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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95화 (95/293)

95화

-박쥐 무리 (6)

“말도 안 돼.”

종결을 알리는 메시지엔 일행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끝?”

입장한 지 오래 지난 것도 아니었다.

하루 혹은 이틀.

길게는 삼 일까지도 잡고 준비를 했지만.

막상 전투는 반나절 만에 끝나 버렸다.

어느 쪽도 전멸하지 않은.

기이한 결과로.

허무하리만큼 간단한 결과에 당황하는 사이.

츠스스!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얼른 나가라는 듯, 모여 있던 일행의 바로 옆에서.

‘정우야…….’

이진수는 정우를 보았다.

때마침 고개를 돌린 정우와 시선을 부딪쳤다.

이진수는 어색하면서도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다.

“보상 들어왔다. …어떻게 해?”

물으면서도 정우의 결정이 예상이 되었다.

“먼저 나갈 수 있어?”

“…음. 같이 나가는 게 좋을 건데. 혹시나 저놈들이 달려들면 어떻게 해?”

여전히 많은 수였다.

“괜찮을 거야.”

“…정우야.”

“진수야. 일단… 먼저 나가면 안 될까?”

“너 혼자서 뭘 어떻게 하려고?”

“완료됐잖아.”

“완료라고 끝이 아니잖아!”

“진수야. 나가서 이야기해 줄 테니까 얼른 나가. 시간이 별로 없어.”

“음… 진짜 괜찮은 거냐?”

“괜찮아. 그리고 진짜 시간이 없어. …던전 무너지고 있거든.”

“던전이? ……너 그거도 보이는 거냐?”

“어. 그러니까 빨리 나가.”

“후우. 알았다. 그럼 나가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을 테니까, 던전 완전히 닫히기 전에 나와라.”

“알았어.”

정우는 게이트로 향하는 이진수의 등을 보았다.

망설이던 이들이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벗어났다.

던전에 남은 건, 정우와 오크들뿐.

일행이 사라지자 정우는 표정을 굳히며 전면을 노려봤다.

‘…또 뭐냐.’

정우는 자신의 각성 순간부터 떠올렸다.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방식.

[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보상을 받았는데, 나는 아직도 산정 중이라?”

튜토리얼에서도 그랬다.

관문을 클리어했을 때에도 보상을 산정 중이라며 당혹게 했다.

오크들은 정우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멀리 떨어지라는 명령에 따르듯 거리를 벌린 채로.

정우는 그사이.

스스로를 보았다.

근력 : 50(+5)

민첩 : 50(+5)

체력 : 50(+5)

마력 : 30(+15)

“…숫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게… 우연인가?”

간만에 보는 상태창의 수치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전보다 성장한 건 사실이었다.

한계까지.

“메아리를 성장시키는 퀘스트가 오히려 내게도 영향을 끼쳐. 상호 적용이라는 말은 없었는데… 왜일까? 이지스 말대로 메아리가 나와 영혼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일까?”

정우는 이번의 성장이 꽤나 기대가 되었다.

두 번의 성장.

하지만 그 두 번만으로도 얻은 게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보상 자체가 유보되었다.

“…이유는 간단하겠지.”

정우의 눈동자가 무거워졌다.

“안정화.”

아직 안정화가 덜 된 것이다.

정우는 거기까진 아주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

‘왜 지금은 보상을 산정 중인 걸까?’

남들과는 달리 한 템포 늦게 주어지는 보상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였기에 더욱 정보에 매진했었다.

“그렇게 따지면… 마녀 일족부터가 그렇지.”

각성과 동시에 주어진 아공간.

그 안에 존재하던 열쇠.

제임스 밀러의 연구실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그의 소유인 던전에까지 이어져 결국 회랑이라는 열쇠로 재탄생하게 된 순간부터.

“그래. 계속 드는 의문이 있었어.”

멀어진 오크는 정우에 대해 어떠한 적대감도 품지 않았다.

부족장이 사라진 것치고는 상당히 극단적인 변화.

종 자체가 다른 상황에서의 오크는 스스로가 납득할 때까지 달려드는 게 당연했지만.

‘그러지 않아.’

단 한 번의 대결로 정우를 인정했다.

‘왜일까?’

여러 의문이 정우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열쇠는 내가 필요한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

바로 지식 말이다.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내게 지식은 그 어떠한 것보다 값어치가 있는 거였어. 그런데… 그 지식 덕분에 나에 대한 정보도 얻었잖아.”

이계의 상황과 몬스터의 습성 따위는 무시하더라도 얻은 게 엄청났다.

빠각.

하늘에 금이 간다.

마력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균열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게이트가 생성되면서부터 부서져 사라지던 이전과는 다른, 다소 느린 전개였다.

마력이 빠져나간다.

던전을 이루고 있던 마력은 여전히 막대했다.

“…….”

정우는 오크들로 시선을 옮겼다.

여태껏 모든 던전은 몬스터를 전멸시킨 후에야 파괴가 시작되었다.

‘방어전도 원래라면 다를 바가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정우는 워리어를 잡고 얻은 자격을 ‘선언’함으로써 부족장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대결 자체를 신성하게 여기는 건 오크의 습성이었지만.

‘…솔직히 한 번에 인정한 건 의외였다.’

오크들은 이렇게 쉽게 인정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자신들을 일거에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닌 마녀에게조차 끝까지 대적하던 게 바로 오크라는 놈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정우는 부족장을 쓰러트리자마자 인정하고 나섰다.

‘……그렇군.’

잠시 고민하자 나름대로 답을 내릴 수가 있었다.

“…없는 거다.”

몬스터이기 때문에 마력을 느끼는지 급변하는 세상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종말을 맞이하는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놈들의 번들거리던 눈알이 다급함을 머금고.

‘날 본다.’

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워리어가 될 만한 놈들이 없는 거군. 더 이상 내게 도전할 놈이 없기 때문에 내게 대적하지 않는 거였어.”

나약한 놈들.

말 그대로 수적 우위만이 유일한 무기인 약자들만이 이곳에 남았다.

“방어전의 보상이 튜토리얼처럼 곧장 지급된다는 건 특별한 일이야.”

방어전은 일반적인 던전과는 다르다.

해당 지역을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장이 가능했으며.

때때로 복권에 가까운 보상을 얻었다.

아티팩트.

던전을 거치지 않고 곧장 주어지는 보상까지도.

“튜토리얼과 방어전의 체계는 같다. 따지면… 관문이나 다름이 없는 거야.”

일반적인 던전과는 법칙이 달랐다.

왜 G급 던전에서만 각성이 이루어지는 건가.

왜 G급 던전과 F급부터의 일반 던전은 진행부터 보상까지 상이한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의문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오크들이 비명을 지른다.

살려달라는 듯 다가와 의미를 알 수 없는 고성을 내질렀다.

절망과 절규.

간절과 염원.

그 모든 것들을 담은 오크의 표정엔 절박함만이 가득했다.

단 한 번의 전투.

고작 그것으로 해결책을 갈구할 정도의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럼에도.

“…너희는 왜, 내게 구함을 청하는 거냐?”

정우는 오크의 눈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분다.

거세지는 바람 속에서.

정우는 오크들을 눈에 담았다.

소란이 커졌음에도 누구 하나 무기를 들이밀거나 이를 드러내는 놈이 없었다.

두려워하면서도, 갈구할 뿐.

“…왜냐.”

정우는 그 모습이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던전의 마력이 사라지는 건 매우 느렸다.

진공청소기처럼 빠르게 빠져나가던 마력은 천천히.

던전을 압박하듯 천천히 사라져 갔다.

정우는 던전의 의중이 궁금하다는 듯 사라지는 마력을 노려보았다.

종이에 붙은 불처럼, 천천히 존재를 없애며 다가오는 마력들이 오크를 지난다.

파르르 떨며 결말을 직감한 놈들은 아까 전 용맹을 떨치던 이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납작 엎드려.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심히도 마력은 놈들을 가볍게 스쳐 갔다.

마력이 사라진 부분이 오크와 닿는 순간.

“……!”

오크들이 천천히 사라져만 갔다.

천천히….

먼지가 되듯…….

지끈!

[ 보상이 주어집니다. ]

두통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에 정우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침음을 삼켰다.

[ 권능 ‘회상(回想)’이 각성하였습니다. ]

* * *

“한정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고 있던 이진수가 정우를 부축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부축한 친구가 축 늘어졌다.

“정우야. 뭔 일이 있었던 거냐?”

“……이진수?”

“그래! 나야! 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크들이 공격했어?”

“……아니. 아니야.”

“무슨……. 아니. 아니다. 치료사! 치료사!”

“…호들갑 떨지 마. 난 …괜찮으니까.”

“하얗게 질렸어. 괜찮기는 뭐가! 닥치고 치료나 받아!”

이진수의 으르렁거림에 정우는 희미하게 웃어 버렸다.

안 팀장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한정우 플레이어, 괜찮은 건가요?”

끄덕.

“…후우. 유 과장이 간 떨어지게 하는 면이 있다고 하더니 이런 걸 보고 그랬군요.”

안 팀장의 손짓에 달려온 치료사가 정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상 없습니다.”

“들었죠? 후우. 저쪽에 간이 텐트 있으니까 거기서 좀 누워서 쉬어요.”

안 팀장이 이진수의 어깨를 툭 치고는 몸을 돌렸다.

“…내가 본 협회 직원 중 가장 특이한 것 같은데?”

“푸흐. 그러냐.”

정우가 웃음을 흘렸다.

이진수의 부축을 받아 텐트로 들어가자 미리 쉬고 있던 불새 길드원들이 쭈뼛 안부 인사를 건넸다.

대충 화답한 정우가 물었다.

“…왜 갑자기 어색한 거지?”

“…보상이 과해서.”

“과하다니?”

“거의 다 스킬을 받았어.”

“스킬?”

“어. 스킬 보상도 매우 흔치 않아. 방어전쯤 아니면… 아예 불가능하니까. 보상이 과해서 그래. …돌려줄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그것 따위는 상관이 없었다.

정우는 불새 길드원을 힐끗 본 후 무심히 시선을 뗐다.

“너 보상 뭐 나왔어?”

“…스킬.”

“스킬? 넌 아티팩트일 줄 알았는데?”

이진수가 놀라워했다.

“왜?”

“…아티팩트가 스킬보다 등급이 높거든. 던전이 아니면 습득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정우는 보상을 떠올렸다.

권능, 회상.

권능이라는 이름이 붙은 스킬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

“진수야.”

“어.”

“방어전은 원래 그러냐?”

“…아니.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 그놈들한테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뭔데 갑자기 전투를 멈추고 너와 대결을 한 거냐고?”

“대결….”

“그래. 대결. 누가 봐도 대결이었잖아!”

이진수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몇 번째나 친구의 이상 현상을 목격했지만, 지금만큼은 꼭 물어봐야 했다.

고개를 숙여 정우의 귓가에 속삭인다.

“너… 놈들 말을 한 거지?”

“……약간.”

조용한 긍정.

하지만 파급력은 상당했다.

경악에 찬 고함을 내지를 뻔한 이진수가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

“안에서 그랬잖아. 이야기해 주겠다고.”

“…….”

이진수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그런데 말이야.”

“…….”

“…지금은 말 못 하겠다.”

“……후우.”

긴장으로 경직됐던 어깨가 살짝 늘어졌다.

“…술 한잔하면서 해. 지금은 나도 못 듣겠어.”

이진수의 말에 정우는 피식 웃었다.

“이건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인 거야.”

“그러냐.”

“근데 아무래도 넌 좀 귀찮아질 것 같아.”

“…내가?”

“어. 너 C급 보스 혼자 잡은 거잖아. …김기태 팀장도 보고를 할 거고, 불새 길드에서도 은근히 말이 돌 거다.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긴 했는데, 불새는 몰라도 김기태 팀장은 보고서 때문에 아예 언급 안 하기는 어려워.”

“…상관없어.”

“후우. 너, 잊지 마라. 진짜로 술 한잔하면서 들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무슨 표정인데?”

“…5년 전과 비슷한 표정.”

이진수가 정우의 양어깨를 잡았다.

“삼촌 구해보겠다고 혼자서 이를 갈던 때. …토악질하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던 때.”

“……그랬지. 그랬던 때가 있었지.”

“한정우.”

“어.”

“나도 플레이어다. B급이야. 나이트 길드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

이진수가 찢어진 눈을 부릅뜨며 정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이번엔… 같이 하자. 뭔 일인지 모르지만. …같이 해.”

강렬한 표정에 정우가 천천히 입을 열 때였다.

저벅.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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