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91화 (91/293)

91화

-박쥐 무리 (2)

잠깐 잠에 빠진 정우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으레 꿈이 그렇듯, 깨어나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유서린에게 많은 걸 알렸음에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정우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B 섹터의 마력감지체계를 아직까지 손보고 있을 줄은 몰랐군.’

유서린은 협회의 경호팀을 B 섹터에 파견하겠노라 말했다.

일종의 보답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정우는 그녀의 보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슨 꿈이었지?”

꽤 중요한 꿈이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는 게 없어 답답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안녕하세요. 유아영 대리. 아니, 과장을 대신에 며칠간 한정우 플레이어를 지원하게 된 안서하 팀장입니다.”

유 대리를 대신할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반가워요.”

“본부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며칠이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제가 할 일은 뭔가요?”

“원래 예정대로 진행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맞을까요?”

“그렇게 이야기가 됐군요. 그럼 ‘방어전’부터 진행하면 될까요?”

“네. 아무래도 일정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동하죠.”

“아, 그리고 시간이 되면 아이템 상점을 방문하라고 하시더군요.”

“아이템 상점이요?”

“네. 몇 가지 물건을 준비하겠다고 하셨어요.”

“아직 준비는 안 된 모양이군요.”

“그래서 예정대로 진행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죠.”

꽤 독특한 사람이었다.

“…연락은 다 취해 놨을까요?”

“유 과장에게 인수인계받았습니다. 연락은 이미 돌렸다고 하더군요.”

“그럼… 이동부터 하죠.”

차에 탄 정우는 안 팀장이 건네는 태블릿에서 여러 자료를 보았다.

“유 과장이 편하다고 해서, 어지간한 내용은 그쪽을 통해서 전달될 거예요. 지원 1팀장이라, 한정우 플레이어 외에도 내일 선별될 인원 몇 명을 제가 맡게 됐거든요.”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안 팀장이 방긋 웃었다.

“잘생긴 사람하고 일하니까 기운이 나네요. 유 과장은 좋았겠어요. 조사를 하다 보니 갑작스럽게는 수입이 엄청나더군요.”

“탐나시나요?”

“뭐, 주면 고맙게 받겠지만 지금 자리에도 만족하고 있어서요. 돈이야 죽을 때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지금도 먹고 쓰고 놀 만큼 받아요. …시간은 없지만.”

정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방어전에 대한 간략한 내용도 넣어 놨더라고요. 유 과장이 일은 참 잘하는 모양이던데요?”

“그렇군요.”

“한 번만 확인할게요. 내일 들어갈 방어전 던전은 D급이에요.”

“네.”

“방어전 던전이 개인에게 돌아간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꽤 놀라고 있죠.”

“음. 운이 좋았죠.”

“이진수 플레이어는 픽업해서 같이 갈 거고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불새 길드는 왜 포함시킨 건가요?”

“뭐, 빚을 갚는 셈이죠.”

“아무튼 반응은 괜찮더군요. 한정우 플레이어는 미리부터 내정된 인물이라, 저희한테 자료가 꽤 많이 넘어왔거든요. 이번에 B 섹터에 파견되는 것도 저희 측이에요.”

“아, 그런가요?”

“지금은 제가 말을 많이 하지만 결국엔 한정우 플레이어도 전담팀의 전반적인 지식을 먼저 알 필요가 있어요. 물론, 협회의 사안이나 계획, 대외적인 크고 작은 사건도 알아야겠죠.”

“참고하죠.”

“좋아요. 그럼… 태블릿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계세요.”

“……뭐 하시나요?”

“잠시 자려고요. 눈이 부시면 못 자니까요. 따로 할 말 있으신가요?”

“…아뇨.”

정우는 안대를 끼고 잘 준비를 하는 안 팀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협회 직원들은 원래 이런 사람들이 많나? 꽤나 마이페이스네.’

유 대리도 평범하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유서린의 성격이 좋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였다.

“이진수 픽업한다면서요?”

“그때 잠깐 깰 거예요. 갑자기 인수인계받느라 두 시간도 채 못 잤으니까, 자야 해요.”

“아, 네.”

정우는 헛웃음을 참고 태블릿에 집중했다.

똑똑.

“이진수!”

“오랜만이네. 한정우!”

이진수가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안서하 팀장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번 분은 짤리셨나요?”

“아뇨. 교육 중에 있어서 제가 대타로 나왔죠.”

“그렇군요. 뭐, 자료는 대충 읽어 봤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파악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이동하는 동안 저는 좀 쉬겠습니다. 편하게 대화 나누시죠.”

다시 안대를 낀 안 팀장을 보며 이진수도 작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재밌는 분이네.’

‘나도 오늘 처음 봤다.’

이진수가 씨익 웃으며 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전운전 부탁드립니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너도 바쁘잖냐.”

“후우.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정을 들은 이진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됐다. 일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나도 지원할까? 전담팀?”

“됐어. 이번에 너 빼내는 것도 꽤 어려웠다고 하던데, 그렇게 바쁜 놈이 뭐 하러?”

“야, 나도 빌런 안 좋아해. 그 새끼들 완전 미친놈들이라, 기회만 되면 나도 놈들 잡는 거 도왔어. 오한우 그 새끼도 그래서 얽힌 거잖아.”

“그건 네 여자친구 건드려서 그런 거고.”

“아무튼 간에 난 빌런 안 좋아한다. 특히 너 빌런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걸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모자라.”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긴 한데… 됐어. 가끔 이렇게 던전 공략이나 도와줘.”

“쩝. 도와주고 싶은데 쉽지 않네. 요즘에 우리 길드에서 따낸 건수가 꽤 많아.”

“그래? 흐음. 여간 바쁘구나.”

“그러지 말고 네가 우리 길드로 오라니까? 야, 봐봐. 누가 각성한 지 1년도 안 된 플레이어로 보겠냐? 너 낮은 등급은 혼자서 공략한다며.”

“어.”

“허허. 그거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파티가 왜 있냐?”

“아무나라면 기준이 어떻게 되는데?”

“뇌신이나 마왕, 북한의 리나 유서린 급 정도는 돼야 하겠지. 특히나 유서린 씨는 이미 A급 던전 솔로잉도 성공했고….”

“A급?”

“몰랐냐? 너 유서린 씨 밑에 있다며.”

“어제부로.”

“풉. 어제나 오늘이나. 플레이어는 증권가랑 똑같아. 이슈에 민감해야 해.”

이진수가 핀잔을 건넸다.

“그런 의미에서 너 박쥐 무리라고 들어봤냐?”

“박쥐 무리? 뭔 동굴이라고 생긴 거야?”

“…정우야. 아무리 그래도 소식 좀 듣고 살자.”

정우가 볼을 긁적였다.

“요즘에 은밀히 들리는 소문인데, 스스로를 박쥐 무리라고 부르는 놈들이 생겼어. 뭐, 난 봤지만.”

“특이한 명칭인데?”

“그러니까.”

“근데 그게 뭔 문제가 되는 거야? 플레이어 단체 아니야?”

“…음. 그게 조금 이상하다고 하더라고.”

“나이트 길드에서도 박쥐 무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안 주무셨나요?”

“깼어요. 저도 알고 있어요. 박쥐 무리.”

“협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요.”

“당연하죠. 플레이어는 협회 소관인걸요. 그리고 미심쩍은 부분도 하나 있잖아요.”

정우가 끼어들었다.

“미심쩍은 부분이요?”

“미징후 던전이에요.”

“뭐가요?”

“그 사람들이 각성한 방법이요. 하나같이 미징후 던전이라고 하더라고요.”

“…미징후 던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한정우 플레이어는 아직 플레이어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 같군요. 유 과장에게 이런 쪽을 보충해달라고 말해야겠네요.”

졸지에 나머지 공부를 하게 생긴 정우가 황당하다는 듯 안 팀장을 보았다.

“모든 던전은 협회에서 관리해. 미징후라고 해도, 어쨌든 던전이 생겨서 사람들이 입장하면 특유의 파장 때문이라도 협회에서 사람이 나와.”

정우도 이미 겪어 봤기에 잘 아는 내용이었다.

“각성이라고 했잖아요. 다들 하나같이 일반인이었어요. G급 던전이란 소리죠.”

“G급 던전이요? 그럼 더더욱 무조건 협회에서 사람이 출동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런데 웃기게도 기록이 없어요.”

“…네? 기록이 없다니요?”

“미징후 G급 던전이 발생한 기록 자체도 없고, 누가 각성했는지 파악된 정보도 없어요.”

“우리 길드에도 한 명이 찾아왔어. 자신은 선택받았으니까 가입시켜 달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정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던전 발생 감지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마력이 밀집되는 현상을 감지해서 등급과 위치를 파악하는 시스템인데, 마력이 밀집되는 순간이 순식간이라면 협회에서도 파악할 수 없다.

미징후 던전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생긴 던전은 감지 시스템에 잡히게 되고, 협회는 해당 던전으로 적절한 인력을 파견한다.

미징후 던전은 존재해도, 미관리 던전은 없었다.

“튜토리얼이 공략되어 모든 플레이어가 각성해서 나올 때까지도 협회에서 모르고 있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던전이란 건 생성이 되는 즉시 특이한 파장의 마력을 내뿜는다.

미리 S급 정도가 결계를 쳐놓지 않는 이상, 던전의 마력 파장이 감지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열 명인가요? 각성 인원이?”

“…열두 명요.”

“……사망자까지 발생했어요?”

정우의 표정이 굳었다.

G급 던전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남 일 같이 여겨지지가 않았던 탓이다.

“그게 이상해요. 아직 조사 중인 내용이긴 한데, 각성을 했다고 쳐도 시간이 안 맞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건 나도 알아. 우리 길드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했잖아?”

“어. 그랬지.”

“우리 길드가 한국 3대 길드이긴 한데, 의외로 일반인들에게 친절하단 말이야. 그래서 인사팀의 직원이 나름대로 상담을 했다고 하더라고.”

“어.”

“각성을 서울에서 했대.”

“서울? 그거면 더 말이 안 되는데? 서울에서 생긴 G급 던전을 감지하는 게 얼마나 빠른지 경험했었잖아. …아버지 때도 십 분 만에 사람들이 나타났어. 신고하지 않았는데도.”

서울에는 수많은 감지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치부하던 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잠깐. B 섹터에서 감지 시스템을 무력화시켰던 일이 있었잖아. …비슷한 거라면?’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린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만 놓고 보면 비슷한 사안이 맞았다.

하지만.

‘G급 던전에 입장할 수 있게 해준 게 빌런이란 소리인데? 굳이 각성시키고 방치했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빌런이란 단어가 등장한 이상, 정우는 보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겠지.”

이진수가 무언가 망설이는 투로 입술을 살짝 씹었다.

“…뭔가 더 있는 거야?”

“사실 이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

“…뭔데?”

“그 사람. …혼자서 각성했다고 하더라고.”

“혼자서?”

이진수의 표정.

혼자라는 단어에 정우는 자연스럽게 G-00를 떠올렸다.

“그걸 공략한 거야?”

벌떡 일어서려던 정우의 표정이 다급하게 바뀌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을 보는 정우의 다급함에 이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야. 내가 생각하기엔… 뭐가 달라.”

“……달라?”

“내가 말했잖아. 그 사람. 서울에서 각성했다고.”

“…그게 뭔데? 혼자서 깼다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안 들어간, G급 던전에서!”

“음…… 제가 잠깐 끼어들면, G-00와는 좀 다른 양상이긴 해요.”

안 팀장이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G-00는… 여전히 던전이 남아 있죠. 파장도 제대로 감지되고, 다행히 다른 일반인들도 입장하지 못하고 있어요.”

“…….”

“협회에서 파악하지 못했어요. 박쥐 무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들의 각성 위치는… 모조리 다 달라요.”

“……달라요?”

“서울에서도 강동구에 두 명. 영등포구에서도 두 명. 도봉구에서 한 명이 있고….”

“…자, 잠깐만요. 설마 그게 다 ‘각자’ 각성했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정우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아버지와 같은 던전이 열두 개나 발생했다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인 거야. 다른 것 같아서.”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어요.”

“…뭔가요?”

“직업.”

안 팀장의 말에 이진수가 퍼뜩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혈족(血族) 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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