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03화 (103/293)

103화

-은밀한 일격 (3)

“그거…… ‘빌런’ 습격 사건 아니었나요?”

“…어? 알고 계신가요?”

정우는 뒷목이 서늘해졌다.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기도 했다.

빌런 습격 사건.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벌어진 테러.

‘뿔’이란 걸 연구하고 있는 북한의 연구원을 납치하기 위해 자행된.

‘도살자!’

유서린에게서 들은 ‘테러 사건’.

거기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인원이란 소리에 정우는 충격을 받았다.

도살자의 습격 사건이 뱀파이어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정우는 김훈이 피해자가 된 사실이 따로 보이지 않았다.

“보고…했나요?”

“아뇨. 안 물어봐서….”

“제가 직접 유서린 플레이어에게 말하죠.”

“아마 신상 파악하다 보면 알지 않을까요?”

“잠시만요.”

정우는 자리를 옮겼다.

유서린과 연락을 취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녀 역시 심상치 않은 연결 고리를 감지했다.

-제대로 파헤쳐 봐야겠어요.

북한의 리 박사 납치를 제외하더라도 움직인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정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은 금방 끝났다.

하지만 고민은 지금부터였다.

가뜩이나 복잡하던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도살자는 리 박사 납치 테러 사건의 실행자였다.

한국에 잠입해 있었던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리 박사로부터 들은 정황 역시 동일했다.

습격한 인원의 인적 사항이 도살자와 함께 움직이는 이들로 파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잠적.

협회는 리 박사의 납치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분류했고, 경계를 강화했다.

그들의 침입로를 역추적하여 도피처도 새로 발견했다.

그럼에도 발견에 실패했다.

그런 상황에서 뱀파이어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소리는.

‘다른 팀이 있어.’

따로 들리지가 않았다.

고흥도 그렇고, 이번에 간 사천도 그렇고.

서울과 거리가 먼 지역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

국가의 모든 행정과 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몰리다 보니 지방이 낙후되기 시작한 것의 여파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우의 심각한 표정을 본 김훈이 눈치를 보았다.

“김훈 플레이어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네요. 고마워요.”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요, 뭐.”

김훈이 볼을 긁적였다.

“살아서 다행이에요.”

정우의 말에 김훈이 한숨과 함께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두 번이나 위험을 겪었다는 말에 정우 역시 그를 토닥였다.

“아, 맞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김훈이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고 보면… 잠깐 정신이 들었었어요.”

“정신이?”

“네. 이제야 기억이 좀 나네요. 머리가 멍했었는데….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죽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도망을 치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김훈은 도주에 실패했다.

“인적이 드문 장소 같더라고요. 임시 거처는 아니고… 아예 휴식도 가능한 거처인 것 같던데요…. 거점이라는 말도 들은 것 같고…….”

하지만 정신이 들었을 때의 상황만큼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휴식이 가능한 거처면 중요한 정보였다.

“아씨, 왜 까먹고 있었지?”

김훈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조금만 더 가면 서울을 벗어난다고 했어요. 광주 쪽이라고 했었나, 그랬던 것 같아요!”

정우가 눈을 빛냈다.

단서를 잡았다.

뱀파이어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빌런을 쫓는 것도 중요했다.

유서린에게서 들은 도살자의 수준은 A급.

B급이라고 알려졌던 이전보다 강해진 걸 보면, 빌런 역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가 중얼거렸다.

“…한번 확인해 볼까?”

“잠깐이지만 본 광경이 있어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훈까지도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도와 줘요.”

“그럼요! 절 살려줬는데 그거 하나 못 도와 줄까 봐요!”

김훈이 반색하며 소매를 걷었다.

“이동하죠.”

내친김이었다.

정우는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빌런과 뱀파이어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었으니까.

유서린도 동감했다.

-사람을 붙여 줄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철원에 갈 인원만 추려 줘요.”

의복 따위를 정비하던 김훈의 고개가 돌아갔다.

정우의 통화 내용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정우가 대화를 끝마치고 다가왔을 때, 김훈이 은근히 물었다.

“…혹시 철원에 뭐 있어요?”

“…왜요?”

“아니, 제가 철원에서 군대를 나왔거든요. 아시다시피 플레이어가 생겨나고 군대가 와해…….”

군대를 나온 걸 억울해하는 그의 말에 정우는 피식 웃었다.

그 중엔 은근히 귀를 자극하는 단어도 있었다.

“백마고지라고… 와. 징그러울 정도로 그 근처에서 산도 타고 전투 훈련도 하면서….”

“백마고지? 거기에 대해서 잘 아나요?”

“말도 말아요. 적어도 벙커나 은신처는 빠삭해요. 으으.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온다니까요?”

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협회의 지원으로 편하게 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도를 살펴서 대략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장소를 선별해 놨기에, 진행은 무리가 없었다.

둘은 차에서 내려 여러 지역을 살폈다.

딱히 도드라지는 장소는 없었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

다시 밤이 도래했을 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일 다시 와야겠네요.”

정우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

김훈의 눈이 커졌다.

“여기… 여기인 거 같은데요?”

주변과는 약간 동떨어진 오래된 상가 건물.

주변을 살펴보던 김훈이 정우를 돌아보았다.

정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마력이 먼저 건물 안을 샅샅이 훑었다.

툭.

“……!”

바닥에서 미약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정우는 김훈을 돌아보았다.

“뒤로 물러나 계세요.”

“에? 아, 아뇨. 저도 같이….”

“아니에요. 차라리 주변을 경계해 줘요.”

김훈이 도움이 될 정도의 능력자라면 모를까, 수준이 뛰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치유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마력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정우는 조심하라는 김훈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건물로 향했다.

1, 2층의 상가.

3층의 가정집으로 보이는 흔한 상가 주택 건물이었지만.

‘아무도 없다는 거지.’

마력뿐만이 아니다.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적기처럼 여겨졌다.

‘파악만 한다. 자세한 건… 내일, 협회 직원들에게 맡기면 돼.’

원래는 지금부터 협회 직원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빌런에게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연이은 피해자.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 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니,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저벅.

건물은 잠겨 있었다.

하지만 반쯤 녹이 슬어 있는 자물쇠를 어렵지 않게 뜯어 내자.

끼익.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아니라 1층의 상가로 들어온 이유가 눈에 보였다.

여러 잡다한 집기 사이에 보이는.

‘계단.’

새로운 계단.

그게 마력의 흐름을 건드린 반발력의 정체였다.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간 정우가 계단에 설치된 스킬의 패턴을 파악했다.

다행히 어렵지 않은, 침입자 파악 용도의 알람 스킬이었다.

‘해제하고 안을 파악할까? 아니면… 여기서 물러날까?’

유서린에게 연락을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플레이어들을 보내 줄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는.

‘건드리지 말고, 제대로 파악하자.’

혹시라도 빌런을 놓칠까 봐 염려가 되어 뒤로 물러나는 걸 택했다.

한 명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불행히도 난 전문가는 아니니까.’

추적과 탐색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게 결정한 정우가 몸을 돌렸다.

차라리 빨리 지원을 요청할 생각으로, 문으로 향하고 있던 그때.

스티커와 먼지로 더러워진 상가의 창 너머로.

가만히 서서 이쪽을 주시하는 김훈의 모습이 보였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와 동시에.

후욱!

“……!”

전기가 차단된 전등이 꺼지듯, 마력이 크게 흔들려 흩어졌다.

‘……디스펠!’

띠, 띠- 띠!

경악도 잠시.

돌연 뒤쪽에서 타이머 소리가 들렸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폭탄?”

보이는 것은 2초도 채 남지 않은 타이머의 폭탄.

경악도 잠시, 빠르게 줄어든 숫자에 정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1초.

퍼어어엉, 콰아아앙!

쿠르릉, 콰콰콰콰쾅!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던 폭탄이 일제히 터졌다.

* * *

“……후우.”

지축이 울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김훈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잘 타들어 가는군….”

건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반 자체가 무너져 내릴 정도의 폭발을 보면서도 김훈은 태연했다.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정우를 제 손으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지시는 정말 급박하게 내려왔다.

징벌의 처녀가 움직이니, 위장을 하라는 지시가.

판단은 빨랐고 실행은 신속했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거꾸로 매달렸다.

죽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이 껍데기와는 달리, 그는 강대한 생명력을 보유한 A급 플레이어였으니까.

유서린에게 치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았기에, 보다 확실하게 상처를 만들었다.

그 결과, 그는 자연스럽게 생존자이자 목격자로 적의 옆에 안착했다.

한정우의 마지막은 화려했다.

영웅도 아닌, 고작해야 하급 플레이어에게 사용하기엔, 너무 많은 양의 폭탄이었지만.

“씹어 먹지 못할 바엔, 차라리 낫다.”

그는 막힌 속이 트이는 것 같은 기분에 미소를 지었다.

마력을 흐트러트려 버리는 장치까지 작동되었다.

“살아날 확률이 없지.”

마력이 없는 플레이어는 그저 신체 능력이 우수한 인간에 불과했다.

저 정도 폭탄은 만전의 상태인 자신조차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우가 들어간 건물 근처의 건물 역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끝이군.”

그는 몸을 돌렸다.

늦은 밤.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인물치고는 밝은 표정으로 걷던 그가.

“……!”

피융!

날카로운 파공성에 다급히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벌떼가 울었다.

웅웅, 우우우웅!

끝도 없이 생겨나는 소음.

그의 얼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한정우?”

죽었으리라 확신한 사람이 자신을 노려보며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벌떼가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다.

‘많다!’

마흔에 달하는 매직 미사일.

수십 명의 궁수가 제각각 화살을 쏜 것처럼 어지럽게 접근하는 그것들을 본 김훈이 빠득,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다.

파앙!

매직 미사일을 가른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정우의 수준이 확실히 연락책에게 들었던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그의 흔들리던 마력이 순간적으로 안정을 되찾는다.

풍차처럼 검을 휘두른 그의 눈이 타올랐다.

왜 자신을 공격한 거냐고, 속이지 않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이, 잠깐의 눈속임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서늘하기만 했으니까.

그는 기분이 팍 상했다.

“…감히, 나한테 그따위 시선을 보내다니.”

저벅.

정우가 한 발 다가왔다.

그는 자세를 잡았다.

그런 그의 귀에 차가운 정우의 음성이 들렸다.

“……왜 몰랐을까.”

저벅.

“흔들리는 마력.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패턴.”

박쥐로 인해 입은 피해의 여파인 줄 알았다.

“어디선가 봤었다는 걸, 기억해 냈어야 했는데….”

저벅.

정우가 다가온다.

일정한 거리에서 멈춰선 정우가 김훈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물었다.

“……덧씌우기. 넌… 누구냐!”

정우의 그 말에 김훈의 입가가 비틀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 손으로 처리할 걸 그랬군.”

그렇게 말한 김훈이 허벅지에서 무언가를 뜯어 낸다.

부웅-!

그와 동시에 마력이 공기를 밀어 낸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난폭한 마력이었다.

그런 난폭함이 담긴 눈빛으로, 그가 정우를 향해 웃었다.

“고맙군. 살아남아 줘서.”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을 내뱉은 그의 신형이 돌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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