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박쥐 무리 (9)
“아무리 던전 브레이크라도… 매개체인 듀라한을 죽이면서 끝난 거 아니었어?”
이진수의 물음에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던전 브레이크는 분명히 종료되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원도 철원에는 별반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찾아봐야지.”
“음….”
정우는 곧장 서울로 출발했다.
공 팀장이 주춤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정우는 급했다.
변이체는 뱀파이어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과.
“…원래라면 마력을 다룰 수 없어. 그런데 어떻게 마력을 다뤘는지 의문이야.”
별개로 마력은 다룰 줄 모르는 노예들이었다.
뱀파이어에게 변이체는 노동력일 뿐이다.
“…넌 아마 물리면 뱀파이어가 될 것 같네.”
“나? …왜? 아, 그 적합률 때문에?”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놈들 역시.”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급진행되는 느낌이야.”
이진수가 머리를 짚었다.
던전과 몬스터.
플레이어까지만 해도 복잡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이계의 종족이라니… 외계인은 궁금하지만 몬스터와 비슷한 놈들은 사절이라고.”
이계의 종족까지 추가가 되었다.
심지어 인간을 먹이로 삼는, 아주 몰상식한 종족이.
“근데… 진짜 이렇게 이야기해도 안 팀장이 아무런 반응이 없네?”
“따지고 보면 분리가 된 거니까.”
“…신기하네. 이게 진짜 마법이란 소리지?”
충격에 휩싸였던 이진수였지만, 대화를 나누고 이동을 하는 사이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모양이었다.
“그래. 마법.”
“스킬이 아닌 마법이라는 거지?”
이진수가 턱을 쓸었다.
“야, 그거 나도 배울 수 있냐?”
정우는 천천히 이진수의 위아래를 훑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혹시나 해서 확인하긴 했는데… 넌 마법사의 자질이 전혀 없어.”
“역시 탱커냐?”
“어. 이 시스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아니, 매우 정교해.”
과거의 기억이 살짝이지만 떠오르면서.
정우는 마법의 기초를 기억해 냈다.
협회의 공간이동마법진.
그것을 볼 때마다 조악하다고 여기거나, 여러 스킬을 볼 때마다 부족하다고 여긴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계에서의 정우.
즉, 전생이라고 불려야 할 생에서의 정우는 마법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으니까.
‘잘하면 회랑에 기록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환각이나 환상.
혹은 착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기억이 너무도 선명했다.
그리고 거짓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되면서부터 품고 있던 의문.
그것들의 해결 방안이 등장한 셈이었기에 오히려 반가운 마음도 들 정도였다.
혼란은 남았지만, 예상보다 적었다.
지금 중요한 건.
‘혼란보다는 변이체부터 없애는 게 먼저야.’
“그러고 보면… 늘고 있다고 했어.”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해?”
“야, 나도… 당황했잖아.”
이진수가 얼굴을 구겼다.
“…그럼 시간이 더 없어.”
“왜?”
“뱀파이어에게 피는 힘이야. 놈들은 영토를 넓힐 때마다 항상 변이체를 사용했어.”
“…잠깐. 그거까진 알겠는데, 김정식은? 김정식은 정신이 온전했던 거 아니야?”
“아니. 변이체는 결국엔 뱀파이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그 피에 종속된 존재거든.”
“지금은 온전했잖아….”
“터졌잖아. 온전했으면 끝까지 대화를 진행했겠지. 어투나 태도가 부자연스러웠을 텐데?”
“하아…….”
“그래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았어.”
“……뭔데?”
“이 짓을 저지른 뱀파이어가 활동을 개시할 때가 머지않았다는 것.”
변이체가 온전히 뱀파이어의 말을 듣는 건, 뱀파이어가 잠에서 깨어난 이후부터다.
그전까진 어느 정도의 자각이 있었다.
기억도 온전했고.
변이체라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뒤통수를 맞을 뻔한 심각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왜 그랬을까?’
“…네 말을 들으면, 이상하긴 한데?”
자율성을 부여한 것도 그렇다.
힘을 얻은 대신 종속이 된다.
아무리 잠에 빠져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뱀파이어의 평소 생각이나 잠들기 전의 마지막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는 게 변이체의 특성이었다.
‘차원을 넘으면서 변화가 생긴 걸지도 몰라.’
“모르겠다. 아, 모르겠어! 복잡하기만 복잡하고…. 나는 그냥 앞에서 탱이나 하는 게 딱 맞는데….”
“진수야.”
“…왜?”
“너 빌런 전담팀에 안 들어올래?”
“…옮기라고?”
“이번에 뽑는 사람들 보니까, 길드에서 옮기는 이들도 좀 있어.”
“너… 빌런 잡아서 성장한다고 그랬지?”
“어.”
“그 기억. 예전 기억을 되찾고 나서 생각이 변한 게 없냐?”
“뭘?”
“뭔가 더 깨달았다며. 원래라면 지금 이런 것도 못 했을 거 아니야. 그 기억엔 네가 왜 빌런을 잡아야 성장하는지… 없냐?”
“아쉽게도….”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메아리의 심정을 반푼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메아리와 마녀들의 변화가 기대돼.’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변화되는 둘이다.
왜 마녀들까지 영향을 받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의 성장은 기꺼운 내용이었다.
특히 메아리.
처음에 그녀를 봤을 때 느꼈던 기묘한 감정.
전 세계에서, 메아리는 자신과 연관이 있었다.
그녀의 기억은 본인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가 본 건… 아마도 내 마지막.’
양발이 잘리고 결박당한 채 조롱을 당하던, 그 순간까지.
무수한 목격자라는 타이틀 역시.
‘이계에서의 날 본 거다.’
확신은 아니었지만.
직감은 분명히 지금의 판단이 맞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계에서의 ‘나’는 결코 낮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적어도 한 도시의 주인.
배신당한 채 모든 걸 잃어버린 절망감만큼은.
‘각인되어 있어….’
너무도 선명하게 가슴에 박혀 들었다.
정우는 애써 뒤로 미루고 있던 내용을 꺼냈다.
사막 고블린 던전의 지하에서 본 눈.
붐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 눈을 떠올리며 순간을 이겨 냈었다.
은연중에 놈이 던전에서부터 몬스터까지.
모든 것의 원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맞았어.’
생각이 옳았다.
회상 속에서 본 눈과.
‘지하에서 본 눈이 똑같았다.’
이것까진 이진수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던전은 그대로 있어.’
사막이기에 같은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진 의문이지만.
‘메아리라면 알 것 같군.’
애당초 유사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라고 안내한 이가 그녀였으니까.
“음… 뭔가 있을 거야.”
“그러게.”
“후우. 복잡하네.”
이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련의 상황이 갑자기 너무 복잡해졌다.
가볍게 생각한 던전에서 C급 보스가 등장하고.
부족한 공격 때문에 방어를 하면서도 걱정을 했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친구가 혼자서 장판교를 찍어 버렸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까진 그렇다고 쳤다.
하지만 막상 던전을 나온 친구는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면서 갑자기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자신의 전생이.
이계의 인물이라면서.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정우니까. 그리고 그래야 이해가 되는 내용도 약간은 있고.’
그는 친구를 믿었다.
적잖게 감격한 눈치였지만 괜히 모른 척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
김정식이 죽은 것도.
그 배후에 뱀파이어라는 놈들이 있는 것도.
놈들을 잡아야 하는 것도.
‘어려워. 골치가 아파!’
이진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뱀파이어를 잡는 것까지는 좋았다.
‘어떻게 넘어온 건지, 알아야 하잖아.’
그간 던전이란 건 그저 침략자의 통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이상이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친구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계에서 넘어온 친구.
그 배경이 심상치 않음은 어린아이도 짐작이 가능했다.
묻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실토하는 눈빛과 음성이.
‘그런 정우는 처음이었어.’
굉장히 불안했다는 걸, 그는 잘 알았다.
평생 봐온 친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추억을 공유한, 정말로 귀중한 인연이었다.
이진수는 친구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떤 대답을 들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럼에도.
‘고맙지. 자신도 이제야 알게 되었으면서 나한테 곧장 이야기해 준 거잖아.’
그 사실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렇기에 더 믿을 수 있다.
이계면 어떻고 외계인이면 어떠랴.
“어떻게 할 거냐?”
“뭘?”
“그 기억. 가지고 뭘 할 거냐고.”
친구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 순간, 이진수는 깨달았다.
‘저 자식, 나한테 뭔가 말 안 한 게 있구나.’
순간적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었으면 더 말하지 못했을 테니까.
모든 걸 다 이야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건 원래 크건 작건 비밀이란 게 있으니까.
하지만.
“…….”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긴 친구에게 해줄 말 정도는 있었다.
“도와줄 테니까, 같이 하자.”
“…뭘?”
“뭐든 간에.”
친구의 표정이 더 기묘해졌을 때.
마법이 풀렸다.
“도착했네요.”
협회가 보였다.
“가보자.”
“그래.”
“저도 같이 가요?”
“음. 네. 같이 가죠.”
잠시 고민하던 정우가 대답했다.
안 팀장은 빌런 전담팀의 전담지원팀이었다.
그것도 팀장의 직위를 달고 있는.
알아서 나쁠 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녀와 자신뿐이었으니까.
빌런 전담팀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플레이어는.
셋은 곧장 유서린과 만났다.
“정확하게 다시 말해 봐요.”
냉정한 눈빛.
이미 지시를 내렸고 보고까지 받고 있다는 유서린의 눈빛은 차가웠다.
“뱀파이어라는 종족이 있어요….”
그리고 시작된 정우의 설명.
안 팀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유서린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정우는 많은 걸 밝히지는 않았다.
그저 이번 던전에서 무언가를 얻었고, 마침 이진수를 만나러 온 김정식이란 플레이어에게서 그것을 확인했다고 결론지었다.
따로 묻고 싶은 게 많은 듯 보이는 유서린이었지만,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이번의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뿐이다.
“철원엔 사람을 따로 보내죠.”
“…아뇨. 일단 근처만 지켜 주세요.”
“왜죠?”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이 남았는지 몇 번이나 검사를 했잖아요. 그럼에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즉시, 제가 직접 가볼게요.”
“한정우 플레이어가 가면 발견할 수 있나요?”
“가능성이 훨씬 크죠.”
잠시 생각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건은 그렇게 하죠. 그나마 보고된 인원에 대해서는 위치파악도 됐고, 부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인원에 대해서는 정보가 필요해요.”
“무슨 정보를 어떻게 모아야 할까요?”
유서린이 시험하듯 물었다.
적어도 정우는 그렇게 판단이 되었다.
“퍼트린 자가 있으니, CCTV든 뭐든 찾아봐야죠.”
“그게 전부인가요?”
“그리고 한 가지.”
정우는 위를 가리켰다.
“컨트롤 타워에 접속할 권한을 줘요.”
“…….”
안 팀장이 입을 쩍 벌렸다.
컨트롤 타워.
지휘부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영공해상에 등장하는 모든 던전을 파악하는, 이를테면 던전 감지 시스템.
던전 특유의 마력을 포착해서 플레이어를 파견하는, 지금의 협회가 있게 만든 초유의 시스템이었다.
플레이어법으로 정해진, 협회만이 보유할 수 있는 초범적인 시스템.
“접속하면?”
“찾아내야죠.”
“할 수 있나요?”
“가능해요. 시간이 문제겠지만.”
그런 시스템에 대한 권한을 일개 플레이어에게 한시적이지만 부여한다는 건 엄청난 사태였다.
“한정우 플레이어는 이게 그 정도의 사안이라고 보시나요?”
“네.”
“왜죠?”
“박쥐 무리. 안 팀장도 알 정도면 대장도 알겠죠.”
대장이라는 단어에 유서린의 입가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계속 늘 거예요. 제가 아는 그대로라면, 놈들은 G급 던전을 통해서 각성하지 않았으니까요.”
“G급 던전을 통해서 각성하지 않았다…….”
“제가 알게 된 사실이 맞는지 틀린지는 확인해 봐야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계속 일반인이 무분별하게 각성할 거예요. 플레이어가 아니라.”
정우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몬스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