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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01화 (101/293)

101화

-은밀한 일격 (1)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 백작의 눈동자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껏 마력을 회복하는 동안 나름대로 재미를 보기 위해 보낸 박쥐가 소멸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군요.”

더불어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네는 저 인간은 더더욱 불쾌했다.

압도당한 이후.

백작은 저 인간을 끊임없이 부정했다.

항상 알 수 없는 미소만 달고 있고.

‘……불쾌하군.’

“이런. 협력자를 너무 저평가하는 게 아닌가요, 백작?”

“…생각을, 읽지 않기로 한 것 아니었나?”

“웁스. 그렇군요. 백작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저 역시 잠에서 깨어나서 잠결에 그만….”

생각을 읽힌다는 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다.

“나름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박쥐였는데 말이죠.”

“…그것까지 감시했나?”

“후훗. 나름대로 백작의 일족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답니다. ‘왕’과 계약까지 한 마당에… 아군을 몰라서야 되겠어요?”

사내의 웃음이 진해졌다.

백작은 더욱 불쾌했다.

이번엔 조금 다른 의미였다.

불쾌한 만큼 부정했고, 부정한 만큼 ‘이해’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저 인간은 이렇게 허무하게 박쥐를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오오! 간만에 고평가라니, 기분이 좋네요!”

“……인간!”

“아, 아차차. 죄송해요. 백작.”

사내가 툭 하니 바닥을 밟았다.

백작은 그제야 사내가 거꾸로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억지로 깨어나서 그렇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은 인간 따위가 아니기에.

위대한 일족, 피의 지배자이자 광대한 영토의 정복자 중 하나인 에녹 콘라드 오스카.

무려 백작의 위를 가진 존재였다.

자신의 감각은 초월적인 선상에 놓였고, 그런 감각을 속이는 건 어지간해선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불쾌하면서도 백작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눈앞의 인간이.

자신과 동수는 된다는 것을.

‘하지만…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상황이 달라질 거다.’

잃은 마력이 많았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 동안 ‘침략’을 준비하면서, 잃은 게 너무나 많았다.

그렇기에 백작은 사내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깨닫게 될 것이다.

감히 비등하다 여긴 자신의 혀를 뽑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막대한 격차가 있음을.

백작은 시기상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달리.

“보호하지 않았나?”

“제가 보호를 해야 했나요? 백작의 생각대로?”

“협력을 자청한 자라면, 그 정도는 했어야 옳지.”

“아하하. 이거 제 생각이 읽혔군요.”

사내가 즐겁게 웃었다.

“보냈어요.”

“그런데도 소멸했다? 실력이 모자란 건 아닌가?”

“아뇨. 백작. 잘 생각해 봐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백작이 택한 사람은 당시의 던전을 관리하던 관리자였어요.”

“그깟 인간 따위.”

“참 인정을 못 하네요. 그러면 안 돼요. S급 플레이어가 오면, 백작은 소멸해요.”

“인간 따위가 감히 날?”

“혹시 모르죠. 과거의 백작이라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백작은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공감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뿐, 그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왕의 전초기지. 적어도 ‘공작’이 넘어올 때까진 시간을 끌어 줘야 완성이 될 거예요.”

“그걸 돕는 게 네 역할이다. 인간.”

“맞죠. 그러기로 했고.”

사내가 코를 찡긋거렸다.

“하지만 관리자라는 게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예요. 어떻게 한 건진 모르지만, 폭사를 막았어요.”

“……그렇군. 폭사가 안 됐어.”

“저런. 감각이 온전치 않군요.”

“…….”

백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정도 관심은, 동업자 사이에선 필수라고요. 뭐, 좋아요. 아무튼 관리자라는 게 드러난 이상, 이곳에 대한 조사는 진행될 거예요.”

“그래서?”

“막아야죠.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요.”

“어떻게?”

“잠입을 이용할 거예요. 어차피 버리는 말이 하나 있거든요.”

사내는 즐겁게 웃었다.

“적대감은 충분히 쌓였고, 터트릴 때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어요. 기본적으로 전투는 무리니까, 선택할 방법은 하나.”

사내는 잠입자가 선택할 방법에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어떻게 성공시킬지가 아니라.

‘자, 어떻게 막아 낼 건가요?’

아직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알까.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방법을 택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듀라한을 없애고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엔.

‘부족했죠. 아주 많이 부족했어요. 과연 얼마나 성장했을지.’

사내가 눈을 감았다.

한정우.

그런 이름을 가진 ‘인간’의 성장이 너무도 기대가 되었다.

자신의 기대대로라면 그는 잠입자의 움직임을 막아 낼 것이다.

그리고 큼지막한 먹이 하나를 던져 주면 될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못 오게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더 재미있는 쪽을 택해야죠.”

백작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의견 없이 홀로 진행하는 협력자의 꼴을 더 이상 보기가 싫었다.

박쥐도 없겠다.

향긋한 냄새에 취해, 잃어버린 마력을 되찾을 순간을 기다리며.

‘아니, 그전에 한 번 눈을 떠야겠군.’

백작은 예정된 일정 하나를 떠올리고는 천천히 잠에 빠졌다.

찰랑.

바닥에 고인 물이 백작의 마력에 반응하여 찰랑거렸다.

물이라고 하기엔 끈적거리며, 기묘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었지만.

똑, 또옥!

방울씩 떨어지는 물소리가 균일하게 공동을 가득 채웠다.

사내는 다시 몸을 띄웠다.

천장을 밟으며.

동족이었던 것과 똑같이, 저 아래의 몬스터들이 즐겨 하는 자세를 취했다.

거꾸로 서서, 눈을 감는다.

‘즐거운 꿈을 꾸십시오, 백작. 즐겁기만 할 때에.’

사내의 입술이 천천히 찢어져 올라갔다.

‘흐흐, 흐흐흐흐….’

* * *

“대장!”

정우의 고함.

유서린은 곧장 반응을 했다.

결계를 거둬들이지도 않은 채, 당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웅웅!

짧은 공명음과 함께 발광체가 떠올랐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성기사 역시 비슷한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홀리 볼’은 그 이름처럼 구를 만들어 냈다.

신성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처럼 은은한 빛을 뿌리며.

마법사의 라이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두운 장소를 비추기엔 충분했다.

“……!”

정우에게 다가가던 그녀의 눈이 커진다.

이미 감지한 후였다.

그럼에도 눈으로 목격하는 충격은 상당했다.

수많은 참상을 경험했던 그녀였지만.

‘……이건, 너무하다.’

도살장의 도축된 짐승처럼, 인간이 매달려 있었다.

이리저리 무너진 철근과 잔해 사이에서도, 터럭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다치지 않았다는 것조차 모순이지만….’

어쨌든 이 여파에선 빗나가 보였다.

정우의 노력이 여실히 느껴졌다.

“치유… 치유 좀 해주세요.”

“이자는?”

“박쥐. 숙주였던 사람입니다.”

“…박쥐는요?”

“없앴어요.”

“그럼 제가 치유하는 도중에 한정우 플레이어는 사람들을 구해 줘요.”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려고 했어요.”

정우는 곧장 뛰어올랐다.

무너진 잔해가 불안하게 삐걱댔지만, 정우는 차분히 한 명씩 구출을 진행했다.

가늘게 호흡이 느껴졌다.

마력으로 이미 감지한 후였지만 그래도 상당한 안도감이 정우의 가슴을 채웠다.

염동까지 사용하여 천천히 사람들을 밖으로 옮겼다.

뚝뚝.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렀다.

박쥐의 스킬로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겠지만, 놈이 없는 이상 상태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건물 안은 환경적으로 너무 좋지 못했다.

성기사인 그녀는 치유 능력을 지녔지만, 광역 치유가 없었고.

정화 능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사제가 아닌 이상, 그녀는 일일이 스킬을 사용하여 치유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굳이 유서린과 함께 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만약을 대비하면서도.

사람들을 살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정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유서린 역시 가세하자 구출은 빨랐다.

“…서른일곱 명.”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매달려 있었다.

심지어 이미 폐기 처리 된 시체도 몇 구가 있었다.

유서린은 입술을 깨물었고.

정우는 욕설을 참았다.

당장이라도 아공간 안에 결박한 박쥐를 꺼내어 죽도록 고문과 공격을 가하고 싶었지만.

‘…놈들을 제대로 찾으려면 안 돼.’

원흉이 따로 있다는 걸 잊지 않았다.

정우가 다급히 비타를 조작할 때.

삐용, 삐용!

간만에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납치된 사람이 있을 거란 말에 안 팀장이 유능하게 반응한 결과였다.

“여기! 여기예요!”

정우가 손을 흔들었다.

수풀을 헤치며 다가온 구급차는 총 네 대였다.

“……!”

다급히 내린 그들은 눈앞의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지, 지원을 요청해!”

구조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예상을 압도하는 피해자 수.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들러붙은 구급대원들의 손이 옅게 빛났다.

총 일곱 명의 구급대원들이 달려들었지만.

“……큭.”

여섯 명이 목숨을 추가로 잃어버렸다.

총 서른두 명의 생존자.

열한 명의 사망자.

유서린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당장이라도 놈들을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가죠.”

표정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면 안 돼요. 준비를 해야 해요.”

“제가 다 잡을 수 있어요.”

“…수도 몰라요. 도망치기로 작정하면, 찾기 어려워요. 제가 이미 컨트롤 타워에서 박쥐를 발견한 후, 철원을 살폈어요. 그런데 잡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젠장!”

유서린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지금이 더 급해요. 치유부터 하고 생각해 봐요.”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치유를 했다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정우가 저주 해제까지 사용했지만, 딱히 저주에 걸린 게 아닌지 효과는 없었다.

상처가 더 벌어지는 것만 막았을 뿐이다.

막지 못한 인원이 죽었고.

현상 유지에만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정우조차 붕대를 들고, 상처를 틀어막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양손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끄, 끄응. 으윽!”

때문에 정신을 차린 피해자가 너무나 반가웠다.

“…여, 여긴?”

“오, 맙소사! 정신이 들어요?”

구급대원 한 명이 치유 스킬을 사용하며 물었다.

“…으, 으악! 이, 이게… 뭐야! 으윽! 몸은 또 왜 이렇게 아프고?”

패닉 상태.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정우는 대뜸 저주를 걸었다.

‘무기력.’

발광이 뚝 멈췄다.

“…플레이어?”

정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축 늘어지기 시작한 생존자에게 물었다.

패닉만 멈출 요량으로 미약하게 건 저주 때문인지 대답이 돌아왔다.

“플레이어… 맞아요.”

저주를 걸 때 느껴지던 미약한 반발력.

정우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흔들리는 마력은 불안전했다.

하지만 드러나는 재능은, 치유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검사.’

수준도 그리 높아 보이지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말하지 마요. 대신에 방해도 하지 마요.”

정우의 말에 순간적으로 불만의 표정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정우가 생존자의 얼굴을 주시했다.

“하, 할 수 있어요.”

생존자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기억이요?”

“…아, 아니요. 이 사람들 살리는 거요. 저, 저도 치료 키트 있으면 하나 줘요!”

생존자의 말에 정우가 반색했다.

“좋아요. 잠시만요.”

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지만, 끙끙대면서도 천천히 몸을 움직인 생존자가 바로 옆의 생존자를 보았다.

그나마 중상만 겨우 면한, 여전히 심각한 상태였다.

제대로 된 사제만 있으면 가볍게 해결되는 상황이었지만, 사제의 부재가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다.

구급차에서 치료 키트를 꺼내어 건넨 정우가 울컥 피가 솟는 상처를 지혈하며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 아, 김…훈.”

“김훈?”

“네. 김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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