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80화 (80/293)

80화

-다양한 지원 (1)

불의 왕.

그는 진정으로 왕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첫 능력은 ‘발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강탈.

그의 능력은 다름 아닌 타인의 재능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상대를 제압하고 빈사 상태로 만들어서.

제압당한 상대의 ‘피’를 한 모금 마셔야 완성되는 복잡한 방법.

게다가 상대의 능력이 자신과 비슷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그의 능력은 꽤나 불합리한 것처럼 보였다.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총과 마약과 범죄에 노출되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싸움을 배웠고, 살인을 경험했다.

그런 와중에 생긴 각성은.

특히나 유일한 능력인 강탈은.

그의 입맛에 너무도 맞는 것이었다.

각성 때부터 그는 타인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다른 아홉 명의 재능을 한 몸에 담고.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그의 주변엔 피가 마르지 않았다.

“…골치가 아프군.”

그런 그는 성장하고 강해져서 ‘왕’이란 칭호를 받았다.

지금은 성장이 멈춰 버렸지만.

“성장하지 않는다라…. 재능은 확실한데 말이야.”

붐의 보고를 들은 수르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불의 왕, 수르트가 되기 전 그의 이명은 ‘다빈치’였다.

만능.

수많은 재능을 강탈하여 가진, 무수히 많은 재능의 소유자란 뜻에서.

그런 그가 정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재능 감별은 어느 면에서 유서린의 것과 비슷했다.

다만 유서린이 현재의 수준을 거의 정확하게 짐작한다면.

그는 미래를 짐작할 뿐이다.

재능의 수준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마력을 포착해서 상대의 재능을 짐작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겠구나 하고.

“징벌의 처녀라면 엄청난 먹이였을 텐데… 그 또한 아쉽고.”

“…보스. 그녀는 강합니다.”

“나보다 더?”

수르트의 눈썹이 치솟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다른 버러지들이 들러붙을 때까진 시간을 끌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되기 때문에 나도 군말 없이 이동한 거다.”

“알고 있습니다. 보스.”

붐이 고개를 숙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

“…보스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게 징벌의 처녀 이후로 처음이라서 말입니다. 그 F급이 진짜로 보스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큭. 크큭.”

수르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붐은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제물의 인.

붐을 데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자, 자신조차 만족스러운 능력.

만약 붐이 A급이 아니라 S급만 되었어도 빼앗았을 정도로 탐이 나는 능력이었다.

그 역시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S급에 도달하진 못했다.

저 정도의 재능이 벽을 넘지 못할 정도로 S급과 A급의 격차는 컸다.

“처녀는 아름다웠지. 외모를 압도할 만큼 강렬한 후광은 결코 제 아비에 뒤처지지 않았다.”

이미 들은 내용이었다.

유서린을 따로 빼내려고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붐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아쉬운 것은.

보스가 유서린을 본 시점이 그녀가 A급에 다다랐을 때라는 것이었다.

막 관심을 두었을 때 그녀는 이미 수많은 보호를 받고 있었고, 급속도로 성장한 그녀는 어지간한 S급을 발아래로 둘 정도로 골치 아픈 적이 되었다.

이름 높은 이들은 전부 수르트의 목표가 되었다.

집어삼킨 이도 있고, 당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덕분에 그는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손댈 수 있는 자와 손대지 못하는 자를 구별해 놓았다.

언제고 기회만 되면 집어삼키기 위해서.

하지만 S급 정도가 되면 하나같이 막강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회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다른 먹이가 필요했다.

그들처럼 강해지기 전에.

그 틈에 수많은 이들을 집어넣고, 종국엔 자신의 입맛대로 집어삼킬 수 있는 먹이가!

“듬성듬성 구멍이 난 빛. 내가 본 놈의 재능은 그랬다.”

자신을 향하던 강단 있는 모습은 꽤 흥미로웠지만, 일견 외관만 보면 그 정도뿐이었다.

“부족하단 말씀입니까?”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솔직히 말하면 붐은 정우에 대해서 거의 잊고 있었다.

보스의 눈을 믿었으며 예상 밖의 저항에 나름대로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강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의지가 뛰어나다고 실력까지 월등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받은 보고 또한 정우의 수준을 딱 잘라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수르트의 입가가 히죽 찢어졌다.

그는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투였다.

“오히려 기대가 되지 않아? 그게 채워질 때, 얼마나 오색찬란할지.”

“…….”

붐은 수르트의 판단에 고개를 숙였다.

오색찬란.

지극히 소수의 인원에게만 한 평가를.

‘그런 애송이에게 하셨다.’

묘하게 속이 쓰렸다.

“웨이쯔는?”

“도살자를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김훈이라는 플레이어 하나를 납치해 놨다고 했습니다. 오버레이를 전달했으니,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그래?”

정우를 떠올리며 품었던 즐거움이 이어졌다.

조급함을 누른다.

불의 왕.

사람들이 붙여준 왕의 칭호가 얼마나 허탈하고 의미가 없는 것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왕의 칭호는.

‘…놈에게서 그 칭호를 온전히 빼앗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하게 한, ‘놈’에게만 있었다.

빌런 협회의 진정한 일인자.

‘……마왕.’

으득.

즐거움이 사라진다.

놈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었다.

고오오오!

붐은 수르트의 마력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잠깐의 표출.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후끈해졌다.

그를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한 권능.

‘과연… ‘불의 정령’이다.’

스킬명, 불의 정령.

화염의 정령사라 불리는 이에게서 빼앗은 능력은 여러 능력과 맞물려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강탈은 수많은 능력을 빼앗을 수 있게 만들어 줬지만.

적어도 그 안에 ‘화합’은 없었다.

그렇기에 정우가 탐이 났다.

지속적인 보고를 받을 정도로.

드문드문 비어 있는 재능의 빛.

그곳을 채워 나가는 놈을 보다 보면 결론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저 틀을 빼앗을 수 있으면 자신의 능력 역시 여러 종류로 조합할 수 있겠다란, 결론을.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올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못 할 건 아니지만… 으음.’

고민이 앞섰다.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은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을 찾아가며 자신의 이상을 해결하고자 하는 건 마음에 들었다.

그들보다도 더 이상 현상에 박식한 자가 협회에 있었지만.

‘자칫하면 실험 도구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크지. 그자는… 마왕의 총애를 받으니까. 큭. 아쉽군.’

결코 도움을 청할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적대 관계에 가깝지.

그렇기에.

“관리해. 백의 연금술사와 브라운은 건드리지 마라. 놈의 이상 현상을 해결시켜 줄 인물들이니까.”

“알겠습니다.”

“혹시나 그 버러지가 주제도 모르고 제물을 건드리지 않도록 관리해라.”

“네. 보스.”

“그리고.”

수르트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실제로 불꽃이 눈동자에 붙어서 화르륵 타올랐다.

불의 정령과 ‘강신’이 합쳐져 만들어진 권능, 이프리트.

최상위 불의 정령을 뜻하는 그것이 수르트를 진정한 불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붐은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경험은 필수일 테니. 도와라.”

예의 하던 작업.

붐은 보스의 지시에 짧게 대답했다.

“네. 보스.”

* * *

마력 : 25(+10)

“이제 5.”

두 번째 성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 안 남았다.”

성장을 확인했다.

C급 빌런 네 명을 상대로 보인 전투는 성공적이었다.

소수 인원 파티의 공략법도 적중했고.

전투를 끝내고 남은 마력에도 만족스러움을 내비쳤다.

‘강해졌다. 확실히!’

유서린이라는 이변만 아니었다면 스스로 자축이라도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빌런 전담팀이 창설되었고.

정우는 유서린의 직속 1팀으로 배정이 되었다.

1팀의 인원은.

단 한 명이었다.

한정우, 본인 말이다.

“…이걸로 빌런을 상대할 최소한의 준비는 됐어.”

혼자서 빌런을 찾는 건 무리였다.

협회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기에 전담팀 창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날 곁에서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

유서린과 함께 연안 부두로 향하기 전에 들었던 협회장의 말은 어느 정도 그런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회랑에서 새로운 정보를 파악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걸 수집했겠지만.

“승인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너무 일정이 바쁜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녀올게요.”

유 대리에게 인사한 정우가 게이트를 넘었다.

[ 고블린의 부락에 입장하였습니다. ]

제임스 밀러가 구매한 던전이 아직도 일곱 개나 남아 있었다.

반경이 좁아서 그런지 F급 던전은 기척이 빨리 느껴졌다.

퍼트린 마력이 우르르 몰려드는 몬스터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잡기 시작했다.

‘미니맵 같군.’

아라크네의 마력은 확실히 유용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마력은 아라크네의 그것에서 조금 더 변화하여 정우에게 알맞게 진화했다.

조종과 감지 위주의 능력이.

마력을 보는 눈과 섞여 마치 게임의 ‘미니맵’을 연상시키듯 확장되었다.

마력만 충분하면 던전의 반경을 전부 두른 뒤에 차분히 놈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좋다.’

정우의 마음에 쏙 들었다.

틈틈이 정우는 본인의 능력을 섞고 있었다.

꽤나 괜찮은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멈추지 않는 작업이었다.

각인 역시 놓치지 않고 꾸준히 진행했다.

각인으로 스킬화가 된 능력이 벌써 네 개를 넘어서고 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케르-!

익숙한 외형이 벌게진 눈알을 부라리며 뜨거운 숨과 함께 달려들었다.

녹색의 물결.

그것을 눈에 담으며 정우의 손이 아공간을 관통했다.

스스슷!

‘확실히 뛰어나다. 이젠… 이걸 써야겠군.’

신체 능력이 향상되었다.

삼단창은 보여 주지 못하는 능력.

지팡이를 손에 쥔 정우가 희미하게 웃으며 쿵,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찍었다.

“그래비티.”

케-르……!

달려들던 놈들이 일제히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와중에 자신의 녹슨 무기에 찔려 신음하는 놈들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충분하네.”

정우의 마법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래비티.

마녀들조차 비효율의 극치라고 표현한 그것의 활용도는 엄청났다.

“매직 미사일.”

가볍게 펼쳐진 매직 미사일이 회전하며 고블린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잠시 먹통이었던 자신의 페로몬이 다시 작동했다.

제임스 밀러가 구매한 던전에 입장했을 때부터 줄곧 모든 몬스터들이 일제히 자신을 노렸으니까.

이유는 모른다.

다만.

‘웃긴 일이군.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이 들다니.’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막 고블린들에게 쫓겨 도망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콰콰콰쾅!

몰려든 모든 고블린들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 버렸다.

남은 건 보스뿐.

이게 입장한 지 불과 삼십 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우는 몬스터들을 살폈다.

조악한 무기의 형태와 갑옷의 양식을 주로 주시했다.

쓸 만한 건 없었다.

거의 쓰레기 수준.

하지만 그런 것들에서도 얻는 게 있었다.

“서부 지방이다.”

바로 이 던전의 위치.

정확하게 말하자면 던전의 배경이 이계의 어느 곳인지 파악이 가능해졌다.

회랑의 방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던전에만 입장하면 여러 양식에 대한 실물이 눈에 들어오니, 이보다 더한 공부도 따로 없었다.

마력을 퍼트려 보스의 위치까지 파악한 정우가 주변을 살폈다.

별 특징이 없는 지형의 경우엔 대략적인 지리만 파악할 뿐, 배경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 짓는 건 무리였다.

“아쉽군.”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흔해 빠진 몬스터이자 어느 곳에서도 생존하는 끈질긴 생존력을 지닌 고블린답게.

이 숲은 흔해 빠진 어느 지역의 뒷산처럼 보였다.

셀레잉 늪지처럼 특별한 지역이 다시 나오기를 바랐지만, 운이 나빴다.

“리플렉트(Reflect).”

정우는 곧장 지팡이에 내장된 마법을 발동시켰다.

희미한 구가 자신을 뒤덮자.

정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열쇠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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