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83화 (83/293)

83화

-다양한 지원 (4)

-백오십일 마리.

“…어쩐지 생각보다 많더라.”

정우는 볼을 긁적였다.

물속 전투도 익숙해진 상황.

나중엔 창까지 들고 움직여서 물속에서의 움직임을 익힌 정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체력 소모가 심했다.

어지간한 전투로는 숨조차 헐떡거리지 않는 체력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왜 이렇게 힘들지? 전투 자체는 쉽던데….’

그의 중얼거림에 메아리가 툭 하니 사냥한 수를 언급했다.

“아무래도 물속에서의 전투에 좀 더 익숙해져야겠군.”

-마녀의 마을에는 우물밖에 없으니 아쉽네요. 그 주인님 좋아하는 사람에게 던전 더 구해서 바치라고 해야겠어요. ( ≧Д≦)

“…대화는 통하고?”

-へ[ ᴼ ▃ ᴼ ]_/¯

“말을 말자.”

어깨를 으쓱한 정우가 바닷속의 동굴을 보았다.

“저 안에 있는 놈은 세이렌이 아닌데?”

보스.

모습조차 보지 못한 몬스터의 마력은 세이렌의 그것과는 달랐다.

조금 더 흉포하고 단단하다고 해야 할까.

“들어가 보면 알겠지.”

이제는 꽤나 자연스러워진 움직임으로 동굴로 향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저릿함.

‘E급 던전인데?’

생각보다 상대의 수준이 뛰어났다.

눈가를 좁힌 정우의 마력이 다시금 안으로 향한다.

동굴의 초입에 발을 들였을 때.

정우의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빠른 놈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뢰와 같은 속도를 느낀 정우의 주변 물이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지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거센 흐름이 위에서 아래로 거칠어졌다.

‘그래비티!’

동굴을 타고 퍼지는 파도가 ‘놈’의 진로를 방해했다.

하지만.

‘…적응한다.’

생각 이상으로 적응이 빨랐다.

유려한 움직임으로 돌진하는 놈의.

‘창!’

시뻘건 색의 삼지창이 어두운 동굴 안쪽에서 번뜩이며 나타났다.

순간적인 번뜩임에 정우의 주변도 거센 격류를 밀어내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매직 미사일.’

간만에 심장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붉은빛의 오러와 정우의 마법이 부딪쳤다.

오러.

‘…머맨?’

비슷하게 생긴 놈들 중에서 보다 근육질의 상체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일본 열도의 일부를 장악한 폭군이 떠올랐다.

* * *

강원도에서 도망친 직원은 때때로 자신을 덮치는 악몽에 시달렸다.

“밥은 먹고 다니냐?”

“…요즘 입맛도 없네.”

“아직도 악몽이야? 병원은 가봤어? 아니면 힐러분께 치료라도 받아.”

“……병원에선 별일이 없다고 그러고, 치유는 대기가 차 있더라고.”

“참나. 뭐 그렇게 바쁘다고.”

“…뭐, 복지니까…. 기다려 봐야지.”

“그래. 그나마 직원 복지가 빵빵해서 망정이지. 아니면 고생깨나 할 뻔했네.”

“그러게…….”

“여기 점은 뭐야?”

“…몰라. 몸이 안 좋긴 한가 봐. 점점 진해지네.”

“끄응. 차장님께 부탁드려 봐?”

“됐어. 이삼일만 기다리면 순서가 된다니까… 좀만 더 기다려 보지.”

직원은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협회는 항상 일거리가 많았다.

전 세계에서도 가장 성공적으로 협회의 시스템이 정착한 곳이다 보니 플레이어에 대한 모든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플레이어에서부터 던전에 이르러.

던전의 후처리 기업 선정이나 습득물에 대한 처분까지.

모든 것이 협회의 업무였다.

유 대리가 괜히 정우의 비서 발령에 반색한 게 아니었을 정도로, 협회의 업무는 많았다.

“……쉬긴 해야 할 건데.”

악몽 때문에 제대로 쉬질 못했다.

밤만 되면 자신에게 다가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미는 검은 박쥐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후우.”

긴 한숨과 함께 목 스트레칭을 한 직원이 컴퓨터를 조작했다.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를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그런 그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가 회복되었다.

여느 때처럼 피곤을 이기고 모든 업무를 끝마친 직원이 어깨를 주무르며 집으로 향했다.

수면제까지 처방받은 상황인데도 딱히 나아지는 건 없었다.

“진짜… 힐러를 보긴 해야겠네.”

진작 신청할 걸 그랬다며 후회를 내뱉었지만, 이미 지나 버린 일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집에 도착한 그는 간단한 샤워 후 머리를 짚었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그를 괴롭혔다.

두통약을 먹은 후 멍하니 식탁 의자에 앉아서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직원은 다시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밖으로 향했다.

냐옹.

길고양이들이 외딴 골목을 차지하고 울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말갛게 빛나는 눈동자를 본 직원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움찔!

고양이가 몸을 아래로 낮추며 최대한 뒤로 몸을 웅크렸다.

자신들보다도 더 번들거리는 안광과.

그 안쪽에서 느껴지는 포식자의 기운 때문에.

천천히 다가오는 직원을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그저 가만히.

직원의 손길을 기다릴 뿐이었다.

캬, 캬앙!

날카로워진 손톱이 고양이의 목을 꿰뚫는다.

울컥 솟구치는 피.

혀를 날름거린 직원이 상처에 입을 가져다 대며 목울대를 끝도 없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피를 마신 직원이 입가를 닦으며 귀가했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 그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나쁘지 않군.”

조용한 뇌까림.

하지만 그 목소리는 원래의 직원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음산하고.

오만했다.

“조금만 더 피를 마셔라. 나와 연결되는 영광을 줄 테니, 네 하찮은 목숨을 내게 바쳐라.”

어느새 그의 음성은, 관 아래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백작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 * *

일본의 영상에서 본 머맨은 일견 오우거가 연상될 정도로 난폭했다.

거대한 덩치에 창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고, 육지를 빠른 속도로 오가는 탓에 상대하기가 어려운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 영상을 본 건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었다.

처음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여 일본이 자국의 플레이어들을 대거 풀어 공략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했을 때.

바다라는 특이점 때문에 혹시라도 법칙을 넘어 한국에까지 닿지 않겠냐는 의심으로 인해서 여러 번 방송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삼 년 뒤.

일본은 막대한 재화를 풀어 타국의 플레이어들을 영입했고, 해당 공략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또 실패했었다.

중국에서 죽음의 땅이 생겼을 때만 하더라도 힐난과 함께 자국의 능력을 자랑하던 일본은 고작해야 일 년 만에 중국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다.

하지만 더욱 악질적인 것은.

중국의 죽음의 땅은 황무지를 끼고 생겨났다면.

일본의 세이렌 영토는 아키타현을 고스란히 잡아먹었다는 점이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안전하다는 그릇된 홍보를 한 탓에 만들어진 수많은 사상자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한동안 무능력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플레이어 협회의 권한이 전부 독립적이지 못했다.

협회보다 길드의 권한이 훨씬 강한 데다가 길드를 총리가 대대적으로 후원하고 성장시키면서.

플레이어의 많은 권한이 총리에게로 은근히 이관되었다.

때문에 일본의 플레이어 체제는 총리의 독점과 그것을 견제하는 협회의 양강 체제로 굳어 있었다.

‘음…….’

정우는 머맨의 삼단창을 피했다.

꽤 상당한 시간 동안 전투를 벌였다.

머맨의 기세는 대단했고, 등급을 넘어서는 위용도 있었지만.

점차 수중 전투에 적응하기 시작한 정우는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영상에서 본 것과 눈앞의 상대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그저 세이렌 암컷과 수컷으로 분류했었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의 정우는 머맨과 세이렌의 근본적인 차이를 구별할 수가 있었다.

애당초 마력부터가 달랐다.

머맨의 마력은 검사의 그것과 비슷했다.

패턴의 흐름이 빠르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반응할 수 있게 돌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삼지창의 흐름은 예리했고.

수중에서만 보일 수 있는 여러 기예도 상당했다.

빠른 움직임.

강력한 힘.

세이렌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몬스터가 맞았다.

정우의 움직임은 일견 머맨의 움직임과 비슷해져 있었다.

꼬리 대신 염동을 사용한 방법은 매우 훌륭했다.

덕분에 정우는 머맨에게서 수중 전투법을 고스란히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건 제국 창술인데…….’

또다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자드 맨에 이어 머맨까지.

이계에서도 가장 커다랗고 위대했던 나라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이건…… 알아볼 필요가 있어.’

지극히 인위적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우는 자신을 노려보는 근육질의 뱀 꼬리 괴물을 보며.

“잘 배웠다.”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풀썩!

거칠게 피하는 몸체가 아래로 내리꽂히고.

동굴의 벽면에서 날아온 돌에 얻어맞으며.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생긴 수많은 매직 미사일의 쇄도에.

캬, 캬악-캬!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꿰뚫렸다.

겨우 붙어 있는 생명을 끊으며.

정우는 놈을 뒤로한 채 헤엄을 쳤다.

‘동굴 안쪽에 무언가가 있어.’

안쪽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결정체가 정우의 기감에 잡혔다.

수중 동굴은 길지 않았다.

아래로 꺾어지듯 내려간 동굴의 끝을 본 정우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아르망이었어.’

이곳의 지역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저 평범한 해안가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설마하니… 물의 반지가 있는 곳일 줄이야!’

물의 반지.

물의 정령이 봉인된 반지로, 계약 없이도 물의 정령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티팩트였다.

처음 소환에만 마력이 필요하며, 유지에는 마력조차 소모되지 않는 예상보다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

‘횡제다…!’

정우는 반지를 손에 넣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바닷속에서의 클리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변기에 빠진 것 같군.’

마력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물까지 말라가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정우는 이 던전의 법칙을 대강 알아차렸다.

멀티버스.

그렇게 생각했던 건 반만 옳았다.

지구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복사와 붙여 넣기.

정해진 반경을 고스란히 복사해 놨다가 붙여 넣는 방식이 던전에도 통용되고 있었다.

멀티버스보다도 더 정확한 개념을, 정우는 잘 알고 있었다.

“…아공간.”

회랑과 비슷한 개념이 던전을 이루고 있는 형태인 셈이었다.

아직까지는 지식이 부족해서 정확한 원리를 파악할 수가 없었지만.

“……연구. 아무래도 해야겠군.”

보다 깊은 수준으로 발전하다 보면 이 개념 역시 파악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갈 길어 멀어.’

“일단 이동부터 하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유 대리가 물병을 건네며 재촉했다.

새벽이 갓 지나고 있는 아침.

“…잠깐 졸긴 했는데 얼른 가서 잠부터 자고 싶어요.”

유 대리는 정우를 등 떠밀다시피 움직여 다음 던전으로 이동했다.

“전 자러 가요. 푹 쉬어요.”

손을 흔들며 본인의 숙소로 들어가는 말총머리를 본 정우가 피식 웃으며 숙소를 나섰다.

‘체력은 여유가 있으니까, 한 번 더 돌자.’

마력회복물약 또한 여유가 있었다.

결정을 내린 정우는 곧장 던전으로 향했다.

E급 던전, ‘시체의 산’.

“승인되었습니다.”

정우는 해당 던전에 입장했다.

시체의 산이라는 이름답게 던전의 내부는 음산한 공동묘지였다.

땅을 헤집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좀비와 해골 따위의 수는 많았다.

정우는 놈들과 정신없이 싸우면서도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마력의 흐름을 읽는 것도.

거미줄처럼 마력을 펼치는 것도 이제는 꽤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자유자재라는 표현을 쓰기엔 아직 부족했지만, 준비에 필요한 텀이 줄어든 것은 분명했다.

강원도에서도 그러했듯.

‘시체를 일으키는 건 세 가지의 요인이야.’

시전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아티팩트라고 보기엔 조금 미흡한 물건 하나는 보이네.’

창으로 베고 부수며 전진하는 정우를, 좀비와 해골은 전혀 막지 못했다.

물량 공세와 쉴 틈 없이 밀려드는 파상 공격으로 인해 몸을 움직일 뿐.

정우의 발길을 잡아끄는 놈은 전무했다.

모든 흐름이 강원도의 것과 비슷한 건 아니다.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마력의 패턴은 오히려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패턴이었으니까.

당시도 듀라한이 아니라 리치가 매개체였다면.

‘아마 죽었을 테지.’

혼자가 돌진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언데드의 마력 역시 각인한 정우에게 있어서 지금의 흐름은 너무도 쉬웠고.

또한 매우 훌륭한 수련처가 되어 주었다.

[ 스킬 ‘네크로맨서’를 습득하였습니다. ]

기어이 스킬을 완성시킬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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