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살의 (3)
살의가 치민다.
정우는 그런 감정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무너지다 만 잔해로 어지러운 지하의 풍경은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마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라크네의 마력은 공간 장악력과 파악력이 매우 뛰어났다.
거미줄처럼.
언데드의 마력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공간 장악력은 떨어지나 객체에 대한 장악력은 우수했다.
마력적 파악은 떨어지나 생과 사에 대한 파악은 훌륭했다.
그러니 두 종류의 마력이 합쳐지자, 정우의 마력은 전혀 다른 수준으로 변해 버렸다.
가뜩이나 미니맵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악 능력이 뛰어났던 상황.
이젠 마력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물질적인 부분까지 감지가 되니.
눈을 감아도 보이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보인다.
“……사람을…… 뭘로 여기는 거냐. 너희는….”
참혹한 진실이.
어떻게 된 걸까.
혼란이 머리를 헝클어뜨리기 시작했다.
닥터 브라운의 연구는 진행 중이었다.
아티팩트를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는 형태까지 발전하였다.
영혼의 수복에 대한 질문에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대답을 한 셈이었다.
당시의 실험을 보며.
아티팩트를 사람으로 대체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릇, 깨어짐, 안정화, 수복.
차분히 단계를 밟아 가던 그것을 자신에게 대입하여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벌써 이런 연구가 진행이 된 건지.
아니, 어떻게 이런 연구를 진행한 건지.
정우는 말문이 턱 막혔다.
잔해 사이로 보이는 시체.
이리저리 균열이 가 있는 시체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후였다.
시체엔 마력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마력이 부서지며 간 균열은.
‘흔적을 남긴다.’
처음 알게 된 사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지고, 붕괴의 피해로 찢어지긴 했지만.
‘…외형이 아니야. 찢어진 건… 안쪽. 마력이 부서지며 남긴 균열.’
비슷한 형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장치 안에서 이리저리 분해되어 가던 아티팩트가.
“…안에 뭐가 있나요? 이상하게 느낌이 먹먹한데.”
S급 플레이어의 기감조차 무마시킬 정도로 수준 높은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결계라고 하기엔, 아예 흐름을 비틀어 버린 거지만.
수준이 높다고 보기엔 낮고, 낮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복잡한….
‘……잠깐.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회랑에서 읽은 책 가운데엔 이런 내용이 없었다.
정우는 잠시 생각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닥터 브라운의 실험이 여기에서도 진행되었어요.”
“무슨 실험이었죠?”
유서린의 질문에 정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살짝 늘어 놓았다.
성장하지 않는 마력.
깨어진 영혼.
때문에 닥터 브라운과 제임스 밀러에게 자문을 요청했다는 것까지.
“……아티팩트?”
유서린의 머리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축에 속했다.
굳이 자신의 이야기 끝에 장치의 정체를 밝힌 건, 아주 간단한 논법이었다.
“…사람을 아티팩트처럼 실험했다고요?”
“지원팀이 오면… 지하부터 파악하는 게 좋겠군요. 제일 온전한 시체 한 구만…… 잠시 저에게 시간을 주시면 좋겠고요.”
정우가 상당히 지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씹었다.
* * *
유서린은 고흥에 남았다.
“전후 처리를 맡아야겠어요. 모든 걸 다 마무리 지은 다음, 시체를 보내죠. 아, 그리고 유아영 대리를 빌릴게요. 아무래도 그녀를 통해서 지원을 받는 게 나을 테니, 이것저것 가르쳐서 보내죠.”
그런 말을 끝으로 유서린과 헤어졌다.
대전은 이대로 며칠간 미뤄질 예정이었고, 정우는 참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답을 받았다.
성과 하나 없는 전투였지만, 그녀는 다르게 판단한 모양이었다.
고흥에서 돌아오는 길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공간이동마법진이라는 건 유용하지만, 반대편에도 마법진이 있지 않으면 결국 편도 티켓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었다.
때문에 그녀가 미리 불러둔 헬기를 타고 이동했지만 정우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헬기는 서울 상공에 도착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상공에서 보는 서울은 불빛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켜지고 있는 전등을 보며.
정우는 이 평화가 과연 온전한 것인지 자문했다.
정우도 격변의 시대를 겪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끝도 없이 이어지던 던전 브레이크.
마트는 물건이 없어서 아우성이었고.
혼란을 틈탄 범죄 때문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정우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정우와 친구들은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조금 낙후된 지역에서 살았음에도 위험을 겪은 적은 없었지만.
당시가 주는 두려움은 아직도 잊기 어려운 종류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부모님의 당부.
학교는 무기한적인 휴교를 감행했고.
친구는커녕 정부의 지원만 믿은 채 가족끼리 집안에 웅크리고 있었어야 했다.
‘……왜 그때가 떠오르는 건지.’
플레이어의 수준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1세대 플레이어들이 온갖 던전 브레이크에서 승리를 할 때.
어린 나이의 정우는 이제는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 믿었다.
유지석 협회장이 모든 던전을 정부에 앞서서 관리하면서.
한국만큼은 플레이어 관계에서 안전할 거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처음으로 그 믿음이 깨어진 때가 이제는 6년 전이 되어 버린 아버지 사건 때였고.
‘그리고 오늘 같군.’
한국은 플레이어 강국이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으며 상당히 유명했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봐도, 플레이어의 시선으로 봐도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평가의 기반을 유지석 협회장으로 꼽았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S급 플레이어이자.
세계적으로도 여섯 번째 S급 플레이어인 거인.
그가 건재한 이상 한국은 언제까지나 안전할 거란 평가엔 모두가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뭐지?’
그는 분명히 위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의 힘이 온 국가를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잡고 또 잡아도 도무지 없어지지 않는 바퀴벌레처럼.
이 밝은 야경 밑으로는 얼마나 많은 빌런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
협회 옥상에 도착한 헬기에서 내린 정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협회 숙소로 향했다.
샤워도 잊은 채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던 정우의 눈동자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빌런을 상대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자신의 성장 때문에 정우는 빌런을 사냥하기로 결정했고 빌런 전담팀의 요청을 승낙했다.
마력 억제제를 먹었겠지만 모든 플레이어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대마법사의 전투도 마다한 채.
모든 건 빌런을 상대하겠다는 결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조금은 변화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자신을 노리는 적이라면 당연히 죽여야겠지만.
‘……이제는.’
모조리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런을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그런 판단조차 사치였다는 걸, 정우는 깨달았다.
‘왜 유서린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지 알겠어.’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적용하는 호칭이나 단위.
그간 그녀는 그런 비인(非人)을 많이 봐온 것이 아닐까.
폐교 밑의 시체들이.
‘빌런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붕괴를 막은 유서린의 능력이 폭탄에까지 닿아 있어서 파악을 할 수 있었지만.
만약 폭탄이 그대로 터졌다면 둘은 실상을 모른 채 넘어갈 뻔했다.
정우는 처음으로.
빌런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일반인일 때 들은 내용처럼, 우월주의 때문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군.”
정지하.
그리고 폐교 밑의 시체.
유서린이 돌아와야 정보가 들어올 테니까.
눈을 꾹 감고 있던 정우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아랫입술까지 잘근 씹는다.
“…제임스에게 먼저, 닥터 브라운에 대한 내용을 말해야겠지? 후우.”
정우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격변의 시대 때 죽은 사망자는 상당히 많았다.
부지불식간에 터지는 던전 브레이크와.
기현상을 말세의 징조. 즉, 아포칼립스라고 여기며 윤리와 도덕을 넘어선 ‘본능’을 추구하던 이들 때문에.
상당수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천만을 넘어 오천오백만에 달했던 대한민국의 인구수가 반으로 급감하여 이천만 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취업 준비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름대로 어색해진 상황에서도 한 청년은 여전히 취업 준비생이었다.
“넌 일을 안 하냐?”
“…해야지. 그런데 알잖아. 월급 삼사백만 원씩 받으면서 다니는 것보다 조금 위험해도 플레이어가 되는 게 좋다니까?”
“너 지금까지 학원에 갖다 바친 돈만 해도, 몇억이 넘어.”
“그거 한 방이야.”
“미친놈아. 붙어야 한 방이지. 순위권에서 매번 탈락해서 사 년째 재수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있어 봐. 강사님이 이번엔 괜찮다고 했단 말이야.”
플레이어 준비생.
협회는 두 종류로 G급 던전에 들어서는 이들을 분류했다.
하나는 길드나 각 기관에서 추천한 이들.
다른 하나는 학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생존율을 높인 이들.
연줄만으로 모든 게 다 통용되는 건 아니지만, 길드나 기관은 일반적인 시민들에게는 딴 세상의 이야기였지만.
플레이어 학원은 아니었다.
선택받지 못한 이리들은 수익이 대기업 사원과 비슷했지만, 길드에 들어가기만 하면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수많은 청년들이 플레이어 학원으로 몰리는 이유였다.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야, X발. 넌 친구라는 새끼가 왜 그래?”
“나 봐라. 회사에 취직해서 돈 벌고 있고, 내가 지금까지 번 돈이 네가 쓴 돈 정도는 돼.”
“그래서? 잘났다고?”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 사수했으면 됐잖아.”
“X발. 그럼 지금까지 했던 건 다 쓸모없는 짓인데? 그래. 네 말대로 몇억을 갖다 바쳤다고 쳐.”
“치는 게 아니고 사실이잖아.”
“아, 개새끼. 진짜. 너 오늘따라 왜 그러냐? 여기서 그만두면 죽도 밥도 안 돼. 너 육 년 다녔잖아. 그럼 내가 여태까지 쓴 거 벌려면 육 년을 일해야 하는데, 그제야 본전이라고. 플레이어만 되면 일이 년 안에 갚고도 남는다니까?”
“야, 미친놈아. 내가 이것까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모가 우리 엄마한테 와서 몇 번이나 운 줄 알아?”
“……엄마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의 청년이 친구와 허공을 번갈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부모가 그 정도까지 힘들어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까지만. 진짜로 이번까지만 할게.”
“……그래. 힘들겠지만,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알았어.”
청년은 인사하는 친구에게 손만 들어 보이고선 생각에 잠겼다.
오랫동안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생각만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연습도, 공부도 빼놓지 않았지만.
“……재능이 부족한 건가.”
늦게 들어왔음에도 치고 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치밀었고, 불만이 생겨났다.
남들 못지않게 노력함에도 부족하기만 한 이 현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장밋빛 미래만 꿈꿨는데, 현실은 흙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쉬던 청년은 답답한 마음에 집을 나섰다.
어둑한 밤거리가 자신의 처지 같아서 외롭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이었다.
바닥을 보며 걷고 있던 청년의 눈에 흐릿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고개를 든 청년의 눈앞에.
한 사내가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청년의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말을 건넸다.
“플레이어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관심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