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박쥐 무리 (8)
터지는 육신.
사방으로 퍼지는 피.
노련한 이진수조차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즉각적이고 예외적이었던 상황.
하지만 어느새 거리를 벌린 정우의 손짓에.
후두두둑!
살점과 피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보이지 않는 손에 짓눌린 것처럼.
“……김정식?”
“피에 닿았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이진수가 멍하니 사람이었던 피륙의 잔해를 보며 중얼거리자.
정우가 다가가 물었다.
“이게… 뭔 일이야?”
“안 닿았지?”
“뭔 일이야!”
이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팀원이 될 사람이 갑자기 폭탄처럼 터져 죽었다.
뱀파이어? 변이체?
“이게 뭐냐고!”
정우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이진수의 옆에 섰다.
자신을 보며 묻지만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친구를 보며.
냉정하리만큼 차가운 진실을 말해야 했다.
“뱀파이어의 변이체. 정확히 말하면, 놈은 인간이 아니야.”
“하…. 하? 그게… 무슨 X소리야?”
“진수야. 나이트 길드에 연락해. 놈에게 당한 사람은 없는지.”
“…정우야. 뭔 소리인지 알아듣게 설명 좀 해봐. 저 새끼, 왜 갑자기 터진 거야?”
“하아….”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와.”
정우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돌아가는 길.
고개를 돌려 정우와 김정식이었던 것을 번갈아 보던 그가 정우의 곁에 따라붙었다.
“설명해.”
친구라서 이 정도지 아니었다면 당장 멱살을 쥘 정도로 살벌한 표정이었다.
“던전 브레이크. 비슷한 게 발생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뱀파이어 알지?”
“피 빠는 흡혈귀. 전설이잖아? …네 말은. 그게 지금 몬스터로 있다는 거야?”
“그래. 맞아.”
“……백 번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브레이크라며? 저놈은 인간이야.”
“말했잖아. 변이체. 감염된 거야.”
“……피 빨렸다고?”
“비슷해.”
정우의 말에 이진수가 하늘을 살짝 보며 침음을 흘렸다.
예전이라면 도시 괴담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진수는 농담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이놈은 이런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갑자기 터지는 순간은?
몬스터가 나타나고 플레이어가 생겨난 이후부터.
공상은 그저 공상으로만 남지 않았다.
실현될 만한 가능성이 너무도 컸으니까.
세계는 변화했고.
변화하는 만큼 적응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저 사람이 찾아왔을 때부터 이야기해.”
“…별거 없어. 너한테 말한 것처럼 어느 날 찾아와서 시험을 봤고, 인사팀 직원이 나한테 연결을 해줬어. 딜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 팀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뿐이야.”
“오늘 오는 거 아니지 않았어?”
“…그러니까. 미리 왔다고 하는데 잘 왔다고 하더라고.”
“딴말은?”
엄마를 부탁한다, 이진수는 김정식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젠장, 입맛이 썼다.
“…적합률이 좋다고 했어. 누군가가 찾아올 거란 말도.”
“적합률….”
“넌 뭔지 아는 거냐? 어떻게 아는 거야?”
“진수야.”
“…어?”
“할 말이 있다.”
정우의 심각한 표정을 본 이진수가 걸음을 멈췄다.
이야기를 하자는 놈은 죽어 버리고.
영 다른 놈이 대화를 청했다.
이진수는 친구의 떨리는 눈동자에 긴 한숨을 쉬었다.
“…말해.”
* * *
충격.
다른 말로 치환할 수 없는 충격이 이진수를 휩쓸었다.
“……그, 그러니까.”
이 정도까지 놀랐던 게 언제인지.
충격과 공포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진수는 절감했다.
“저, 정리부터 하자.”
더듬거리면서도 이진수는 헝클어진 머릿속을 되짚었다.
불과 10분 남짓한 이야기.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내용에 몇 번이나 친구의 얼굴을 살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진수는 좌절해야만 했다.
진심이 느껴졌기에.
문득 친구의 음성에서 떨림이 느껴졌을 땐, 머리를 둔기에 맞는 느낌도 들었다.
정우가 이번 던전에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진수는 최대한 냉정을 가장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리를 하려고 보니 헝클어진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
몇 번의 질문.
그리고 몇 번의 대답.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는 친구가 생경했지만.
으득.
이진수는 욕설이 치밀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떠오른 기억이라는 게.
“…됐어.”
“……뭐가?”
“믿어 주겠다고. 아니, 믿어. 넌 헛소리를 할 놈은 아니니까.”
“…그렇게 간단한 게….”
“간단한 게 아니면? 넌 날 믿고 이야기를 해줬잖아. 누구에게도 이런 말은 쉽지 않을걸?”
사실이었다.
세상 누구에게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특히나 가족에겐 더 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약간의 충동.
그리고 상당한 믿음.
정우는 지금이 아니었다면.
이진수가 곁에 있는 지금이 아니었다면, 아마 친구에게도 이 일을 숨겼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진수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적잖은 안도가 밀려들었다.
친구가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속이 타들어 갔다.
피식.
웃음이 흘렀다.
“한정우.”
“…어.”
“네 이름이 달라지냐?”
“글쎄. …그전의 이름은 모르니까.”
“넌 이모를 남이라고 생각해?”
“아니.”
“삼촌, 안 구하고 싶냐?”
“아니.”
“너… 차라리 그 기억대로였으면 하지?”
“…….”
“삼촌을 구할 확률이 더 높아졌으니까.”
“…….”
“정우야. 이 병X 같은 놈아. 너 내 친구야.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난 고맙다.”
“…진수야.”
“방금까진 당당하더니 네 이야기 하니까 주눅이 드냐?”
이진수가 정우의 어깨를 툭 쳤다.
“예전에 있잖아….”
둘이 공유하는 기억.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을 꺼내는 이진수의 말에 정우 역시 같은 장면을 떠올렸다.
이진수의 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추억이 그렇게나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잊고 있던 기억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기억은 많았고.
추억은 깊었다.
“상관없어.”
“…….”
“이모한테 물어볼게. 배 아파서 낳은 거 맞냐고.”
“야… 그건 아니지.”
“킥. 키킥.”
이진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김정식 때만 해도 당당했던 놈이 움츠려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야 한정우 같네.”
이진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넌 내 친구고, …네가 진짜로 ‘저쪽’ 세상에서 왔다고 치더라도.”
이진수는 정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사마귀를 닮은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정겹게만 느껴졌다.
“…그래. 고맙다.”
정우는 눈을 감으며, 기억을 떠올렸다.
폐쇄되던 던전에서 떠오른.
회상을.
* * *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무너질 리가 없다고 여긴 것들이.
단어처럼 모래성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변화는 빨랐다.
속수무책으로 사라지는 환경을 보는 ‘나’의 시선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었다.
“……아아.”
신음을 흘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두 손은 결박당했고.
두 발은 잘리었으며.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으니까.
실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부서지는 모든 것들은 내가 그토록 노력하여 얻은 것들이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마을이.
청년들의 연애 장소로 즐겨 사용되던, 꽃이 만발한 사계절 정원이.
아이들이 깔깔대며 전쟁놀이를 즐기던 푸른 동산이.
나의 모든 지식의 집대성이자, 이 도시를 단단히 떠받치고 있었던 ‘탑’이.
한낱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장면은 나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울컥.
가슴이 저린다.
따뜻한 빵을 들고 탑의 입구에서 ‘아저씨’라고 부르던 아이의 음성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수줍은 표정으로 흰 장미 한 송이를 내밀던 마을의 제일가는 미녀, 세실의 눈물이 사라졌다.
평생에 걸쳐.
대륙 어디에도 없는 평화로운 지역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이.
한 줌의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 모든 것들을 보는 내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겁화.
한 줌의 불길도 보이지 않았지만 불길처럼 타오르듯 흩어지는 먼지는 세상을 태우고 남은 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증오가 치민다.
익숙한 얼굴이다.
더없이 친근한 얼굴이었다.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내게 다가와 이 터전을 만드는 데 조력했던, 친우였다.
놈이 다가온다.
이 빌어먹을 상황의 원흉이!
어떻게 참았던 걸까.
순간적으로 그런 의문이 들 정도의 비틀린 웃음을 매달고.
놈이 다가왔다.
무어라 중얼거리며 열리는 입술.
들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놈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다.
누군가가 나의 고개를 아래로 짓눌렀지만.
끝끝내 목만 비틀어서라도 노려보자.
놈의 얼굴에 균열이 갔다.
그만한 오만을.
어떻게 감췄던 건지.
그만한 질투를.
어떻게 숨겼던 건지.
모든 것을 희망적으로 보던 과거의 내가 절절하게 미워졌다.
나는.
이계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 * *
각성 전에 마력을 보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깨어진 그릇이나마.
잔존하는 마력이 있었으니까.
왜 남들과는 다른 진행을 가지게 된 건지.
기억상에서 정확하게 떠오른 건 없었지만.
쉽게 유추되는 건 있었다.
‘…난. 인간이 아니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계의 인간이다.’
탄생 자체는 지구가 맞을 터였다.
하지만.
여태껏 자신의 마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알아 온 지식들이 오히려 충격을 부추겼다.
마력은 그릇의 힘이다.
마력을 담는 그릇은 영혼이다.
영혼은 깨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마력을 보는 것.
남들과는 다른 방식을 거친 것.
적대하는 몬스터를 만난 것.
전부가 다 이어져 있었다.
영혼은 깨어졌지만 고스란히 남아있고, 영혼에 남은 기억은 권능이 되어 회상으로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때문에 정우는 던전을 나와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했다.
혼자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변이체’를 보는 순간.
자신의 태연함이 쓸모가 없어졌다.
자신 외에도.
‘지구’로 넘어오는 놈들이 있었으니까.
하필이면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놈들이었다.
‘뱀파이어…….’
이진수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건 반쯤은 충동적인 일이었다.
이계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 정도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우는 그러지 못했다.
가장 믿었던 친우에게 배신당한 기억이 떠올랐음에도.
여전히 사람을 믿기에.
이계의 자신이 아닌.
지구의 한정우란 사람으로서.
이진수라는 친구를 믿기에.
이 허무맹랑한 말을….
“…그래. 고맙다.”
믿어 주었기에.
정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
“박쥐 무리부터 찾아야겠어.”
“안 팀장에게 말할까?”
“아니. 대장에게 직접 말할게.”
“아, 유서린 씨?”
“그쪽도 내가 특이하다는 걸 대충 아는 사람이니까.”
“하……. 그래. 그게 낫겠다.”
이진수가 동의했다.
“근데 한 가지만 물어보자.”
“…어.”
“변이체가 나왔다는 말은 뱀파이어가 등장했다는 소리잖아.”
“맞아.”
“근데 뱀파이어와 관련된 던전 브레이크는 발생한 적이 없어.”
“…알아봐야지.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으니까.”
“뭔데?”
“강원도 철원.”
“네가 갔었던 언데드?”
“맞아.”
“언데드와 뱀파이어가 관련이 있어?”
뱀파이어란 몬스터 자체가 등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진수는 세세하게 물었다.
“내 기억도 온전하진 않아. 하지만… 분명히 관련이 있을 것 같아.”
“그럼 거기부터 확인하는 건?”
“변이체부터야. 변이체는 감염시키는 능력이 없어. 다른 누군가가 있어.”
“…젠장. 뭐가 갑자기…… 후우. 아, 그래. 알았어. 일단 우리 길드에도 이야기를 해 놓을게.”
“안 팀장 말대로라면 협회에서 박쥐 무리를 파악하고 있을 거야.”
“너희 대장과 연락되는 대로 나한테 말해 줘.”
이진수가 다급히 길드에 연락을 했다.
정우는 그 모습을 본 후,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음 끝에 상대방과 연결이 되자.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그런 이유로 모아 주시면 좋겠어요.”
-으음. 알았어요.
“절대로 피에 닿지 않게 해주세요.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