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대전 대신 실전 (1)
‘자꾸만 액세서리가 생겨나는군.’
음산한 느낌의 실반지를 손에 든 정우가 피식 웃었다.
[ 망자의 원한 ]
억울하게 죽은 누군가가 원한을 담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물건에 저주를 걸었다.
소환 효율 : +10
그리 뛰어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니고 있어서 나쁠 물건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정우에겐 네크로맨서라는 스킬이 생겼다.
스킬명이 직업과 동일한 건 처음이었다.
물론, 네크로맨서가 지니는 여러 스킬을 보유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극히 보조적인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는 느낌 정도.
다만, 이대로 스킬을 성장시키다 보면 언제고 네크로맨서란 직업 자체를 보유할 수 있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유 대리가 건네는 샌드위치를 받았다.
“나참. 이래선 잠도 못 자겠네요.”
벌써 네 번이나 지속된 핀잔이었다.
자는 동안 공략하는 게 어디에 있냐며, 해가 저물 때에야 깨어난 그녀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편히 쉬고 있어도 돼요. 어차피 공략은 제가 하니까.”
“도움이 안 된다?”
“그건 아니고, 분야가 다르다는 거죠.”
유 대리가 입맛을 다시며 목을 긁적였다.
“이동 중에 잠깐 쉬고 있어요.”
“알겠어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감았다.
* * *
드레이크의 심장의 강탈에 실패한 빌런들은 방향을 틀어 소소한 성과를 거두었다.
A급 마정석.
일반인은 빌런들의 목표가 그것인 줄 알고 있었지만,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경고장을 남발했으니까.
재래식 무기에서 이능이라는 전혀 다른 힘이 등장하며.
세계의 여러 나라의 국력은 거의 개편되다시피 변해 버렸다.
항공 모함과 전투기 따위에서 플레이어의 능력과 수가 중요해진 기준.
그런 변화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거머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란 나라였다.
미국은 원래부터 인재에 대한 탐욕이 심한 국가였다.
그런 나라에서 사람이 곧 힘이 된 세상을 가만히 두고 볼 이유는 없었다.
강세기는 그들도 눈여겨본 인재였다.
막 접촉하려던 찰나에 갑자기 일본으로 귀화해 버려 두 손을 털어야만 했었다.
그랬던 미국의 스탠드가 변한 건, 수년 만에 갑자기 걸려 온 전화 때문이었다.
####강세기가 일본으로 귀화한 건 일본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이었다.
딱 그 말을 끝으로 끊겨 버린 전화는, 그저 그런 질 낮은 장난 전화처럼 치부될 뻔했다.
우연히 그 전화를 받은 이가.
“……이거 한번 파봐야겠는데?”
당시 강세기의 영입을 담당했었던 앤드류가 아니었다면.
전화를 받은 그는 무려 하루를 꼬박 고민하여 결정을 내렸다.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의 귀화 사유가 일본의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정체를 밝히지 않은 전화.
그것도 직통으로 걸려온 전화로 시작된 고민.
결정을 내리자 흥미가 생겼다.
“새로운 터전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게 무엇일까.”
그는 곧장 서류를 작성했다.
미국은 방대한 영토만큼이나 협회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협회는 워싱턴에 있었지만, 각 주마다 분점처럼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협회가 추가로 존재했다.
앤드류는 그런 분점 중에서도 몬타나 협회의 회장이었다.
워싱턴의 대표에게 서류를 보낸 그는 곧장 일본으로 향했다.
그의 방문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여행객으로 위장한 채 호텔을 잡고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정보부의 정보를 모집하고 있을 때.
하나의 정보가 그의 뇌리를 관통했다.
“……한국과 일본이 합작하여 세이렌의 영토를 친다?”
심지어 이 제안의 출처가 한국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연락을 한 사람의 출신을 짐작했다.
‘오랜 감정 때문일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여러모로 복잡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부터 격변의 시대를 겪고 난 지금까지.
줄곧 우위를 점하고 있던 일본이 막상 초유의 사태엔 대처하지 못하며 뒤처져 버렸다.
‘강세기의 귀화는 분명히 이상했어.’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도 영주권과 함께 그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당시에 일본은 강세기를 영입할 만한 메리트가 전혀 없었어.’
그 뒤로도 이상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막상 귀화한 강세기가 철저히 일본측 입장에서만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막상 세운 타소가레 길드의 운영이 어딘지 모르게 정부의 운영과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인재를 영입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비전을 정해 주고 조력자로서의 위치를 고수하며 영입하는 최우선적인 방법과.
돈이 되었든 다른 이유가 되었든, 기브 앤 테이크의 비즈니스 관계로서의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약점을 잡은 후 약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방법이 있을 테고.
“…그다음으로는 인질을 잡는 방법이 있겠지.”
가장 최악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그 어떠한 것보다 더 훌륭한 방법이 떠올랐다.
일본의 불미스러운 일.
‘협박 혹은 납치. 가족부터 확인해야겠군.’
앤드류는 당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세기가 먼저 건너가고.
몇 주가 지나서 그의 모친이 비행기를 탔다.
‘그 전제부터 틀렸을 가능성이 있어.’
앤드류의 생각이 영입팀장이었던 과거까지 흘러갔다.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일본에서 세이렌의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켰을 때, 한국은 바다라는 특이한 지형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가 공격당할까 봐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하지만 모든 던전 브레이크가 그러하듯, 세이렌 역시 활동 반경에 제약이 있었고.
한국은 당연하게도 일본의 미해결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4년이다.
일본은 몇 번이고 자체적인 공략을 진행했으며, 모든 도전은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그런 일본이 왜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앤드류는 침음을 흘렸다.
‘한국에서 뭔가 원하는 게 있다.’
어쩌면 그동안 모르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낸 것일 수도 있었다.
강세기가 귀화한 원인과 이유.
“아무래도 그게 가장 타당하겠지.”
앤드류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한국은 일본의 수상한 점을 포착한 상황이다.
그건 강세기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자신에게 연락한 사람은 이 일을 공론화시키지 않았다.
따로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이렌의 영토를 공동 공략하게 되면서 얻게 될 이점.
아니면.
‘아시아권에서 가장 유명한 말 중에 하나인 성동격서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한 앤드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나한테는 뭘 원하는 거냐.’
남은 건 고작해야 그 정도 말에 일본까지 날아온 자신의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알아봐야지. 패로만 쓰이는 건 질색이니까. 여기까지 왔으면 가장 이득을 보는 건 내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날.
미국에서 출발한 여행객의 수는 무려 사백 명에 달했다.
* * *
던전의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흔한 섬멸전과 토벌전은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익숙한 형태였다.
퀘스트 던전 역시 드문 건 아니었지만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는 정보였다.
일반인들은 섬멸, 토벌, 보스전을 가장 익숙하게 생각했고.
아주 가끔 방어전과 호위전이 언급되고는 했지만, 그 또한 플레이어에 관심이 많은 이들만이 아는 극소수의 정보였다.
원래 방어전과 호위전 역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두 종류에서 몇 번이고 상위 아티팩트가 나오면서, 상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되었다.
때문에 두 종류는 경쟁이 심했다.
수많은 길드들이 두 종류의 던전엔 막대한 돈을 풀어 입찰했고.
극히 드문 확률로 등장하는 두 종류의 던전은 거의가 다 길드에서 공략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방어전이요?”
때문에 정우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제임스 밀러가 구매한 던전은 외국인 할당 던전이라고 봐야 했다.
자국의 던전을 타국의 인물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보물이 나올지 모르는 귀한 던전을 배정시키는 법은 없었다.
“네.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막상 그 던전을 공략하는 건 같은 한국인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외국인에게 판매한 던전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때문에 유 대리는 물론, 정우 역시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또 다른 던전 하나를 공략하고 나왔을 때.
유 대리는 일정이 변경되었다면서 상기된 얼굴로 정우를 맞았다.
정우에게 배정된 던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일으켰고, 해당 던전은 협회의 소관이 되었다.
이럴 경우 남은 D급 던전에서 새로이 하나를 배정받아야 하는데.
“모든 길드에서 거부했다네요. 뭐… 복을 걷어찬 거죠.”
이미 배정받은 던전의 소유권을 취소한 길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협회에서는 규정대로 새롭게 생성되는 던전을 정우에게 배정했다.
공교롭게도.
“진짜로 아티팩트 하나 얻어 버려요!”
방어전이라는 특수한 던전으로.
배정된 내용을 흥분해서 설명한 유 대리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협회장님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하시죠.”
“모른 척하고 배정을 취소하거나 다음 걸로 배정하면 될 텐데, 칼 같잖아요.”
“…모든 던전을 협회장님께서 배정하시나요?”
“무조건 보고는 올라가요.”
한국의 플레이어 협회 시스템은 모든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독자적인 운영 덕분에 만들어진 형태는, 대부분의 진행을 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길드와 협회가 갈등이 적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배정 사실이 공고되면 아마 제가 골치가 아플 거예요.”
“인원 때문이죠?”
“…맞아요. 길드에서 배정받은 거면 다행이지만, 한정우 씨는 외국인 권한 배정이라… 협조 요청을 해야 하거든요. 방어전은 혼자서 할 수가 없으니까요.”
“음.”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럼 제가 먼저 지정할 수도 있나요?”
“가능해요. 뭐, 이 던전은 한정우 씨 소유라고 보면 되니까요. 나이트 길드에 연락하려는 거죠?”
“맞아요.”
친구 이진수를 염두에 두었다.
“괜찮죠. 방어전은 경험과 합이 중요하다고들 하니까요. 길드가 없는 한정우 씨에겐 아주 좋은 선택지죠.”
게다가 어느 정도 이권을 보장해 주면 나이트 길드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도 컸다.
같은 등급이라고 하더라도 순위가 높은 길드에 가입한 사람일수록 능력이 뛰어났으니까.
3대 길드에 들어간 플레이어라면 일반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은 축에 속했다.
“곧바로 연락할게요.”
유 대리는 곧장 움직였다.
“다행히 시간이 빈다고 흔쾌히 요청에 응하던데요? 그리고 나이트 길드에서도 적극적으로 합류를 요청해 왔어요.”
“괜찮아요.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알겠어요.”
나이트 길드와 일정을 조율한 유 대리가 정우를 보았다.
“이틀 뒤예요.”
“…조금 늦군요.”
“그러긴 한데, 더 당길 순 없어요. 그럼 차라리 늦추는 게 어때요?”
“음…….”
대전까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방어전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던전과는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정을 미루죠. 대전부터… 준비할게요.”
“좋은 생각이에요.”
유 대리가 다시 일정을 조율하는 사이, 정우는 생각을 정리했다.
‘실전 경험을 늘리는 게 더 낫겠군. 이번에는 한 방 먹이고 싶은데….’
여유로운 미소를 떠올린 정우의 눈동자에 열기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