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박쥐 무리 (7)
“이진수 플레이어 찾는 사람이 왔네요? …뭐야. 둘이 심각한 이야기 해요? 표정이 영 아닌데? 잘못 끼어들었나?”
안 팀장이 볼을 긁적였다.
“…음.”
이진수가 침음을 삼켰다.
친구의 상태가 그리 온전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제가 나가 볼 테니 정우 좀 부탁드릴게요.”
“알았어요. 으음. 치료사는 별일이 없다고 그러던데요.”
“…지쳤나 보죠.”
“그럼 잠깐 쉬어요. 일단 옆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안 팀장이 윙크를 보냈다.
이진수는 괜히 못 미더운 느낌이 들어 망설였지만, 자신을 찾아온 ‘그’를 떠올리고는 주춤 자리를 비웠다.
“하는 거 보면 아주 보모가 따로 없네요.”
안 팀장의 말에 정우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영 별로예요? 병원으로 이동하는 건 어때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잠깐. 잠깐만 쉬면 돼요.”
“뭐, 오케이. 불편하면 이야기해 줘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권능이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저 과장된 소문이 아니었나.’
과거 격변의 시대의 마지막은 인간과 인간의 결전이었다.
추악한 본성을 깨닫고, 안정을 거부하며 오히려 혼란만 추구하던 놈들.
그리고 그런 놈들을 없애고 다시 평화로운 시대를 열고 싶어 한 영웅들.
몬스터라는 공통의 적이 시들시들해지자 둘의 시선은 서로에게 향했다.
각자의 이념과 행동이 달랐기에.
서로를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부딪쳤다.
그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마왕.’
빌런 협회의 수장이자.
공인된 전 세계 플레이어 중 부동의 랭킹 1위.
마왕의 최후의 전투였다.
무려 대마법사 질 고메즈와 한국의 영웅 바람술사 유지석. 그리고 뇌신 알렌 보머까지.
무려 셋을 상대로도 패배하지 않은 부동의 최강자의 전투 때 언급되던 것이 바로 ‘권능’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마왕의 도주를 막지 못했던 뇌신이 직접 인터뷰에서 흘린 내용.
‘정확하게는 권능이 아니라 권능과 같은… 이란 표현이었지만.’
마왕이 스킬 이상의 능력을 사용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기에, 권능이라는 단어도 힘을 얻을 때가 있었다.
다른 이슈 때문에 금방 시들해 버렸기에 잠깐뿐이었지만.
‘…그랬어.’
정우는 당시를 떠올렸다.
다행히 알 만한 이가 근처에 있었다.
협회장 유지석.
‘물어봐야겠어. 그간의 의문까지 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권능은 사용이 불가능했어.’
보상으로 얻은 권능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조건이 뭘까?’
정우는 설명을 떠올렸다.
[ 회상(回想) ]
등급 : 권능
조건을 성립하면, ‘기억’을 떠올린다.
조건 자체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단어는 그것이었다.
‘…기억이라. 무슨 기억인 거지?’
떠올린다는 표현도 마음에 걸렸다.
정우는 몇 번이고 해당 내용을 곱씹었다.
“음….”
“일어날 거예요?”
안 팀장이 물었다.
“밖에 나가 보려고요.”
“이진수 플레이어 불러 줘요?”
“아뇨. 어차피 만나러 가는 건데요.”
“일단 같이 나가죠.”
살짝 비틀거렸던 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진수 플레이어 봤어요?”
안 팀장의 물음에 누군가가 손을 가리켰다.
“어떻게 해요? 잠깐 볼일 보는 것 같은데… 기다릴까요? 아니면?”
정우가 멍하니 가만히 서 있어서 안 팀장이 정우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한정우 플레이어?”
“…제가 혼자 가볼게요.”
“아뇨. 그래도 몸이 안 좋은데….”
“제가. 혼자. 갈게요.”
“……음? 알았어요.”
안 팀장이 다급히 몸을 돌렸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오싹한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안 팀장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싸악.
정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느릿하던 정우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자연스럽게 마력을 읽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다가 사라지는 기억.
‘던전 안에서 봤던 것과 비슷해….’
기억.
회상의 권능이었다.
던전 안에서 정우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던전이 사라지는 순간, 오버랩되듯 떠오른 기억.
그게 탈력감의 원인이었다.
그와 비슷한 게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옅지만,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순간적인 기억이.
그건 정우를 재촉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이계엔.
수많은 종족이 존재했다.
판타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여러 종족이 실존했다.
던전에서 경험하는 몬스터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녀라는 종족이 정우에 의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저 몬스터처럼 여겨졌던 것처럼.
인간은 아직 ‘이종족’이라 불리는 지성을 가진 존재들을 만난 적이 없다.
엘프, 드워프 같은 존재들 말이다.
마녀의 지식은 방대했지만, 불완전했다.
‘아라크네에게 사로잡힌 이후부터는 기록이 없어서 아쉬워했었는데….’
그 찰나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엘프도 아니고 드워프도 아닌.
전혀 다른 종족이지만.
* * *
“어디까지 가려고?”
“…다 왔습니다.”
이진수가 볼을 긁적였다.
자신이 부르긴 했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너 괜찮냐?”
혈족.
그 특이한 직업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진수는 꽤나 많은 일을 했다.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만큼 나이트 길드에는 수많은 장비와 인원이 존재했다.
소속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진수는 자신의 팀원이었던 부하직원의 부탁을 받아 눈앞의 인물에 대해 여러 검사를 진행했다.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것 같아 보여. 안색이 하얗잖아.”
“괜찮습니다. 적응하고 있어서 그럽니다.”
“적응?”
이진수는 걸음을 멈췄다.
“이 정도면 충분히 떨어진 거 아니야? 대충 말해도 될 텐데?”
“그렇습니까?”
“어. …너 안 괜찮은 거 같다니까? 뭔가 사람이 더 딱딱해진 것 같아. 처음엔 이 정도 아니었는데.”
“괜찮습니다.”
“…뭐, 네가 괜찮다니까 그냥 넘어간다만.”
이진수는 팔짱을 꼈다.
“그래서 할 말이 뭐야?”
사내는 이진수의 눈을 가만히 주시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 팀장님은 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힘?”
“네. 힘.”
“힘이야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절대적인 것 아닙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어.”
“그럽니까?”
이진수가 팔짱을 풀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너 원래 이런 느낌 아니었는데, 이상하네?”
“원래 이렇습니다.”
“안색도 별로고. 내려오는 게 힘들었냐?”
“아닙니다.”
“뜬금없는 질문은 뭐고?”
“이 팀장님은 누군가가 힘을 준다면 받으실 겁니까?”
“뭔 헛소리야?”
“받으실 겁니까?”
“…이 새끼 컨셉 진짜 이상하게 잡네.”
이진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힘? 받으면 좋지. 그런데 뭔 줄 알고?”
“안 받으실 겁니까?”
“주는 게 내가 믿는 사람이라면 오케이. 하지만 그 외엔 절대로 싫은데?”
“…그렇습니까?”
사내의 얼굴에 수심이 살짝 생겼다.
“뭔데 그래? 그렇지 않아도 물을 게 있었어.”
“뭡니까.”
“박쥐 무리. 뭐냐?”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니까. 각성 때부터 한 번 다시 듣고 싶은데.”
“왜… 그러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삼촌이 유일한 케이스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생길 줄 누가 알았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희한하다고.”
이진수의 찢어진 눈이 사내의 전신을 훑는다.
“너 정상적으로 각성한 케이스 맞냐?”
“…비정상도 있습니까?”
“모르지. 그런데 내 감이 넌 비정상 같다고 외치네?”
“……그래서 오라고 한 겁니까? 이곳으로?”
“어. 여기에 내가 믿는 놈 하나가 있는데, 이놈 눈이 좀 좋거든.”
“한정우 말입니까?”
“……네가 정우를 어떻게 알지?”
“…알 수밖에 없습니다.”
이진수가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
“제대로 말하지?”
“놓으셔도 됩니다. 다행히… 오늘은 빛이 가장 옅을 때입니다.”
“다행?”
사내가 태연한 표정으로 이진수의 팔을 풀었다.
“저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됐잖아.”
“…네 번이나 던전 입장권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음?”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진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이 팀장님은 저보다 ‘적합률’이 좋습니다.”
“……적합률?”
“사실 오늘 여기까지 온 건 충동적이었습니다.”
“적합률이 뭔데?”
“그런데…….”
사내가 고개를 비틀었다.
이진수를 보는 눈엔 기이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은은한 달빛을 받은.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잘한 것 같습니다.”
“…….”
“얼마 전까지는 무조건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야.”
“플레이어가 되면 엄마 고생도 그만 시키고 싶었습니다.”
“정식아?”
“그래서 플레이어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혹했습니다.”
“……플레이어와, 같은 힘?”
김정식은 손을 들었다.
은은한 마력이 맺혔다.
붉은색.
저 때문이었다.
이진수가 김정식을 정우에게 데리고 올 생각을 했던 이유가.
길드 내의 모든 장비는 김정식을 플레이어로 구분했다.
기본적인 능력도 준수했고, 특별한 직업까지.
이제 갓 각성한 주제에 마력을 다루는 솜씨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학원에 대한 내용도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의 말은 의아했다.
“무슨 소리야?”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되지도 못하고….”
“무슨 소리냐고.”
“엄마를 실망시킬까 봐 더 두려웠습니다.”
이진수가 김정식의 어깨를 잡았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감촉.
이진수는 김정식의 얼굴을 살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뭐가?”
“오늘 오길 잘했습니다.”
“……야!”
툭.
김정식이 이진수의 손을 털며 뒤로 물러났다.
몇 발짝 물러난 그의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걸렸다.
흠칫.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미소.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너 뭔 짓인데?”
이상한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이진수가 물었다.
김정식은 고개를 저었다.
“전… 적합률이 낮았습니다.”
“X발. 그 적합률이 뭔데?”
“‘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
“……뭐?”
“이 팀장님의 적합률은 저보다 높습니다.”
“뭔 피?”
“제 선택으로 이 팀장님에게 남은 미래는 두 종류뿐입니다.”
“미치겠네. 너 무슨 스무고개 해?”
“그가 올 겁니다.”
“…그?”
이진수가 답답한 표정으로 입술을 축였다.
김정식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전하려는 것 같은데….’
말하는 모습이어서, 이진수는 기다렸다.
“제게 기회를 준 사람.”
“사람? 사람이라. 너 각성은 G급 던전에서 한 거 아니었냐?”
“G급 던전은…… 공략해야 할 곳.”
“했잖아?”
김정식이 고개를 저었다.
“그를 받을지.”
“…대화 맥락이 이게 맞아?”
“그와 싸울지.”
“답답해 미치겠네?”
“저는 이 팀장님이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야…. 야, 아, 후우.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데?”
“이 팀장님.”
김정식이 양손을 들었다.
“제가 바란 건 이 힘이 아니었습니다.”
“…….”
이진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거 아십니까?”
“……또 뭐?”
“지금도… 늘고 있습니다.”
“뭐?”
“때때로…… 붉은 눈이 보입니다. ‘왕을 경배하라’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도 있습니다.”
김정식이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제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이 이 팀장님밖에 없었습니다.”
“그거야 네가 우리 팀 막내로….”
“찾아올 겁니다.”
“미치겠네. 너 진짜로… 안 괜찮아 보여.”
“…안, 괜찮습니다.”
“병원에 갈래? 치료사라도 불러줘?”
“가끔씩 머릿속이 멍해…….”
김정식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나무 뒤쪽에서 예리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진수는 즉각 반응했고.
김정식은 오히려 팔을 축 늘어트렸다.
갑자기 나타난 상대에 반응하려던 이진수가 다급하게 마력을 풀며 외쳤다.
“정우야!”
턱!
하지만 그의 음성은 정우를 막지 못했다.
정우는 김정식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꽂았다.
콰앙!
“비켜. 이진수. 이놈이 뭔지 알아?”
“야, 얘가 내가 이야기했던 그놈….”
“뱀파이어.”
“……뭐?”
“정확히는 변이체야.”
“그게 무슨…….”
바닥에 눌린 김정식이 이진수를 보며 말했다.
공격을 당한 것치고는 너무도 차분한 어조였다.
“엄마를 부탁합니다.”
부글!
김정식의 온몸에 갑자기 수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