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00화 (100/293)

100화

-박쥐 무리 (11)

어느 날부터.

피곤이 떠나질 않았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증상이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피로나 병처럼 여겼지만.

이제는 그도 알고 있다.

이건 병이 아니라는 걸.

치매가 이런 증상일까.

안개가 낀 듯한 멍한 정신이나마, 인지할 때가 점차 뜸해졌다.

몇 시간, 며칠.

그리고 한 달 반.

천천히 눈을 깜빡거린 그는, 어두운 폐공장의 방치된 내부를 눈에 담았다.

전등 하나 없는 삭막한 어둠 속에서.

그는 전혀 어렵지 않게 사물을 구분했다.

변했다.

‘……내가 뭘 하던 사람이지?’

이젠 기억조차 온전하지 않다.

갑자기 생소한 장소에서 눈을 떴을 때가 떠오른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겪었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무슨 기억인지 머리를 싸매고 더듬어도,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점차.

사라져 간다.

‘……나라는 사람이, 없어져 가.’

두려웠다.

정신이 들었을 때, 병원을 찾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은 없다.

누군가를 만나고 다닌 것 같기도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는 지금이 너무도 두려웠다.

자신이 아닌 시간이 늘고.

자신인 시간이 줄어들며.

막상 정신이 들었지만, 막연한 두려움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절망.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 단어가 전신을 장악하고, 풍랑처럼 자신을 휩쓸었다.

자신은 그저 나룻배나 다름이 없었다.

돛도, 닻도 없는.

노조차 잃어버린 나룻배.

‘……누가, 좀… 구해 줘!’

그래서 그는 어느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는 생각을.

온전한 자신을 찾아 주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든.

지금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만을 갈구했다.

그것만이.

‘과거’라고 떠오르는 감정과 기억이었다.

푸드득!

무언가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는 흠칫 놀랐다.

그것은 본능이었고, 아주 초라한 저항이었다.

날갯짓 소리가 커진다.

무언가가 다가온다.

부들부들!

그는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자신이 이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인지하고 있을 때가, 저 날갯짓 소리의 주인이 ‘떠났을’ 때라는 게.

“……아…….”

안 돼,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그저 폐공장조차 울리지 못하고 흩어지는, 미약하고도 희미한 단말마뿐.

그것이 다가온다.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더 어두운색의.

‘……박쥐.’

살려 줘!

머릿속은 그렇게 외쳤지만, 그의 몸은 착실히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고대하던 존재를 반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 아아…….”

의미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을 때.

푸득!

박쥐의 날갯짓이 돌연 멈췄다.

순식간에 폐공장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 찼다.

그는… 뚝뚝 떨어지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왔다.”

와장창!

유리가 깨어져 나가며 달빛이 은은하게 내리쬐었다.

* * *

공간이동마법진.

‘아직’ 다룰 줄 모르는 마법진이 가동되었다.

여전히 담당인 박 주임이 무어라 말을 붙이려고 했지만.

강원도 철원을 갈 때보다도 더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입조차 떼지 못했다.

무려 200억이라는 거금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대가는 고작해야.

‘두 명의 이동. 두당 100억이라….’

터무니없는 가성비였다.

그럼에도 유서린과 한정우는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재촉에 재촉을 거듭했다.

곧장 이동할 수 있도록, 예열을 시켜 놓으라고.

그게 박 주임이 추리닝을 입고 있는 이유였다.

전신을 가득 채우던 빛.

그게 사라진 순간 드러난 정경은 삭막했다.

나무와 풀, 바위와 꽃 따위가 만연한 지역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굉장히 삭막하게 느껴졌다.

“여기, 맞아요?”

밤은 둘의 시야를 가리지 못했다.

유서린은 정우의 요청에 따라 마력을 최대한 억제했다.

변이체는 마력을 다룰 줄은 모르는 주제에 그것에 민감했다.

특히 변이체를 만들고 다니는 ‘박쥐’는 여러 추적자들을 피해야 했기에, 마력을 느끼는 감각만큼은 쥐같이 예민했다.

“조금 더 이동해야 해요.”

컨트롤 타워에서 박쥐를 발견하자마자 정우는 거리를 계산했다.

공간이동마법진을 요청하고.

좌표를 특정했다.

놈의 감각을 유추하여 그 반경에서 너무 멀지 않은 장소를 특정해야만 했다.

“상황을 보니, 아직 발각된 것 같진 않군요.”

고흥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

하지만 이번엔 정우가 지휘를 맡았다.

유서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우의 마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력적인 감각으로는, 곁에 있어도 모를 것처럼 은밀해졌다.

마치 암살자처럼.

‘……놀라울 따름이네.’

그녀는 협회장과 정우의 대화가 궁금해졌다.

둘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은 욕구가 물씬 생겨났다.

정우는 차분히.

아주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고 이동했다.

컨트롤 타워에서 파악한 지역이 머릿속에 박힌 듯했다.

정우가 안내한 장소는 폐공장이었다.

수풀과 넝쿨 따위에 묻힌, 정말로 버려진 건물.

“저 안이에요.”

“…사람을 감염시킨다면서 왜 이렇게 오지까지 온 걸까요?”

“‘피’가 떨어진 걸 거예요.”

유서린의 표정이 굳었다.

“원래는 뱀파이어에게 피를 공급받아야 해요. 하지만 뱀파이어의 존재감은 없어요. 피를 공급받지 못했다면, 외부에서 공급받아서 정제해야 하는데.”

“정제…….”

“놈들 입장에서예요. 동물들 피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만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인간….”

“…맞아요.”

“그래서 아까 그런 지시를 내린 거군요. 이 지역 인근의 실종자 파악을 해달라고.”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정제할 땐, ‘박쥐’도 잠시 숙주를 떠나요.”

“그래서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맞아요.”

“…하. 대체 한정우 플레이어는 그런 지식을 어디서……. 후우. 아니에요. 못 들은 걸로 해줘요.”

최강자로 분류되면서도 선을 지키는 모습에 정우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소한 긍정은 잠시.

이내 부정을 맞볼 시간이었다.

박쥐의 터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감각이 스멀스멀 다리부터 기어 올라왔다.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역겨울지.

살짝 마른침을 삼킨 정우가 유서린에게 말했다.

“저 건물 자체를, 능력으로 격리시켜 줘요.”

“한정우 플레이어가 직접 들어갈 건가요?”

“제가 아니면 박쥐를 놓칠 가능성이 커요.”

“…저라도요?”

“유서린 플레이어기에 더욱.”

알 수 없는 내용에 잠시 망설였던 그녀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설명 좀 해줘요. 답답한 거 억누르고 있으니까.”

“알았어요.”

정우는 곧장 앞으로 치고 나갔다.

뭔가를 감지한 듯,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순식간에 몰린 마력이.

폐공장의 유리창을 깨어 부순다.

캬아-!

대뜸 안쪽에서 날카로운 포효가 들려왔다.

유서린은 마력을 퍼트렸다.

벌레 하나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마력이 촘촘하게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 안의 광경이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뛰어든 정우의 마력이 한 차례 크게 요동쳤다.

그럴 수밖에.

“……X발.”

그녀의 입에서도 욕설이 튀어 나왔다.

희미한 생명의 기운.

동굴 안의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는 기척이 잡혔으니까.

생존자였다.

* * *

햇살과 함께 뛰어든 정우의 손에서 무자비한 마법이 펼쳐졌다.

박쥐는 ‘실체’가 아니다.

‘뱀파이어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능력.’

따지고 보면 스킬이다.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아주 고약스러운 스킬.

이 이상의 기억이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이대로도 충분했다.

정우의 마력은 폐공장 안을 가득 채웠다.

깨진 유리창 안으로 쏟아진 건 달빛뿐만이 아니었다.

정우의 마력.

그것이 달빛처럼 빠르게 폐공장 안에 퍼졌고, 이윽고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안에 잡히는 기감에 움찔하면서도, 정우의 손속은 단호하기만 했다.

역한 피비린내에 더더욱 정우의 표정은 단호해졌다.

정우는 거짓을 말했다.

박쥐를 없애는 것만 놓고 보면, 유서린이 훨씬 나았다.

성기사.

뱀파이어의 능력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 중 하나였기에.

그럼에도 정우가 먼저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벌떼가 지나갈 때마다 폭탄이 터지듯 요동을 쳐댔다.

달빛을 수놓듯 뿌연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정우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단순한 파괴처럼 보이는 무식한 일격.

하지만.

쿠쿵, 쿠웅!

부식된 철근이 떨어지는 족족 기묘한 형태를 만들었다.

때때로 반격이 가해졌다.

화살을 닮았으나 박쥐와 비슷한 형태의 기묘한 반격.

매직 미사일을 쳐 내는 일격엔 어느 정도의 힘이 있었다.

‘다행히… 자작급인가?’

박쥐의 능력은 주인의 능력에 비례해 강해진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높게 쳐줘야 자작.

플레이어로 따지면.

‘그 검사 수준이다.’

A급의 끝자락 정도였다.

유서린 대신 들어온 이유 중 하나였다.

박쥐의 수준 파악.

성기사의 능력이라면 닿는 족족 치명상이 되어 버릴 테니, 피악이 어려웠다.

박쥐는 능수능란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진한 혈향이 느껴지는 마법.

독자적인 마법 운용이 가능하다는 소리에, 정우는 침음을 삼켜야 했다.

최소한 희생자가 백 명은 넘어갔을 것이기 때문에.

염동과.

콰아앙!

오러까지 사용하여 철근을 무너트린 정우의 입술이 순식간에 기묘한 울음을 만들어 냈다.

웅웅!

거미줄처럼 퍼졌던 마력이 철근에 힘을 불어넣는다.

곧장 생성되는.

“……마법진!”

‘인챈트.’

마정석에 무늬를 새길 때 사용했던 그것을, 정우는 순식간에 실전에 적용했다.

그토록 수준이 달라졌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에는 아예 시선을 두지 않은 상태였다.

각인과 각인.

정우의 능력이 새로운 마법 체계에 연신 환희의 비명을 질러댔다.

놈은 경악을 내뱉으면서 아래로 꼬꾸라졌다.

‘그래비티.’

정확하게 놈의 머리 위에만 가해지는 중력의 위엄.

빠득!

날카로운 손톱으로 바닥을 긁은 놈의 마력이 순간적으로 폭증했다.

‘증폭.’

하지만 정우의 그것은 놈의 폭증을 압도했다.

더불어 생성되는 통로.

이전엔 이 갈리는 통증을 참아야 했지만.

스윽-!

지금은 너무도 가볍게 손을 집어넣었다.

놈의 한쪽 날개를 붙잡은 손이 거침없이 그것을 당겨 뜯어 낸다.

캬아-!

비명에 정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자 피해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려달라고 간청할 힘조차 잃어버린.

‘젠장….’

파앙!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서 놈이 바닥을 구르며 그래비티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데굴 굴린 눈동자가 음흉하기만 했다.

“도주…하지 마.”

놈은 친구의 눈앞에서 김정식을 터트렸다.

친구의 얼굴에 서렸던 경악과 당혹.

정우는 그걸 잊지 못했다.

“…넌, 내 주인이 찾는…….”

헐떡이면서 달빛에 드러난 정우의 얼굴을 본 놈의 눈이 부릅떠졌다.

“…날 찾는다고?”

제 스스로 내뱉은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단어가 이미 등장해 버렸다.

‘뱀파이어가… 나를?’

자신을 따라 이 세계로 넘어왔다는 소리로 들려, 정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푸흐… 흐흐. ‘왜’ 연결이 안 되지?”

놈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천적의 힘에 가로막힌 보고.

정우의 손이 번쩍이며, 번개가 치고 얼음이 쏟아졌다.

하나같이 기초에 불과했지만, 배운 적이 없고 습득한 적이 없는 마법들의 연속이었다.

놈 역시 발악을 했지만.

불과 몇 번의 공방 끝에.

놈의 육체는 다시 한번 바닥에 처박혔다.

그래비티가 아닌, 정우의 손에 의해.

부왁!

나머지 날개를 찢은 정우가 상체를 숙이며 으르렁거렸다.

“왜 날 찾는 거지?”

대답은 없었다.

정우의 손이 놈의 머리에 닿는다.

두피를 잡아 뜯는 것처럼, 정우의 손이 은은하게 물들더니 무언가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저주 해제.’

“……커, 커억!”

검은색의 무언가.

구멍이 뻥뻥 뚫린 그것이 정우의 손에 의해 숙주에게서 강제로 뜯기고 있었다.

고통에 찬 비명이 흘러나오고.

콰득!

마저 박쥐를 뜯어낸 정우의 손이 서늘하게 반짝였다.

얼음.

곧장 얼음의 표면에 마법진을 새긴 정우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아공간에 처박았다.

“제발…… 아직 살아 있기를.”

그러고는 피투성이가 된 숙주를 살폈다.

정우가 다급히 외쳤다.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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