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검증 (4)
“죽어라!”
별다른 말이 없는 건 장점이었다.
상투적인 협박 대신 곧장 살수를 펼치는 놈들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정우는 혹여나 남아 있던 일말의 죄책감도 모조리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들은 인간이 아니야.’
컨테이너를 찾았다고 곧장 반격을 가한 놈들이었다.
회복된 마력.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정우를 좇았다.
[ ‘악의(惡意)’를 각인하였습니다. ]
‘악의?’
순간적으로 정신이 팔릴 뻔했다.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놈들이 움직였다.
스륵!
사라지는 암살자의 움직임을 마력으로 좇았다.
‘은신은 여전히 보이네.’
이동 속도는 오한우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야말로 순식간.
자신의 은신을 믿는 놈을, 이대로 반격해서 기습에 가까운 효과를 내도 좋겠지만.
‘유서린이 보고 있을 테니까, 내 모든 걸 드러낼 필요는 없지.’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 단검을 휘두르는 일격에 정우는 가볍게 몸을 회전시켜 피했다.
살짝 커지는 복면 안의 눈동자를 보며.
정우는 손을 휘저었다.
‘염동.’
스읏!
푹!
검게 칠해진 암기 하나가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시선을 끌고 암살자가 일격을 가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암기를 내던지는 스타일은.
‘이미 익혔어!’
반응이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내 차례다!’
쿵!
단번에 주변이 무거워진다.
이전에는 겨우 타깃을 정해서 사용했던 마법이, 이제는 놈들의 움직임에 반응해서 아래로 짓누른다.
‘그래비티.’
[ 중력 조작을 각인하였습니다. ]
반가운 메시지와 함께 정우가 땅을 박찼다.
중력은 아래로 흐른다.
놈들의 근처라면.
‘위에서 내리찍는 공격이 훨씬 유리하지.’
창을 회전시켜서 파괴력을 증가시키고, 그래비티의 위력에 힘입어 아래로 내리찍었을 때.
“……오.”
정수리를 노린 일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파앗!
그나마 성과라면 어깨를 가른 것뿐.
푸욱!
‘확실히… 이리들보다는 훨씬 강해.’
순간적으로 상체를 비틀어 일격을 피한 건 정우도 살짝 놀랄 정도였다.
그런 정우의 눈이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래비티의 영향은 아직도 유효했지만, 놈들의 적응력도 뛰어났다.
쇄애애액!
거미줄이 출렁거리며 일격을 알려왔다.
아라크네의 마력.
그건 정말로.
‘…신세계군.’
묵직해진 눈빛으로 조용히 마력을 증폭시켰다.
우웅, 우우우웅!
공명과 더불어 요란한 벌 떼 소리가 주변을 장악했다.
‘매직 미사일!’
순식간에 생기는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의 비행에, 놈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쳐낸다.
각자의 스킬로 매직 미사일에 반응하는 놈들을 보며.
스읏!
정우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
‘된다.’
[ ‘마법 유도(誘導)’를 각인하였습니다. ]
매직 미사일의 운영이 바뀌고.
스킬 하나를 피해 낸 마법이 기어이 한 놈의 목을 꿰뚫었다.
몸을 회전해서 바닥을 짚으며 주저앉듯 웅크리며.
한껏 수축된 근육이 마력을 받아들이며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파앙!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난다.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창을 빙글 회전시키며 아래로 내리찍었을 때.
으득, 소리 나게 이를 간 놈의 검이 위로 솟구쳤다.
조금 늦은 반응.
하지만 정우는.
‘이용한다.’
오히려 손에 힘을 살짝 뺐다.
까앙!
창대와 검이 부딪쳤다.
짜르르 울리는 진동과 함께 창이 위로 솟구쳤다.
당황하던 놈의 눈동자에 또다시 살기가 깃들었다.
‘…좋냐? 죽일 생각에?’
툭.
가볍게 손을 펴서 창대를 놓은 정우의 마력이 공명한다.
‘그래비티.’
말도 안 되는 연산 속도.
가파르게 솟구친 마력이 무거운 무게가 되어 다시 적들을 짓눌렀다.
더불어.
‘염동!’
손이 닿지 않은 놈의 머리를 붙잡은 것처럼, 마력을 집중해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창을 쳐낸 검사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을 때.
콰직!
놈의 머리는 이미 땅에 내리꽂힌 후였다.
부웅!
다른 둘의 마력이 요동쳤다.
일격을 준비하는 모습.
우우우웅!
‘매직 미사일!’
양쪽으로 쇄도하는 매직 미사일과 함께.
던졌던 창을 받아든 정우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파앙!
“X발!”
욕설과 함께 요란하게 매직 미사일을 쳐 내는 놈들의 공격을 비집고 들어가.
서걱!
한 놈의 팔을 잘라 내고.
콰득!
다른 한 놈의 무릎을 박살 냈다.
비틀.
‘힘껏 찌르기.’
빙글!
역수로 찌른 창이 다시 회전해서 반대편 놈의 가슴을 꿰뚫었다.
“끄… 끄륵.”
목이 턱 막히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검은 동공이 위로 회전하고.
비틀거리는 놈의 신형을 염동으로 잡아끈 정우의 창이 무심하게도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어지러운 머리 통증을 이기고 정신을 차린 놈이 튀어 오르며 은은한 냉기를 머금은 일격을 가했지만.
이미 아라크네의 마력을 통해서 놈의 일격을 파악한 정우는 바닥에 붙듯 몸을 숙여 일격을 피해 냈다.
그러고는 지면을 스치듯 창을 휘둘러.
파아앗!
위로 솟구친다.
“……!”
자신의 턱과 볼을 자르고 지나가는 일격에 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쿠웅!
‘그래비티!’
치솟았던 고개가 뒤로 꺾이며.
우득!
놈의 허리 역시 뒤로 젖혀졌다.
탓.
가볍게 땅을 찬 정우의 창이 여전한 중력의 힘을 받아 아래로 내리꽂힌다.
푸욱!
꿰뚫리는 가슴.
뒤로 쓰러지는 놈의 위에서 같이 떨어지듯 일격을 가한 정우의 두 발이 바닥을 디뎠다.
[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
반가운 메시지에 반색하기도 전에.
정우의 고개가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 정도면….’
느껴지는 기척.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드러난 유서린의 기척을 보며.
정우가 조용히 물었다.
“검증이 되지 않았을까요?”
* * *
“훈련받아 볼 생각은 있나요?”
다가오자마자 건네는 말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증은 끝났다.
자신의 주제넘은 제안이 통과되었다는 걸, 그는 확신했다.
“훈련이라면요?”
“제가 운영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어요. 거기에 참여해요.”
“알겠어요.”
유서린이 묘한 눈동자로 정우를 살펴보았다.
“제안은 승낙하죠. 대신에 훈련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엔 조용히 팀원으로 활동하는 게 어때요?”
“권유인가요?”
“아뇨.”
즉답에 정우의 어깨가 으쓱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피식.
미소 지은 유서린이 말했다.
“대신에 성과가 있다면 확실히 보장하죠.”
“단독 활동을요?”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딘지 모르게 정우의 속내를 읽는 듯 조용히 한곳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작은 입술을 열어 물었다.
“한 가지만 먼저 물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저한테는 스킬이 하나 있어요.”
정우는 그녀의 마력 패턴에 집중했다.
고요히.
그러나 거세게.
서로 상반된 마력은 용암을 덮은 지면과 같았다.
‘버서커의 마력을 성기사의 마력으로 억제하는 셈이야. 아니, 중화? 이런 패턴은 생각보다 묘하네.’
생각보다 희한한 매력 패턴이 이윽고 변화한다.
차분하게 뻗어 나온 마력의 줄기가 자신을 어루만지고 사라졌다.
정우는 모른 척 반응하지 않았다.
“감별.”
“아이템이나 아티팩트 감별 능력이요?”
“맞아요. 하지만 제 직업이 특수해서 그런지, 저는 다른 게 되더라고요.”
그녀와 정우의 시선이 마주쳤다.
“사람.”
“…네?”
“사람이 감별이 돼요.”
그녀의 말에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성향이나 생각 같은 거요?”
“아뇨. 그 정도까진 아니고. 제가 알 수 있는 건 오히려 마력 테스트기에 가깝죠.”
손을 든 그녀의 손바닥 위에 은은한 마력의 불꽃이 생겨났다.
그녀는 자신의 손 위에 있는 불꽃에 시선을 두었다.
“이런 것처럼요.”
짙어지고, 흐려지고, 거세게 타올랐다가, 곧 꺼질 듯 약해지고.
유서린의 눈이 다시 정우에게로 향한다.
“일본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네요. 한정우 플레이어는.”
“……!”
-마력감별사! 어라라? 버서커나 성기사에겐 그런 재능이 원래 없는데요? 희한하네….
‘마력감별사?’
-마력을 감별하는 자들이에요. 저 여자 인간 말처럼 여기선 테스트기에 가까워요. 인간 테스트기라고 봐야 할걸요?
-☆~(ゝ。∂)마력 성장을 들켰네요….
메아리가 혀를 내밀었다.
‘……!’
“불과 몇 달. F급의 플레이어가 C급의 빌런 넷을 상대로 승리한다라…. 누가 믿을까요?”
유서린의 음성엔 흥미가 묻어 있었다.
“적어도 유서린 플레이어는 믿어 주겠죠.”
“그러게요. 보지 않았으면 못 믿었을 거예요. 전투 센스야 그렇다 쳐도… 폭증한 마력이 인상적이네요.”
-원래 저희 세계엔 마력감별사란 존재가 있었어요. 마력의 적성을 판단하려면 감별사의 존재가 필수였죠. 검사의 재능과 마법사의 재능은 다르니까요.
‘그게 유서린에게 있다?’
-그런 것 같아요. 왜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녀가 마력감별사의 재능을 가진 게 특이한 건가?’
-특이하죠. 보통 마력감별사의 능력은 ‘사제’한테 있었거든요.
‘사제?’
-어디였더라? 그건 기억이 안 나는데 한 ‘신’이 틀어쥐고 있던 능력이었죠.
속으로 대화를 나누던 정우가 아차 했다.
생각을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유서린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 시체를 살짝 힐끔거렸다.
“왜 갑자기 마력이 조금 더 상승한 건지도…….”
‘……! 알았나?’
정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세상에.
빌런을 잡아서 성장하는 플레이어라니.
딱히 빌런‘만’ 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날 의심한다면?’
도망칠 수나 있을까.
저 징벌의 처녀에게서?
묻지 않는다는 말조차 부담이 되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실력을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긴장으로 얼룩져 있었다.
“빌런.”
하지만 유서린은 태연하게 자신의 말을 이었다.
“싫어하나요?”
‘무슨 뜻이지?’
“별 뜻은 없어요. 그저 그대로 대답만 해주면 돼요.”
긴장으로 얼룩졌던 정우의 표정이 탁 풀렸다.
잘못한 건 없었다.
증명하는 게 어려울 뿐, 자신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만큼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게 호의적일 때… 차라리 말하는 게 나을지도.’
“…싫어해요.”
정우의 말이 만족스러웠을까.
그녀의 표정이 사르르 풀리며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래서예요.”
“……네?”
“먹잇감. 제대로 던져줄 테니 받아먹으라고요.”
“……!”
“그러려면 훈련을 제대로 받아야 할 거예요. 나쁘진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 손을 내밀었다.
작고 하얀 손.
선두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손을.
꽈악.
정우는 다시 맞잡았다.
“좋아요. 그럼 혼자 해봐요. 수르트 같은 ‘강탈’인지, 아니면 다른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싸아-아!
순식간에 눈빛이 차가워졌다.
경고를 담은 눈동자가 정우의 폐부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와들, 와들 ε=ε=(っ*´□`)っ
메아리가 정우의 등 뒤로 숨었다.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님에도 그녀가 움츠릴 정도로, 유서린의 살기는 어마어마했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정신을 파고드는 나지막한 경고.
“지금처럼만 유지한다면… 저도 후원자가 되어 드리죠.”
의외의 보상보다도 조건이 신경 쓰이는 말을 끝으로 그녀가 악수를 풀고 몸을 돌렸다.
사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린 정우가 맥 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 감별이라니. 그런 게 가능한 줄 알았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인정받을 때까지 천천히 활동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섣부른 판단이었지만.
“……결과가 좋다니 다행이네.”
의외의 결과엔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히도 밀어줄 모양이네.’
협회장의 결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정우는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협회장과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전.
“…됐다.”
마력이 성장하는 순간을 목격당한 건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원하는 대로 됐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머리를 긁적인 정우가 창을 챙겼다.
‘이제부터 좀 달려보자.’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곧 수르트가 먹잇감을 보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