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02화 (102/293)

102화

-은밀한 일격 (2)

김훈을 필두로 몇 명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도움을 준 사람은 김훈이 유일했다.

고통에 발광하느라 저주를 걸어야 했으니까.

그때쯤.

수풀을 헤치고 일련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미 접근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유서린과 정우가 반색했다.

“치유부터!”

유서린의 고함에 등장한 이는 빠르게 스킬을 시전했다.

“치유의 손길!”

상급의 치유 스킬.

“…으으, 어… 상처가….”

E급과 F급으로 이루어진 구급대원들과는 전혀 다른 치유력이었다.

광역 치유.

빠르게 상처가 아물고, 핏기가 가신 얼굴에 혈색이 불그스름하게 돌아온다.

털썩.

땀범벅이 된 구급대원들이 뒤로 나뒹굴 듯 주저앉았다.

덜덜 떨리는 팔로 반대편 팔을 주물거리는 그들의 얼굴이 환했다.

‘저런 게 영웅이지.’

정우는 그들의 헌신에 감사했다.

“…심각하군요.”

사제는 유서린과 아는 사이였는지, 얼굴을 굳히며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요. 협회장님께서 보낸 건가요?”

“공간이동마법진을 사용했죠.”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같이 오는 거였는데요.”

“후우. 그러게 말입니다.”

사제 한 명의 합류는 극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치명상이 경상이 되었지만,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특히나 피를 계속 흘린 것이 몸에 상당한 데미지를 주었다.

구급대원들은 플레이어이기 전에 사명감을 가진 구급대원들이었다.

네 대의 차량과 더불어.

조금 늦었지만 호출에 응한 인근 지역의 지원 차량을 통해, 생존자를 전부 병원으로 이송했다.

정우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리는 빨랐다.

부득이하게 시체를 한곳에 모아 보존 마법을 걸고 운반하기로 결정했다.

신원을 파악하고 가족을 찾아야 했으니까.

몇몇의 인원이 탐색을 하겠다고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새파랗게 질린 상태로 뛰어나와 토악질을 해댔다.

피 웅덩이가 가득한, 현대에선 보기 어려운 처참한 광경이었으니까.

인간의 것임을 알고 보니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다.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헬기가 올 거예요.”

사제와 대화를 나눈 유서린이 말했다.

“음. 빨리 복귀해서 이 일부터 정리하죠.”

“김훈 씨도 동행하셔야 해요. 사건 청취를 해야 하니까요.”

“…네.”

무거운 표정의 김훈은 끝까지 남았다.

헬기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협회에 도착한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유서린은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고.

정우는 그 뒤를 따랐다.

김훈은 조심히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갔다.

유서린은 정우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이 일은 끝까지 한정우 플레이어가 맡아요.”

말투가 차갑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뱀파이어를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가 담긴 눈빛.

“알겠어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번에는 빌런들이 그러더니, 이번에는 몬스터가…. 대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낮은 중얼거림이었지만 들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방에 사람을 더 풀죠.”

“……그럴 거예요. 빌런 전담 2팀은 지방부터 돌려야겠어요.”

“뽑았어요?”

“대충 마무리했어요. 그래도 될 사람들이긴 해서….”

대전은 몇 번이고 중단과 재시작을 반복하다가 흐지부지 종결되어 버렸다.

몇 번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낸 플레이어와 이미 유명했던 이들이 2팀 소속이 되었다.

2팀의 팀장은 정우도 아는 사람이었다.

“역시 편수 플레이어군요.”

“진작부터 협회 소속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저희로선 반길 만한 사안이죠.”

유서린은 한숨과 함께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일단 ‘박쥐 무리’부터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아보죠.”

“아. 잠시만요.”

유서린이 비타를 조작했다.

기대되는 게 있었다.

미리 파악을 했으면서도 대비까지 끝마친 인원들을 대기시켰다.

박쥐가 사라지고 나서 변이체가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아쉽게 정우의 기억에도 이런 내용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아.”

하지만 유서린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나지막한 침음.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젠장…….”

정우는 욕설을 참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폭사하지 않고 녹아 버렸다는 점이다.

제압하기 전에 폭사했으면 자칫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버릴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

하지만 원한 결과는 아니었다.

‘내가 직접 움직였어야 했었나?’

박쥐를 뜯어 내는 것과 변이체를 되돌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박쥐를 뜯어 냈다고, 숙주가 원래대로 돌아올 거란 보장도 없었다.

다만 정우는 박쥐를 꼭 포획하고 싶었다.

뱀파이어의 제대로 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놈들도 날 노리고 있는 것 같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대비를 해야겠어.’

정우는 준비가 되는 대로 철원을 재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유서린 역시 동의했고, 매우 정열적으로 탐사팀을 꾸리겠다며 인원을 파악했다.

일단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유서린은 분노를 억누르고 밀린 업무에 나섰고.

정우는 회상을 통해 얻은 기억을 되짚으며 능력을 재점검했다.

이젠 너무나 익숙한 트레이닝 센터에서.

몇 번의 마법을 사용한 정우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메아리와 회랑 열쇠는 어떻게 된 거지?”

유보한다는 보상은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메아리의 지식이 필요했고, 회랑의 정보가 필요한 상황.

왜 이렇게까지 보상이 늦게 들어오는지.

“후우. 답답하네.”

마음 같아서는 정우도 당장에 철원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컨트롤 타워조차 놈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컨트롤 타워.’

정우는 그것을 다시 떠올렸다.

컨트롤 타워는 아티팩트였다.

그것도 성물급으로 지극히 드물고 귀한 종류였다.

하지만 지금의 플레이어에게는 아티팩트를 만들 능력이 없었다.

거액에 거래된 아이템조차 아티팩트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궤를 달리하는 물건이었어.”

석기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갑자기 자동차가 등장한 상황.

더없이 유용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이한 상황이라는 것은 또 부정할 수 없었다.

모순되는 감정.

그렇기에 궁금해진다.

‘…누가 만든 거지?’

컨트롤 타워는 충격적인 등장과는 달리 제작자가 밝혀지지 않았다.

어지간한 국가의 협회마다 전부 하나씩 탑재하고 있는 시스템 주제에 제작자가 불명이었다.

더불어 수많은 취재에 의해서도 밝혀진 게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서 나라별로 하나씩 나눠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컨트롤 타워 안에 있는 건, 마정석이니까.

나눠 가지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과연 사이좋게 나눠 가지는 게 가능한지는 차치하더라도.

‘마정석만 가진다고 되는 건 아니야. 마정석을 운용하는 방법은, 공간이동마법진이나 마정석분해장치 사용법과는 차원이 달라.’

그런 게 갑자기 떨어졌을 리는 없었다.

누군가가 있다.

정우는 제작자가 궁금해졌다.

더불어 자신의 능력까지.

정우는 아라크네의 몸속에서 리암을 구출하며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을 고스란히 습득했다.

이제는 매우 익숙해졌으며 거미줄처럼 상세히 주변을 읽는 게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기에 더더욱.

‘컨트롤 타워의 던전 감지 시스템은…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의 상위 호환이야.’

컨트롤 타워에 접속했을 당시의 마력이 익숙했다.

한국의 영토 전역에 깔려 있는 거대한 거미줄.

굳이 분류하자면 그것과 비슷했다.

먹이가 걸려들면 그 진동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거미처럼, 던전이 생성될 만큼 마력이 모이는 순간 컨트롤 타워는 그것을 감지해서 표시한다.

컨트롤 타워의 방향은, 자신의 능력과 비슷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왜 아라크네의 능력과 비슷한 거지?”

아라크네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접속이 쉬운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심지어 접속만 한 게 아니다.

유서린을 비롯하여 컨트롤 타워에 함께 입장한 다른 이들은 막상 거기까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저 던전 감지 시스템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컨트롤 타워에 새로운 명령어를 사용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쥐를 찾는 것.

그건 엄연히 던전과는 전혀 다른 마력을 검색했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컨트롤 타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가능한 아티팩트였다.

물론, 정우 역시 잠깐 박쥐의 마력을 찾는 게 전부였지만.

‘조금 더 강해지면 모르겠군.’

마녀를 흡수한 아라크네.

그렇기에 시작된 인연.

결국엔 아라크네를 흡수한 것까지.

모든 게 그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계의 기억은 온전치 않다.

그저.

‘나’라는 존재가 있었고, 배신당했으며, 죽임을 당했다는 것뿐.

어떻게 지구에서 다시 태어났는지, 왜 그곳에서의 기억이 ‘계승’되듯이 떠오른 건지.

회상이라는 권능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왜 자신에게 생겨났는지.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부정확했다.

정우는 그게 답답했다.

그렇기에 회랑이 필요하고, 메아리가 필요했다.

회랑의 방대한 지식으로 ‘나’를 찾을 셈이었고.

메아리의 지식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아버지를 구하는 길이 굉장히 꼬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로를 개방할 때만 하더라도 금방 아버지를 구할 것 같이 흥분했었는데.

‘막상 성장하고 나니 오히려 막막해.’

통로조차 먼 거리를 연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공간 이동도 불가능한 게 아니야.’

마력이 더 강해지고.

안정화를 거쳤으며.

이계에서의 조금의 기억으로 단단해진 마력은 아주 가볍게 정우의 손을 관통시켰다.

통로.

그것을 말이다.

통증을 참고 비명을 질렀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양상.

‘확실히 계속 변화하고 있어. 후우.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하나?’

필요한 두 존재를 떠올렸지만, 관여할 길이 없었다.

‘회상도 더 연구해 봐야 할 문제야. 막상 내 의지대로 사용되는 건 또 아니란 말이야.’

마법진을 다루는 능력이나 얼음 마법 등 여러 가지 능력이 회상 후 생겨나긴 했지만.

‘아직은 반쪽짜리인 것 같군.’

아쉬움이 남았다.

협회에서 헤어진 이진수를 떠올렸다.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친구 하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도 떠올랐다.

‘승민이 이놈을 어떻게 조질까?’

동생과 사귀는 사이라면.

적어도 자신에게는 사실을 밝혔어야 했다.

동생 정희에게 잘해 준 오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배신감이 들었다.

의외로 빌런들이 잠잠한 것도 신경이 쓰였다.

여태껏 수르트가 보였던 행보와는 조금 다른 것도 그렇고.

‘현상금을 걸었다고 했으면서도 조용한 것도 그렇고, 이상해.’

심지어 정우는 이번에야 한국에서 테러가 발생했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외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테러까지 따지면 상당히 많을 것 같았다.

분류하자면.

‘고흥도 테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플레이어가 납치되었고 실험체로 쓰였다.

“후우…… 닥터 브라운을 어떻게 해야…….”

닥터 브라운까지 생각하니 답답함이 배가 되었다.

주변 상황이 복잡한 것투성이였다.

그렇게 밤을 새우며 복잡한 마음을 애써 정리하고 있을 때.

“…어?”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김훈 플레이어?”

정우가 반색했다.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요. 치료도 제대로 해주셔서, 몸을 좀 풀고 싶더라고요.”

강해지고 싶기도 하고요, 그의 말에 정우는 동의했다.

플레이어 세계에선 강함이 곧 증명이었고, 생존이었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이 선택이 훨씬 나았다.

“잘하셨어요.”

“하하.”

김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번에도 안 좋은 일이 있었어서 각오를 했었는데… 늦은 감이 있죠.”

“안 좋은 일이요?”

김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고예요. 얼마 전에, 습격을 당했었거든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런 상황에 처할 줄은 몰랐어요.”

“……습격이요?”

“좀 된 일인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