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은밀한 일격(4)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돌진.
‘놓쳤다!’
정우는 상대의 움직임을 놓쳤다.
하지만 당황하여 두리번거리는 어리숙한 짓은 하지 않았다.
곧장 블링크를 시전.
자리를 이탈했다.
콰앙!
간발의 차이로 정우가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아직도 후끈한 열기와 더불어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폭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폭발이었지만.
‘……!’
정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김훈의 손에 들린 건 검이 아니었다.
한 쌍의 도끼.
핏빛의 오러까지 맺힌 그것은 숨길 수 없는 흉흉함으로 정우를 압박하고 있었다.
덧씌우기를 벗어 버린 김훈은 모습까지 바뀌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쌍해 보이는 외모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꿰찬 건.
맹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도드라진 탄탄한 근육과.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스킨헤드의 흑인이었다.
정우는 어렵지 않게 상대를 알아보았다.
“……도살자.”
도살자는 씨익 웃었다.
악의를 담아.
[ 악의(惡意)를 각성하였습니다. ]
뒤늦게 스킬이 발동했다.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덧씌우기가… 사람의 외형조차 바꿀 수 있었다니.’
제임스 밀러가 파악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버전이었다.
그야말로 진화에 가까운 성능.
흉악한 덩치의 흑인조차 한국인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정우는 경악을 참지 못했다.
‘…이건, 위험하다.’
이것으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부정적인 결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원래라면 더 예전에 봤어야 했었는데….”
뜬금없이 도살자가 말을 꺼냈다.
퍼뜩 떠오르는 상황이 있었다.
“결계사를 말하는 거군.”
“생각보다 몸값이 비싸졌더군. 지금도 널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 할 정도로.”
무슨 이유에선지 도살자는 대화를 시도했다.
정우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어떻게 살아남았지?”
도살자는 진심으로 그것이 궁금했다.
그는 정우를 죽이고 싶었다.
정우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고, 자신의 권한까지 포기하면서 정우에 대한 적의를 품었었다.
보통이라면 상대조차 되지 않을, 낮은 등급의 플레이어를 향해서.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도살자의 행동에 정신을 집중할 따름이었다.
단 한 번의 일격.
그것으로 상대의 위험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중을 놓치면… 죽는다.’
내심 자신이 있었다.
그 검사를 다시 만나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란,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A급의 벽은 높았다.
블링크가 아니었다면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대답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휘잉.
도끼가 날카로운 파공성을 만들어 내며 그의 손에서 회전했다.
폭발의 여파로 일렁이는 불꽃도, 도살자의 마력에 밀려 힘을 잃고 반대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렇기에.
‘…더 어둡다.’
정우는 도살자의 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인종 차별이 아니다.
밤의 흑인은 정말로 보이지가 않았다.
‘마력을 집중해야 해.’
조금 더 촘촘히.
거미줄을 펼치고 조인다.
“좋다.”
어둠 속에서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팔다리를 베어 내고, 듣기로 하지.”
오싹!
정우가 땅을 박찼다.
* * *
플레이어로서의 마법사는 의외로 평가가 박했다.
공격력만큼은 일품이었지만, 공격에 대한 평가가 뛰어난 건 몬스터에 국한된 일이었다.
적어도 대인전에 한에선.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직군.’
그 사실은 너무도 공공연했다.
막대한 공격력과 비례하는 마력 소모.
그저 휘두르면 그만일 검과는 달리 스킬이 시전되기 전까지의 약간의 딜레이는 마법사의 취약점이라고 여겨졌다.
물론, 바람술사나 대마법사 같은 최상위 플레이어의 경우에는 궤를 달리했지만.
적어도 B급 이하의 마법사를 두려워하는 검사는 없었다.
도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웅, 콰드드득!
도끼질 한 방에 반쯤 주저앉은 건물의 벽이 케이크처럼 움푹 사라진다.
모든 것을 분쇄하는 오러가 광풍처럼 밀려들었다.
하물며 몇 급이나 차이가 나는 마법사 따위야, 감흥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라면.
‘어떻게 피하는 거냐!’
그래야 옳았다.
도살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습게 보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저 여흥이라고 여기며, ‘수르트’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며.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지’ 고민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그런 여러 마음이 사라진 뒤 남은 감정은 단 하나.
‘죽인다!’
허공을 빙글 돌아 두 개의 도끼를 교차시킨다.
‘엑스 크러시!’
쐐액!
허공을 찢으며 쇄도한 일격이 허무하게 애꿎은 지면만 부쉈다.
“하아, 하아……!”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끊이질, 않았다.
도살자는 그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죽여, 버린다.”
도살자의 눈이 시뻘게졌다.
표현이 아니라 진정으로 붉게 물들었다.
[ 악의(惡意)를 각성하였습니다. ]
또다시 떠오르는 메시지.
숨을 몰아쉬면서도 정우는 도살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도살자의 일격은 강렬했고, 수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예리함이 있었다.
정우는 그것이 화가 났다.
놈의 손에 담긴 경험이 어떻게 쌓여 온 것인지 알기에.
‘…기회를 노려야 해.’
도살자의 스산한 눈빛을 보며 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간 체력엔 자신이 있었던 정우였다.
하지만 도살자의 일격을 피하느라 온 힘을 다해야 했고.
‘마력 소모도 상당해.’
벌써 두 번이나 마력회복물약을 마셨다.
끝도 없는 매직 미사일과 그래비티, 염동에 블링크.
간단한 마법과 함께 물의 정령까지 전부 사용해야 했다.
그와 더불어.
아라크네의 마력과 언데드의 마력을 종합하여 사용해야 했기에.
‘이대로는 안 된다.’
정우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피할 수 있었던 건, 도살자의 공격에 담긴 미약한 망설임 때문이었다.
‘몸값이 비싸졌다고 그랬지. 아마 수르트 말일 거야.’
A급의 도살자가 S급의 수르트보다 영향력이 클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진가?’
죽인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농밀한 살기가 심장을 옥죄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와 함께.
‘먼저 움직인다!’
정우의 손에서 다시 한번 매직 미사일이 발현되었다.
수십 개의 마법이.
‘한 번 더!’
빼곡히 생겨나 허공을 수놓았다.
“…….”
입조차 열지 않은 싸늘한 표정의 도살자의 도끼가 휘둘러진다.
춤을 추는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는 도끼의 오러가 매직 미사일을 격파해 나갔다.
빙글!
쩌적, 쩌어억!
“……!”
그러면서도 날린 일격에 정우가 기겁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며 품에서 단검을 꺼내 던졌다.
매직 미사일 사이로 날아드는 단검이.
“…이따위 잔재주를!”
정우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도살자의 주변에서 맴돌다가.
휘릭.
일정한 간격을 만들며 부유했다.
“……쿨럭.”
마른기침을 내뱉은 정우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쩌엉!
거대한 종이 치는 듯한 커다란 울림이 생겨났다.
움찔.
도살자의 몸이 덜컥 멎었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전투가 시작한 후 발생한 첫 틈이었다.
울컥.
몸속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무시하며.
마법을 사용한다.
정우가 택한 마법은 공격 마법이 아니었다.
‘약화!’
저주.
공명을 거치고, 마법진의 효능을 빌어 가해진 저주가 겨우 도살자의 몸에 닿았다.
“……!”
도살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간의 경험으로 자신의 이상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감히… 내 몸에!”
도살자에게 있어서 정우는 쥐였다.
그 쥐가 얄밉게도 자신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지만.
그 조악한 앞니로 달려들어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도살자가 움직였다.
여전히 신속한 움직임.
‘……보인다.’
그럼에도 정우는 선이 되어 달려드는 도살자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폭증한 마력.
보다 강력해진 일격이 눈에 보였다.
허벅지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수축했다.
그리고 팽창.
파앙!
옆으로 몸을 날리자마자 조금 전까지 정우가 있던 자리가 폭사했다.
비산하는 아스팔트 잔해.
매캐한 냄새를 파고드는 진한 살의의 일격에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서걱!
어깨가 살짝 베였다.
종아리가 비명을 질렀다.
투웅, 다시금 피하는 정우.
횡으로 그어지는 도끼를 피하자.
‘위!’
전신을 반으로 쪼갤 기세로 도끼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블링크!’
다급히 마법을 시전했지만 도살자의 도끼의 속도는 엄청났다.
‘……흘린다!’
사라지기도 전에 다가온 도끼를 향해, 정우는 지팡이를 기울여 들었다.
‘오러!’
다급히 부여되는 오러.
쩌억!
“……흡!”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충격이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파고들었다.
가각!
시야가 바뀐다.
짧은 거리의 공간 이동에 성공하자마자 정우의 입에서 왈칵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뚝, 뚜욱.
어둠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베어 버릴 생각으로 그은 공격조차 피해 내자 도살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몇 번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마법사는 까다롭지 않다.
정우의 마법이 유독 다양하고.
‘저 빌어먹을 공간 이동!’
속으로 놀람을 금치 못했던 공간 이동이라는 패를 지니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놈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품었을 때부터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도살자는 순간적으로 수르트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에게 정우에 대한 살의를 없애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
다른 명령을 내렸을 뿐, 먹잇감에게서 손을 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박쥐의 보호 말이다.
그것의 실패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칠 걸 생각하지도 못했고, 설마하니 징벌의 처녀가 직접 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아예 없었으니까.
막상 박쥐를 없앤 이가 징벌의 처녀가 아니라 한정우라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뿐.
철원으로의 접근을 막으라는 지시에 그는 즉각 판단을 내렸다.
더불어 한정우를 밖으로 꿰어 내어 죽일 마음을 품었다.
적어도 A급 이상을 죽일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장소로 안내했고.
폭탄을 터트렸다.
수르트의 질책을 받겠지만, 자신 역시 나름대로 협회에서는 끈이 있는 사람이었다.
죽지는 않을 거다.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정우는 살았고.
자신의 공격을 피하며 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도살자(Slaughterer)의 손에서?’
왜 도살자란 이명이 붙었는지.
왜 미국 플레이어 협회에서 자신에게 막대한 현상금을 걸며 잡으려고 노력했는지.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각혈하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정우의 모습이 기이했다.
등급을 뛰어넘는 실력.
‘과연 재능강탈자 수르트의 눈에 든 천재란 말이냐!’
도살자가 으르렁거렸다.
휘청.
피를 토한 정우가 한 차례 휘청거렸다.
싸할 정도로 몸에 힘이 빠졌다.
눈앞이 뿌예지며,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생각보다 상처가, 심하다.’
특히 어깨의 상처는 타들어 가는 통증을 유발했다.
마력을 움직여 상처를 감싸자 피가 멎고 통증이 약화되었지만.
‘…큰일이군.’
온전한 상태의 도살자와는 달리 자신의 몸은 처참했다.
문득 그런 와중에 정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과거의 기억.
온전하지 않은 회상의 결과물에서의 자신은 비록 다리가 잘리고 팔이 묶였다지만.
‘패배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특별히 패배한 기억은 없었다.
온전하지 않은 과거와 더불어 각성한 기억의 순간만이 유일한 패배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왠지 그때가 떠올랐다.
그만큼 상황은 좋지 못했다.
차라리 도망을 쳤다면?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김훈이라는 거죽을 쓴 인물이 A급의 도살자라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더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잡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빌런이라는 괴물들 앞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자세를 갖추는 정우.
그런 정우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 도살자.
기묘한 짧은 대치는.
갑작스러운 변화로 끝나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