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76화 (76/293)

76화

-검증(1)

조건 : 마력 수치 30

바뀐 조건을 보며 정우는 기묘한 모순에 빠져들었다.

(1)에서의 조건은 마력 수치 15였다.

하지만 정우는 마력이 9였고, 아라크네의 마력을 통해 성장하며 마력 수치가 24가 되었다.

15가 증가한 상황.

“분명히 보상이 아니라 조건인데?”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마력 수치 15를 조건이 아니라 보상으로 여겼었다.

“…모르겠네.”

정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두 번째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30이 주어지는 건가? 뭐, 경험해 보면 알겠지.”

혼잣말을 마친 정우의 입가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막막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성장의 단서는 찾지도 못했고, 몬스터에 시달렸던 것이.

“새삼스럽네.”

마력의 흐름이.

마력을 다루는 컨트롤이.

“모든 게 달라진 것이 느껴져.”

마력 수치만 놓고 보면 이제야 C급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감각은 그 이상.

‘이 정도라면 일전의 플레이어와 싸워도 크게 밀리진 않을 것 같아.’

강원도에서 있었던 죽음의 땅.

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A급 플레이어.

정우는 그에게 근접한 수준으로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하나야.”

부족한 마력 때문에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마법.”

다행히도 회랑에는 수많은 마법이 존재했다.

-저도… 간단한 마법은 가르쳐드릴 수 있어요!

“무슨 마법이 가능한데?”

-현혹, 저주, 매혹, 환상?

“…….”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성장. 미숙 。゚+.ღ(ゝ◡ ⚈᷀᷁ღ)

“…됐다.”

성장하더니 헛짓거리만 는 느낌이었다.

정우는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정해야겠네.”

자신이 던전에 들어가 있는 사이.

불과 하루도 채 흐르지 않은 시간 동안, 양쪽에서 연락이 왔다.

하나는 제임스 밀러.

“A급 던전 버스를 태워 주려고 불렀는데….”

예전이라면 달려갔을지도 몰랐다.

A급의 제임스 밀러는 비전투인원이라 몬스터가 몰려들면 불안했겠지만.

다른 한 명이 그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대마법사라….”

미세스 질.

다른 호칭이 필요 없는 명실공히 최고의 마법사.

그녀와 함께하는 A급 던전이라니.

“당장 달려가야 옳은데…….”

정우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

“…이게 더 끌린단 말이야.”

한국 플레이어 협회.

“유서린.”

그녀는 분명히 자신을 요청하고 있었다.

“빌런 대책반이라….”

B 섹터 사건 이후, 정우는 빌런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빌런들은 그 사건이 이후에도 계속 걸림돌이 되어 왔다.

끊임없이 자신을 노릴 거란 확신도 섰다.

적대 관계.

심지어 빌런들의 기술은 플레이어들이 아는 것보다 더 뛰어났다.

기이할 정도로.

제임스 밀러가 덧씌우기에 자존심이 상한 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사용해서 자신의 기업에 파고들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주 간단한 이유.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연금술로 .

“뭔가 있어….”

정우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이은 테러.

미국에서 시작된 테러는 분명히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드레이크의 심장.

트롤의 심장.

“음? 그런데 왜 굳이 한국에서?”

생각하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한국은 딱히 피해를 입은 게 없었다.

그런데 그 바쁜 유서린이 직접 빌런 대책반. 즉, 전담팀을 운영한다는 것엔 조금 의아한 점이 앞섰다.

북한의 일을 모르는 정우였기에 당연한 판단이었다.

“빌런…이라.”

톡톡, 교차한 자신의 팔을 두드린 정우의 눈이 살짝 감겼다.

또다시 우선순위를 정할 때였다.

둘 다 성장은 확실했다.

대마법사의 마법을 보는 건, 가뜩이나 마법적 지식이 한껏 올라간 자신에게 있어선 더없는 기연일 터.

하지만 직접적인 성장은 빌런 쪽이 월등히 우세했다.

‘여차하면 이지스도 있으니까….’

마법 서적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회랑의 서적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물론, 책으로 마법을 배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예전처럼 회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터전인 마녀의 숲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지스는.

‘충분히 마법을 사용하며 시연을 보여줄 수 있지.’

“좋아.”

정우는 유 대리에게 문자를 남겼다.

“플레이어적인 마법을 보고 싶긴 하지만… 일단은 마력 성장부터다.”

마력 수치가 30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정우의 결정을 부추겼다.

그리고 협회장에게 알려줘야 할 내용도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닥터 브라운.”

정우는 닥터 브라운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혔던 그가 안경을 고쳐 썼다.

“으음. 그런가?”

한국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는 그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 돌발적인 발언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 그래야지.”

하지만 닥터 브라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일본으로 급히 불렀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

‘연구 때문이군.’

정우는 그의 심정을 읽었다.

영혼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된 연구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아티팩트라는 단계로 넘어갔지만, 정우가 보기에도 둘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었다.

‘내가 마정석으로 그릇을 만든 게 아티팩트의 제작법과 비슷할 거니까.’

닥터 브라운이 정우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인 건, 평가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영혼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정도 진행이 되었다고 알렸을 뿐.

그조차 정우의 영혼을 주물럭거리고 싶은 연구가로서의 흥미 때문이었다.

‘영혼과 던전. 두 가지에 내가 관여가 되어 있으니까 확인차 부른 걸 거야. 물론, 이렇게 생각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지만….’

제임스 밀러의 영향이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선의에 가까운 호출이었다.

괜찮은 관계였다.

“닥터 브라운.”

“음?”

“자료를 남겨뒀습니다. 다행히 던전 안에서 저만 파악한 게 있어서 그걸 그대로 남겨뒀어요.”

“……!”

닥터 브라운의 눈이 커졌다.

이계의 지식.

그에겐 천금보다도 더한 값어치를 지닌 것이었다.

“자네….”

“제가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주셨으면 해요. 저한테만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던전의 법칙도 알아봐 주셨으면 하고요.”

“…그게 자료에 대한 조건인가?”

“아뇨. 그냥 개인적인 부탁이에요. 혹시나 연구를 하다가 또 특이한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말씀해 주세요.”

“허, 허허. 좋네.”

정우는 닥터 브라운과 악수를 하며 시선을 옮겼다.

마정석분해장치.

‘저거… 만들 수도 있겠는데?’

정우는 장치의 마력 패턴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내친김에 작동까지 시켜 본 정우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선물을 하나 더 드릴 수 있겠군요.”

“…선물?”

의아해하는 닥터 브라운에게 기대감을 심어 준 정우는 그와 작별했다.

“끝났어요?”

대기실에서 대기 중이던 유 대리는 이미 짐까지 다 싼 후였다.

“뭐가 그렇게 급해요?”

“몰라요. 저번엔 괜찮았었는데… 이번엔 대우도 너무 별로고.”

“닥터 브라운이요?”

“에? 아, 아니! 잠깐, 왜 그쪽으로 몰아가요? 닥터 브라운 말고요!”

유 대리가 손사래를 쳤다.

“일본이요. 타소가레 길드부터 협회 직원까지, 아주…. 제가 일본인을 싫어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니까요….”

으으, 유 대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파를 던진 건 아니고요?”

“…제가 예쁜 건 알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풉.”

말총머리를 툭 건드리며 고개를 꺾는 그녀의 모습에 정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가죠. 한국으로.”

“얼른 가요!”

* * *

“…손을 떼는 게 어때?”

그 말에 날 선 눈초리가 상대를 노려보았다.

“내 작전을 망친 놈인데?”

으쓱.

“엄연히 말하면 그놈이 망친 건 아니지. 네 팀원이 망쳤지.”

도살자는 이를 갈았다.

“곧 일본에서 돌아온다.”

“그 연락은 나도 받았어. 아무래도 내가 관리하는 상대라서… 신경도 쓰이고 말이야.”

검사.

정우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다가 모두 죽이고 나온 그는 정우를 기다리는 도살자를 찾았다.

“내가 먼저다….”

“내겐 왕이 먼저야.”

“방해… 마라.”

“방해?”

검사가 입술을 비틀었다.

“고작해야 이제야 A급에 도달한 주제에 누구더러?”

“…….”

도살자의 손이 천천히 도낏자루로 향했다.

“네놈이 몇 번이나 한정우를 노리다가 실패한 걸 알고 있다.”

“…실패가 아니다.”

“실패지. 기회를 못 잡은 것도 실패야. 심지어 B 섹터 건 때문에 곤란해진 것도 있었잖아?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뭐야? 하지만….”

“…….”

“넘어가 줄게.”

“네가 넘기고 말고 할 게….”

“아니. 넘어가 준다고.”

으득!

도살자의 이가 바스러져라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살기가 넘실거린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상대를 도살하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눈빛에 검사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재미있는 상대가 되겠네. 분발해야겠어.”

검사와 도살자의 수준 차이는 명확하다.

도살자가 아무리 미국에서 현상금을 걸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라고는 하지만.

그는 이제야 A급에 도달한 수준이었다.

협회에서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진작 잡혀서 고문을 당하든 수감을 당하든 했을 게 도살자의 역량이었다.

검사는 그렇게 판단했고, 도살자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뭐, 한 번은 싸워보고 싶긴 하지만….’

도살자의 전투 능력은 유명하니까.

“하지만 상대는 다음에 하지.”

“내가 네 말을 따를…….”

으르렁거리던 도살자의 말문이 흐려졌다.

커진 두 눈.

내밀어진 패는 도살자의 결단조차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

불꽃의 패.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왕의 명령이야. 네가 한정우를 노린다면… 난 널 죽일 거다.”

검사의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

도살자는 저도 모르게 숨을 격하게 몰아쉬었다.

어느새 들려 있는 도끼.

만전의 전투 태세로 한껏 경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

맥이 풀려 버렸다.

“……굳이 찾아왔다는 말은, 내 실수를 덮어 준다는 거겠지?”

도살자의 말에 검사가 씨익 웃었다.

“당연한 말을. 말했잖아. 넘어가 준다고.”

“음…….”

고민을 하던 도살자가 도끼를 거뒀다.

상대와의 격차가 느껴졌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아니겠지만, 당장 지금은 아니다.

수하들조차 다 돌려보낸 상황에서 저자와 붙는 건.

‘필패. …고약하군.’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고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차라리 후일을 노리는 게…….’

“걱정하지 마.”

“…뭐?”

“한 번은 붙게 될 거야.”

검사의 말에 도살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르트.

그가 섬기는 왕이 ‘강탈’의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은, 만천하에 퍼져 있었다.

스킬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상대를 일부러 성장시켜서 잡아먹는 것도 유명했다.

빌런이고 플레이어고.

자신에게 필요한 재능은 모조리 강탈하는 그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먹이’를 필요로 했다.

“…잡아다가 던전을 돌리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모든 플레이어는 던전에서 성장한다.

목줄을 채워서 끌고 다녀도 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원하는 수준을 만들어서 잡아먹기만 하면 그만일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 건.

“왕의 취향이 아니야. 왕은 그 재능이 자신의 목을 찌르는 걸 느끼고 싶어 해.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 끝내 넘지 못할 산의 중턱에서 좌절하는 그 모습까지.”

검사가 입술을 핥았다.

“그건 왕의 별미거든.”

“……고약하군.”

“위대한 거지.”

도살자는 혀를 찼다.

“내가 필요한 일이 뭐지?”

“흐흐. 아주 간단해. 박쥐 한 마리를 관리하면 되는 거거든.”

“박쥐?”

“그래. ‘오버레이(Overlay)’ 하나를 놓고 가지. 자세한 건….”

검사가 비타를 톡톡 쳤다.

“넘겼으니까 파악해. 그럼… 이번엔 실수하지 말라고. 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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