴아아!

적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는다.

그간 어떠한 성장을 거친 것인지, 말도 안 될 정도의 농밀한 살기와 마력이 적들을 압박했다.

처억!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검을 수평으로 내민 레베카가.

“벱니다.”

스윽!

검을 휘둘렀다.

“……뭐, 말도…… 안 돼!”

순간적으로 쫙 끼치는 소름에 우두머리가 경악했다.

그나마 일격의 단편이라도 보았기 때문.

반응도 채 하지 못한 채.

서걱!

스스로의 귀에만 들리는 기이한 소음과 함께.

털썩.

모두 쓰러지고야 말았다.

적 모두를 일격에 베어 버린 레베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정우에게 인사했다.

“경호를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왕이여.”

그런 그녀를 멍하니 보던 정우의 표정이

“……경호?”

* * *

딸랑.

유리잔 안의 얼음이 빙글 회전했다.

술잔을 굴린 사내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경직되어 있었다.

“……이상하군.”

벌써 몇 주가 지났다.

기이한 전화를 받고 일본까지 온 앤드류는 비밀리에 강세기의 주변을 맴돌았다.

물론, 그가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강세기의 주변이라고 해봤자, 그와 관련된 이들을 파고드는 게 전부였고.

강세기는 일본을 대표하는 플레이어 중 하나로, 무려 S급의 플레이어였으니까.

하지만 앤드류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타소가레 길드의 구조는 확실히 특이해.”

길드가 생성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길드장 자체가 뛰어난 플레이어일 경우.

능력을 인정받아 사람이 모였고.

“…그건 아닙니다. 엄연히 타소가레 길드는 일본의 작품이니까요.”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지.”

“후원이나 지원에 의해 만들어진 길드와 형태는 비슷한데….”

“좀 다르죠….”

“그러게. 허 참.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다른 하나는 후원이나 지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기업이 필요에 의해 길드를 창설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타소가레 길드의 탄생은 둘의 복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정확하게는 일본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 길드가 맞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세기인데.”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길드조차 길드장의 능력이 뛰어나면, 오히려 집어삼켜지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미국에선 이와 같은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앤드류가 관리하는 길드 역시 기업에서 만들었다가 플레이어의 손에 떨어지는 일들이 발생했었다.

지금은 법이 바뀌고, 나름대로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서 그런 일은 드물지만.

강세기가 일본으로 온 것은 초창기 때.

아직 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의 일이었다.

강세기는 일본에 귀화하며 한국인 태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지원을 받았다.

“그런 것치고는 주변이 애매해. 아니, 이상해.”

앤드류가 관심을 둔 부분이 바로 그의 주변이었다.

S급에다가 무려 바람술사와 동일선상에 놓이는 국민 영웅이었다.

물론, 부정적인 여론도 존재했지만, 그가 존재함으로 일본이 얻은 이득은 어마어마했다.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강세기였지만, 그의 능력은 분명히 걸출했다.

하지만 웬걸.

막상 관심을 가지고 파고드니, 그의 주변엔 극우파들만 가득했다.

혐한은 기본이고.

극우 사상이 팽배한.

오래된 고질병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병폐의 산물들.

그런 이들이 강세기의 주변에 가득했다.

“S급을 우습게 본 것도 아니고, 강세기의 영향력을 보면 타소가레 길드는 오히려 강세기의 손아귀에 떨어져야 맞아.”

“으음….”

“로렌.”

“네. 협회장님.”

“자넨 어떻게 생각하지?”

“…….”

로렌이 잠시 침묵했다.

답은 이미 내렸다.

다만 이게 옳은 걸지 의문이 들 뿐.

자신이 생각한 걸 앤드류가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저 확인 작업일 뿐이다.

앞으로의 노선에 대한.

“둘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둘 중 하나라….”

“강세기가 힘만 센 멍청이든가.”

“그건 아닐 걸세. 그런 정교한 능력은 힘만 강하다고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야. 실제로 한국의 유지석 플레이어는 강세기가 두뇌가 뛰어나다고 평가했었어. 나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고.”

“그랬습니까? 그럼 그건 아니겠군요.”

“나머지 하나는?”

“인질.”

즉답이었다.

“음…. 인질이라.”

앤드류가 턱을 쓸었다.

그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하지만 여러 생각 끝에 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인질로 사람을 옭아매는 건 한시적이었다.

가장 확실한 건.

“본인이지.”

“…네?”

본인을 사로잡는 것.

앤드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세기가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소식을 접한 유지석의 표정을.

그럴 리가 없다.

그는 그런 생각으로 현실을 부정했었다.

당시의 유지석은 B급이었지만, 지금보다 더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지구 전역을 살펴도 그보다 더 능수능란하게 협회를 운영하는 사람은 전무했다.

그런 이가.

‘과연 친구라는 관계 때문에 사람을 잘못 볼까?’

앤드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에는 확고했던 강세기의 발언.

일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원에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야만 했다.

자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했던 유지석은 애당초 영입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틈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내가 강세기를 영입했다면, 이 정도로 강세기의 주변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영입을 위해 파악했던 수많은 자료를 떠올렸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강세기는 지금도 일본을 대표하는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무능력하게도 부길드장부터 휘하의 길드원까지.

거의 대부분의 인력이 외부에서 흘러 들어왔다.

아니.

‘오히려 배정에 가깝지.’

앤드류는 생각을 정정했다.

강세기가 직접 사람을 뽑은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딱 두 명.

강세기가 직접 뽑은 인원은 그 커다란 길드에서도 두 명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둘은 곧장 한직에 배정되었다.

앤드류는 이 사실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집중했다.

‘왜 이 사실이 이제야 알려진 거지?’

강세기의 주변은 이상했다.

오히려 바지사장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말이 돼? S급이잖아.’

플레이어의 세계에선 등급이 곧 힘이었고, 능력이 곧 증명이었다.

강세기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을 증명해 낸 거인이었다.

미국 플레이어 협회는 자국과 타국의 플레이어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모았고.

나름대로 순위를 매겨 두었다.

강세기는 그 순위에서도 21위를 기록하는 인물이었다.

전 세계의 S급 플레이어의 수가 62명이라는 것을 놓고 보면, 중상위권에 속했다.

하지만 그의 순위가 일본 내에서만 활동하는 그의 활동 범위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앤드류는, 그의 실력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한 것이다.

그만한 거인이 스스로 손발을 옭아매고 있는 이 상황이.

‘배정된 인물들을 가만히 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군.’

그렇기에 나온 결론은 충격적이다.

하나는 강세기가 진심으로 일본에 충성을 다한다는 것.

‘…그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비단 느낌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온 연락.

굳이 사용한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단어가 앤드류의 뇌리에 남았다.

그렇기에 남은 건 하나뿐.

‘족쇄. 혹은 제약. 어떠한 것이든 간에… 자의가 아니란 거지.’

앤드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입국이 언제까지 비밀로 유지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길드장과 주변의 인물부터 파고들어야겠군.’

“로렌.”

“네.”

“한국 플레이어 협회장과 연락을 취하고 싶어.”

“……!”

로렌의 눈이 커졌다.

뜬금없이 한국이 등장한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강세기에 대해서 파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앤드류가 왜 비밀리에 일본에 입국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뭔가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좋지 않은 두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뭘까….’

그 중심엔 한국의 변절자 강세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로렌은 그 진상이 매우 궁금했지만, 차분히 고개를 숙인 후 대답했다.

“연락을 취해 놓겠습니다.”

“부탁하지.”

로렌이 물러난 방은 다시 적막해졌다.

하지만 앤드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쩌면….’

생각을 이어 가던 앤드류가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가 일본을 찾은 건 비단 강세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이상한 점이 떠오르긴 했지만.

이왕지사 중요한 한 인물의 속마음을 알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브라운이 일본을 선택한 이유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가 아는 한, 닥터 브라운은 절대 일본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었다.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이 플레이어 세계에서도 우뚝 서기를 바라던 사람이었으니까.

“선택이라면 존중할 테지만….”

앤드류가 잔을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스위치라도 켜진 것처럼 앤드류의 안광 역시 번들거린다.

“강제였다면….”

뒷말을 삼킨 앤드류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일본의 수상 관저가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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