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78화 (78/293)

78화

-검증 (3)

정우는 자료를 읽었다.

‘인천.’

수많은 선적이 오가기 때문에 빌런들이 파고들 여지가 있는 장소였다.

‘연안 부두라….’

정우는 지리를 외웠다.

-드디어… 주인님이 성장하신다. 풍악을 울려라! ( ✪ワ✪)ノʸᵉᵃʰᵎ

“…어디서 배운 거야?”

어이가 없다는 투로 웃은 후, 정우는 비타를 조작했다.

“가만 보면 협회의 정보력도 그리 떨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자신이 평가할 내용은 아니었지만, 협회의 정보력도 상당했다.

“C급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한 팀이라….”

자신에 대한 기대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빌런, 몇 마리만 잡아볼래요? 검증도 할 겸.”

“검증치고는 난이도가 있는데?”

-약한, 소리 (ʃƪ〃゚3゚〃)

“까부네.”

메아리에게 핀잔을 건넨 정우가 빌런들의 정보를 머리에 담았다.

그들의 능력이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때.

“…대충 이런 패턴이겠군.”

회랑의 지식은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끝도 없이 방대한 지식.

사람의 생각은 이계나 지구나 비슷하다는 걸 절로 느끼게 만든 정보가 한가득이었다.

덕분에 나름대로 계획을 세울 수가 있었다.

“소수 파티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많은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이계의 능력과 지구의 능력은 흡사하다.

다른 점이라면.

이계의 능력은 스스로가 노력하여 쌓은 것이라는 점.

지구의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졌으며, ‘스킬’이라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뿐이었다.

위력과 활용도는 이계가.

편리성과 속도는 지구가.

그 정도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진형은 거기서 거기야.”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덕분에 여러 진형과 창의적인 시도가 이루어졌고, 작금에 이르러선 방대한 전략법이 세워졌으니 지구의 승리랄까.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파티의 형태가 두 세계의 형태가 비슷하다 보니 빼먹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았다.

기본을 놓치지 않는 정우로서는 써먹을 게 많은.

“괜찮겠어.”

효율적인 내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우가 방을 나섰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협회 숙소의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던 유 대리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말총머리를 찰랑거리며 다가왔다.

“정리 끝났어요?”

“곧장 출발할 거예요.”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고개를 숙여 속삭인다.

“위험한 일을 너무 자처하는 거 아니에요?”

위험하기는.

‘아니, 위험한 건 맞나?’

이리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다.

놈들은 인간을 사냥하는 데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이고.

자신의 능력으로 인간을 괴롭히는데 능수능란한 자들이었으니까.

보통 빌런은 대인전에 있어서, 일반적인 플레이어보다 뛰어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을 거 같아요. 만약도 대비되어 있고….”

“……아.”

넘어온 자료를 본 이는 정우뿐만이 아니었다.

유 대리 역시 자료를 읽었다.

그리고 말미에 적힌 내용도 확실히 보았다.

“…진짜로 근처에 있겠죠?”

“있겠죠.”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정우를 보며 그녀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갈수록 대범해져 가네요.”

“그런가요?”

희미하게 웃은 정우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이번엔… 뭘 준비하면 되나요?”

“준비요?”

유 대리의 물음에 정우가 고개를 돌리며 반문했다.

“새살이 솔솔 나는 약이나, 마취제. 혹은 의사나 해주사도 있고…….”

“아….”

간호사로 취직해도 되겠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린 정우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글쎄요. 이번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 * *

-오오. 음산한 분위기! 마음에 드네요!

이상한 곳에서 꽂힌 메아리가 부산하게 주변을 날아다녔다.

커다란 컨테이너가 가득한 부두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정우는 복면을 점검했다.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된 복장이 어둠에 녹아들었다.

‘…어디에 있는지 가늠도 안 가네.’

새삼스럽게 차이가 느껴졌다.

“검증은 제가 해요. 위험할 경우, 끼어들 테니까 죽진 않을 거예요. 물론 탈락은 하겠지만….”

자신의 근처에서 대기하겠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린 정우는 그녀의 기척을 찾았지만.

천재로 이름난 S급답게 아주 작은 마력도 감지되지 않았다.

확실히.

‘S급은 마력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어.’

S급 정도가 되면 이계의 능력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력을 다룰 줄 알았다.

규격 외라고 자부했던 자신의 마력감지능력까지 통하지 않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중요한 건 아니니까….’

유서린의 유무는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어차피 전투는 혼자서.

‘나야말로 내 성장을 위한 건데….’

한 명이라도 놓칠 수는 없었다.

아라크네의 흔적.

그곳에서의 경험은 정우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다.

파앗.

빠르게 퍼지는 마력은.

‘…잡았다!’

컨테이너 하나에 숨어 있는 네 명의 범죄자들을 가볍게 포착했다.

사방으로 퍼졌던 마력이 놈들에게 집중된다.

‘이래도 안 느껴진다? 진짜 대단하네.’

집중한 마력 감지에도 유서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정우는 나지막한 탄성을 삼켰다.

집중된 마력은 마치 거미줄과 같았다.

작은 진동.

흐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놈들의 정보를 넘겨주었다.

거미가 먹잇감을 향해 다가가듯.

스윽.

정우가 컨테이너 근처에 조용히 접근했다.

‘마력억제제가 원래 이렇게 흔한 거였나?’

정우는 괜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제임스 밀러가 마력억제제를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빌런들은 그보다 더한 걸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C급의 플레이어가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말이 안 된다.

강하긴 하지만 스킬의 틀 안에서 자신만의 틀을 만드는 수준이 C급이었으니까.

억눌린 마력.

그 패턴이 눈에 익었을 무렵.

[ 마력 억제를 각인하였습니다. ]

‘어지간한 건 다 각인되겠는데?’

쓸 만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력 회로는 정말로 뛰어난 스킬이었다.

‘괜히 기회를 줄 필요는 없지.’

놈들의 위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검사처럼 마력을 되돌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물약 먹을 시간을 주지 않으면 돼.’

그렇게 기습하려던 정우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이걸로 검증이 될까?’

C급 빌런 넷인 줄 알았던 놈들이 비리비리하게 나온다면.

‘와, 잘했어요. 하진 않겠지.’

C급에 걸맞은 능력.

그리고 그것을 제압할 능력.

‘그 정도까진 기대하지 않겠지만….’

보여줘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게 내가 원하는 거지.’

“좋습니다. 대신 저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 제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여겨진다면… 독립적인 행동 자율권을 좀 부여해 줬으면 하거든요.”

상당히 당돌한 요청.

찌푸려진 눈으로 지그시 노려보던 유서린의 입가가 흥미롭게 비틀렸다.

“나쁠 건 없겠네요. 대신에 엄격하게 판단하죠. 아예… 헛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린 정우의 입가도 슬쩍 올라갔다.

현저한 차이.

자신을 어리석게 보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선 희미한 기대감을 엿봤다.

그 기대감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응해 보이지.’

정우를 불타오르게 만든 건 사실이었다.

팀으로 활동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똑똑.

“……!”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기척이 느껴진다.

어느새 빼어 든 창을 휘둘렀다.

서걱!

창날에 맺힌 오러가 가볍게 컨테이너의 한 벽면을 잘라 냈다.

“누구냐!”

여덟 개의 안광이 폭사하며.

침입자를 노리고 각자의 스킬을 전개했다.

“반응이 빠르네?”

지극히 실전적인 일격.

하지만 마력억제제로 실력이 감소한 이들의 일격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러를 발끝으로 돌려 지면을 박찼다.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각인에 반색하며.

쿵!

컨테이너 지붕 위로 올라간 정우가 다시 한번 창을 휘둘렀다.

길게 잘리는 틈 사이로.

꿀꺽!

요란하게도 물약을 마시는 놈들의 모습이 달빛 사이로 보였다.

파스슷!

달빛을 밀어내듯 순식간에 회복되는 마력의 흐름이 컨테이너의 틈새를 비집고 정우를 압박했다.

“잡아. 당장!”

* * *

“……!”

예상보다 은밀한 잠입에 고개를 끄덕이던 것도 잠시.

갑자기 시작된 전투에 유서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노크를…?’

순간적으로 든 의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도출됐다.

‘마력이… 상승한다?’

몇 번 창을 휘두른 것에 대한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일부러.’

그렇지 않아도 빌런들의 마력이 너무나 희미해서 정보가 잘못된 줄 알았다.

이리의 수장 반갑수를 통해 얻은 정보.

배후에 빌런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고문과 스킬을 통해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냈다.

물론, 그사이 대부분의 빌런들은 도망을 쳤지만.

우연찮게도 반갑수의 기억에 정지하가 흘린 정보가 남아 있었다.

꾸준히 관리한 끝에.

세 개의 꼬리를 잡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

연안 부두.

몇 달의 감시 끝에 용도가 다해 버린 놈들.

C급의 빌런 넷으로 이루어진 파티는 정보가 끊어진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C급 네 마리를 상대하겠다고?’

희미한 마력이 회복되고.

완연한 C급의 수준이 되었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여차하면 정우를 도와 주기 위해서.

“……하?”

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건.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등 뒤에서 등장하는 암살자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제법.’

아슬아슬하게 피한 정우의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는 순간, 날아오는 암기가 방향을 바꿔 아래로 떨어졌다.

‘…염동력?’

그녀의 눈이 커졌다.

쿠웅!

“…마력으로 짓눌러?”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흘러나오는 사이.

네 마리의 뻣뻣한 목이 아래로 꺾였다.

파앗!

허공으로 뛰어오른 정우의 창이 빙글 회전하며 빌런 하나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푸욱!

솟구치는 피.

그사이 고개를 든 다른 놈의 일격이 정우를 노리고 쇄도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지만.

우우우우웅!

벌 떼의 소리처럼 요란한 소음이 전황을 가득 채웠다.

“매직 미사일….”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이 놈들의 경로를 틀어막으며 허공을 수놓았다.

달빛을 반사시키듯 은은하게 빛나는 마력의 화살들이.

“……커, 커억!”

기어이 한 놈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빙글, 탁!

바닥에 내려앉자마자 땅을 박찬 정우가 세 명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파앙!

빙글, 회전해서 찔러지는 창을 본 놈이 이를 앙다물며 검을 휘둘렀다.

푸르스름하게 물든 검이 창대를 후려쳤다.

위로 솟구치는 창과 팔.

유서린은 정우가 노련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전의 움직임과는 다른 실수.

중심이 흐트러진 정우를 향해 세 마리의 늑대가 각자 무기를 휘둘렀다.

‘끼어들어?’

위기.

따지고 보면 너무도 가볍게 찾아온 위기였다.

처음의 승기는 어디로 가버리고 단 한 번의 반격으로 위기에 처한 것인지.

‘…실망스러운데?’

그녀의 눈이 차게 식었을 때.

다시 한번 정우 주변의 마력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보다 묵직해진 무게로.

더불어 위로 솟았던 손이 창을 놓고는 아래로 급격히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를 짓누르듯, 허공을 짓누르자.

콰앙!

눈앞에 있는 빌런의 머리가 바닥을 찍었다.

‘아래로 짓누르는 마력과 염동력을 섞어서 효과를 극대화했어.’

위기를 반전시키는 전투 센스였다.

그녀가 나지막이 감탄하는 사이.

전투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우우웅!

다시 한번 요란하게 벌 떼가 울어댔다.

‘이 정도 수준을 연달아 사용할 수 있다?’

수십 발의 매직 미사일.

유서린은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떨어지는 창을 잡고 다시 돌진하는 정우를 보며 결론을 내렸다.

‘등급에 비해서 월등히 강해. 이게 이중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의 능력인 거야?’

그녀의 눈이.

푸욱!

쓰러진 빌런의 가슴을 창으로 찌르며 고개를 돌리는 정우의 눈과 마주쳤다.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고는 해도 내 위치도 파악했다?”

적어도 아버지의 기대감이 허투루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괜찮겠네. 조금만 더 가다듬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 건.

유일한 생존자가 한정우란 사람 혼자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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