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다양한 지원 (3)
8강으로 마무리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날 너무 드러낼 필요는 없지.’
얼마의 인원이 몰릴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어렵지 않겠지.’
정우는 자신감을 가졌다.
C급의 빌런 네 명과의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빌런을 상대한 건 그 자신감에 의한 실례에 지나지 않았다.
제안이야 유서린이 했다지만, 비슷한 검증이 있을 거란 예상쯤은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애당초 그걸 어느 정도 노리고 제안을 한 것이기도 했고.
때문에 대전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더불어 다른 이유도 하나 있었다.
지원자에 한해서 대전을 한다고 쳐도.
‘소문이 돌지 않을 순 없어.’
자신의 등급은 여전히 E급이었다.
혹시나 해서 본 테스트에서도 여전히 E급이라고 나타냈었다.
예상 밖의 활약은 할 수 있어도.
‘너무 과한 실력은 금물이야.’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8강은 그가 정한 마지노선이었다.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으면서도.
아직은 부족하다는 인식을 심어 줄.
안전지대.
“나쁠 건 없지.”
-땡, 하루가 지났습니다!
메아리의 안내에 정우는 방어막을 전개한 후, 열쇠를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으로 몰려드는 마녀들을 본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지스를 불러 줘.”
마녀들은 정우 앞에서 말을 아꼈다.
인사와 간단한 말 정도는 나눴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항상 이지스를 통해야 했다.
‘왕에 대한 당연한 태도인지 뭔지. 불편해.’
“부르셨소.”
얼마 지나지 않아 접속한 이지스를 향해 정우는 본론을 꺼냈다.
“세이렌에 대해서 알려줘.”
“음. 세이렌 말이오?”
“그래. 메아리의 말로는 놈들이 아주 이상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하하. 맞소. 그 날벌레도 아는 건 있는 모양이구려.”
“……둘은 계속 그럴 건가?”
“왕의 옆을 두고 다투는 건, 신하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오.”
이지스의 말에 정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알아서 하고. 아무튼 본론부터 설명해 줘.”
“알겠소.”
정우는 이지스의 설명을 들었다.
세이렌이라는 놈들에 대한 설명부터.
놈들의 특성과 습성까지.
본론치고는 꽤나 긴 이야기 끝에, 이지스가 물었다.
“약점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없소?”
눈을 살짝 빛내며 정우의 답변을 기대했다.
이지스의 설명을 떠올린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
“하하. 맞소.”
이지스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리암이 구함을 받은 뒤로, 이지스는 웃음이 많아졌다.
아라크네의 배 속에서 일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상당히 혹사한 탓에 아직까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정우로 인해 목숨을 구했다는 점이었다.
자신들의 육체도.
마을도.
그리고 미래까지도.
덕분에 이지스는 여유를 되찾았다.
이제야 진짜로 일족이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소? 저주를 사용하는 놈들이 저주에 약하다니.”
그의 말대로였다.
세이렌의 주된 공격은 저주였다.
그것도 꽤나 강력한 저주.
공격력은 별로 강하지 않은 놈들이지만, 뭉쳐서 거는 저주는 매우 위험했다.
때문에 놈들을 잡을 땐 저주 해제가 가능한 인원과.
저항력을 높여 주는 물품이 필수였다.
보통 자신이 사용하는 능력에 대한 저항력은 다른 것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전격 마법을 사용하는 이는 전격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났고.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화염에 저항력이 뛰어난 것처럼.
저주를 주로 사용하는 이들은 저주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건 안 통할 거라고 생각하니 아예 시도 자체를 안 한 거군.”
“후후. 아주 재미있는 놈들이오.”
맞는 말이었다.
저주를 사용하는 놈들이 저주에 약하다는 건, 이제 나름대로 이계의 법칙을 알아가는 정우의 입장에서도 우스운 일이었다.
“저주에 대해 배워야겠어.”
“당장 쓸 만한 저주가 몇 개 있소. 그것부터 가르쳐드리리다.”
이지스가 간만에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자연스럽게 책을 찾아 건넸다.
“아쉽구려. 진즉부터 대비했다면 아예 제대로 된 마법을 전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그건 나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야.”
메아리의 팩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지질학을 공부하면서도 일단은 다양한 마법을 배워 둘 필요가 있겠네.’
매직 미사일과 그래비티.
‘중력 마법 쪽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아쉽군.’
수많은 마법 중에서도 파고들 계열로 선택한 중력 마법의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게 조금은 마음이 쓰였다.
“여기에 있소. 이 책엔 기초가 되는 저주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초반엔 큰 도움이 될 거요.”
< 당신도 이 책이면 당당한 저주술사! >
“…….”
어디서 많이 보던 느낌의 제목이 떡하니 박혀 있는 책이었다.
이지스는 책을 펼쳐 몇 가지 저주를 선택했다.
“약화, 혼란. 그리고 매혹?”
“맞소. 이 세 가지가 세이렌에게 가장 잘 통하는 마법이오.”
“…그놈들 진짜 웃긴 놈들이네.”
정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매혹은 세이렌의 주된 저주였다.
저주에 대한 저항력이 낮은 플레이어를 매혹시켜서 아군을 공격하게 하는 방법은, 너무도 유명했다.
세이렌의 토벌에 실패한 것도.
그리고 저주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는 통상 관념이 박힌 것도.
“다 매혹 때문이었는데. 자신들이 그거에 약하다고?”
“그래서 웃긴 약점 아니겠소.”
이지스 역시 재미가 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런 와중에 여러 종류로 써먹을 구석이 많아서, 과거엔 놈들을 잡아다가 연구도 좀 많이 했소.”
“연구?”
“아마 보면 알 거요. 말해 줘도 되지만, 하나씩 파악해 나가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오. 특히나 왕은 그런 걸 즐길 체질이라, 저도 모르게 말을 아끼게 된다오.”
이지스의 말에 정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노려보다가 웃었다.
“나쁠 건 없지. 재미있는 걸 기대해도.”
“아! 그러고 보면… 연구에 대한 지식도 쌓는 게 어떻겠소?”
“연구에 대한 지식을?”
“그렇소.”
가볍던 그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왕의 세계 말이오. 던전 외에도 몬스터들이 왕의 세계를 침범하는 일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던전 브레이크?”
“그렇소.”
“그런데?”
“그러면 놈들을 연구할 여러 도구가 나름대로 마련되지 않았겠소?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말이오.”
“있지. 이미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었고, 나름대로 성과도 얻었어.”
아이템의 주재료가 몬스터의 사체에서 추출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구려. 그럼 더욱 도움을 받을 수 있겠소.”
“연구까지 하라고? 시간이 부족해.”
“음. 그래도 개념만은 익혀두었으면 좋겠소.”
“이유는?”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이지스의 짙은 눈동자가 묘한 확신을 담고 정우의 시선과 부딪쳤다.
“필요할 거요. 마법사라면 연구와 실험이 빠지질 않을 테니.”
* * *
정우는 이지스의 말에 동의했다.
“인챈트도 있었으니까. 나쁠 건 없지.”
-뭔 소리예요?
정우의 곁으로 쪼르르 날아온 메아리가 물었다.
“연구나 실험에 대해서 배우라고 하더군.”
-흐응. 웬일로 맞는 말을 했대요?
“네 생각에도 연구가 필요한가?”
-방금 주인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인챈트도 있다고. 연구가 별건가요? 제대로 된 활용법을 고민하는 게 연구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의외로 똑똑한 것 같단 말이야.”
-저는 의외가 아니라 원래 똑똑해요. ᕕ(ꐦ°᷄д°᷅)ᕗ
“그래. 알았다.”
입을 삐죽 내민 메아리를 다독인 정우가 눈가를 좁혔다.
“저주라고 하더군.”
-저주? 저주가 왜요?
“…저놈들 약점 말이야.”
-아항. 제가 기억 못 하는 게 그거군요? 바보다. 바보! 지들이 저주에 약하데. 꺄하하.
웃음을 터트린 메아리가 허공을 빙빙 날았다.
“시끄러워.”
메아리에게서 관심을 뗀 정우가 다시 집중했다.
이미 마법을 습득했다.
보다 어려운 마법인 그래비티조차 서적으로 습득한 정우였다.
기초 저주 마법이라 불리는 것들쯤이야.
‘어렵진 않았어.’
정우는 마법을 전개했다.
검은 일렁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그런 것이 정우의 손에서 펼쳐졌다.
[ 저주를 각인합니다. ]
세 종류를 연달아 펼쳤음에도 메시지는 하나만 떠올랐다.
‘흐름이 거의 비슷해서 그런가?’
실제로 펼친 저주의 마력 패턴은 의외로 거의 비슷했다.
기초적인 저주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주 자체가 원래부터 기원이 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저주’라는 새로운 스킬이 그 정도의 범용성을 지녔다면,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어디 한번, 공략해 볼까?”
-(∩`-´ )⊃━☆゚.*・。゚
메아리의 응원과 함께 해안가로 다가간 정우의 마력이 인근의 수면 아래를 샅샅이 뒤졌다.
‘생각보다 별로 없군.’
물속이라서 그런지 은근히 마력의 흐름이 제대로 읽히지가 않았다.
“차라리 이게 낫지.”
우르르 몰려오지 않는다는 것만 하더라도 정우에겐 큰 도움이었다.
“환각.”
가장 가까운 세이렌을 노린 정우의 저주가.
“……마이너스야?”
너무도 가볍게 세이렌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일말의 저항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여서, 마력 저항력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닐까 당황할 정도로 처참했다.
“약화.”
“매혹.”
연달아 저주를 사용한 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
“푸하하하.”
기어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쳤네. 진짜로.”
아비규환.
수면 위로 올라와서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는 놈부터.
해안가 가까이 와서 정우를 향해 열정적으로 허우적대는 놈에다가.
동족에게 저주를 퍼부어 상황을 악화시키는 놈까지.
웃기지도 않는 일들이 바닷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머맨과 라미아가 없는 이상, 저주만 있으면 너무도 간단하군.”
던전은 입장을 하는 순간 퇴로가 없었다.
퀘스트를 해결하거나 보스와 핵을 처리해야지만 게이트가 생성되었으니까.
때문에 세이렌은 상당히 골치가 아픈 존재였다.
낮은 등급일수록 더더욱.
한국도 자국의 플레이어들을 우선시해서 그런지, 외국인인 제임스 밀러가 구매한 던전은 여러모로 등급보다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잇단 던전 공략조차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확신한 그는 저주와 더불어 배운 한 가지 마법을 전개했다.
“인어의 호흡.”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마법.
시각적으로 별반 달라진 게 없었지만, 정우는 천천히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신에게 매혹된 세이렌들이 바닥을 벅벅 기며 다가왔다.
비늘이 달린 여성의 상체.
상당히 아름다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찢어진 입이 뾰족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콰득!
다가갔음에도 전혀 저항하지 않는 세이렌의 목을 비틀어 버린 정우의 손에 지팡이가 들렸다.
‘무기도 바꿔야겠네.’
삼단창은 꽤 손에 익었지만, 가치가 그리 높은 물건은 아니었다.
지팡이야 모든 걸 압도할 만큼 뛰어났지만.
“확실히… 물속에서도 호흡이 자연스럽네.”
똑같이 호흡을 해도 어색한 게 하나도 없었다.
전신을 뒤덮은 얇은 막의 효능이었다.
물속은 맑았다.
유명한 휴양지의 그것보다도 맑아서, 과연 물속에 들어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야에 걸리는 건 없었다.
“움직임이 문제긴 한데… 어차피 일본에서 싸우려면 미리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물속 전투는 처음이었다.
때문에 육체적인 것보다 마법적인 공격을 주로 염두에 둔 정우는.
“매직 미사일.”
어렵지 않게 혼란에 빠진 세이렌들을 처리했다.
저주란 무기를 잃은 놈들은 허무할 정도로 약했다.
물론, E급이라는 등급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일본의 세이렌이 보여줬던 강렬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녹색의 피가 물감처럼 퍼지는 사이에서.
자신감이 붙은 정우의 손엔, 다시금 창이 들려 있었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