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73화 (73/293)

73화

-아라크네의 흔적(6)

단 한 번의 포기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은 순간.

가장 높은 사람처럼 보이던 플레이어조차 고개를 젓는 그 순간부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근육통에 시달려도 달렸고.

고열로 몸을 가누지 못해도 움직였다.

최악을 가정했고.

그걸 이길 힘을 갖기를 원했다.

뿌득!

‘……아프다.’

머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절로 이가 갈려, 턱이 시큰거렸다.

눈이 빠질 듯 아파 오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버겁다.

자신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패턴은 변화무쌍했다.

충분히 따라잡았고, 변화를 파악해서 파고들었다.

그렇게 자부했던 게 덜컥거린 건.

‘…절박했었어.’

패턴에서 느껴지는 절박함.

단 하나라도 더 바꾸고자 하는 발악.

그것을 느끼는 순간, 정우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 느낌을 알기에.

이 감정을 잘 알기에.

아이는 소년이 되었고,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그동안 파고들었던 일이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었을 때.

청년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절망하던 눈동자가 떠오른다.

경악에 찬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라크네에 삼켜진 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마법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던 일족을 보며.

절망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절망. 경악. 눈물.

그 끝에 다다른 한 줄기의 희망.

과연 이지스의 말마따나 그가 패러사이트의 위험성을 인지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의 노력을 한 게 느껴져.’

때문에 정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발악이야.’

마력의 흐름이 달라졌다.

여유가 사라졌다.

그 안에 담긴 절실함에 녹아들 듯, 정우의 얼굴에도 절실함이 담겼다.

도와줄게.

간절함을 담아 속으로 말했다.

이 정도의 간절함이라면.

‘분리할 수 있다.’

퀘스트의 설명대로 아직까진 분리가 가능한 게 틀림이 없었다.

고치는 변태(變態)를 이루기 위한 방어막이다.

왜 아직까지 고치가 유지되고 있을까.

‘변태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직 남았어.’

리암의 의식.

‘그걸 깨워야 해.’

절실함에서 리암의 한계를 역력히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나도 실패야…… 리암! 반응해. 널 구하러 왔다고!’

소리도 칠 수가 없었다.

입을 열자마자 모든 과정이 무위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제가 가능할 거란 확신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런 확신과 달리 본인의 마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마력회복물약이라도 마실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떠나질 않았다.

빌어먹을 마력!

‘리암!’

“……!”

정우의 시선이 돌아갔다.

패턴의 변화에 집중하느라 변화는 미약했지만.

‘……레베카?’

정우는 갑작스러운 음성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절절한 외침.

‘패러사이트.’

그렇지 않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었던 그녀가, 고치에 접촉하여 끝도 없이 리암을 부르고 있었다.

어떻게 저주를 이토록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건지, 정우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감탄은 뒤로 미룬다. …지금이 기회야.’

통증은 덩치를 불려 머리를 깨버릴 것처럼 발작을 해댔다.

누군가가 손을 훅 집어넣어 으깰 듯 주물럭거리는 심장의 통증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게 한계에 달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레베카의 외침은 엄청난 도움이었다.

‘틈이 벌어진다!’

절실함.

그게 느껴졌다.

패턴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는 게 아니었다.

정우의 파악을 돕는 패턴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리암 역시 지금을 기회로 여기고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었다.

거슬러 가는 정우.

흘러 내려오는 리암.

서로를 향해 움직이던 둘의 의식이.

“……!”

파앗!

기어이 만났다.

‘…잡았다!’

정우의 두 눈이 번뜩였다.

* * *

형체가 일그러진 웅크리고 있던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탁한 눈빛.

삭막한 표정은 그간의 고초를 알게 해주는 증거였다.

의식의 흐름이 합쳐진 순간.

정우의 마력은 리암의 마력을 놓치지 않았다.

가까스로 힘을 짜낸 리암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웅크리고 있던 장소로 돌아갔고.

‘리암.’

정우는 그런 리암의 의식을 따라 두 줄기 중 하나의 마력에 접촉했다.

거미줄에 묶여 있는, 흐릿한 청년의 정신체에게.

심해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먹먹한 소리.

아주 미약하여 집중하지 않고서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가.

‘……리아- 암!’

그를 부르고 있었다.

‘레베카 덕분에 의식이 깨어난 건가. 좋아. 일단 실부터….’

정우는 마력을 움직여 복잡하게 얽힌 마력의 실을 끊어 내기 시작했다.

휘청!

실이 끊길 때마다 리암이 크게 휘청거렸다.

소리 없이 입을 쩍 벌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마력의 동화가 심각해.’

절박한 건 리암 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관문을 넘고자 하는 점령군 역시 외부의 상황을 인지하고 더욱 절박해졌다.

정우는 차분히 리암과 가득 연결된 아라크네의 마력의 제거에 심혈을 기울였다.

보답을 받듯 가닥가닥 흩어지는 마력의 실.

수많은 패턴.

‘…….’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처럼.

정우의 수준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여유는 없다.

여전히 머리와 심장의 통증은 거셌다.

‘하나씩 끊으려고 하면 늦어.’

한 줄기가 묶음이 되고.

묶음이 이내 공간이 된다.

의식의 흐름이 빨라진다.

리- 아암!

레베카의 부름에 고개를 치켜드는 리암.

정우와 눈이 마주친 그의 눈에 희미한 생기가 깃들었다.

마지막 순간.

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금이라면 차라리 이 방법을…….’

고민은 짧았고 결정은 빨랐다.

툭.

정우의 의식이 방향을 바꿔 아라크네의 지성을 집어삼킬 듯 난폭하게 파고들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캬-아-!

아라크네의 포효가 들려오는 듯했다.

난폭하고 추악하며, 집요하며 음흉한.

정우는 방향을 바꿔 자신을 없앨 듯 달려드는 아라크네의 마력에.

“……!”

꿰뚫렸다.

쿨럭!

아라크네의 마력은 처참한 상태의 정우를 가볍게 꿰뚫었지만.

“……이럴 줄 알았다.”

정우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파고든다.’

조종과 공격에 익숙한 아라크네의 난폭한 마력이 전신을 파고들고 있었다.

일제히 자신의 마력을 공격하는 거대한 마력.

파스스스.

그럼에도 정우는 오히려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아라크네의 마지막 공격은 강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패턴을 파악한 뒤야.”

해독은 거의 끝났다.

[ 아라네의 마력 패턴을 각인하였습니다. ]

빠르게 숫자가 상승한다.

수많은 패턴.

다양하게 이어지는 여러 패턴이 각인의 변화를 끝도 없이 알려왔다.

[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을 습득하였습니다. ]

그리고 그것이 떠올랐다.

“내가 이겼다.”

리암을 집어삼키려던 마력이 사라진다.

리암을 옭아매던 마력의 족쇄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스스.

마력의 실이 벌어지고.

아버지의 힘을 빌어 아등바등 리암을 향해 소리치고 있던 레베카의 모습이 드러났다.

훤히 뚫린 공간.

둘의 사이를 막는 장애물은.

“리암!”

아무것도 없었다.

레베카가 리암을 격렬하게 끌어안았다.

정우는 둘에게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돌렸다.

각인이 끝나고 스킬이 완성되었다.

다름 아닌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

수없이 변하는 리암을 잡아먹기 위해 수없이 변한 그것이 정우의 손에 들어온 순간.

상황은 일변했다.

스슥!

리암에게 달려드는 마력을 끊어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노리는 마력을 끊어 내는 건.

‘……이거였네.’

허무하리만큼 쉬웠다.

몇 번 남지 않았던 패턴.

그조차 파악이 끝나 버리자 아라크네의 마력은 도망조차 치지 못했다.

오히려 본인이 자랑하는 동화가.

키- 에- 엑!

본인을 동화시키고 있었다.

변화하고 또 변화시키고.

발악하고 또 발버둥 쳐도.

정우와 동화된 마력은 오히려 장악력을 잃어버리기에 바빴다.

차근차근히.

그러나 빠르게 아라크네의 마력을 장악한 정우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거기 있었나?”

또 다른 고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마력의 실을 두른 작은 고치가 눈에 들어왔다.

“거미.”

키- 키익?

자신의 시야에서 도망치고자 불뚝 솟은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이동하는 아라크네의 크기는 결코 크지 않았다.

보통의 거미보다 조금 더 커진 크기.

“원래의 모습….”

리암이 발견할 당시의 크기에서 마력의 실을 둘러 조금 더 커진 크기.

이전의 압도적인 크기는 온데간데없는, 전형적인 벌레의 크기였다.

어찌나 다급한지, 마력의 실조차 뿜어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게 오히려 놈의 실책이었다.

덥석!

빠르게 접근한 정우는 거미를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버둥!

발악하며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거미를.

“후우….”

긴 한숨과 함께 으깨어 버렸다.

콰직!

“…무너진다.”

파르르, 떨며 모든 마력의 장악력을 빼앗긴 고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을 장악한 정우였지만, 각각 전혀 다른 패턴으로 끊긴 모든 실을 제어하기엔 무리였다.

‘마력은 회복했어.’

아라크네의 마력과 동화되어 그것의 마력을 흡수한 탓인지 마력은 회복이 되었다.

오히려 개운한 머리.

상쾌할 정도의 심장 박동이.

‘일단 리암과 레베카부터.’

부둥켜안고 있는 둘의 정신을 밖으로 밀어냈다.

스윽.

손짓으로, 가볍게.

조각나서 무너지는 마력을 보며.

‘가능할까?’

정우는 천천히 눈을 감고 집중했다.

‘흡수… 한다.’

* * *

빠르게 다가간 이지스가 레베카와 리암을 부축했다.

정신을 잃은 둘을 뒤로 물려 눕힌 그의 시선이 정우에게로 향했다.

“…성공, 했구려.”

격한 감흥으로 정우를 보던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직감적으로 정우의 결정을 이해하였다.

“……흡수…하려고?”

으득!

기괴한 소음이 일대를 가득 채웠다.

휘이이잉!

“바람이…….”

이지스는 말끝을 흐렸다.

바람이 분다.

던전이라는 공간 자체를 이루고 있던 바람.

그것은 마력의 흐름이었고, 거대한 흐름이었다.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이 흩어지고.

나뭇잎이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내며 흩날렸다.

휘이잉!

이지스는 손을 저었다.

그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거대한 방어막.

마을을 둘러싸는 거대한 마력은 마녀들의 마력과 합해져 요새처럼 변했으나.

쩌적!

“……!”

정우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마력의 폭풍을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던전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힘.

마녀를 잡아먹기 위해.

더미의 생성을 위해.

수많은 이유로 던전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아라크네의 마력들이 정우에게 몰려들었다.

아라크네의 흔적.

거미가 남긴 의외의 유산.

새로운 위협으로 남을 뻔한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꾸득!

두 눈조차 감은 채 마력의 흐름에 몸을 맡긴 정우의 표정은 고요했다.

이 거대한 흐름 가운데에서도 고요한 모습은.

‘…드래곤.’

인간은 도달할 수 없었던 그 압도적인 위용에 필적할 정도였다.

‘이대로 휩쓸릴 순 없지 않겠소!’

정우에게서 시선을 뗀 이지스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진다.

멀티 캐스팅.

방어막을 유지한 채 공간이동으로 마을의 중심으로 이동한 이지스의 곁에, 일족이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아라크네를 기회로 삼았던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웅웅!

공명하는 마력.

서로의 패턴이 기묘한 울음을 만들어 내며,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는 방패가 되어 떨어댔다.

일족 전체가 펼치는 공명.

산산이 조각날 듯 위태롭던 방어막이 단단해지고.

던전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다짐을 이행하듯,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이지스의 눈초리가 매섭게 빛났다.

‘너무… 거세다!’

마력 태풍의 눈 가운데에서.

고요히 떠 오르는 정우를 본 이지스의 마력이 분산된다.

쿨럭!

그의 분산된 힘을 감당하는 일족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지스는 일족의 부담을 인지하고 눈가를 좁혔다.

“조금이나마 도와야… 수하의 도리가 아니겠소.”

마력의 흐름이 간헐적으로 막히기 시작했다.

부르르!

격류를 막는 손길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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