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살의 (1)
메아리!
그녀의 반응이 사라지자마자 정우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마력이 퍼져 나가고.
건물 안의 인원의 모습이 잡힐 때쯤.
어느새 빼어 든 지팡이를 들고.
“그래비티!”
적의 위치 위쪽에 중력 마법을 사용했다.
우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틈을 타서.
“저주 해제!”
탁하고 거친 손을 가리켰다.
환한 빛이 터지자 무언가를 꽉 쥐고 있던 손이 발작하듯 움찔거리며 펴졌다.
휘청거린 메아리가 다급히 정우를 향해 도망치더니, 사라졌다.
-……위험.
“잡아!”
쇳소리가 가득한 포효가 터져 나오는 순간.
쉬익!
날카로운 예기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급소를 노리고 쇄도했다.
‘염동.’
근처의 물건을 염동으로 조종하여 집어 던졌다.
‘틈을 만들어 접근해야 한다.’
서걱!
가볍게 잘려 나가는 물건을 보며 정우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매직 미사일.”
우우우우웅!
벌 떼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휘두르던 검을 회수한 놈이 몸을 빙글 돌리며 위치를 변경했다.
“죽음의 타격.”
놈의 검에서 섬뜩한 오러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이런… 수준이라고는 말을 안 했잖아?’
잠입은 무슨.
검사의 스킬이 매직 미사일을 남김없이 요격하고 있었다.
‘집중부터 흐트러트린다!’
“약화, 환각!”
갑작스러운 저주에 비틀거리는 검사에게 정우는 재차 매직 미사일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감히, 검사를 상대로… 근접전이라고?”
이를 앙다물며 저주를 버텨낸 검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정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정우는 바닥을 스치듯 숙여 검을 피해 냈고.
“…뭣?”
오히려 어느새 꺼내 든 창에 오러를 가득 담아 하체를 쓸어 갔다.
“죽어라! 죽음의 격류!”
검사의 날카로운 검격이 폭포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정우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지팡이의 마법을 사용했다.
“리플렉트.”
쩌어-엉!
“……큭!”
이명이 생길 것 같은 짧은 굉음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박사는 뒤로 튕겨 나가는 부하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A급에 다다른 부하가 저토록 허탈하게 피를 뿌릴 줄 몰랐으니까.
“……데몬 서먼!”
다급히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낸 박사의 입에서 소환술이 펼쳐진다.
정우는 갑작스러운 마력에 고개를 다급히 돌렸다.
반쯤 완성된 마법진.
불길한 형태의 그것을 눈에 담은 정우는 망설임 없이 돌격했다.
“데몬 에로우!”
검붉은 화살 세 개가 정우를 노렸으나.
“블링크.”
정우는 블링크를 사용하여 이미 위치를 옮긴 뒤였다.
박사의 근처.
‘좌표가 정확하지 않아. 마법 방해가 생겼어.’
곧장 제압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자신의 공격이 자신을 공격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검사가 비틀거리면서도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힘이 빠진 공격이었지만 예리한 일격에 정우는 다급히 뒤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비티!”
그러는 와중에도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을 향해 중력 마법을 사용한 정우의 신형이.
파앗!
검사를 향해 튀어 나갔다.
부웅!
오러를 머금은 검이 간결하게 휘둘러졌다.
‘A급은 될 것 같아. 리플렉트를 활용한 게 다행이었어.’
아직도 여력이 남은 검사의 연격을 피하던 정우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거도 제국 검술인데?’
몬스터에게서 봤던 제국 검술.
조금은 개량되었지만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그것이 상대에게서 펼쳐지고 있었다.
때문에 정우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살(殺)!”
그것을 놓치지 않고 완성되는, 제국 검술의 2형.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 정우는 아찔함을 느꼈다.
다급히 마력을 전개하여 블링크를 시전했지만.
촤악!
“……큭.”
어깨가 피로 물들었다.
“피했다고?”
부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죽음의 검술 2형은 범위형이었다.
어지간한 범위 내라면 자동적으로 스킬이 발동하기 때문에, 블링크 따위로 피하는 건 어려웠다.
왜냐하면 건물 안이라는 제약 때문이었다.
교실이라는 다소 협소한 공간을 염두에 뒀을 때.
놈은 자신의 일격에 적어도 팔이나 다리쯤은 잘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블링크를 사용한 직후.
다급히 몸을 비틀어 검격을 피해 내는 장면은, 부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다급히 어깨를 눌러 지혈한 정우가 낮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벅차다.’
최근 들어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붙어가던 정우였지만.
A급과의 격차는 분명했다.
‘진짜 마법을 더 배워야겠네.’
아직까진 마력이 부족해서 다양한 마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정우였다.
하지만 빌런을 상대하니, 마법이 더 다양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하가 검을 털며 정우를 노려보았다.
“…넌 꼭 죽어야겠다.”
섬뜩한 살의.
등골이 오싹해진 정우가 다급히 매직 미사일을 뿌리며.
‘저놈을 직접 상대하는 건 무리야.’
상황을 정리했다.
검사의 공격은 흰 가운을 입은 노인을 절대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놈을 잡는다.’
방향을 바꾼 정우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노인의 근처로 이동했다.
박사 역시 어느 정도는 대비를 하고 있었다.
파다닥!
이미 완성된 소환술에서 날개가 달린 괴이한 생명체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악어와 같은 입을 쩍 벌려 정우를 향해 뜨거운 숨결을 토해 낸다.
‘……브레스?’
대경한 정우가 다급히 자리를 이탈하자.
치이이익!
뜨거운 숨결에 바닥이 너무도 쉽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냄새가 교실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부하의 고개가 획 하니 돌아갔다.
다급히 검을 막은 정우의 창이 가각, 소리를 내며 반쯤 갈리기 시작했다.
‘오러의 양에서 차이가 난다!’
창을 비틀어 놓으며 뒤로 몸을 날린 정우의 주변 공기가 비틀렸다.
‘매직 미사일.’
이를 앙다문 정우의 마력이 아라크네의 그것을 머금고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생성된 매직 미사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며 부하를 압박했다.
소환체가 정우를 노리고 날카로운 침이 달린 꼬리를 휘둘렀다.
다급히 피한 정우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역력했다.
입술을 깨문 정우가 뒤로 돌아 깨진 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도주라.”
부하가 멀어지는 기척에 이를 갈았다.
“피해야 합니다. 처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료는!”
“파기시키겠습니다. 먼저 피하십시오.”
“젠장.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 주지.”
부하들을 모조리 내보내 유서린의 접근을 막는 사이, 모든 걸 처리하려고 했던 박사의 입장에선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한 그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찢었다.
‘……공간이동스크롤?’
도주하는 척 마력을 억누르고 다시 기회를 노리던 정우가 기함했다.
공간이동스크롤.
마법진보다 몇 단계나 위의 수준을 지닌.
‘아직 플레이어는 그걸 만들 수준이 안 될 텐데?’
현 플레이어의 연구 수준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일종의 아티팩트.
이계에서조차 공간이동스크롤은 고위 귀족의 전유물이었을 정도로 극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정우가 공간이동스크롤의 마력 패턴에 개입하려고 했지만.
스스스슷!
순식간에 완성된 그것은 박사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이 쥐새끼가, 다시 돌아왔나!”
부하가 으르렁거리며 검을 휘둘렀을 때.
콰득!
“……이런.”
폐교의 정문 쪽이 반파되며 막대한 마력이 들이닥쳤다.
“…벌써 다 죽였나.”
불과 오 분이 채 흐르지 않은 시간.
생각보다 더 강한 유서린의 능력에 부하는 혀를 내두르며.
딸깍.
버튼을 눌렀다.
쿠웅!
묵직한 폭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밖으로 뛰어내린 부하가 다급한 표정의 정우를 노려보고는 ‘다음엔 꼭 죽일 테다’ 경고하며 도주했다.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정우가 붕괴의 반경에서 조금 거리를 넓히다가.
“……!”
무너지는 건물 틈새로 보이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장치 하나를 보고서는 소리쳤다.
“붕괴! 막을 수 있어요?”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성기사의 스킬, 신성 방어막이 펼쳐지는 순간.
정우는 적잖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퍼엉!
꽤 멀리서 터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지면이 흔들렸지만.
‘건물엔 거의 타격이 없군. 대단해.’
“…놓쳤군요.”
“A급 검사가 있었어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어깨를 다쳤군요.”
여상한 목소리.
상당수의 적들을 베어 낸 직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음성이었으나.
섬칫.
막상 모습을 드러낸 유서린의 마력은 숨길 수 없는 살의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성기사의 그것을 뛰어넘은, 광전사의 기운.
차분한 어조와 대조가 되는 기운에 정우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유서린이 다가와 회복 물약을 정우의 상처에 뿌렸다.
치익.
상당한 통증에 정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린 이유가… 저거 때문이군요.”
고통스러워하는 정우와는 달리 유서린은 차분하게 건물에 얼핏 깔려 있는 장치를 보았다.
“…맞아요.”
통증이 가시자 정우가 어깨를 슬쩍 움직였다.
“이거… 괜찮네요. 아프긴 해도.”
“익숙해지면 더 괜찮죠.”
유서린이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그제야 검이 보인 정우는 압도적인 크기에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전투를 벌일 셈이었군.’
유서린은 두 개의 무기를 번갈아 사용했다.
하나는 검과 방패.
성기사란 직업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것이 그녀의 기본 무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하나인 대검을 드는 순간.
그녀는 성기사의 능력보다는 대검의 능력을 주로 사용한다.
그녀의 진정한 능력이 발휘되는 건, 대검을 들었을 때였다.
성기사 특유의 단단함과 광전사 특유의 공격성이 어우러져, 어지간한 공격 따위는 무시한 채 돌격하는,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다.
유서린은 대검을 드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언제고 인터뷰에서 굳이 두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는데.
“무조건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녀는 무거운 눈빛으로 그렇게 선언한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세밀하게 조절한 마력이, 검을 타고 움직여 기계 장치를 압박하는 건물 잔해를.
‘…엄청난 컨트롤이다.’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의 마력을 읽은 정우는 지금의 상황이 스킬이 아님에 놀랐다.
온전히 마력을 움직여서 한 행동.
지금까지 본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마력의 움직임이었다.
“…이 장치가 뭐죠?”
아무리 유서린이 적절하게 붕괴를 막았다고는 하지만, 장치가 온전한 건 아니었다.
애당초 장치의 존재 여부를 알지도 못하고 전투를 벌였고.
매장되어 있던 폭탄이 터진 곳이 장치의 지하였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잠시만 확인을 해볼게요.”
형태는 달랐다.
작동을 시켜보면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우는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천천히 장치를 살피던 정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함으로 고개를 든 정우가 다급히 유서린에게 물었다.
“…일본의 총리가 닥터 브라운과 만났는지 알아봐 줘요!”
“닥터 브라운이요?”
“급해요!”
정우가 다급히 외쳤다.
‘젠장. 왜 생각을 못 했지?’
정우는 닥터 브라운 본인에게서 일본에서 자신을 잡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강세기에게 쪽지를 받은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세뇌가 가능하다면.
‘닥터 브라운을 빼내는 게 먼저였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장치의 형태.
그건 자신이 닥터 브라운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그것과 굉장히 닮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