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74화 (74/293)

74화

-아라크네의 흔적 (7)

쩌적!

틈이 벌어진다.

조각난 그릇은 물을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열심히 붙였다고 하더라도 충격엔 약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제대로 붙지도 않은 그릇이야.

아주 작은 욕심이 안겨준 ‘성장’의 순간이 위기로 탈바꿈했다.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을 습득하고, 그것의 잔여 마력을 끌어당겨.

‘던전에서처럼 내 몸을 흐르게 만들려고 했었는데….’

그게 과했다.

던전 전역에 퍼진 마력.

그것은 한 줄기만 당기면 이리저리 얽혀 당겨지는 실타래처럼, 던전 내의 모든 마력을 끌어당겨 버렸다.

마치.

‘…클리어 이후의 상황.’

원하던 것이긴 하나 원치 않았다.

던전 내부의 마력과는 다른 아라크네의 마력만을 흡수하려던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아라크네의 마력은 던전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콰득!

‘그릇이…….’

영혼이 비명을 질러댔다.

의외로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영혼이 깨어질 때 느껴진다는 통증은 없었다.

차라리 끊임없이 마력 패턴을 파악하고 해제할 때가 더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위험하다.’

상황만 놓고 보면 지금이 더욱 위험했다.

한정된 그릇에 막대한 격류가 밀려 들어왔다.

다급히 흡수를 멈추려 해도 이미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된 마력은 정우의 의지를 벗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기는 실은 멈춘 느낌인데… 거기에 딸려 있던 물건들이 그대로 날아오는 느낌. 젠장! 감상이나 할 때가 아니잖아.’

정우는 아라크네의 마력을 통제했다.

자신의 패턴이 되어 버린 아라크네의 마력은 차분히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격류를.

‘밀어내!’

던전 자체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에 저항하며, 흐름을 바꾸기 위해 발악을 했다.

‘젠장! 이게… 이렇게까지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아라크네에게 잠식당했던 던전을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었다.

입장과 동시에 나타났던, 마력의 실로 엉켜 미궁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 냈던 과거를 떠올렸다.

‘섣불렀다.’

자책.

하지만 정우의 무겁게 가라앉은 눈엔 포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

리암에게서 아라크네로 시선을 돌린 것만으로도 결과가 달라졌다.

아라크네의 마력은.

‘조종. 동화. 그리고 감염….’

그 말인즉슨.

‘던전의 마력과 동화되었다는 소리야!’

이건 위기였지만.

‘기회다!’

엄청난 기회였다.

꾸드득!

캔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몸속에서 들려왔다.

거대한 흐름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우그러드는 그릇.

‘조금만… 틈이 생기면!’

아직은 끌려올 뿐인 던전의 마력 패턴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방법이 생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틈을…?’

그렇게 인상을 구겼을 때.

갑자기 압박감이 옅어졌다.

‘이지스!’

약간의 여유.

이지스가 만들어 준 여유에 정우는 나지막이 감탄했다.

놀랍도록 정확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걸 알아차리고 행했다.

그의 합류에 환호한 정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면 죽는다.

영혼이 깨어져서, 마력조차 남지…….

‘잔여 마력!’

깨어진 그릇.

남은 마력.

자신의 스킬을 떠올린 정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큭!”

그 틈을 타고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마력의 흐름에 다시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우는 그릇의 파손에 대한 단서를 잡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던전의 마력에 저항하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자신은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던전이 클리어될 때.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

‘나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어.’

오히려 그릇에 조금 담기는 마력으로 성장까지 했다.

그것이야말로 성장의 비결.

그럼 왜 지금은 피해를 입히는가.

‘저항…하지 마.’

격류에 몸을 맡겨야 했다.

그게 안 되었기에.

오히려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저항.

본능적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것을.

‘오히려 거부한다!’

자신을 스치는 흐름을 계산하고.

그 흐름의 패턴에 자신을 맡긴다.

스스- 슷!

부서지던 그릇이, 다시 복구되기 시작했다.

* * *

“……허, 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회랑.”

그것을 연상시키는.

쿠웅!

거대한 탄생에.

이지스는 허탈함과 감탄을 섞어.

천천히 하강하는 자신의 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 ‘아라크네의 흔적’이 ‘마녀의 마을’로 변경됩니다. ]

[ ‘마녀의 마을’이……. ]

정신을 차리게 하는 메시지.

연이은 등장에 정우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상쾌함에 녹아들어 있던 정신이 깨어났다.

상쾌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자신의 평온을 방해한 메시지에 대한 불쾌함이 샘솟았을 무렵.

“……!”

눈을 의심케 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불쾌함마저도 날려 버릴 정도로.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메시지가.

[ ‘한정우’에게 귀속됩니다. ]

“……뭐?”

부릅떠진 눈으로 메시지를 읽었다.

변함이 없는 문구.

“귀속? 던전이?”

팔랑.

“……이지스?”

갑자기 느껴진 기척에 고개를 돌린 정우의 눈이 또다시 커졌다.

5살 정도의 어린아이.

귀엽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귀여움과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겸비한 아이가 자신의 옆에 떠 있었다.

찢어진 날개와 부러진 뿔의 흔적을 가지고.

“메…아리?”

-빙고! 와아! 벌써 이 정도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메아리?”

-대단해요! 에? 왜요? 왜 불렀는데요? 네?

이모티콘이 사라졌다.

두 단어의 언어 체계가 변화했다.

그럼에도 수다스럽다는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주인님?

“……엑?”

어린아이의 모습이 주인님이라고 말하는 건 지독한 배덕감이 드는 일이었다.

“이 아이가 메아리인 모양이오. 왕.”

저벅.

“이지스….”

정우의 고개가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차분한 걸음.

이지스의 접근에 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살았다.”

정우의 말에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허리를 굽히며, 머리를 조아린다.

“왕이야말로 저희의 구원자이시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 역시 도움을 얻은 건 사실이니까.”

“그리 말씀해주니 고맙소.”

고개를 든 이지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눈을 마주치던 이지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여러 감정이 깃든 눈으로 먼 곳의 산을 본 이지스가 말했다.

“왕의 터전이 되었구려.”

-왕의 땅! 왕의 시작점! 꺄하! 멋져요!

“…….”

메아리?

정우는 메아리의 말투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메아리가 아니라 수다쟁이인데?”

-메아리는 수다쟁이가 아니라고요. 메아리는 볼 거 다 본…….

조그마한 눈이 초롱초롱하게 깜빡거렸다.

-관찰자?

“…….”

정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쓸모가 있는 단어가 등장했지만 그보다 먼저 머리가 어질거렸다.

회복한 게 무색할 정도였다.

“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이가 없다는 투로 이마를 짚는 정우와는 달리.

이지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관찰자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소만.”

곧장 기억을 더듬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이지스.

-따라 해 보세요. 메아리는 수다쟁이가 아니다! 어서!

짝!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는 모양새가 전형적인 떼쓰는 모습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차분하던 세계가 갑자기 수다스럽게 변해 버렸다.

“잠깐!”

손을 내밀며 메아리를 조용히 시킨 정우가 물었다.

“또다시 성장한 거야?”

-넵! 또 성장했어요! 완전 빨라요!

시작되려는 수다를 막은 정우의 시선이 이지스로 향했다.

“내 터전이라는 게… 이 던전 말인가?”

“맞소. 이곳의 법칙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왕이 먼저 선수를 쳤구려.”

메시지가 말한 걸, 메아리와 이지스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물론 정우도, 던전의 변화를 직시하고 있었다.

아라크네의 마력만 흡수해 보려고 했던 결정이 싸그리 바뀌어서 던전 자체를 바꿀 줄은 몰랐지만.

마력을 보는 눈.

각성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초능력과 비슷한 능력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아라크네의 마력이 던전의 마력과 연결되어 있었어. 원래는 던전이 아니었던 장소가 던전으로 변경되면서 아라크네의 마력과 동화되었던 건가?’

던전의 마력이 스쳐 지나갈 때.

정우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현이라는 말을 왜 썼는지 알겠어.’

이지스를 힐끗 본 정우가 생각을 이어 갔다.

이곳은 자신들의 터전이었다.

마녀들의 마을.

하지만 아라크네에 흡수된 뒤, 어떠한 영향으로든 던전으로 변형이 되었다.

정우는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던전이란 게 이계의 일부라고 여겼었다.

회랑의 정보대로 실제로 존재했던 황금 원숭이 따위나, 지극히 소수만이 아는 늪 지하의 보고 등을 떠올려도 그곳은 이계가 맞았다.

하지만 반만 맞았다.

‘셀레잉 늪지의 놀들을 처리했다고 셀레잉 늪이란 배경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명칭만 모를 뿐, 배경은 이미 익숙해.’

던전은 반복된다.

배경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때문에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선, 어지간한 배경은 너무도 익숙한 상태였다.

셀레잉 늪지조차 C급 플레이어라면 네다섯 번의 경험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정우는 이에 따른 개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계의 배경을 플레이어 중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요새 하나의 이름조차 알아낼 방법이 있는 정우였기에.

이 던전이란 존재의 비밀을 까발릴 수가 있었다.

‘덧씌우기….’

직업과 마력을 속였던 능력.

천재 연금술사 제임스 밀러에게 치욕과 좌절을 선사해 주고,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이 되었던 그것.

게임이나 영화. 혹은 SF에서 주로 등장하는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이 단어가 가장 어울렸다.

‘멀티버스.’

하지만 진짜로 차원을 뚫어 다중차원이란 개념이 된 건 아니다.

덧씌우기가 언급된 만큼, 본질은 거짓을 진실 위에 씌우는 거니까.

다중차원처럼, 수많은 배경을 계속 입히는 거다.

몬스터까지는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경을 입히고 배경을 설정하는 단계는.

‘진실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확신까진 아니었지만, 이걸 증명하는 건 너무도 쉬웠다.

‘셀레잉 늪지를 한 번 더 방문하면 되겠지.’

달맞이 넝쿨을 가지고 늪지의 중심에서 그레이 골렘을 불러내 보면 알 일이었다.

핵을 빼앗긴 놈이 다시 등장하면.

‘세이브한 배경을 로드하는 개념일 테니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지는 몰라도….’

완전한 이계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 개념이 더 어울리겠소!”

이지스가 멀티버스와 덧씌우기를 듣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마법도 없는 종족이 그런 개념도 있었어요?

“……넌 성장하더니 말버릇이 참 없어졌다?”

-……! 그건, 아님. (ԾεԾ|||)

“하……!”

옛날처럼 구는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덧씌우기라… 그거참 흥미가 생기는 방법이오.”

이지스는 중후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제임스 밀러를 연상시키는 태도로 눈을 번들거렸다.

마법사적인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야.’

이지스와 제임스 밀러, 양쪽에서 해당 마법을 파악한다면 근시일 내에 성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정우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던전의 마력 흐름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자신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

하나하나 전부 읽히는 이 느낌은, 억지로 파악해 내야 했던 이전과는 달랐다.

정우는 자신의 앞의 공간에 집중했다.

하나의 풀.

그것을 노려보며 그 흐름을 변화시켰다.

‘……!’

급속도로 자라는 풀.

형태조차 달라져서 풀은 나무가 되고 우뚝 솟아 열매를 맺었다.

“……쿨럭.”

그 놀라운 광경에 집중하던 정우가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갑자기 밀려온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갑작스러운 통증이 다소 가라앉았을 땐.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을 흔드는 커다란 나무가 정우를 반기듯 열매를 떨어트렸다.

열매를 보는 정우를 향해 메아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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