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70화 (70/293)

70화

-아라크네의 흔적 (3)

[ 폼멜 조각 ]

파괴되었다가 약간 고쳐진 폼멜 조각.

본래의 능력을 일부 잃었다.

절삭력 : +17

정우의 끄덕임에 닥터 브라운은 약간의 침음을 끝으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용해진 분위기 가운데에서 장치의 작동이 멈추었고, 닥터 브라운은 아티팩트를 내밀었다.

“아직은 분해도, 보완도 완전하진 않네만… 시간을 더 들이면 언젠가 가능하지 않겠나?”

닥터 브라운이 아쉬운 표정으로 장치를 보았다.

아티팩트의 변화를 본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제임스 밀러도 그렇고 닥터 브라운도 그렇고.

‘진짜… 천재다…!’

확실히 천재였다.

일부러 파괴한 아티팩트.

‘깨어진 그릇.’

덧씌워서 만든 안정화.

‘안정화 스킬.’

많은 게 관련이 있어 보였다.

투명 슬라임의 마정석으로 만들게 된, 그릇.

던전의 마력을 흡수하여 일반적인 플레이어와 동일한 역할을 내게 만든 그것 역시.

‘닥터 브라운의 개념과 맞물리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져.’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엇을 봤는지 모르지만 무수한 것들을 목격한 산증인, 메아리.

누대에 걸쳐 모은 방대한 지식이 일품인, 마녀 일족.

그들의 지식을, 플레이어란 개념이 생긴 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따라잡았다.

개념은 확실했고.

유의미한 성과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진짜로 인류가 아티팩트를 생산해 낼 수도 있겠어.’

실제로 얼마 전에 본 서적에서 ‘인챈트’에 대해 습득했고, 그와 비슷한 걸 행하지 않았던가.

‘영혼과 아티팩트가 비슷한 면모가 있다는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야.’

메아리가 만든 마정석은 결국 아티팩트였다.

자신에게 흡수되어 스킬화가 되었지만.

‘내장형 아티팩트. 그거였어!’

이계엔 그런 기술이 없는 게 아니었다.

-놀람. 경악 џ(ºДºџ)

닥터 브라운의 곁에서 연신 입을 쩍 벌린 채 날아다니고 있는 메아리가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그녀조차 닥터 브라운의 이야기가 얼마나 고차원적인지 깨달은 것이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얻은 게 적지 않다!’

새로운 관점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성과는 분명했다.

“어떤가.”

닥터 브라운이 씨익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제임스 밀러가 떠오르는 짓궂은 웃음이었다.

“이젠 투명 슬라임의 핵을 구해 올 생각이 들었나?”

* * *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우는 닥터 브라운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 것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연구원의 숙소라며 직접 안내해 준 닥터 브라운과 헤어지자, 정우는 입을 쩍 벌렸다.

애써 억누른 감탄이 끝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정석에 새긴 마법진부터 보여드리고 싶군.”

메아리가 만든 마정석은 어떤지.

이제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개념을 풀어놓고 의견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해.”

정우는 닥터 브라운의 지식에 감탄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었던 정우의 시선이 본인에게로 향했다.

안정화까지 겪었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다음은 회복 단계.

‘근데 아직 무리란 말이지.’

정우의 마력은 던전에선 상승하지 않았다.

오로지 플레이어들을 사냥함으로써 상승했을 뿐이다.

‘일반적인 마력 주입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지.’

정우는 마력이 성장하는 순간을 확인했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순간, 던전을 유지하고 있던 마력들이 플레이어의 몸을 스치고 사라지며.

“…마력을 남기지.”

그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현상이 보인 것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뭔가가 조금씩 변해 간다는 걸 느낄 뿐.

아직은 모호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닥터 브라운이 보인 인위적으로 마력을 주입하는 상황이, 내게는 플레이어라는 소리인데….”

그것 역시 아직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한 길이 왜 이렇게 돌고 돌아가는지 때때로 답답함이 앞설 뿐이었다.

“…하지만 한 발씩 나아가고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제임스에겐 미안했지만, 그가 구매한 던전을 제쳐두고 닥터 브라운을 만나러 온 건 매우 성공적인 일이었다.

아라크네의 흔적이라는 던전만 뺀다면.

“일본…이라. 사사키 씨에게 부탁을 해볼까?”

한국 플레이어 협회장이 알고 있을 정도라면, 생각보다 더 거물일 터였다.

사실 애당초 S급 플레이어는 흔한 게 아니었다.

A급 정도면 충분히 국가 차원에서 대우를 받을 만한 인물들이었다.

한국의 3대 길드의 길드장도 모두가 S급이 아닌 것처럼.

‘그런 것치곤 S급이 더 만나기 쉬운 거 아닌가?’

어지간한 국가 원수보다 더 보기 어렵다는 S급을 벌써 몇 명이나 만난 건지.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쩝. 정 안 되면 말해 보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정우가 회랑에 접속하려고 할 때였다.

“……!”

정우의 고개가 문밖으로 향했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켜질 정도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S급이다.’

S급 플레이어가 의외로 만나기 쉬운 것 아니냐는 어이가 없는 생각을 한 게 불과 몇 초 전이었다.

“들어가지.”

‘한국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는 낯이 익었다.

‘……강세기.’

정우는 상대를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변절자, 강세기.

협회장 유지석과 함께 한국 플레이어의 미래라고 불렸던 인물.

돌연 일본으로 귀화를 해서 충격을 안겨 주었던, 타락한 영웅이 등장했다.

딱!

방에 들어오며 손가락을 튕기자.

‘…마력의 흐름이 멈췄다.’

방 안의 마력이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되었다.

“호오. 이걸 느끼는 거야?”

흥미로운 눈빛으로 정우를 본 강세기가 방으로 들어와 의자를 끌고 앉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곧장 이야기하지.”

그의 검은 눈동자가 정우의 전신을 훑었다.

“일본의 총리를, 조심해.”

“……?”

뜬금없는 말.

당황하는 정우에게 미리 준비해 준 쪽지를 건네는 강세기의 표정이 애매했다.

“이걸 유지석에게 전달해. 자세한 건 거기에 적혀 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길드가 널 감시할 거다. 브라운의 요청은 받아들여질 거야. 총리는 그를 탐내니까. 다만, 내 길드에서 인원이 붙겠지. 아쉽지만 내 말은 듣지 않는 놈들이라서….”

그 말에 정우는 상당히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총리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상황도 한국에서 아는 것만큼 좋은 건 아닌 것 같군.’

정우는 강세기가 건네준 편지를 보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외워도 좋아. 넌 수르트의 선택을 받았으니, 어지간해서는 죽을 일이 없을 거다.”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이죠?”

수르트의 선택과 죽음이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던 정우의 물음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한 건 유지석에게 물어봐라. 그리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엔 내가 적대하더라도 그러려니 해.”

“……!”

그 말을 끝으로 강세기는 방을 나섰다.

딱.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와 동시에 흐르기 시작하는 마력.

‘동결.’

강세기의 능력을 떠올린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도청. 혹은 마법적인 능력.’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의 구석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노려본 정우는 침대에 누웠다.

바스락.

손에 들린 쪽지를 만지작거리던 정우는 강세기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을 대비해서 외워도 좋다라…. 이게 유출되면 큰 문제란 소리인데.’

잠시 망설인 정우는 쪽지를 펼쳤다.

그리 많지 않은 내용.

하지만 쪽지를 읽어 나가는 정우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이야?’

다급히 상체를 일으킨 정우의 시선이 문밖으로 향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쪽지와 뜻 모를 말을 내뱉고는 사라진 강세기를 떠올리며.

* * *

“오후 2시에 입장할 거네.”

닥터 브라운의 말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세기의 말대로였다.

아라크네의 흔적의 입장은 허락되었다.

애당초 반복되는 던전.

E급의 던전은 개방해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특히나 자신들이 영입하고자 공을 들이고 있는 닥터 브라운에게는 더더욱.

“다만 일본 측에서 사람을 붙이겠다는군. 내가 던전에 입장했을 때도 일본에서 사람을 붙였으니까, 이건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

“그렇겠죠. 누가 저와 같이 공략하는 거죠?”

이번엔 1인 던전이 아닌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타소가레 길드야. 음. 그러고 보니 자네와 약간 연관이 있겠군.”

배신자로 다뤄지다 보니 한국에서도 워낙 유명한 길드였다.

“강세기…….”

“맞네. S급 플레이어지. 한국 태생의.”

그의 출신지가 워낙 다인종 국가여서 그런지 닥터 브라운은 무덤덤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영입한 나라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수많은 지원과 막대한 부.

또 다른 골드 러시(Gold rush)를 꿈꾸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미국으로 귀화한 사건도 있었다.

때문에 강세기를 언급하는 그의 태도는 자연스러웠다.

‘하기야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의 일에 감정 이입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여기에 있어요. 이제야 좀 존재감이 느껴지는 느낌인데요?”

같이 일본으로 넘어왔던 유 대리의 말에 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까먹을 때가 많았다.

닥터 브라운도 연구실에 출입할 땐 그녀를 항상 대기실에 두었기 때문에 함께 한 적이 드물기도 했고.

“…본업이 참 잘 어울리네요.”

“엎드려 절 받기지만, 고마워요. 그나저나 일본 일은 언제 끝나나요? 겨우 섭외한 플레이어들 일정 다 꼬여요.”

“아…….”

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의 상황에 집중한 탓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원래 일정이 있었던 모양이군. 워낙 한달음에 달려와서 아무런 일정이 없는 줄 알았네.”

“…아, 미처 말씀을 못 드렸네요.”

“으음. 그럼 이 던전만 클리어하고 얼른 넘어가 보게.”

닥터 브라운이 손짓했다.

“연구는….”

“어차피 보완할 게 한가득이었어. 이거, 자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묘하게 됐네. 그 눈에 담겼던 아쉬움이 지워지도록 한번 노력해 보지.”

“……닥터 브라운!”

정우는 설마하니 닥터 브라운의 눈썰미가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자네만의 비밀이 있겠지. 다음에는 같이 고민해 보도록 하세. 제임스도 함께하면 좋겠군. 자네 몸엔 흥미가 많거든. 그 친구가.”

그가 눈을 찡긋거렸다.

“물론, 이젠 나도.”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손길에 정우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다녀오죠.”

아라크네.

마녀를 구하면서 없앴다고 생각했던 그 이름이 왜 다시 등장한 건지.

과연 마녀들이 그 안에 있는 건지.

확인할 게 많았다.

‘타소가레 길드. 강세기. 그리고… 사람을 강제로 복종시키는 아티팩트.’

여러모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던전부터 해결해야지.’

닥터 브라운의 연구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게이트 앞에 선 정우의 눈에 반삭을 한 일본인이 들어왔다.

“타소가레 길드의 C급 아와 겐고다.”

날카로운 눈으로 정우의 전신을 훑은 겐고가 팔짱을 꼈다.

“한정우.”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정우의 등을 보는 아와 겐고의 한쪽 눈이 꿈틀거렸다.

‘같잖은 한국 놈 주제에 감히 나한테 저런 태도를 보여?’

“입장하겠습니다.”

자신에게 공손히 말하는 협회 직원의 태도에 헛기침을 내뱉은 아와 겐고가 정우의 뒤를 따라 게이트를 넘었다.

서늘한 공기.

순식간에 바뀌는 환경을 보며 그는 정우의 등을 노려보았다.

‘어디 한번 혼자서 용을 써봐라.’

지시를 떠올린 그가 음흉하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

정우가 그를 돌아보았다.

고개만 힐끗 돌린 정우의 눈이 묘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잘 가.

정우의 입술이 기묘하게 비틀렸을 때.

“……어?”

아와 겐고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쓰러지는 그를 본 정우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면을 본 정우의 표정이 밝았다.

“걱정했던 것치곤 꽤나 밝은 표정이군.”

스윽, 나타나는 인형이 고개를 숙였다.

“기다렸소. 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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