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94화 (94/293)

94화

-박쥐 무리 (5)

오크에게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그들을 단순히 던전 안에서의 몬스터로 보지 않고, 나름의 문화와 생태계가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보는 이계에서나 등장한 주장.

마녀는 회랑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몬스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크는 엄연히 몬스터로 분류되나.

나름대로 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저자는 오크의 부락에 들어가 수많은 적대와 위협을 받았으며 그것들을 몇 차례나 이겨 내며.

인정을 받았다.

일반적인 일족에게서 인정을 받자 십부장이.

십부장에게서 인정을 받자 백부장이 등장하는 등, 점차 강자로 올라간 그는 자연스럽게 오크 워리어와 맞붙게 되었다.

몇 번이나 깨지고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던 오크 워리어를 결국 죽이고서야.

그는 오크들의 인정을 받았다.

오크의 워리어는 일반적인 전사와는 달랐다.

족장이 될 수 있는 자격.

힘과 용맹을 숭상하는 그들은 의외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평소엔 나약하고 때때로 강력하여 적이라는 인식은 있어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호탕한 문화를 지닌 놈들.

족장에 도전할 수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 강한 워리어에게 붙는 칭호가.

‘부족장.’

다름 아닌 부족장이었다.

“홉!”

“……!”

정우는 족장보다 앞서서 부족장에게 도전할 권한을 가졌다.

놈들의 언어로 ‘대결’이라는 뜻의 단어를 내뱉자.

“…두아니 챠, 홉?”

이진수의 방패를 부서져라 쳐대던 놈이 공격을 멈추고선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정우에게 몸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진수가 달려들려고 했지만.

정우조차 내버려 둔 오크들이 방향을 바꿔 부족장과 이진수 사이를 어떻게든 벌려 놓았다.

자연스럽게.

“정우야!”

포위된 형국.

하지만 정우는 태연하게도 부족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홉.”

쿵!

정우의 대답에 일제히 발을 구른다.

일행을 경계만 할 뿐, 오크들의 시선은 부족장과 정우에게로 향해 있었다.

오크에게 족장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대전사였다.

그런 대전사의 자리를 노리는 전사들의 결투 역시 신성한 것이었다.

대결.

오크들은 무지막지한 수를 자랑하지만 워리어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마녀는 이종족으로 처음, 워리어가 되었고.

‘족장까지 되었지. 이게 오크들의 기이한 문화야.’

인정을 받으면 된다.

인정만 받으면 오크들은 오히려 무한에 가까운 호의를 보인다.

오크든 인간이든.

자신들이 인정할 만한 가치를 지닌 이들은 편견 없이 대하는 게 오크들의 문화였다.

이 때문에 이계에서도 오크를 이종으로 분류해야 하나, 하는 의견이 종종 오가곤 했다.

결국 무산되었지만.

워리어를 이김으로써 실력은 검증되었지만, 인정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홉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순간부터.

인정을 넘어선 신성한 대결이 성립되었다.

부족장을 쓰러트리는 건 도전자의 역량.

그 순간을 목격하는 건 본인들의 당당한 권리.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안전해.’

부웅!

도끼를 휘두른 부족장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응하기는 하나, 인정은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결정을 온몸 가득 표현하는 부족장이 정우와 거리를 벌렸다.

“괜찮아. 뒤로 물러서서 만약을 대비해.”

정우는 자신에게 뛰어오려는 이진수를 만류했다.

걱정 가득한 눈초리로,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면서도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이진수를 향해 정우는 재차 눈짓을 주었다.

‘괜찮다니까.’

오히려 이진수가 나서면 위험했다.

‘오크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미리 한 번 이야기라도 했겠는데… 그것도 아니라서.’

오크들은 대결을 신성시여기는 만큼 방해받는 것을 참지 못했다.

이진수가 끼어들면, 오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일행에게 달려들 게 뻔했기에.

정우는 모두에게 손짓했다.

뒤로 물러나라고.

오크 부족장은 그런 정우를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홉이 진행된 이상, 상대의 만전을 기다려주는 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 틈을 타.

정우는 지팡이를 바닥에 꽂고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회랑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쉬워도 차라리 오크인 게 다행이지.’

적어도 여유가 생겼으니까.

차분히 머릿속으로 전투를 그린 정우가 지팡이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양팔을 벌리며 포효한 오크 부족장이 기다렸다는 듯 도끼를 들며 지축을 울렸다.

“어디까지 성장했나… 한번 보자.”

* * *

“…뭔 생각이야?”

갑자기 휴전이 되어 버린 전투에 이진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거…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럽네.”

김기태 역시 무장을 정비하며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전투가 멈췄다.

수백 회의 공략을 진행한 둘에게도 지금의 상황은 이례적이었다.

몬스터가 자의로 전투를 멈추고 다른 행동을 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마치 결투 같잖아?”

“이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한정우 플레이어는 왜 혼자서 저기에 나선 건가요?”

공 팀장이 땀을 닦으며 다급히 물었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합니까?”

“음….”

김기태와 이진수가 눈을 마주쳤다.

김기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진수가 나섰다.

“일단 뒤로 물러나죠.”

그의 말에 모두는 주변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경계가 무색하게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오크는 전무했다.

“…뭘까요. 이게.”

“저도 모르겠군요.”

“한정우 플레이어가 따로 말한 건 없습니까?”

이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이진수의 시선은 정우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어릴 적부터 봐온 친구의 모습.

이상하게도 낯설면서 익숙한 표정을 본 그가 조용히 말했다.

“…저거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거니까, 일단 우리는 회복부터 합시다.”

“승산이 있다고요?”

“잠깐. 진수야. C급 보스잖아.”

“알아. 그런데 저놈. 저 표정이면 포기 절대 안 해. 기억 안 나? 사막 고블린 족장을 혼자서 처리한다고 부탁할 때도 저 표정이었어.”

“……그러고 보니. 그랬군.”

김기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설득하던 정우가 떠올라서였다.

설득당하기도 했지만, 김기태는 당시의 정우에게 압도당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단호한 표정의 착 가라앉은 눈빛을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가까이 있다는 거야.”

“…후우. 넌 친구 때문에 피가 마르겠네.”

“그래서 얼굴이 반쪽이잖아.”

“…그건 네가 원래 사마귀를 닮은 거고.”

“저 자식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이진수가 김기태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위험해질 것 같으면, 곧장 스킬을 사용할게.”

“도발?”

“척하면 딱이구만. 맞아. 이번에 새로 습득한 건데, 좀 세거든.”

“뭔데?”

“이름은 좀 개판인데, 효과는 최고더라.”

“그니까 이름이 뭔데?”

“…세이렌의 유혹.”

“풉.”

김기태가 상황도 잊고 웃음을 터트렸다.

공 팀장을 비롯한 불새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웃지 말라고! 그쪽은 또 왜 웃어요? 우리 친해요? 앙?”

이진수가 버럭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세이렌의 유혹은 유명한 스킬이었다.

최고위급 탱커들의 주요 스킬이라 부를 정도로, 도발의 효과가 다른 스킬과는 급을 달리했다.

‘유망주다, 유망주다 했는데 진짜로 유망주였구나.’

김기태가 이진수를 흘겨보며 감탄하는 사이.

저릿!

쿠워-어어!

거대한 포효가 들려왔다.

도끼를 들고 정우에게 달려드는 오크 부족장의 모습이 보였다.

“…정우야.”

이진수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움찔거리며 눈을 떼지 못했다.

선수는 마법사인 정우로부터였다.

달려드는 놈을 향해 매직 미사일을 날리자, 오크 부족장이 도끼를 휘저어 그것들을 쳐 냈다.

몇 개는 몸으로 때우면서 달려드는 불도저 같은 모습에 정우가 지팡이를 아래로 그었다.

* * *

‘이 정도는 충격으로도 안 느끼는군.’

매직 미사일 몇 개가 적중했지만, 움찔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정우는 달려오는 놈의 시뻘건 눈알을 주시하며 지팡이를 내리그었다.

지팡이에 내장된 스킬.

‘정화.’

붉은 눈알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본 정우가 몸을 날렸다.

약간 느려진 속도로 부족장이 자신을 따라오자, 정우의 주변이 매직 미사일로 가득 찼다.

그와 동시에.

‘물의 정령.’

포옹, 맑은 소리와 함께 물의 정령이 부족장의 얼굴에서.

퍼엉!

터졌다.

“……!”

눈을 찡그리고 손을 휘저어 물기를 닦아 내는 사이.

“그래비티.”

정우의 마법이 작렬했다.

털컥!

무릎이 꺾인 부족장의 전신으로 매직 미사일이 이리저리 휘어지며 쏘아졌고.

퍽, 퍼억!

몇 발을 얻어맞으면서도.

크르-!

이를 드러낸 부족장이 독특한 언어를 내뱉으며 도끼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저런 스킬을 플레이어에게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문득 든 생각을 뒤로 미룬 채, 정우의 신형이 사라진다.

‘블링크.’

부족장의 위쪽으로 이동한 정우가 지팡이를 창처럼 아래로 내리꽂았으나.

쩌엉!

‘…근력은 나보다 위.’

도끼에 가로막혔다.

반발력으로 허공을 빙글 돌아 떨어진 정우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콰앙!

마력을 머금은 도끼질에 폭음과 함께 소멸해 버린 매직 미사일을 본 정우의 손이 움직였다.

‘염동.’

처음의 돌멩이 하나도 버겁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쿠라!”

부족장의 도끼가 벌어지는 팔과 함께 쭉, 밖으로 뻗는다.

순간적으로 노출된 가슴께에.

뒤쪽을 힐끗 본 정우의 손이 빙글 회전한다.

‘통로.’

부족장의 몸으로 일행의 눈을 가리고서는.

‘오러!’

오러를 머금은 지팡이의 끝이 통로를 넘어 부족장의 가슴에 닿았다.

‘매직 미사일.’

그와 동시에 폭증하는 마력.

지팡이의 마력이 부족장의 피부를 찢고.

그 안으로 마법을 줄기줄기 뿜어냈다.

펑!

아주 미약한 폭발음을 시작으로.

“…크어!”

부족장의 고개가 한껏 치켜 올라갔다.

포효가 아닌 통증으로 일그러진 굉음.

‘오크의 가죽은 질기고 단단해. 하지만 피부 안쪽은 두꺼운 근육을 빼면 인간과 비슷하다.’

터프한 움직임과는 달리, 상처가 나기 시작하면 금방 무기력해지는 게 오크였다.

그래서 오크의 전술이 인해전술인 것이다.

상처가 난 오크가 발목을 잡는 대신, 건재한 오크가 치명타를 날리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족장은 대단했다.

워리어 중의 워리어라는 평가답게.

휘리리릭!

고통을 참으며 던진 도끼가 정확하게 정우에게 쇄도했다.

도끼를 보던 정우가 통로를 해제하며.

“블링크.”

가볍게 투척을 피해 냈다.

“……크하.”

울컥!

가슴께가 벌어지며 녹색의 피를 줄줄 흘려댔다.

벌어진 상처는 마치 수술을 위해 개복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처참했다.

하지만 부족장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콧김을 내뿜으며 정우를 찾기 위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런 부족장의 투지와는 다르게.

“……!”

자신의 앞에 나타나 툭 하니 상처 난 가슴을 건드리는 손길.

쩌억!

부족장의 입이 벌어졌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통증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뻗어 나간 정우의 마력이.

놈의 몸속에서 거미줄처럼 퍼지고.

치이이익!

단번에 사기(死氣)를 퍼트린다.

언데드의 마력을 다루기 시작한 정우의 마력은 상처를 악화시키는 데 매우 유용했다.

전신을 누비며 헤집고 다니는 마력이 주는 통증은 매직 미사일을 막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뜨거운 숨을 헐떡이던 놈의 무릎이 기어이 꺾인다.

그 모습에 우왕좌왕하며 콧김을 내뿜던 오크들이.

쿵!

일제히 발을 굴렀다.

대결의 끝.

놈들은 자신들의 부족장이 패배했노라 선언했다.

거부감 없이 몰려든다.

패배자에게서 관심을 끊은 오크들의 시선은 정우에게로 향했다.

적대적이지 않은 시선.

적대적이기만 했던 몬스터의 변화에 정우는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투는 끝났다. 너흰 패배를 인정하고, 우리에게서 이곳을 탈환하는 것을 멈춰라.”

정우의 말에.

쿵!

오크들이 일제히 답한다.

부족장의 명령처럼.

일제히 반응한 놈들이 천천히 물러났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멀어졌을 때.

[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

[ 보상을 지급합니다. ]

메시지가 떠올랐다.

튜토리얼을 연상시키는 문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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