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99화 (99/293)

99화

-박쥐 무리 (10)

“좋아요.”

잠깐의 고민.

결정은 빨랐다.

유서린은 즉각 정우를 데리고 협회장실로 올라갔다.

미리 보고가 되어 있었는지 협회장실엔 선객이 있었다.

“부협회장이네.”

유서린은 유능했다.

그녀는 정우의 다급한 요청을 들을 때부터 어느 정도의 준비를 끝냈다.

각성자를 등록시키는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

스스로를 박쥐 무리라고 부르는 ‘혈족’ 직업군의 거취가 파악되고.

곧장 인근의 직원이 파견되었다.

절대로 피에 닿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려갔다.

협회에서는 곧장 방어구를 풀었다.

외부의 피부 공격을 차단해 주는 전신 방어구였다.

방어구라는 이름보다는 보호복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효과가 미미한 아이템이었다.

미약한 독무나 벌레 따위가 가득한 지역에서 마정석을 캐내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템.

정우는 그녀의 판단에 박수를 쳤다.

“그 결정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부탁드린 대로 잠시만 대기를 해주세요.”

“음…. 좋아, 그것까진 그렇다고 치자고. 하지만 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무엇을 말입니까?”

“몬스터는 해당 지역을 벗어날 수 없어. 그건 여태껏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법칙이야!”

유서린 대신 부협회장을 맡게 된 중년인은 깐깐했다.

하지만 필요한 검증이기도 했다.

특히나 빌런 전담팀이라는, 어떻게 보면 협회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될 인원을 직접 파악하고 싶어 했으니까.

상황은 다르지만 부협회장은 이 순간을 하나의 검증으로 여겼다.

정우는 대충 생각을 인지했음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급했기 때문에.

인원이 늘고 있다.

김정식의 말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그가 본인의 생각을 거의 일방적으로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건.

보다 직설적이고 다급하게 말하지 못한 건.

자의가 아니었다.

변이체는 말 그대로 변이를 겪은 객체를 뜻했다.

이것의 매개체는 피였고, 피는 심장과 뇌를 장악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었다.

힘을 얻는 대신.

종속이 된다.

육체와 정신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폭사.

그건 가장 마지막 단계였다.

지구의 개념으로 따진다면 그건 생화학 무기였다.

폭발하는 즉시 수백, 수천을 감염시킬 정도의 위력이 있는 생화학 무기.

비록 숫자는 적지만, 폭사 역시 비슷한 효능을 지녔다.

그랬다는 소리는.

‘감염이 끝났다는 소리였어. 그럼에도 스스로의 의지로 이진수를 찾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보통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런 의지였기에, 자신의 뇌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명령을 약간이나마 무시한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겉도는 대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자신의 손에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사가 이루어졌다.

둘 중의 하나였다.

‘컨트롤이 되지 않았든가, 노렸든가.’

‘Tutelary’라는 이름을 지닌 이계와 이곳은 다르다.

플레이어란 시스템이 생성되어 있는 상황.

뱀파이어가 모종의 방법으로 차원을 넘었다면.

어쩌면 변이체나 놈들의 방식 또한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급합니다.”

“급하다고 모든 게 다 진행되는 건 아니야!”

“컨트롤 타워를 통한 마력 탐지 한 번이면 됩니다.”

“자네가 컨트롤 타워에 어떤 짓을 할 줄 알고!”

“그건 제가 곁에서 지켜볼 거예요.”

“으음. 그래도 따로 검증을….”

부협회장의 말이 길어지자 정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앙다물었다.

협회나 지원이나.

모든 것들이 수월하게 진행되다가 암초를 만난 느낌이었다.

부협회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권한을 가진 유지석이 가만히 생각에 잠긴 것도 문제였다.

“나쁠 건 없어요.”

“…컨트롤 타워를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풀 수는 없어!”

약간 커진 고성에 유서린조차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 전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단호한 발언을 하지 못했을 사람이었다.

감투가 뭔지.

유서린이 조금 짜증이 나려고 할 때.

“한정우 플레이어.”

“…네. 협회장님.”

유지석이 입을 열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세.”

“…둘이 말입니까?”

“그렇네.”

“협회장님!”

“부협회장.”

“……네. 협회장님.”

“잠깐 대화를 나누고 정하겠네. 일단 급하다고 하니, 이 정도로 넘어가게.”

누구의 말이라고.

부협회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차분히 고개를 숙이고선 협회장실을 나섰다.

유서린이 뒤따랐다.

유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잠시 바깥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정우에게 물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해서 말이네.”

깊은 눈이 정우의 전신을 훑었다.

‘바람.’

바람을 빼다 박은 마력은 덤이었다.

“자네. 이번 던전에서 뭘 얻은 건가?”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지석은 정우가 분명히 이번 던전에서 무언가를 얻었노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중 던전을 거쳤네.”

“…이중 던전?”

“남들과는 다른 입장. G급 던전 말이네.”

“……!”

정우의 눈이 커졌다.

단번에 이해를 했다.

같이 입장했지만 혼자 떨어져서 공략해야만 했었던 던전.

“난 세 개의 관문을 진행했네. 그리고 힘을 얻었네. 바람을 다스리는 힘을.”

정우는 말문이 막혔다.

설마하니 유지석이 자신과 같은 케이스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제야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었다.

불새 길드원에게 구출이 되고 정신을 차릴 때, 무려 협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먼 거리를 이동해 등장했다.

이례적인 일이라 그가 다녀간 뒤로 불새 길드에서 연이어 협회장과의 관계를 물어 왔다.

비서를 붙여주거나.

F급 플레이어에게 A급 대우를 부여해 주었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지원할게요.”

“하게”

이상하리만큼 간단한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유지석보다 자신에게 더 퍼 준 인물이 제임스 밀러였다.

“…제임스 밀러도 이중 던전을 나왔나요?”

“아니. 아니지. 그는 아닐세. 내가 아는 한, 이중 던전을 나온 사람은 다섯이네.”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궁금증은 뒤로 미뤄도 충분할 터.

정우의 의중을 이해한 유지석이 말했다.

“이중 던전이 끝이 아니더군.”

“……?”

“이중 던전을 나온 사람들은 일반적인 던전에서 조금 다른 일을 겪었네.”

“…다른 일이요?”

“내 경우엔 딱 두 번이긴 하지만, 기묘한 경험을 했네. 뜬금없이 지식이 늘기도 했지.”

“……!”

뜬금없다는 내용만 빼면 적용이 되는 존재가 있었다.

‘메아리.’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는 게 있단 말이네.”

“…무엇이죠?”

“적의.”

수더분한 말에서 등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내용이었다.

정우가 흠칫 놀랐다.

“놀랄 것 없네. 몬스터에 대한 적의이니까.”

유지석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네에 대한 정보는 끊임없이 모으고 있네.”

“……왜죠?”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유지석이 말했다.

“대항마가 될 것 같아서.”

“…대항마?”

“얼마 전에 유서린 플레이어가 그랬네. C급 빌런 넷을 상대로 압도했다고. 내가 기대할 만한 재능이라고 칭찬을 하더군.”

“…….”

“그리고 들었네. C급 보스급을 홀로 잡았고, 그 전엔 D급 보스급도 상대했다고.”

불새 길드의 보고가 너무도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끄는 건 하나였네.”

유지석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정우도 흠칫 놀랐다.

두 눈에 담긴, 기묘한 갈망이 정우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아서.

“오크들의 문화를 아는 것 같다는 말. 방어전에서 갑자기 대결 구도가 되었고, 오크들은 자연스럽게 자네의 ‘말’에 수긍했다는… 그 말.”

유지석이 천천히 다가왔다.

압도적인 존재감이 가까워졌다.

이계의 기억이 떠올랐음에도, 도무지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그야말로 거인이었다.

“자네는…… 지식을 얻었나?”

그 순간 깨달았다.

유지석이 보인 기묘한 갈망은.

이계에 대한 ‘의문’에 의한 것임을.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격변의 시대의 종결엔 수많은 플레이어의 노력도 있었지만.

각국에 설치된 컨트롤 타워의 역할도 매우 컸다.

던전의 출몰을 사전에 파악하는 시스템.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피해를 줄일 수가 있었으며, 플레이어들을 준비시킬 수가 있었다.

빌런들 역시 성장에는 던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던전을 차지하려는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가 등장하고.

모든 던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플레이어들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미리 위치를 선점해서 방어진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빌런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밀리고 밀린 빌런은 수면 아래로 잠적했고.

세상은 플레이어 협회의 주관하에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컨트롤 타워.”

유지석은 곧장 정우에게 임시 권한을 부여했다.

뱀파이어의 건에 한해, 정우는 부협회장에 준하는 권한을 얻었다.

그 유서린조차 정우의 아래였다.

그의 결정에 부협회장의 표정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컨트롤 타워는 SF영화 따위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던전의 위치를 알려 주는 계기판이 없었다.

그저 반투명한 홀로그램처럼.

가만히 떠올라 설정한 영역 내에서의 흐름을 기록할 뿐이었다.

‘마력의 흐름을 읽는 장치.’

정우는 컨트롤 타워의 흐름에 시선을 빼앗겼다.

밑에 설치되어 있는 공간이동마법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갑자기 청동 검에서 레이저 검으로 건너뛴 느낌이었다.

컨트롤 타워의 접속 권한을 얻는다는 것은 마스터키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컨트롤 타워로 입장할 수 있는 문의 개방 권한.

컨트롤 타워는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고고한 완성품이었다.

적어도.

‘아티팩트. 그것도… 성물급이다.’

한 나라에도 두엇 정도만이 존재하는, 희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물건.

S급으로 분류하기에도 부족한, 그런 값어치를 지녔다.

컨트롤 타워는 일반인에게도 유명했지만, 이 정도 가치를 지녔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정우였다.

이런 물건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계와는 달리, 지구의 국가는 수백에 달했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컨트롤 타워는 이계를 통틀어 서른 개도 채 되지 않는 물건의 가치를 지녔다는 소리였다.

‘…말도 안 돼.’

정우의 경악은 당연했다.

이만한 물건을 고작해야 한 지역의 탐색기로 사용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애써 경악을 눌러 담은 정우가 컨트롤 타워를 살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한국 전역을 살피고 있는 컨트롤 타워였지만, 의식을 집중하여 여러 지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보다 세세한 탐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터넷의 지도 검색처럼.

하지만 다루는 건 다른 문제였다.

컨트롤 타워에 접속할 수 있는 인원은 극히 소수였다.

정우는 컨트롤 타워의 마력 패턴을 읽었다.

완성된 그것이 정우에게 반응했다.

정우는 너무도 쉽게.

“……접속했어.”

유서린이 깜짝 놀랐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

심지어 반투명한 공간이 빠르게 변화한다.

정우의 마력에 반응하여, 검색을 자유자재로 하고 있었다.

마력 탐색을 시작하자 각 지역의 모습이 휙휙 지나갔다.

그 모습엔 유지석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컨트롤은.

‘질과 비슷하거나… 뛰어나다.’

대마법사 질 고메즈에게서나 보던 수준이었으니까.

분위기만 바뀐 게 아니었다.

이계의 지식을 얻었다고 한 게 허언이 아니었다.

마법사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근원적인 무언가가 바뀌었다.

유지석은 정우를 관찰했고.

정우는 스스로를 관찰했다.

무언가가 변했다는 건, 스스로도 인지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를 조종해 보니 그 ‘무언가’가 성큼 다가와 보다 선명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는 그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번쩍!

“……찾았다.”

박쥐 무리의 ‘박쥐’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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