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박쥐 무리 (1)
정우를 찾아온 유서린의 얼굴은 다소 지쳐 보였다.
“…지하에 있었던 이들. 플레이어가 맞아요.”
“…….”
“반갑수와도 연결이 되어 있더군요. 던전을 공략한다고 데려가서 죽었다고 보고만 하면 되니, 아주 간단한… 방법이더군요.”
유서린이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협회 측에도 있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지시를 내렸어요. 몇 명은… 이미 발을 뺀 모양이더군요.”
유서린이 혀를 찼다.
“일단 대전은 내일 진행이 될 거예요. 한정우 씬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돼요. 1팀 확정이니까.”
“…제게 이렇게 설명한다는 건, 제게 놈들의 뒤를 맡기겠다는 소리일까요?”
“비슷해요.”
“그렇군요.”
“……협회장님께도 추가로 연락을 드렸어요. 강세기의 말이 진실인 것 같다고. 이미 예상하고 계시더군요.”
“…그렇군요.”
“유아영 대리는 나흘 동안 볼 수 없을 거예요.”
“지원팀의 교육을 받고 있나요?”
“네.”
유서린이 약간 망설이는 투로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몇 가지 지원을 해주고 싶은데, 먼저 예정된 일들이 있더군요.”
“던전 공략… 말하는 거군요.”
“맞아요. 그중에 하나가 ‘방어전’이라 마음에 맞는 플레이어들 찾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후우. 일단 알겠어요.”
“지원팀에서 지원을 나갈 거예요. 유아영 대리를 대신해서.”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서린이 슬쩍 눈을 마주쳤다.
“가장 상태가 온전했던 시체를… 지하에 가져다 두었어요.”
“지금 확인할게요.”
“같이 가죠.”
* * *
플레이어가 되기 전, 어느 순간부터 정우는 마력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력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
한여름에 아스팔트 위를 수놓는 열기의 아지랑이처럼.
미약한 일렁임이라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점차 변하여 마력이라는 걸 흐릿하게나마 보게 될 정도까지 또렷해졌다.
이진수 외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정우의 비밀.
플레이어가 되고 난 후로도 마력을 보거나 느끼는 것에선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자각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능력도 보다 발전하여.
단순히 마력을 보는 것에서, 느끼고 감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패턴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흐름을 파악하는 것까지.
보다 포괄적이고 폭넓게 변하며, 이제는 마력 자체의 특이성을 느끼게 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정우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육체 내에서 벌어진 일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거울을 통해서.
혹은 관조를 통해서도 본인 몸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릇이 깨어졌다는 소리에 마력의 흐름을 파악해 보았고.
빌런을 잡고 마력이 성장했을 때도 본인의 마력 흐름을 파악해 보고자 노력했었지만 헛수고로 끝났다.
‘……이랬을 것 같군.’
하지만 의외의 상황.
아티팩트로 유추한 게 아니라.
실제로 깨어진 그릇을 보자 정우는 토악질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자신의 이전 상황을 눈으로 보는 느낌.
그건 굉장히 기이하고도 불쾌한 느낌이었다.
파리한 안색의 시체.
팔은 한쪽이 찢겨 나갔으며, 복부는 대충 봉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폭탄 자체가 불발로 끝난 게 아니기에 남은 여러 흔적들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지만.
정우에겐 마력의 상처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흐름 자체를 느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람의 몸속에 흐르는 혈관처럼, 마력 역시 정해진 길을 따라 흐른다.
마력의 순환은 무협 소설에서 말하는 기의 순환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었다.
가뭄이 와 고랑의 물이 말라 버리면 그 흔적이 고스란히 대지에 남아있는 것처럼.
아라크네의 성질을 흡수한 정우의 마력은 시체의 마력의 고랑을 고스란히 인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뚝뚝 끊긴 마력의 길.
가뭄의 땅처럼 사방으로 찢어진 길은 본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정우는 천천히 시체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상처투성이의 몸 위로 손을 올리고, 천천히 마력을 흘려보내자.
스르르.
마력은 별다른 반응 없이 대기로 퍼져 버린다.
‘똑같다…….’
자신의 상황과 동일한 현상.
‘마력이 모일 수가 없어.’
아무래 던전이 폐쇄되며 그 안에 담겼던 막대한 마력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이래서야 모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다.’
죽지 않았더라도 이 상태라면, G급 던전에 들어간다 치더라도 마력을 각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와 비슷한 상태이면서도 마력을 각성할 수 있었고, 어떠한 면에서는 기존의 플레이어를 뛰어넘는 수준도 보여 왔었다.
이들과 자신의 차이점은 하나뿐이었다.
‘……잔존 마력.’
처음에는 이 스킬 때문에 마력을 사용하더라도 어느 정도 ‘잔존’해 있다고만 여겼다.
실제로 설명도 마력이 잔존한다는 간단한 내용뿐이었으니까.
심장이 지끈거릴 정도로 마력을 사용하더라도, 탈진할 정도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정우는 무의식중에 마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게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잔존 마력의 가치는 그게 아니야. …이렇게 부서진 그릇 안에서도 마력이 모일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거야. 이지스가 든 예가 맞았어. 깨어진 그릇의 밑바닥에 겨우 마력이 모여 있다는 거. 내 수준은 분명히 그랬을 거다.’
잔존 마력이 아니었다면.
플레이어가 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
정우는 절로 뒷목이 저릿했다.
‘…그릇이 영혼이라면.’
가뜩이나 의아했던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주시했던 그 눈.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의 폐부까지 살피려고 했던 눈동자를 본 이후.
정후는 자신에게 벌어진 모종의 일들의 배후에, 눈의 주인이 있음을 생각했다.
“뭔가 특이한 게 있나요?”
가만히 정우를 주시하던 유서린이 물었다.
혹여나 단서라도 찾은 건지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요.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뭔데요? 확실하지 않아도 좋아요.”
“잠시만요. 조금만 더… 확인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유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 박사를 습격한 이후, 한국 플레이어 협회는 빌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 이전부터.
정우가 B 섹터에서 습격을 당했을 때부터 상당한 인력을 풀어 빌런의 움직임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드러난 건 많지 않았다.
반갑수라는 인물 자체가 빌런 협회와 연결만 되어있을 뿐, 빌런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지하라는 연락책을 손에 넣었지만, 섣불리 질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포획까지 성공했지만 여러 이유로 죽어 버린 빌런들을 많이 경험했기에.
확실해질 때까지 스킬과 약물로 재워두고 있었다.
“…이분. 신원 파악은 정확히 된 거죠?”
“네….”
“등급은요?”
“D급이에요.”
정우는 신경을 집중했다.
끊어졌던 생각을 잇는다.
그릇이 영혼이라면.
자신 역시 마정석분해장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는 소리였다.
‘언제지? 어떻게?’
마력을 각성한 이들이 나타난 이후, 세뇌나 기억 조작 따위는 더 이상 공상의 산물이 아니었다.
온전하다고 여겼던 기억이 언제 바뀌었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럴 이유가 없어….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생겨난 이후,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곤.
던전에 갇힌 아버지와 각성 전에 마력을 보기 시작한…….
‘마력?’
정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상하다고 여긴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일단… 정리부터 하자.’
정우는 빌런들의 움직임을 정리했다.
드러난 사실이나 자신에게까지 공개된 정보는 적으나.
일본의 일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놈들이 갈취하려고 했던 건, A급 마정석이 아니야. …드레이크의 심장. 원래 목적은 그거였어.’
예상과는 달리 유지석 협회장이 자신에게 그 사실을 밝혔지만, 정우는 일단 판단을 보류했다.
‘내가 아는 한 그다음은 일본이다. 트롤의 심장. 이건 빼앗겼지.’
마침 닥터 브라운이 새로운 가설을 가지고 일본을 방문했었다.
트롤의 심장 재생 연구.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사실.
한국의 공동 연구에 참여한 북한의 ‘리 박사’를 납치하려고 했던 사건.
닥터 브라운의 연구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돌연 한국의 한 지역에서 자행된 것까지.
그것도 불과 며칠 만에.
‘……어쩌면 총리도 빌런일지도 모르겠어.’
정우는 닥터 브라운에 대해 알아봐 달라던 자신의 다급한 말에, 유서린이 생각보다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그 사실을 알았던 걸지도 몰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활동을 멈춘 트롤의 심장에 마력을 부여하여 다시 활동하게 만든다는 가설은.
닥터 브라운의 실험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아트팩트를 분해하고 안정화시켰다가 다시 수복시키는 작업.
‘이미 마력을 변형시켜서 직업 자체를 바꾸는 덧씌우기도 완성되어 있고….’
아무리 고민해도.
“…영혼을 완성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시체를 다시 한번 살핀 정우가 몸을 돌렸다.
“집무실로 가요.”
“음… 알았어요.”
유서린이 두말없이 정우를 뒤따랐다.
집무실로 향하는 동안 둘은 입을 열지 않았다.
유서린의 집무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협회장실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보안이 필요해요.”
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유서린을 주시했다.
그녀의 마력이 퍼져 방안을 가득 채우고, 일종의 결계와 비슷한 형태를 만들 때까지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마력 패턴을 눈여겨본 정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북한의 리 박사란 사람이 한국까지 와서 공동으로 연구하는 게 뭔지 물을 수 있나요?”
“……그건 대외비에요. 협회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빌런 전담팀이 되었기 때문에 묻는 거예요.”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건가요?”
“아무래도… 놈들의 목적이 약간은 보이는 것 같거든요.”
“……목적?”
유서린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정우에게 말했다.
“아직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3년 전에 북한과 공동으로 발견했고, S급 마정석 이상의 마력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죠.”
“…S급 이상이요?”
“네. 활용할 방법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오명훈 박사와 북한의 리자연 박사가 결론을 내놓기론….”
유서린이 잠깐 망설이더니 끝내 단어 하나를 입에 담았다.
찌릿.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이유를 모를 통증이 가슴을 저미고 지나갔다.
던전 브레이크 양상에 출동하긴 했지만, 브레이크는커녕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는.
“뿔…….”
정우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마치.
‘…결박당한 메아리를 처음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메아리를 연상케 하는 느낌.
정우는 동떨어진 생경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한정우 플레이어?”
“음….”
유서린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정우가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빌런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
그리고 지금까지 나타난 사건.
마력 억제제와 급속도로 마력을 복구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력 회복제.
제임스 밀러와 관련이 있었던 덧씌우기까지.
유서린은 불과 몇 달 만에 상당히 많은 일을 겪은 그의 삶에 적잖게 놀라워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가 이런 말을 꺼낸 건지, 정확하게 알아 버렸다.
“한정우 플레이어의 말은 꽤 타당해 보여요. 정확한 건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이건 새로운 접근이에요. 빌런의 목적이라니. 저희는 기본적으로 빌런이 이상한 선민사상에 빠진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것도 맞을 거예요. 하지만 아마도 목적을 가진 이들은 영혼의 완성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잠깐 들었는데도 진짜 맞는 말 같군요. 이거… 목적을 알면 방향을 잡기가 쉬워지니 훨씬 나아지겠군요.”
눈을 빛내던 유서린이 정우에게 묵례했다.
“덕분에… 알게 된 것이 많네요. 협회 정보부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백의 연금술사에게는 따로 연락을 취할게요. 아무래도 덧씌우기라고 부른 그것의 정보부터 얻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